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성지회
나는야 방글이 전법 활동가

지난 부처님 오신 날은 모처럼 햇빛이 짱짱했습니다. 봉축 법요식을 마치고, 대구경북지부 수성지회의 회원 담당, 모둠장,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맡은 이은여 님을 만났습니다. 이은여 님은 항상 “네, 알겠습니다!”라며 가볍게 소임을 받았습니다. 자기 의견도 가볍게 내놓으며 신나고 재미있게 활동했습니다. 그 활기찬 모습의 비결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눈물이 마르다

저를 정토회로 이끈 사람은 제가 가장 좋아하고 따르는 친언니였습니다. 하지만, 언니가 정토회 사람이 된 계기는 바로 저였습니다. 2014년에 친구가 저에게 보내 준 법륜스님의 법문 영상을 저는 보지도 않고 복사해서 언니에게 보냈습니다. 스님의 법문 영상을 보고 언니는 주저 없이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같이 다니자는 언니의 권유에 저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곧장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23년 동안 시부모를 봉양하며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여러 해 전, 제가 고3 때부터 10년을 같이 살던 숙모가 별세해서 장례식을 치르고 삼우제도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양해를 구했을 때, 시부모는 뒷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처의 숙모는 남이나 다름없다면서 가지 말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런 시부모를 이해할 수 없어서 사흘 밤낮을 울었습니다. 그 후 시부모를 온 마음으로 공경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시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한순간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국물 있는 밥상을 준비해서 같이 식사했고 예의범절은 지켰습니다. 하지만, 숙모의 장례식을 계기로 시부모에 대한 신뢰가 와장창 무너져서 마음을 다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대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끈 떨어진 연이 된 것 같았습니다. 시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지낸 마지막 두 주와 장례식 동안 참회하는 눈물을 엄청나게 쏟았습니다. 아이가 재수하고 있을 때였는데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시부모라도 있으면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외로웠습니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 채로 갓바위를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언니와 함께(오른쪽)
▲ 언니와 함께(오른쪽)

2015년 가을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제가 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법륜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저도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의 명심문인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겠다는 결심으로 천일결사1 기도를 시작하고 나서 자연스레 제 눈에서 눈물이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콤플렉스여 안녕

2016년 경전반에 다니면서 경전반 부담당으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해 제 곁에 남은 유일한 어른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우제를 지내고 오면서 ‘이제 누가 내 옆에서 부모 역할을 해주지?’라는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면서 무척 허전했습니다. 퇴근 후 법당에서 법륜 스님의 강의를 듣다가 ‘아, 내 곁에는 스님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법문에 더 집중하고 스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천일결사 기도에 제대로 임했습니다.

아버지의 삼우제 다음 날, 9차 천일결사가 시작된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신기하게도 108배를 했는데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108배를 했는데 다리가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5시에 일어나 법당에서 가서 꾸준히 기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마침 남편은 다른 지역에서 근무했고 자녀들은 타지로 공부하러 가서, 새벽에 법당에 가도 거리낄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천 일을 빠짐없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법당으로 가서 5시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선천적인 다리 장애로 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절을 하면서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다리가 아플 때는 천천히 절을 이삼일 하고 나면 아픈 다리가 괜찮아집니다. 지금도 아플 때가 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절을 합니다. 절이 저를 회복시켜줬고, 제 다리에 문제 있다는 인식이 저 자신에게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원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절을 많이 권합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음을 깨닫다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남편에게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남편의 부모를 23년 동안 봉양한 저는 보상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을 대학에 보낸 제 친구의 남편은 비싼 선물을 주었다던데, 제 남편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시어머니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남편이 거부했습니다. 남편의 거부에 화가 난 마음을 아이들에게 하소연했습니다. 몇 달 후, 아들이 왜 엄마의 작은 소원 하나도 들어주지 못하냐면서 남편에게 대들었습니다. “너희들이 준비해야지, 왜 내가 다 해야 해?”라는 남편의 반응에 저는 무척 서운했습니다.

얼마 후 〈깨달음의 장〉2에서 남편과 아들의 싸움을 부추겼던 제가 참 어리석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가족사진은 언제든 가능할 때 찍으면 되는데, 제 생각을 고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나중에 결혼 25주년, 리마인드 웨딩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예쁘게 찍었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기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부자를 싸우게 만든 어리석은 엄마였다는 생각에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많이 울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 인도 성지순례에서

〈깨달음의 장〉을 마치는 날에 새로 태어난 저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삼배하는 저를 보자 뒤돌아섰습니다. 하지만,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화가 날 만도 하지’라고 생각하며 남편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이 어떤 말을 해도 저는 거의 싸우려 들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남편이 수행해서 저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에는 ‘내가 하기를 잘했다. 내 가족 중 아무도 정토회 사람이 되지 않아도 내가 더 큰 나무가 되면 끝까지 우리 가족은 행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두운 방에 촛불을 켜는 것 같던 그때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인생 최대의 감투를 쓰다

천일결사 기도를 3년쯤 했을 때,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남편이 월 마감하라고 준 돈을 인도 성지순례 경비로 냈습니다. 남편에게 미리 이야기하면 인도는 죽을 때까지 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사고부터 쳤습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일주일 동안 말을 안 했습니다. 저의 권유에 같은 법당 도반 여섯 명이 함께 인도에 갔습니다.

