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84세 아버지의 도시락 셔틀

84세의 아버지가 도시락 셔틀을 한다. 하필 이 더운 날 도시락 셔틀이라니. 아버지는 도시락 셔틀을 어디로, 누구에게, 왜 하는 걸까? 84세 아버지의 도시락 셔틀, 따라가 본다.

미쓰 김 만나러 가나?

"코로나가 심각한데 아버지 요즘도 종로 가셔?"
"아이고, 한참을 집에 안 붙어 있다. 누가 집에 있으면 잡아 갈라 카나 돌아서면 나가고 없다. 역마살이 낀기가, 와그카는지 모르겠다."

"혹시 태극기 집회 가는 거 아냐?"
"오데? 느아부지가 그런데 갈 사람이가? 절대 아이다."

농사지으러 밭에 가는 날이 아니면 아버지는 종로 탑골공원에 간다. 그곳에 장기 두는 어르신도 많고, 친구도 사귀었다. 종로에 안 가는 날은 출근 시간이 지나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다녀온다. 멍하니 지하철을 타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종점까지 가는 아버지가 이해는 안 가지만 하루는 길고, 딱히 할 일 없는 아버지 처지에서 보면 꼭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농사일을 극구 반대하지 못했다. 나이 들어서 소일거리가 있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우리 딸 셋은 부모님과 종로에서 밥을 먹었다. 아버지가 다닌다는 탑골공원으로 걸어가는데 앞장서던 아버지의 발걸음이 뒤처졌다. 사람이 많은 탓에 아버지를 놓칠세라 뒤를 돌아봤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아버지. 지갑을 열고 구걸하는 사람 바구니에 슬쩍 돈을 넣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못 본 척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들키기 싫어한다. 멋쩍어한다고 해야 하나?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몰라줄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와는 결이 다르다.

"아버지, 종로는 왜 자주 가? 혹시 미쓰 김 만나러 가는 거 아냐?"

아버지는 나의 짓궂은 농담을 받아치지도 못하고 웃는다. 아주 의심스럽다. 그런 아버지를 변명해주는 건, 뻑 하면 황혼 이혼하겠다는 엄마다.

84세 아버지의 도시락 셔틀

"느아부지가 성격이 답답해서 그렇지, 사람은 참 선한 사람이다. 엊그제는 점심때가 한참 지났는데 밥을 안 먹고 온기라. 그래서, '와 때가 지났는데 식사도 안 했소?' 물었더니, 종로에 노숙인 두 사람에게 밥을 타 주고 오느라 점심때를 놓쳤다는 기다."

헐, 이게 무슨 말인가? 팔십 중반인 울 아버지가 노숙인 도시락 셔틀이라니?

"도대체 왜? 아버지가 노숙인 밥을 타다 드려?"
"아, 노숙인 중에 몸을 움직이기 힘든 사람이 있다카네. 그래서 한 곳에서 도시락 두 개를 안 주니까, 두 곳을 다니면서 한 사람씩 타다 주고는 3시나 돼서 집에 와서 밥 묵었다."

"아니, 아버지는 밥을 사 잡수면 되지. 왜 끼니를 놓치고 그래? 남의 밥은 챙기면서 자기 밥은 왜 못 챙기냐고! 자식들이 매달 주는 용돈은 어다 쓸라고?"

내 입에서 잔소리가 터졌다. 평상시에는 식사 때 친구들과 같이 밥을 사 먹는데 그날은 노숙인 밥을 타다 주느라 때를 놓쳤단다. 혼자 먹기엔 그렇고 해서 집에 와서 먹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종로에 자주 간다기에 혹시 점심때 무료급식을 드시냐고 여쭸다.

"아이다. 내는 밥 사 묵는다. 와 내가 무료급식을 할끼고? 돈 있는 내가 거서(급식소) 묵으면 그만큼 없는 사람이 못 먹을 긴데 그라믄 안 되지. 한 번도 거서 공짜 밥, 먹은 일 읎다."

돈 있는 내가

'돈 있는 내가'라는 말에 빵 터졌다. 아버지 용돈 규모를 아는 나로서는 웃음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당신 나름대로 삶에 단호한 원칙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울 아버지는 유독 배고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외국인 노동자 가족이 오갈 데 없이 있는 모습을 보고 지갑을 다 털어주고 온 일도 있다.

아버지가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할머니가 아버지 8살 때, 돌아가셨다. 그 후로 새어머니 밑에서 밥을 많이 굶었다. 아버지는 학교 가는 길에 하늘이 노래지고 빙글빙글 돌아 쓰러지는 일도 많았다. 그런 아버지에게 밥은 목숨인지라, 몸을 못 움직여 밥 굶는 노숙인에게 누가 시키지도 않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도시락을 타다 주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참말로 북한이 굶어 죽나?

시골 길에 걸린 플랜카드
▲ 시골 길에 걸린 플랜카드

2008년 정토회가 법당에서는 북한 동포 돕기 100일 릴레이 기도를 시작했고, 대외적으로는 100만인 서명운동과 모금을 벌였다. 나는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다 하는 딸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아버지에게 북한 동포를 돕자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큰 맘 먹고 말했다.

