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금정법당
소임이 복입니다

불교대학 경전반을 졸업하고, 바로 지원팀장을 맡아 궂은 일들을 싫은 내색 없이 묵묵히 해내는 사람. 매사 긍정적이라 저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의구심이 들만큼 모든 걸 받아내 주는 사람. 본인이 제일 수고가 많음에도 항상 먼저 도반의 수고에 인사를 건내는 사람. 그이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편안한 안정감을 느낍니다. 지금 따뜻한 안진옥 님의 수행담 품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구김살 없는 천성

제가 9살 되던 해, 갑작스러운 병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36살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자식 다섯 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오빠, 언니들은 낮에는 공장, 밤에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는 고된 세월을 살았고, 저와 남동생은 어머니를 따라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씩씩한 천성 덕분에 구김살 없이 자랐습니다. 홀로 애쓰시는 어머니의 고단함을 덜어드리기 위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장학금을 받으며 학기 중에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졸업 후에는 ‘삼성반도체’에 취직했습니다.

JTS 모금활동 중인 안진옥 님
▲ JTS 모금활동 중인 안진옥 님

일찍 철이 든 저에게 직장생활은 어머니에게 의지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열심히 하며, 착실하게 저금하며 살던 중, 돌아가신 아버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러다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겨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계속 회사에 다닐 수가 없어 퇴사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저축해두었던 적지 않은 돈은 작은 언니와 형부에게 사업자금으로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IMF와 맞물려 결국 저는 빈손으로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시댁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놀란 시어머니는 어린 며느리와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어, 환영은커녕 아이를 낳지 말라는 소리까지 했습니다. 배는 불러오고 힘든 마음으로 시댁에서의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남편은 방위산업체를 다니고 있던 터라 남편의 수입으로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돈을 빌려간 작은 언니가 갚는 몇십만원으로 근근이 버티며 시댁 살림을 도맡아 했습니다. 첫아이 돌잔치 때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주식까지 팔았습니다.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키운 아이 셋

남편은 방위산업체 기간이 끝나고도 IMF로 이렇다 할 일이 없었습니다. 지인의 권유로 지방에 있는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둘째, 셋째 아이를 낳고 시누이와 시아주버님을 차례로 결혼시키며, 집안의 온갖 대소사는 오롯이 저 혼자 감당했습니다. 남편의 연이은 사업실패, 갖가지 시댁의 일들로 여기저기 치이다가 막내 아이가 4살이 되는 해,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생활비를 벌고자 회사 영업직으로 취직했습니다.

평일에는 종일 영업하며 운전하고, 퇴근 후에는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주말엔 남편이 가져오는 일주일 치 빨래와 집밥을 그리워하는 남편을 위해 삼시세끼 식사를 해댔습니다. 저는 어디 나가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몸과 마음은 더 고단해졌고, 인생이 끝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같이 느껴졌습니다.

남편(광산법당 주병근 님)과 아들과 함께 한 안진옥 님
▲ 남편(광산법당 주병근 님)과 아들과 함께 한 안진옥 님

그러다가 남편이 있는 이곳 부산으로 이사오면서 시댁에서 벗어났습니다. 드디어 주말부부 종지부를 찍고 우리 가족끼리 모여 살게 되나 싶었지만, 야속하게도 남편은 타지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저는 다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회사에 나갔습니다. 회사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까지 승진했지만, 여자로서 더 이상의 진급이 어려운 업무환경과 평생직장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어느날 찾아온 공황장애

지금 다니고 있는 대기업이라는 곳에 입사해 다시 바쁘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의 부조리를 보고는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노조 간부까지 하면서 업무와 노조 활동, 집안일을 병행하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회사의 관리자들과 신경을 곤두세우며 날 선 말이 오가고,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다 보니 공황장애까지 왔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중인 안진옥 님
▲ 불교대학 홍보 중인 안진옥 님

어느 날 지친 마음에 유튜브를 보던 중 스님의 즉문즉설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그날 이후 매일 챙겨보다 어느새 남편도 따라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먼저 정토회를 검색하며 불교대학에 같이 다니자고 했습니다. 2018년 9월, 남편은 직장이 있는 광주 광산법당으로, 저는 동래 금정법당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며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왜 나는 항상 남과 싸우려고 준비를 하고 있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인생을 살지? ' 어릴 때부터 고생하며 자란 탓에 일찍 돌아가신 아빠도 원망스러웠습니다. 항상 불만에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공황장애로 허덕이고 있는 제가 보였습니다.

남편이 권한 깨달음의 장

도반이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 놀랍게 변한 모습에 감동을 한 남편은, 제게도 적극 <깨달음의 장>을 권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여러 가지 인생의 답답한 의문과 원망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건강하고 올곧게 자라준 아이들과, 주말부부로 살면서도 가족을 위해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 철없던 어린 며느리에게 미래를 생각하여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시어머니, 손주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저는 행복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도 눈을 꼭 감은 채 보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만든 원망과 불만의 올가미로 시야를 가린 채 살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과거의 저와 마주하면서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평생 지고 살아갈 무거운 마음을 일순간 내려놓고 나니, 저를 도와줬던 봉사자들에게 보답하고 싶고, 저처럼 힘들어할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때 도반의 권유로 금정법당 지원팀장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경전반 학생 딱지를 땐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때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JTS 모금활동 중인 안진옥 님(오른쪽에서 네번째)
▲ JTS 모금활동 중인 안진옥 님(오른쪽에서 네번째)

권태기 부부가 아닌, 도반 부부

어려운 불교 용어, 많은 회의와 낯선 도반님들, 버거운 상황으로 공황장애가 다시 도졌습니다. 회의 때 가슴이 답답하고, 글을 읽을 땐 등에 땀이 흥건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예전과 다르게 받아들이며 '틀려도 괜찮다, 몰라도 괜찮다, 물어보면 된다'라는 마음입니다. 또 그저 열심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자라고 다독이며 하다보니 지금에서야 소임이 복이었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법당 일이 많기에 괴로울 틈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할 틈도 없습니다. 주말에 찾아오는 남편에게는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줄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부부가 긴 세월을 살면 권태기가 온다고 합니다. 주말부부라 그런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서먹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남편과는 경전반까지 같이 다닌 도반으로 부처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복한 대화 시간을 보냅니다. 남편은 제가 봉사하는데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화상회의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과 직접 밥을 차려 먹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도반은 수행의 전부임을 알고, 소임이 복임을 알기에 꾸준히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만만찮은 세월을 살아오신 인생사를 덤덤히 풀어내시는 안진옥님. 좋은 일은 호탕한 웃음 한 번으로, 곤란한 일은 눈짓 한번 찡긋함으로 넘겨버리는 안진옥님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을 품어주는 큰 바위얼굴이 떠오릅니다. 항상 먼저 솔선수범하시며 도반들을 챙기시는 안진옥님은 금정 법당의 든든한 지킴이입니다.

글_안진옥(동래정토회/금정법당)
정리_목승혜 희망리포터(동래정토회/금정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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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은

감동이있는수행담입니다.
나누어주시니,많이배웁니다.고마워요진옥님!

2020-12-08 23:49:46

보승화

감동적인 수행담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12-08 21:10:17

광덕 박철성

어려운 삶의 무게를 잘 지내 오신 것이 살아 있는 수행 법문 입니다.
불법 안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 영위 하시길 기원합니다. ~()~
고맙습니다
~()~

2020-12-08 19: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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