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중울산지회
개인 법당에서 세운 원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뒤안길에서 돌아온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주인공처럼 시련을 이겨내고 원숙한 삶에 이른, 누님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옥교법당 마지막 문고리를 잡아 준 김진숙, 최상미, 허영미, 백재선 네 모둠장의 향기 나는 추억과 원을 들어 보겠습니다.

남편은 나를 깨어있게 하는 스승 - 김진숙 님

불교대학, 경전반 공부는 할수록 좋았지만, 정토 행자의 서원이 저에게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이 서원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참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든든하고 기쁜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김진숙(남편과 한강 둔치에서)
▲ 김진숙(남편과 한강 둔치에서)

첫 소임은 경전반 학생 때 맡은 불교대학 모둠장입니다. 제가 불교대학 졸업하기까지 수많은 봉사자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알고, 최소한 받은 것은 갚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쁘게 소임을 받았습니다.

저는 인도 성지 순례 다녀온 후 '내가 일을 왜 하지?'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몸이 아파 입원해 있으면서 제가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았습니다. 정토 행자로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면 돈이 많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돈 버는 일보다 법당 일이 더 재미있어 미련 없이 일을 접고 아침, 저녁 상관없이 법당에 다녔습니다.

김진숙(인도 성지순례)
▲ 김진숙(인도 성지순례)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집에서 혼자 기도가 되지 않아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할 때 생긴 일입니다. 몇 달을 다니며 ‘이젠 기도 시간에 맞춰 기도 잘하네’ 나름 만족하며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이 화를 내면서 "이렇게는 더 이상 니하고 못 살겠다!"라고 했습니다. 저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남편은 너무 큰 알람 소리에 깨면 더 이상 잠을 못 자니 힘들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못 하게 할 수 없으니, 원룸이라도 하나 얻어서 나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순간 '그것도 이해 못 해주나?'라는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하는 마음을 냈습니다. 덕분에 부처님 법에 더 가까워졌고, 남편은 일상에서 저를 깨어있게 하는 스승임을 깨달았습니다. 새삼 감사한 마음입니다.

청정한 수행도량

코로나 보살 덕분에 개인 법당을 개원 할 수 있었습니다. 생겨난 것은 사라진다는 제행무상 아닌 게 없음을 알아갑니다. 법당에서 가지고 온 책상과 방석이 있고 그 위에 노트북이 있습니다. 정진하던 방을 개인 법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했더니, 마음 편히 머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연말에 4박 5일 명상까지 온라인 개인 법당에서 해보니 오프라인 못지않게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저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이고, 여기가 청정한 수행도량입니다.

젊어 홀로된 시어머니 - 최상미 님

육 남매 막내로 자란 딸이 시집살이를 못 견딜까 걱정한 친정어머니는 제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잘 살겠노라 약속하고 시집이 뭔지도 모른 채 결혼했습니다. 삼십 년 넘게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왜 그토록 어머니가 반대했는지 알았습니다. 살림살이는 물론이고 아이들 장난감과 책사는 일도 간섭하며 은근히 저도 직장 나가기를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살림을 맡기고 직장을 나가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남편의 반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세 살까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스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배려해 준 남편에게 늘 감사합니다.

남편에 대한 마음과 달리 시어머니에게는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명절 때는 집에 오는 시누이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열두 남매 친정 대소사에 다 참여한 시어머니는 정작 며느리는 친정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결혼 삼 년 만에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니 그동안 못 찾아간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정토회를 만나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원망이 감사함으로

2016년 가을 불교대학을 입학해 오 년 동안 옥교법당과 함께 하면서 부처님 법이 무엇인지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식 날 수행이라는 스님 법문을 통해 이전에 제가 배웠던 불교대학과 다름을 알았습니다. 경전반을 다니면서부터 선배 도반이 권하는 불교대학, 경전반 담당 소임을 맡았습니다. 명상이 최고의 수행이라 생각하며 스님과 함께하는 명상을 통해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수행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 천일 결사와 함께 매일 정진했습니다. 주기적으로 점검받는 정일사를 통해 괴로움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다 내가 만들었음을 확연히 알고 나서 삼십여 년 동안 미워하고 원망했던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시어머니 살아계실 때 법 만나 수행할 수 있어 감사하고 어머니에게도 감사합니다.