성지순례 사전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을 때, 담당자가 저를 이은여 차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인도 성지순례 대구 경북 차량의 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학생 때 반장도 한번 해본 적 없어요. 저는 못 해요.”라고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꼭 제가 해야 한기에 어쩔 수 없이 소임을 받아들였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차장 소임을 하면서 배운 것이 참 많았습니다.

차장으로서 대중 40명을 인솔해보니, 개인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별심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해진 장소보다 더 먼 곳에서 볼일을 보고 오느라 모든 차량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여행으로 생각하고 와서 모든 것에 불만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쩜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법사님과 함께(오른쪽)
▲ 인도 성지순례에서 법사님과 함께(오른쪽)

한편, 작은 것에서도 커다란 깨달음을 얻도록 도와주고 대중이 힘들지 않도록 배려하는 법륜스님과 법사단의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17일 동안의 인도 성지순례를 단기 출가로 생각하고 인솔자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또한, 힘들게 참여한 인도 성지순례를 오롯이 저에게 집중해서 후회 없는 시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거의 매일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108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성지순례의 끝 무렵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행동들을 보아도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수행, 보시, 봉사를 따로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합일하여 행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항상 웃는 전법 활동가

언니의 제안으로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서 천일 결사기도 후에 언니와 함께 경전을 읽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천 일 동안 경전 읽기를 결심하고 지금까지 거의 300회 읽었습니다. 제가 읽는 경전의 요지는 ‘법을 전하라.’입니다. 법을 전하면 제가 행복할 뿐만 아니라 저에게서 법을 전해 받은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륜 스님께서 새로운 전법 활동가 프로그램에 관해 이야기하실 때 그 취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삼 년은 꾸준한 천일결사 기도를 통해 저 자신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삼 년은 법을 전하는 전법 활동가로 봉사하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하면서 불교를 전혀 모르거나 불교 신자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불법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행복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저 또한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아! 내가 지금 법을 전하고 있구나. 이것이 법을 전하는 기쁨이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JTS 거리 모금 중(오른쪽)
▲ JTS 거리 모금 중(오른쪽)

비록 직장에서는 적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전법과 봉사활동을 통해 제가 만들어 내는 선한 영향력은 확실하다는 자부심을 얻었습니다. 직장에서 힘들 때 ‘나는 봉사 에너지가 큰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힘들다는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빡빡한 일정 속에 몸은 힘들어도 항상 회사 동료들을 웃는 얼굴로 대할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종종 저에게 “니는 뭐가 그렇게 좋노?”라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저 하하하 크게 웃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오늘 경전 말씀은 “자신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도반을 만나지 못했다면 차라리 홀로 수행하라. 어리석은 자를 도반으로 삼지 마라.”였습니다. 경전을 읽으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발원을 알아주는 것만 같은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교대학 학생들에게 부끄럼 없는 당당한 진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 기도문은 ‘내가 먼저 행복하고 행복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먼저 수행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법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자신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일 같은 시간에 빠짐없이 기도하고 부지런히 수행합니다.

불교대학 학생들의 변화하는 모습은 제 수행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저와 함께 꾸준히 천일결사 기도를 하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다른 지회에 있어도, 일 년 동안 함께 기도한 학생들과는 아직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또한, 활동가로 거듭난 학생들을 보면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 생겼다는 생각에 정말 행복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정토회에 남아서 활동하지 않는 학생들도 정토회를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합니다. 혹여 정토회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학생들이 저를 항상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고, 수행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밝게 웃는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정토회 활동을 하지 않는 불교대학 졸업생들이 초파일 연등 달고 싶을 때, 가볍게 저에게 문의 전화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정토회에서 수행하면서 건강을 되찾고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 제가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제가 정토회에서 받은 이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 경전 말씀처럼, 다른 사람들의 도반이 될 수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깊게 뿌리 내린 큰 나무가 되어 도반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고 싶습니다.

두북봉사활동에서 도반들과 함께(맨 왼쪽)
▲ 두북봉사활동에서 도반들과 함께(맨 왼쪽)


도반의 수행담을 들으면 고마운 마음이 들고 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 수행담을 들었지만, 이번 수행담에는 유난히도 눈물이 났습니다. 오늘의 경전에 감동하고 다른 도반이 함께 수행하고 싶어 하는 수행자가 되고자 발원하는 이은여 님은 찔레꽃 같았습니다. 바람결에 접한 향기에 가까이 다가가 만난, 소박하고 은은한 모습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는 찔레꽃 말입니다.

글_안정미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수성지회)
편집_성지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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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원

찔레꽃 은여님!
어여쁜 모습만큼이나 마음또한 어여쁘십니다
시부모님 공양하는 것은 하늘의 뜻과 맞아야 할 수 있는 큰 일이라 들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고 대견스럽습니다. 늘 화사하게 웃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꽃같은 모습은 마음에서 나오나 봅니다. 정토불대에서 은여님을 알게 된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늘 가까이에서 ~~~

2021-06-10 21:23:30

임명숙

은여보살님.. 반갑습니다.
저의 불대 담당자이신 보살님의 수행담은 역시 감동입니다.
항상 곁에서 잘 배우고 잘 이끌어 주셔서 지금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여서 참 좋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06-06 21:59:09

보디사트바

존경스럽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ㅎㅎ _()_

2021-06-06 15: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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