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광주지회
까맣게 그을린 피부,
환하게 밝아진 마음

평소 불면증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던 주인공은 텃밭봉사를 하면서 그렇게 바라던 숙면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텃밭일을 하면서 피부는 까맣게 그을렸지만, 마음만은 환하게 불이 켜졌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잘 쓰이는 사람으로 성장한 오늘의 주인공은 광주전라지부 서광주지회 양은재 님입니다. 수행 삼아 간 텃밭봉사에서 불면증까지 해결한 이야기, 함께 들어봅니다.

불전함 정리 봉사중인 양은재 님(앞)
▲ 불전함 정리 봉사중인 양은재 님(앞)

고아원에 맡겨진 어린 시절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보증을 잘못 서서 집과 밭이 남의 손에 넘어갔고, 그 화병으로 술만 마시면 식구들에게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막냇동생만 데리고 외할머니 집으로 도망갔고, 집에 남겨진 저희 남매 셋은 아버지를 피해 동네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부모 없는 자식처럼 살았습니다.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가 무서워 '하루빨리 돌아가셨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습니다.

몇 년 뒤에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폭력에 결국 어머니는 저희 4남매를 고아원에 맡기고 다시 집을 나갔습니다. 그때 제 나이 12살이었습니다. 일본에 돈을 벌러 간다했던 어머니는 쉽지 않았는지 1년 뒤쯤 돌아왔고, 저희 4남매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상처로 가득 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고등학교는 집과 떨어진 안산에 있는 산업체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며, 야간대학까지 혼자 힘으로 다녔습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회사에서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외모를 꾸미거나 옷을 사 입는 것은 사치였고 돈을 쓰기보단 무조건 모았습니다. 그런 저의 알뜰함과 성실함이 좋았는지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3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가족에게 느끼지 못한 자상함을 가진 남편이었고 이런 남편이라면 결혼해서 맘고생은 안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전반 학생들과 텃밭 봉사활동(아래 맨 오른쪽)
▲ 경전반 학생들과 텃밭 봉사활동(아래 맨 오른쪽)

둘째아이로 뒤죽박죽이 된 인생

하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 제 인생은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온몸이 아토피로 뒤덮인 아이는 가려움과 통증 때문에 통잠은커녕 하루종일 칭얼거렸고, 저는 매일 아침 피와 진물로 범벅된 이불을 빨아야만 했습니다. 아이를 어르느라 잠을 못 잔 저 역시 예민해져 매일매일 날이 서 있었습니다. 전생에 뭘그리 잘못했길래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둘째를 낳지 않으려던 남편을 설득해 낳았기에 그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제가 다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3년 정도 이렇게 지내다 보니 저는 우울증과 조울증으로 감정 기복이 심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왔다 갔다 했고 아이들은 엄마의 기분이 어떤지 항상 눈치를 봤습니다.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는 주인공
▲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는 주인공

7살 된 큰아이가 감기도 아닌데 헛기침을 계속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이상 행동을 보였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로 자주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틱 증상으로 심리적 요인이 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몸이 힘들다 보니 큰아이의 마음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엄마가 예민한 상황에서 아이들도 저처럼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아이 아토피 치료하면서 큰아이는 신경을 많이 못 썼는데 별거 아닌 일로 많이 혼냈던 게 아이를 주눅 들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심리상담소를 찾아가 검사를 받았고, 큰아이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고 엄마한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아이에게 했던 행동들이 스쳐 지나갔고 미안했습니다. 아이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어서 1년 가까이 심리 치료를 받았지만, 처음에만 호전하는 듯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고민하던 중 제 뒤통수를 치는 듯한 글귀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변해야 아이도 변한다.’

제 자신은 바꾸려 하지 않고 아이만 변화시키려 한 어리석은 저였습니다. 그날 바로 아이의 심리치료는 그만두었고 저의 심리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어릴적 상처때문에 아이들을 힘들게 했고 아이는 그저 엄마의 사랑을 원했던 것을 알게되는 기회였습니다.

불법공부로 마음의 치유가 시작되다

어릴 때 사랑받지 못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서인지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퇴근하고 온 남편은 제가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짜증을 내다보니, 밥을 먹고 난 후에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남편에게 왜 내 마음을 몰라주고 얘기를 들어주지 않냐며 투정을 부렸고 그럴수록 남편이 닫은 방문은 옹벽처럼 높아져만 갔습니다.

JTS영양꾸러미 전달 봉사(오른쪽)
▲ JTS영양꾸러미 전달 봉사(오른쪽)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는 생각에 우울한 날들이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버티기 힘들어져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심리치료를 받고 성당을 나가도 그때뿐, 제 상처는 아물지 못했고 생활은 도돌이표를 그렸습니다.

그즈음 '스님의 하루'를 보았고, 이어 즉문즉설도 찾아보았습니다. 즉문즉설을 보다 보니 저와 비슷한 사연이 많아 힘을 얻었습니다. 2019년 가을, 마침 동네에서 열린 즉문즉설 참석을 계기로, 그곳에서 바로 행복학교에 등록했습니다. 작년 봄에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더는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불법을 공부하다 보니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매일 수행연습을 하며 소통방에 마음나누기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치유가 되었습니다.

