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영지회
감옥도 행복도 내 마음에 있네!

급하게 인터뷰를 요청하게 된 저에게 “나는 괜찮으니 편안한 시간 언제든 얘기해 주세요.”라고 따뜻하게 답해주는 최문숙 님. 괜스레 부산스럽고 조급하기만 했던 저의 마음이 스르르 편안해졌습니다. 2018년 정토행자상 수상 기념 인터뷰 기사가 있다고 하기에 찾아보았습니다. 글로만 봐도 늘 주변에 좋은 기운을 주는 분이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수행하고 계시는 걸까 절로 궁금해졌습니다. 초여름의 기운이 느껴지는 초록 가득한 봄날, 최문숙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최문숙 님
▲ 문경수련원에서 최문숙 님

자랑스러운 나의 부모님

저는 가정환경이 조금 남달랐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는 해방 후 민주화 운동을 하였습니다. 일생에 세 번의 옥고를 치러야 했고, 때로는 가족들까지 곤경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의 뒷조사는 물론, 어머니는 경찰에 끌려가 아버지의 행방을 대라며 매를 맞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세월을 겪은 탓인지 친모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와 함께 민주화 활동을 했던 새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습니다. 지금 떠올려보면 어린 마음에 무섭고 불안한 적도 많았고, 참 힘든 세월이었다 싶지만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늘 따뜻했고, 자식들을 사랑으로 대해주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뭔가 다른 사람,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긍심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넓고 좋은 집이 감옥으로 느껴지다

1977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잘사는 집에 시집을 갔습니다. 친정아버지는 바깥에서 치열하게 사회활동 하셨지만, 타고난 성품이 온화했고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친정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집안 분위기였습니다. 시댁은 전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시아버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 자수성가한 분이었습니다. 변호사 출신에 체격도 좋고, 워낙에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이어서 온 집안은 시아버지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시어머니도 시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맞춰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그런 분위기와 시부모님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두북에서 울력 봉사 중인 최문숙 님(맨 오른쪽)
▲ 두북에서 울력 봉사 중인 최문숙 님(맨 오른쪽)

그런데 첫아이가 태어나고 돌이 되었을 무렵 시부모님과 합가를 했습니다.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넓고 좋은 집. 그 집이 감옥처럼 느껴지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합가 후 살림을 저에게 주로 맡겼고, 매일 가족의 식사와 시아버지의 반주 상을 차리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술상 같은 건 차려 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날마다 고역이었습니다. 돌이 갓 지난 아이에게는 별로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바쁘고 마음이 피곤했습니다. 매사에 정확하고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시아버지의 성향을 맞추는 것이 조용하고 여유로운 성향인 저로서는 힘이 들었습니다. 은근히 깐깐하신 시어머니도 어렵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명절날 동서들이 집에 왔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부러워질 정도였습니다.

아, 그때 그 스님

그런 힘든 시간을 한참이나 보낸 후에 우연히 길에 걸린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홍보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아주 오래전 친정아버지와 지인이 굶주린 북한 동포를 돕는 스님이 있다고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떠올랐고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불교에는 전혀 문외한이었지만 그냥 저도 모르게 이끌려 해운대 법당을 찾아 금강경 강의를 들었습니다. 처음 듣는 경전 이야기는 어려웠지만, 이듬해인 2005년 정토불교대학을 입학하고 법문을 들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감동을 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해운대 법당에서
▲ 부처님 오신날 해운대 법당에서

감옥도 괴로움도 다 내가 만든 것

불교대학 법문 중에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하면 내가 좋은 거라는 말씀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상대를 좋아하면 내가 좋은데 왜 나는 어렵게만, 싫게만 느꼈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충분히 좋은 환경이었을 수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스님 법문과 경전반 수업까지 꾸준히 해나가며 오랜 세월 저를 괴롭혔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어졌습니다.