최상미(부처님 오신 날 경주 천룡사)
▲ 최상미(부처님 오신 날 경주 천룡사)

도반이 된 남편

함께해온 우리들 법당이 정리되고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아쉬움도 많았지만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함께 도반이 되기를 원했던 남편은 온라인이기에 드디어 불교대학을 입학했습니다. 주말마다 스님 지도하에 할 수 있는 주말 명상과 평소 산사를 좋아했던 제게 으뜸 절이 생겼습니다. 새롭게 할 일을 찾아나서니 요즘은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수행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언제나 담담한 - 허영미 님

따뜻한 햇살이 스며드는 옥교법당, 2016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수업 후에는 항상 정성 가득한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예쁘고 맛있는 공양 시간이 기다려졌고, 저도 공양간 봉사를 하면 부족한 요리실력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욕심으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도반들 도움으로 공양 지원에서 경전 법회 담당으로 소임이 이어졌습니다.칭찬에 부끄러워하고 싫은 소리에 흥분하던 마음도 담담하게 볼 수 있는 여력이 생겼습니다. 공양 지원을 할 때 냉장고에 흘러넘친 김칫국물 때문에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보시한 도반이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고 화를 내어 도반을 몹시 불편하게 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허영미(인도 성지순례)
▲ 허영미(인도 성지순례)

새로운 원

법당정리 소식은 아쉽지만, 거부감 없이 참여했습니다. 시간이 촉박한데도 적재적소에서 열정으로 일하는 도반들의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돕는 이 소임을 하면서 불교대학 공부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도 남편과 아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바라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만 이제는 개인 법당에서 '나를 인정하고 참회하는 수행'을 꾸준히 하겠습니다. 남편이 도반이 되는 욕심이 아닌 원을 세워봅니다.

나의 옥교법당 - 백재선 님

법문 공부나 수행보다 불교대학, 경전반을 함께한 도반이 좋아 울산법당에서 신규 개원 옥교법당으로 옮겨 왔습니다. 한 도반은 항상 우리를 까르르 웃게 했고, 나누기는 법문보다 더 감동이었습니다. 행사에 나서기 꺼리는 도반들을 챙겨 즉석에서 노래를 개사하고 재밌는 율동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하면 무슨 일이든 절로 해결된다며 가벼운 마음을 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언니같이 편안한 도반들과 함께 불교대학 신입생을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학생이 행복해진 모습으로 같이 수행하는 도반이 되어가는 모습에 저도 어딘가에 쓰여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도반이 따뜻하게 용기를 준 일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법당에서 혼자 사시 예불하면 무섭다고 했을 때 부처님과 함께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고 깨우쳐주었습니다. 덕분에 그 후부터는 언제 어디에서든 부처님과 함께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운 일이 없어졌습니다. 법 있는 작은 법당에서 각자 역할에 충실하며 울고 웃으며 재미난 소꿉놀이를 실컷 한 곳이 저의 옥교법당이었습니다.

백재선(즉문즉설 강연 안내)
▲ 백재선(즉문즉설 강연 안내)

나만의 법당

법당을 정리하는 제 마음은 해 질 녘 친구들과 소꿉놀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입니다. 너무 신났던 기억이 잠시 돌아봐 지기도 하지만 온라인에 맞게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고 연습합니다. 법문과 수업이 있는 날은 조용히 법복을 입으며 차분한 마음 가득히 깨어있는 저만의 법당을 만들어 갑니다.


옥교법당이라는 건물과 헤어졌지, 도반들과 헤어진 것이 아니라는 총무의 마지막 인사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추억이 깃든 곳이라 서운하고 아쉽지만, 순간순간 이동하는 홍길동과 같은 온라인 정토 세계에서 다시 만나 수행 정진해 나가길 발원합니다.

글_김봉재(부산울산지부 중울산지회)
편집_임명자(서광주지회)

전체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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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감동입니다 모든수행자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화이팅~^^

2021-05-31 14:19:50

김병숙

옥교법당 모자이크붓다님들의 소소한일상나누기 ㆍ감동스토리
촉촉한빗소리와함께 잘듣고갑니다
감사합니다

2021-05-28 05:58:55

현광 변상용

옥교법당이 울산 근처란 걸 이제야 알았네요 ㅎ
이렇게 서로 잘 맞는 도반끼리 헤어지려니 그 아쉬움이야 오죽하겠냐만 총무님 마지막 인사 말씀처럼 도반들과의 인연은 계속 되겠지요.
그걸 아니 덜 아쉬운 것 같습니다.
도반의 힘으로 여기가지 왔고 앞으로도 그 탄력으로 쭉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옥교법당 도반님들 화팅입니다!

2021-05-27 18: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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