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노원법당
나는 정토회라는 위대한 크루즈의 탑승자입니다

“무슨 일을 맡기든 다 해내실 분이세요” 황유진 님을 소개하는 경전반 담당자의 목소리에 웃음꽃이 폈습니다. 경전반 학생으로서 황유진 님은 월요일 수업부터 일요일 명상까지 모든 법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법당 방석을 빨아 오는 일부터 행복학교1 온라인 전법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한 황유진 님. 이 자발적인 열정이 어디서 솟아 나올까요? 황유진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황유진 님
▲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황유진 님

이혼, 기복신앙의 끝이자 수행의 시작

2016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때는 이혼한 직후였고 여러모로 힘이 들었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아프고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어요. 남편의 외도를 25년 정도 그냥 바라만 보고 살았습니다.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참은 세월이었습니다. 어디 의지할 데가 없다 보니 절에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늘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러다 이혼 직후 TV에서 법륜스님을 보았습니다.

법륜스님은 제가 정말 원했던, 찾고자 했던 스승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스님에게 배우기를 갈망했습니다. 어느 날 스님이 우리 동네에 즉문즉설을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망설임 없이 갔고 그렇게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그 후 바로 불교대학에도 입학했습니다.

그때는 일이 바빠서 불교대학 수업을 듣기에 힘든 상황이었지만 열심히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예불을 드리는 순서가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독창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수행자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불교를 공부하고, 명상도 하고, 제가 바랐던 대로 수용할 수 있는 삶을 권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참고 또 참았던 시간

결혼 생활 하는 동안 저는 참기만 했습니다.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게 한계에 부딪혀 폭발하면서 제가 먼저 이혼 요청을 했습니다. 남편은 25년간 줄곧 외도했습니다. 그 시절 남편이 사업을 했기 때문에 먹고 살려면 성 접대는 당연한 거로 받아들였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나서 알게 되니, 더 자포자기했습니다. 남편을 잘 몰랐던 저의 어리석음과 무지가 있었으니, 그에게 온전히 책임을 물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어도 제가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어서 그런 사람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습이 잘못 들어서 어쩔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 그 업이 이어지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참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병이 나서 죽을 뻔한 고비도 몇 번 넘겼습니다.

경전반 동기들과 함께(아랫줄 오른쪽)
▲ 경전반 동기들과 함께(아랫줄 오른쪽)

이제는 놓아야 할 때

이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본인 카드가 맞는지, 혹시 도난당한 건 아닌지 물었습니다. 남편이 제 명의 카드로 술집에서 천만 원 가까이 돈을 쓰니, 직원이 확인차 전화를 건 거였습니다. “남편이 사업하는 데 쓰는 카드예요. 나는 괜찮아요.”라고 이야기 했지만 그 직원은 선뜻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남자지만 너무하네요. 정말 괜찮나요?"하고 재차 물었습니다. 괜찮다고 대답을 해도 이 직원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는지 그때부터 한 달 동안 남편이 카드를 어디에 얼마큼 썼는지 전화 걸어 알려주었습니다.

그동안은 남편이 사람들 안 만나고 집에 일찍 들어오면 짜증과 화를 폭발시키니 차라리 안 들어오면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 돈을 많이 쓰고 다녀도 '다 로비하는 데 필요하려니' 생각했습니다. 제가 돈을 안 버니 남편이 하는 일에 간섭 안 하고 그가 하는 일이 잘 되길 빌어주는 것, 이것만 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은 억지로 참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편이 습이 잘못 들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다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예요.

카드 회사 직원의 전화를 받으면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이 화가 폭발하면서 제가 이혼을 선언했습니다. 남편은 돈이 많고 호방한 남자라서 따르는 여자가 많았습니다. 남편이 그전에 이혼하자고 해도 제가 아이들을 생각해서 버텼습니다. 제가 이혼을 거부할 때마다 그 사람은 별 난동을 다 부리곤 했습니다.

카드 회사 직원의 전화가 외면했던 제 안의 화를 불러온 것도 있지만, 이제는 이 사람을 놓아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다 커서 결혼을 했습니다. 저도 더 늦기 전에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도반들과 노원법당 철거활동(맨 왼쪽)
▲ 도반들과 노원법당 철거활동(맨 왼쪽)

할 수 있는 만큼 지어가는 나의 꿈

전남편이 이전에 현실성이 없어서 못 받아준다고 했던 저의 꿈 하나가 있었습니다. 1층에는 목욕탕을 짓고 그 위에는 요양원을 짓고 그 위에는 보육원을 짓고 그 위에는 법당을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무료로 목욕도 하고 법당에 모여서 기도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돈은 많이 벌었어도 저에게 돈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저는 그런 꿈을 꿨습니다.

그래서 가정주부 생활 중에도 틈틈이 사회복지 공부를 해왔어요. 그러던 것을 남편과 이혼 후에 실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진 꿈과 관련된 일을 해보자고 생각을 했고, 장애인 활동 보조 지원사로서 여러 환자를 돌봤습니다.