"참말로 북한이 굶어 죽나? 우리가 돕는 돈이 참말로 북한 아들(아이들)에게 가나?"

jts 북한동포 돕기
▲ jts 북한동포 돕기

나는 JTS는 국제구호단체이고, 물건이 잘 들어가는지 모니터링을 한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부모님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엄마는 매달 5만 원씩 후원하자고 했고, 아버지는 10만 원씩 하자고 했다.

"우리가 한두 해하고 말끼요? 죽을 때까지 후원할 낀데 우리 형편에 맞게 합시다. 우리도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살면서 너무 무리하면 돼요? 만약 아들(자식들)이 형편이 안돼서 용돈을 못 주면 우짤끼요? 그렇다고 돕던 걸 그만둘 수도 없고, 시작할 때 우리 형편에 맞게 합시다."

아버지는 엄마의 강한 주장에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나는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굶주린 북한 동포를 돕는다는 게 중요했다.

"아부지, 엄마 말대로 해요. 돈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배고픈 사람을 돕는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렇게 매달 5만 원씩 후원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새벽같이 전화했다.

"북한 아들 돕는 거 말이다. 매달 10만 원씩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게 해주라. 내 용돈을 줄이면 되지, 아들이 굶어 죽는다 카는데 5만 원 갖고 되나? 10만 원씩 해주라."

2008년, 북한동포돕기 100일 릴레이 기도
▲ 2008년, 북한동포돕기 100일 릴레이 기도

돈의 가치

아 정말, 아버지 용돈을 올려드려야 하나? 울 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감동을 준다. 새벽같이 전화를 건 아버지는 5만 원으로 한 것이 맘에 걸려 밤새 잠을 설쳤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부모님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13년 넘게 JTS 후원을 하고 있다. 나는 돈의 가치가 다 똑같다고 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10만 원은 가벼울지 모르나, 울 아버지의 10만 원은 노동의 무게가 느껴지는 큰 돈이다.

부모님의 알뜰함은 수도세와 전기세를 보면 알 수 있다. 수도세가 한 달 기준으로 6천 원이고, 전기세는 2만 원 조금 넘는다. 빨래 헹군 물을 버리지 않고 모아서 청소한다. 누가 보면 부모님이 정토행자인줄 알겠다. 정작 정토행자인 나는 그렇게 못하는데 그걸 부모님이 해낸다. 작년 연말에는 부모님이 그렇게 아껴서 살고 남은 돈이라며 50만 원을 보내왔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보내 달라고. 자식들이 주는 용돈 다 어다 쓰냐고 닦달한 내 입이 방정이다. 부모님이 보시한 돈, 꿀꺽하지 않았다.

가슴에 묻은 상학이

2008년, 정토회가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100일간 릴레이 기도할 때, 좋은 벗들에서 기사가 나왔다. 감자 두 알을 손에 꼭 쥔 채, 죽은 상학이 이야기였다. 딱 이맘때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더위에 상학이는 배가 고파 감자를 훔치러 감자굴에 들어갔다가 질식해서 죽었다. 목탁을 치며 기도할 때 흐르는 건, 땀이 아니었다. 가슴에서부터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그렇게 상학이는 내 가슴에 묻혔다. 북한은 요맘때 가장 어렵다. 이 어려운 시기에 북한에 인도적 지원이 빨리 들어가면 좋을 텐데 너무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아침기도 때, 한 배의 절을 더 한다. 남북관계가 좋아져 북한 동포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를, 상학이처럼 배고픔에 죽은 북한 동포가 왕생극락하기를, 발원하면서.

2008년, 북한 소식
▲ 2008년, 북한 소식

폭염이 시작됐다. 엄마 말에 의하면 요즘도 아버지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아침 일찍 종로로 출근한다. 일찍 나가는 날은 아버지가 노숙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날이다. 아버지의 선행에 엄마의 이혼 계획은 또 다음 주로 미뤄졌다. 도대체 울 부모님은 언제 이혼하는 걸까? 설마 이러다 평생 같이 사는 건 아닐까? 그렇담, 정말 실망이다.

글_편집_정토행자의 하루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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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소식에 마음이 아프네요 글을 읽고 저도 마음을 더 내봅니다 사연 정말 감사드려요

2021-10-07 18:34:21

큰바다

다시 보아도 눈물겨운 감동 스토리입니다.
어쩌면, 정상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한 모습일텐데요.
가장 사람다운 모습이 눈물짓게 만드는 세상이네요.
저는 참다 참다 이 대목에서 눈물을 쏟았네요...ㅎㅎ
"아~들이 굶어 죽는다 카는데 5만원 갖고 되나? 10만원씩 해주라."

2021-10-07 11:45:05

이지은

감동의~눈물이 납니다
간편소설을 읽은 기분입니다
아버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2021-10-07 1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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