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관악법당
행복한 계산법

관악법당 불교대학 도반으로 처음 만난 조천일님은 수줍음이 많고 어두운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하고 몇 년 사이 얼굴이 놀라보게 환해졌고 당당해졌습니다.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환한 연꽃처럼 피어난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JTS거리모금에서 도반들과 신나게 (오른쪽에서 두번째 )
▲ JTS거리모금에서 도반들과 신나게 (오른쪽에서 두번째 )

무서운 아버지

어릴 적 기억 속 아버지는 "그래~"라는 말보다는 "안돼!"라는 거절하는 사람으로 내게 각인되어있습니다. 아버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질책과 훈계를 늘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칭찬과 질책에 따라 내 하루하루는 행복과 괴로움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목소리가 커질 때는 물론 재채기 소리만 들려도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세월이 쌓이니 길 가다가 모르는 남자가 큰소리를 지르거나 재채기를 해도 심장이 벌렁대는 자동 반사적인 습관도 생겼습니다.

청소년기를 거쳐 20대가 되어도 소통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본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아버지가 무서워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을 때는 절망감 두려움 그리고 열등감으로 허우적거렸습니다. 모든 면에서 소심해진 나를 보며 이런 모습이라면 살아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습니다.

싫은 내 모습

1994년 대학을 졸업한 후 개인 회사에서 근무를 했는데 호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밖의 소문과는 다르게 회사 직원들에게는 권위적이었고 학력에 따라 차별하고 인격 모독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부당하다는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욕을 했습니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다른 회사보다 월급을 많이 주니 8년을 계속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만이 쌓였고 내 불만을 타인들에게 퍼붓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찍은 사진 속 내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분명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사진 속의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에다 심술 가득 찬 마귀할멈 같았습니다. 내 생각과 마음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창피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불안과 자책

그즈음 아버지가 한 달 넘도록 감기를 앓으셨습니다. 평생 정신적으로 나를 짓누르던 아버지시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덜컥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죽음이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으로 충격이 컸습니다. 모든 일상이 힘들어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언니에게로 갔습니다. 큰맘 먹고 3년 정도 공부에만 몰두해서 여유 있게 세상살이 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도 딸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도착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이번에는 어머니가 난소암으로 6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1년간 병원에서 같이 자고 퇴원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완치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인생 반전을 계획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특별한 경력도 없는 상황이 되고 보니 늘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 속에서 살았습니다. 20~30대를 허송세월한 것 같아서 부끄러웠습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보기 싫을 정도로 무기력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런 내게 어머니가 자금을 대주어 2012년 브런치 카페를 열었습니다. 내가 먹는 것처럼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조리하였지만 수입은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근근이 만 5년을 운영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몸과 맘은 힘들어 지쳐만 갔고 어느덧 40대중반으로 넘어가는 나의 미래는 불안만 더 커졌습니다.

세상이 흔들리다

그러던 중 40년 지기 친구에게 힘든 속마음을 털어놓았는데, “깨달음의 장1”이라는 곳을 가보라고 했습니다. 별 설명이 없어서 조금 의아했지만 내가 힘이 드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가 알던 세계는 지진이 난 듯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리 흔들렸는지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골똘해졌습니다. 그 결과로 그 해 봄 불교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연이어 경전반까지 졸업했습니다.

즉문즉설 거리홍보때 도반들과 행복하게 (왼쪽에서 두번째 )
▲ 즉문즉설 거리홍보때 도반들과 행복하게 (왼쪽에서 두번째 )

불교대학과 경전반의 가르침은 내게 위로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 세상에 내 것이라 할 것이 없고, 내가 태어난 이유도 없으며, 길가에 핀 풀과 같이 그냥 가볍게 살면 된다.”는 가르침에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놓였습니다.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오늘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살면 된다.”는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내 맘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 후 희한하게도 마음의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어느덧 행복한 나로 변한 것 같아서 깨달음의 장을 권유해준 친구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깨달음

그러나 나를 억누르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리고 아버지를 돌보지 않아서 돌아가시게 했다는 자책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을 졸업 할 때인가 봅니다. 아침 수행 정진을 하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도 나름 최선을 다했고 어렵던 시절인데도 자식 5명을 모두 대학 졸업까지 지원하셨어. 처음 아버지가 되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에게 잘하는 건지 몰랐을 뿐인데, 나는 아버지 때문에 자신감 없는 아이로 자랐다고 원망을 했구나!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하나의 사건일 뿐, 내가 돌보지 않아서 돌아가신 게 아니야.”라는. 순간 마음속 원망과 죄책감이 일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사신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넉넉하게 살아온 세월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한때
▲ 즐거운 한때

환한 미소의 비밀

남의 평가에 의해서 나의 행복이 좌지우지되었는데 이제는 남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웃을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대한 집착이 옅어지니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면 내 평생은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간단한 계산법을 배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고 당당해졌습니다. 이제는 편안한 말로 타인과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내 표정이 달라진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마음속의 근심 걱정과 자책감 등 부정적 감정들이 사라지게 되니 얼굴빛이 저절로 밝아졌나 봅니다. 물론 아직도 오랜 세월의 습관이 남아있어서 분별심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금세 알아차리며 참회하는 노련함도 생겼습니다. 맘이 편해지니 가끔 게으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편안할 때의 수행은 괴로움을 쫓는 예방주사와 같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합니다.

2019년 경전반 수업후 불전함을 정리하며(오른쪽)
▲ 2019년 경전반 수업후 불전함을 정리하며(오른쪽)


아버지를 원망하고 외면하는 삶에서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삶으로의 대전환을 이룬 조천일님의 수행담에 감탄하게 됩니다. 조천일님은 현재 관악법당 봄 경전반 꼭지와 법당지원팀장으로 즐겁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변화가 바로 정토회의 동력임을 확인한 귀한 인터뷰였습니다.

글_ 조천일(관악법당)
정리_이경분(관악법당)
편집_한숙(서초정토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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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왕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어주신 도반님도, 읽게 해주신 리포터님도 모두 감사합니다.

2021-01-17 15:46:10

강상원

길가에 핀 풀처럼 가볍게 살아가면 된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01-15 06:05:03

유경민

와,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우신데요?^^
수행기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새롭고 가뿐한 나날들을
기쁘게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

2021-01-15 05: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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