제10-2차 백일기도 입재식(아랫줄 오른쪽 두번째)
▲ 제10-2차 백일기도 입재식(아랫줄 오른쪽 두번째)

천일결사 10-2차에 입재하여, 처음 100일을 기도하다 보니 스님 말씀대로 제 꼬라지가 보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이만큼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원망만 했었고, 아이들을 저처럼 키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병적으로 집착을 했던 저를 보았습니다. 이젠 저도 아이를 키우다보니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이 가벼워졌고,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수행하라는 부처님 말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100일이었습니다.

환하게 밝아진 마음

저는 매주 화요일과 일요일에 무안 미륵사로 향합니다.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흙퇴비화 실험단에 참가했었는데, 그때 모둠장을 한 인연으로 미륵사 텃밭담당을 맡았습니다. 겁도 없이 무작정한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어릴 때 농사지었던 기억과 시부모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잠깐씩 봐왔던 게 전부였지만 흙이 좋았고 해보고 싶었습니다. 급한 성격과 뭐든지 열심히 하려는 업식으로 제어가 안 될 때도 있지만 법사님과 선배 도반들의 도움으로 천천히 해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것, 쉬면서 해도 된다는 것을 이제야 배우고 있습니다.

미륵사 텃밭에서, 양은재 님
▲ 미륵사 텃밭에서, 양은재 님

미륵사텃밭팀 여는날 단체사진 (맨왼쪽)
▲ 미륵사텃밭팀 여는날 단체사진 (맨왼쪽)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평소에 불면증으로 숙면을 하지 못했던 저는 미륵사에 가서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바라던 숙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텃밭봉사를 하러 가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수행이었는데 덤으로 불면증 치료도 된 것 입니다. 우울증으로 자존감이 떨어져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봉사활동을 통해 잘 쓰이는 저를 보면 정말 행복합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보람을 느꼈고 봉사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손길로 미륵사가 정비되는 것을 보며 항상 감동했고 도움 주는 봉사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텃밭일을 하면서 피부는 까맣게 그을렸지만 제 마음에는 불빛이 환히 켜져서 밝기만 합니다.

미륵사텃밭 완두콩 수확(가운데)
▲ 미륵사텃밭 완두콩 수확(가운데)

파랑새는 우리집에

금강경 수업중 파랑새는 내 안에 있는데 행복과 자유를 밖으로만 찾아다닌다는 말씀이 제 이야기인 것 같아 많이 울었습니다. 우울증으로 힘든 시절에는 집에만 있으면 숨이 막혀 빨리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파랑새가 밖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파랑새는 우리 집 안에 있는걸 깨달았습니다. 불법을 공부하는 지금은 집에 있는게 참 행복하고 아이와 남편과의 관계도 편안합니다. 처음 정토회 다닌다고 했을 때 이상한 사이비 아니냐며 핀잔을 주던 남편은 불교대학 수업하는 날이면 컴퓨터 방을 내어주고 아이들과 놀아주었습니다. 가끔 카톡으로 사랑의 메시지도 보내줄 만큼 연애 시절의 남편으로 돌아갔습니다. 큰아이는 엄마가 정토회 다니더니 괴물여왕에서 행복여왕으로 바뀌었다며 화내지 않고 짜증 내지 않아서 좋다고 합니다.

일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저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아직도 틱 증상이 있고 둘째 아이는 아토피가 남아 있지만 제가 관점을 바꾸니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그냥 이뤄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힘든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매 순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양은재 님
▲ 오늘의 주인공, 양은재 님

아직 저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수행 거리가 있는데 어머니와의 관계입니다. 힘든 가정환경에도 저희를 끝까지 책임지고 키워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식들을 놔둔 채 집을 나가고 고아원에 맡긴 일들이 제 마음속에는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머리로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수행이 많이 부족합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꾸준히 수행정진할 것입니다. 저 혼자서 수행을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텐데 스님의 법문과 선배 도반들이 이끌어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방심하지 않고 꾸준히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글_양은재(광주전라지부 서광주지회)

전체댓글 39

0/200

큰바다

모든 어려움이 그대로이지만, 내 마음을 돌이키니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참 고맙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그냥 된 것이 아닌 줄 알게 되니, 지금의 모든 것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말씀도 참 소중하네요.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4-01-17 07:33:59

손미옥

은재님 수행담 감동적으로 잘 보았습니다. 엄마가 변해야 아이도 변한다는 글과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는 체험의 말씀이 깊이 다가옵니다. 그렇지! 모든것은 나에게 열쇠가 있는거지!

2022-10-24 15:17:17

대호

소중한 수행 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나아가는 이 수행 길에 빛이 되는 도반이길 바랍니다... 도반 님을 응원합니다 ~ _()_

2021-09-20 06:06:25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서광주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