그중에 가장 최근에 돌봤던 환자는 25살의 키가 175cm에 75kg이지만 정신연령은 3살 청년이었습니다.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집에서 지내는 거에요. 처음에 가서 봤는데 커다란 아이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어요. 여러 기구도 삽입되어 있었고 냄새도 심하게 났습니다. 이 환자를 돌보려면 많은 치료 도구를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이 큰 몸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합니다. 남자들도 못 하겠다고 두손 두발 들고 나간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딱 보는 순간 '이 환자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겠다고 했더니 환자 엄마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환자의 몸이 시체처럼 완전히 굳어있었습니다.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맨날 주무르고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디를 다 만져줬습니다. 저도 나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기 때문에 호흡이라던가 상태를 더 잘 체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섬세하게 체크해가면서 운동을 시켰더니 환자가 조금씩 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도 하나 못 움직였던 환자가 침대를 딱 잡으면서 힘도 주고요. 일으켜주면서 응원해주면 한 발짝 뗄 정도로 많이 좋아졌습니다. 돈이 없어서 건물은 못 짓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볼 수는 있어 좋습니다.

전법의 원을 세우고 있는 황유진 님
▲ 전법의 원을 세우고 있는 황유진 님

모두가 나의 부처님이었어요

저는 요즘에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것, 남편을 만나서 아주 힘든 삶을 살았던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으로 쓰이려고 그랬구나' 싶어요. 다들 이 환자를 보고 도망을 갔다는데 제 경험을 살려서 '내가 한번 돌보아보자'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토회에 오기까지의 험난한 길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주변 언니들이 "너는 뭔가 다르다. 너는 왜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안 좋은 얘기를 해도 신경을 안 쓰느냐."고 합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부당하고 억울한 일도 겪었거든요. 자기들이 더 화가 나서 밤에 잠도 못 자고 했답니다. 그런데 "너는 보면 억지로 참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러든지 말든지 자기 할 일만 가장 정성스럽게 한다"고 합니다. 맞아요. 저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능력이 없어서 그냥 제가 환자라면 어떨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만져주는 겁니다. 정토회에서 배운 대로 하는 겁니다.

이 일을 하다 보니까 삶이 곧 수행입니다. 환자를 돌보면서 부정관2이 저절로 되었어요. 대소변을 받아내고 때를 닦아내고 피고름, 가래가 나오고. 이런 피지나 눈곱이나 코딱지 같은 걸 다 손으로 만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 사람이 이런데 뭐 그렇게 잘났다고 나라는 고집을 내세우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가 바로 나의 부처님이구나’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가 늘 말없이 웃습니다. 아파도 웃는 거예요. 천사구나 싶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시간이 다 저 공부하라고 주어지는 시간 같습니다.

정토회라는 위대한 삶을 사는 크루즈

저는 이제 정토회라는 위대한 삶을 사는 크루즈의 탑승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꿈꿨던 것들을 법륜스님이 거의 다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토행자로서 부처님 은혜를 갚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게 원이 있다면 전남편에게 전법 하는 것입니다. 전남편이나 자식들 다 부처님 안에 들어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그 이상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정토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습니다.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 배울 것입니다.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면 배우고 영어를 배워야 한다면 배우겠습니다. 나이가 있어서 자꾸 잊어버려도 배우는 재미가 있어요.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경전반 동기 도반이기도 한 황유진 님을 새해 첫날 노원법당에서 만났습니다. 문득 여기서 같이 법문을 들었다면 더 좋았을 걸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황유진 님이 용맹정진하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필요하다면 컴퓨터라도 배우겠다고 하시니까요. 경전반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도반님을 본받아 삶 속에서 꾸준히 수행해나가겠습니다.

글_류지현 희망리포터(노원정토회 노원법당)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1. 행복학교 행복해지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적 의식이나 프로그램을 배제하고, 법륜스님의 행복 메시지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연습을 함께 하는 곳.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12강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음.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2. [不淨觀] 육체의 부정함을 느끼고 깨달아 번뇌와 욕망을 떨쳐버리는 관법(觀法)의 하나이다. 관법이란 마음 속에서 진리를 관찰하고 염하는 명상의 실천수행법을 이르는 말로오정심관(吳停心觀) 중 하나이다. 오정심관은 외계의 부정한 양상을 보고 탐욕을 고치는 수행법으로 부정관, 자비심, 인연관, 오온·18계, 호흡으로 마음을 치유하는것의 5가지이다. 이 수행에서는 시신이 부패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육신의 덧없음을 깨우치고 탐욕, 특히 이성에 대한 정욕을 없애기도 한다. (두산백과)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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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수

도움됐습니다^^

2021-01-24 22:18:18

자재왕

황유진님, 완전 보살님이시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2021-01-23 20:48:45

무구혜

마음에 진한 울림이 오네요

2021-01-22 0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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