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김해지회
행복으로 가는 길
힘들어도 쭈욱 걸어나갑니다

하얀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꽃이 예쁜 봄입니다. 지난 한 해 코로나로 모두 힘들어도 잘 버티고 잘 견뎌온 우리는 정토행자입니다. 때로는 지치고 고달프지만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답을 알기에 오늘도 다만 일어나 수행 정진으로 시작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소임을 마다하지 않고 ‘예’하고 하는 사람! 6년을 하루같이 수행 정진하며 살아가는 오성환 님을 만나 봅니다.

'기도' 책을 준 후배와 함께(왼쪽)
▲ '기도' 책을 준 후배와 함께(왼쪽)

따끈따끈한 책 그 이름이 ‘기도’

저는 충청도 아산의 작은 시골 농가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가정형편은 어려웠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언니 오빠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고집이 세기도 하지만 충분한 사랑을 받은 만큼 마음만은 따뜻하답니다. 그러다 착하고 성실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아들 딸을 낳고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직장에 사직서를 냈고, 오로지 남편만 믿고 살았던 저로서는 두려움과 무거운 짐에 눌려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뭐라도 해야겠기에 40대 초반에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하면서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언제든지 취업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남편의 사직서는 반려되었지만 저는 시작한 공부가 재미있어 남들보다 열정적으로 했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학우들은 제가 너무 열심히 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는지 시기와 질투로 저를 왕따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를 아는 후배가 법륜스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권유했고,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스님의 책이라며 ‘기도’ 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책 속에는 나를 깨우쳐 주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제까지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문제였음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한 발 물러서서 지켜봐 주기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빠와의 갈등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날마다 남편과 아들 탓만 하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스님의 유튜브 영상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두 사람 문제는 두 사람이 해결하도록 옆에서 지켜봐주고 기다려 줘야 하는데 제가 중간에 끼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온갖 간섭을 했습니다. 힘든 자식 생각은 안하고 오로지 학교는 꼭 가야한다고 아이를 다그치면서 공부에만 집착했습니다. ‘그동안 남에게 해를 끼치고 산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때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타는 자체가 싫었고 사람들 만나는 게 두려워 아예 밖으로 나가질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 내 안에 나를 가두고 힘겹게 살았습니다. 학교를 꼭 다녀야만 된다는 집착에 빠져 아이의 마음을 순수하게 읽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법문을 듣고 스님께서 조언해 주시는 대로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가 얼마나 내 욕심에 사로잡혀 아이를 힘들게 했는지 깨달았고, 내 어리석음이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아들과 마주앉아 밥을 먹는데 아이의 선한 눈빛이 보이고, 밝게 웃는 표정이 보이고, 따스한 마음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아이의 마음은 안정되어 가고, 저 또한 편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 아들은 일찍 검정고시를 거쳐 군복무도 마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자격증을 취득해 사회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모 만나 고생한 아이를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하고 또 아이로 인해 어리석은 내가 깨우치게 되어 고맙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처님 법 만나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아이가 새삼 저의 부처님으로 느껴집니다.

불교대학 졸업식 때 개근상을 탔어요(오른쪽에서 두 번째)
▲ 불교대학 졸업식 때 개근상을 탔어요(오른쪽에서 두 번째)

저는 2016년 봄 불교대학에 입학을 해 불법을 배우면서 이렇게 좋은걸 왜 이제 알았을까?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습니다. 혼자 힘들게 보냈던 날들이 후회가 되고 불교의 참된 진리를 터득하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치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면서 인도성지순례에 대한 원을 세웠고, 무슨 공덕인지 경전반 졸업할 때쯤 꿈에 그리던 인도성지순례를 가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도 후 최초로 설법하신 초전법륜지인 다메크수투파 앞에서 가사를 받아 수계를 받을 땐 마치 2600년 전 그 시대로 돌아가 정말 부처님의 제자가 된 듯 설레고 뭉클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짧은 일정으로 바쁘게 다녔지만 스님의 모습 속에서 부처님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얼마나 호화로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 스님과 함께
▲ 인도성지순례 중 스님과 함께