넓고 좋은 집이 감옥 같다고 생각했던 저의 마음, 그건 제가 만들어낸 ‘상(相)’ 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시부모님도 돌이켜보니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친지들은 “저런 사람이 세상에 없다며” 시아버지의 인품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공감하지 않았는데 관점을 바꾸니 그 말이 다시 들렸습니다. 동서들도 시아버지를 어려워하기는 했지만 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결국은 저로부터 생겨난 문제였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점을 바꾸니 괴로움이 감사함으로!

관점을 바꾸고 보니 시아버지는 나름의 방식으로 저를 사랑해주었고 인간적으로 봐도 참 멋진 분이구나 느껴졌습니다.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정직하였으며 재산이 많아도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60살이 되던 해에는 “늙어 욕심부리지 않겠다.”며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물려주고 은퇴하였습니다.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활동(오른쪽 세 번째 최문숙님)
▲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활동(오른쪽 세 번째 최문숙님)

반주를 즐겨도 항상 도가 지나침이 없고, 반주 후에는 방에서 조용히 음악 감상을 하는 멋쟁이였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늘 아들, 며느리, 손주를 차에 태우고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때는 그게 불편하기만 했는데 제가 조금 더 부처님 가르침을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봅니다. 조금 더 빨리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시부모님이 2011년, 2012년 차례로 별세하기 전에 알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제대로 저를 알지 못하고, 진실을 모른 채 두 분과 이별해야 했다면 많이 죄송하고,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아침기도 할 때 시아버지께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남편과 아들도 시부모님의 이런 곧은 성품을 물려받아 감사합니다. 저도 덕분에 잘 살아갑니다.” 시부모님과 함께한 30년 세월 중 거의 20년간 저를 괴롭혔던 문제들이 이렇게 관점하나 바꾸니 편안하고 감사한 일이 되었습니다. 정토회와 인연이 없었다면 아직도 어두운 토굴 속에서 괴롭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JTS봉사 중에 법사님과 함께
▲ JTS봉사 중에 법사님과 함께

정토회 만나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정토회에 입문한 이후로 건강이 조금 힘들었던 적 말고는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세상과 이웃에 잘 쓰이자”는 기도문을 인생의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시스템이 급변하면서 ‘이제 정토회 활동도 그만둬야 하나..’ 할 정도로 불편하고 힘든 점이 많아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반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짐을 느낍니다.

이 또한 내 모습을 자각하고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수행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처럼 전법활동가로 활동하지 않아도 법당관리 당직, 농사짓기와 같은 봉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만일결사는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봉사소임을 꾸준히 해나갈 계획입니다. 제가 받은 만큼 다른 도반들에게 조금이나마 돌려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이 자체가 다행이고 복입니다. 저는 지금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지혜롭고 향기롭게 나이 듦에 대해 깊은 영감을 주는 최문숙 님과의 대화였습니다. 싫은 소리 못하고 조용했던 20대의 아가씨가 무거운 중압감을 이겨낸 세월, 정토회와 우연한 만남으로 관점을 바꿔 편안하고 행복해지기까지의 세월을 공감해보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환경이 변함에 따라 바뀌는 나의 자리와 역할에 연연하지 않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또한 정토행자로서 배울 점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고소하게’ 재밌게 잘 살라며 저에게 챙겨준 깨소금을 식탁 위에 놓았더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입니다.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집니다.

글_ 강문주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수영지회)
편집_ 이종명(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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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진

온라인으로 법회 때 잠깐잠깐 뵐 수 있었는데 수행담을 읽으며 잔잔하고 고요한 평화로움이 느껴집니다.

2022-02-21 08:09:09

구혜영

보살님 수행담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2021-06-22 22:45:50

김현돌

문숙님~♡
반갑습니다~
여전히 수행자의 본이되게끔 실천하시는
모습 존중합니다~
보살님하고 지내던 수영법당이
여전히 그립답니다~
건강하시고 늘~행복하세요~♡

2021-06-12 13: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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