인연이 주어지면 기꺼이 해보자

스님법문을 통해 방황하던 아이가 안정을 찾고 나 또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그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예”하고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스님 강연 때 맡은 영상봉사를 계기로 강연할 때마다 영상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수행법회 영상과 불교대학 담당, 천일결사 모둠장, 자활담당을 2년 하고 총무소임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 소임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땐 선배 도반들도 많은데 제가 해야 하는 것에 부담이 되었지만 ‘인연 주어지는 대로 기꺼이 해보자’ 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코로나19의 창궐로 시작도 제대로 못해보고 우왕좌왕 하면서 참으로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 과정 속에서 많이 배우고 훌쩍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불교대학 담당자가 학생들 졸업할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삼보수호비 신청서를 받아야 하는데 어떠한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처리해 학생들 대부분 신청을 안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왜 저에게 상의도 안하고 그렇게 일처리를 했냐고 다그치며 학생들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신청서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전원 다 받게 되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처음엔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그 분은 나를 일부러 화나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잘 몰라서 그런 것이었는데 미리 안내를 안 한 내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분은 모르긴 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또 그런 활동가들이 있기에 나 또한 내 소임을 할 수 있지 않나 싶어 미안했고 도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거나 벗어나면 상대 탓을 하면서 내 원칙을 강요하곤 했는데 소임을 통해 상대를 기다려주는 여유도 생기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모두 소임 덕분입니다. 이래서 소임이 복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변화가 많은 상황에 수시로 바뀌어 내려오는 업무로 분별도 많았고 안하던 일을 하려니 순간순간 버겁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과연 해 낼 수 있을까?’라는 압박감에 잠을 설칠 때도 있었지만 매일 아침 꾸준히 정진한 힘으로 그 힘든 고비를 잘 견뎌온 것 같습니다. 총무소임 3년 하면서 부족한 수행 다지리라 마음먹고 시작한 소임을 1년 만에 마무리해 아쉬움도 있으련만 오히려 3년 치의 수행이 이미 다 된 듯하여 홀가분하고 시원한 마음입니다.

천일결사 9차년 회향수련 -문경수련원 앞에서 향웅법사님과 도반들(맨 오른쪽)
▲ 천일결사 9차년 회향수련 -문경수련원 앞에서 향웅법사님과 도반들(맨 오른쪽)

2012년 향웅법사님 자택에서 가정법회를 시작으로 2020년 온라인 법당으로 전환되기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 안고 부대끼며 같이 해 온 도반들과 이제는 각자 개인법당에서 화면으로 얼굴 마주보며 기도 정진합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요. 온라인 법회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개인 법당에서 수행 정진하는 도반들과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누기는 나를 알게 하고 우리를 깨우치게 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큰 힘을 줍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딸아이의 입시문제로 시름하던 때입니다. 서울 쪽으로 수시를 넣은 상태인데 수능시험이 다가올수록 불안한 마음이 생겨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원인을 살펴보니 떨어질까 걱정되는 마음과 혹시라도 합격하면 서울에서 경비는 물론 혼자 생활하면서 겪게 될 안전에 대한 걱정이 불안감을 가중시켰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은 떨어져도 걱정, 걸려도 걱정이었습니다.

어느 질문자의 스님 답변 속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과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마음을 보았고 그 때문에 괴로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결정이 나도 그 결정을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합격하면 아이가 원하는 대학을 가게 되어 잘된 일이고, 떨어지면 내 옆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어 이 또한 잘 된 일이라는 것을 순간 깨달았습니다. 어떠한 결정이 나도, 다 잘 된 일이므로 불안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같이 가는 도반이 있어 행복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대혼란의 시기였지만, 정토회의 발 빠른 대처로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2년 가정법회를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러 다른 법당이 부러워 할 만큼 솔선수범 수행과 봉사를 잘 하고 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도 나 혼자는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서로 도반들과 같이 수행 정진한 보람입니다.

제이티에스 거리모금-2019 성탄절(왼쪽)
▲ 제이티에스 거리모금-2019 성탄절(왼쪽)

도반들과 같이 갈 수 있어서 뭐든 해 낼 수 있습니다. 지난 가을불교대학 진행을 하면서 학생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감동을 받았기에 올해도 기꺼이 불교대학 진행을 맡았습니다. 화상으로 만나 마음공부 한다는 것이 처음엔 과연 가능할까 싶었지만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진솔한 나누기는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었고 그들 또한 부처님 법을 통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를 알아가는 참 진리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지켜 나가는 길이 곧 바른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한없는 부처님의 가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법을 만나 날마다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 받아야 하며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한다’는 제이티에스의 원칙을 준수하며 앞으로도 이 길을 쭈욱 걸어가겠습니다.


힘들어 하면서도 소임을 맡고, 수행정진 하는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았으니까, 이게 바른 길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힘들더라도 계속 가는 겁니다. 이제 중심이 섰습니다. 그 전에는 이런 길을 몰라 헤매고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이 길이 있다는 걸 알았잖아요. 부처님께서 그 길을 알려주셨잖아요. 스님을 통해서 이 길로 가면 행복할 수 있음을 아니까 가는 겁니다. 이 것이 좋은 걸 아는데 왜 안 합니까? 힘들다고 안 해요? 저는 이 길이 맞다 싶으면 힘들어도 갑니다. 저는 이 길을 알았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성환님의 말씀에 저도 이 길을 같이 걸어가야겠다는 마음이 더 또렷해진 느낌입니다.

글_이순남 희망리포터(경남지부 김해지회)
편집_이정선(경남지부 진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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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오성환 스승님
법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행복학교졸업생 김 희입니다

그 동안 어디 계시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밝은 미소와 호탕한 웃음으로
잘 이끌어 주시고 행복학교를(미소)
통해 관계편 (꼼꼼하신 )이어서 현재 불대까지(열정적인)
스승님 밑에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 할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래도 첫 법문을 열어 주시고
이끌어 주셨던 은혜를

2022-05-18 19:56:02

조정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1-11-11 01:19:30

박진현

감동적입니다.

2021-05-15 07: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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