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분당법당
전기충격기 대신 만배, 삼만배로 끊은 업식

유쾌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나고 싶은 끌림이 있습니다. 특유의 즐거움과 상쾌함으로 도반들의 마음을 밝게 끌어주는 분당법당의 비타민, 전지영 님의 진한 수행담 속으로 함께 빠져보실까요!

활동가정진 (뒷줄 맨왼쪽, 전지영 님)
▲ 활동가정진 (뒷줄 맨왼쪽, 전지영 님)

남자로 태어나고 싶었던 산골 마을의 둘째 딸

남존여비 사상이 심했던 산골 마을에서 딸만 둘인 집에 둘째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할머니의 구박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엄청난 사랑을 주었지만, 동네에 나가면 늘 이웃 할머니들은 저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고추 하나 달고 나오지”하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그 당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고, 동네 발전을 위해 앞장서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남자로 태어나서 아버지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자로서 제가 못마땅했기에 항상 남자처럼 거칠게 말하고 강하게 보이려 애썼습니다.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았고, 남자에 대한 적개심도 약간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설레게 하는 남자가 나타났고, 11년 열애 끝에 결혼해서 예쁜 딸과 아들도 낳았습니다. 결혼 초기엔 남편 뒷바라지하며 살림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저의 독재근성과, 예전의 불같은 성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리더십과 추진력이 있는 성격이라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이들 엄마로서의 저는 완전 ‘빵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제 말에 “예”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가 났고, 화가 풀릴 때까지 씩씩거리며 잔소리를 퍼부었습니다. 친정엄마는 “야!” 소리 한번 안 하고 저희를 키워주셨는데 저는 성질머리가 왜 이런지 엄마에 못 미치는 제가 너무 싫었습니다. 머리로는 아이들에게 상처주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말에 순응하지 않으면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아이의 등을 후려쳤습니다. 큰애가 7살, 작은 아이가 6살 때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저녁마다 남편을 붙잡고 울었습니다. 남편은 “괜찮다. 괜찮은 엄마다. 장모님과 비교하지 말라”며 늘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점점 의지하게 되었고, 남편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곤 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 레크레이션 진행 (오른쪽)
▲ 천일결사 입재식 레크레이션 진행 (오른쪽)

전도몽상이 깨어지는 해방감과 자유로움

2015년 여름휴가 때 시댁에 서운한 일이 생겼는데 남편이 저보고 이해하라는 말에 불같이 화가 났습니다. 나와 내 아이들 편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갑자기 남처럼 느껴졌고, 숨소리조차 듣기 싫었습니다. 내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때 제 옆에는 항상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인생 멘토인, 창원정토회 활동을 하고 있던, 언니가 있었습니다. 언니는 〈깨달음의 장〉이라는 곳을 다녀와서도 생각에 변함이 없으면, 애들을 돌봐줄 테니 직장을 구하고 난 뒤 이혼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오직 〈깨달음의 장〉에 갈 일념으로 2015년 가을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드디어 가게된 4박 5일간의 수련은 완전히 신세계였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전도몽상으로 살아왔던가를 깨닫는 순간 느낀 그 해방감과 가벼움, 자유로움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활발하고 당차보였지만, 고시에 실패한 낙오자라는 열등감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열등감은 스스로를 눌렀고 묘하게 남편과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수련을 통해 그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의 장〉만 다녀오면 불교대학을 그만두려했으나,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길이 있음을 확실히 알고 나니, 그때부터 진짜 마음으로 불법을 받아들였습니다.

2018년 가을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앞줄 오른쪽 전지영 님)
▲ 2018년 가을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앞줄 오른쪽 전지영 님)

아이를 한 대 때릴 때마다, 천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만배

한 달쯤 지나, 그 가벼움과 자유로움이 시들해지고, 저는 다시 짜증과 분노가 폭발하여 아이들에게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6살 아들을 때리니, 그 아이는 7살 누나에게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순하던 아들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을 보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습관을 고치려면 전기충격기나 천배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아이를 때릴 때마다 천배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삼천배도 아니고 천배쯤이야 하는 생각에 첫날은 습관처럼 아들의 등을 쫙 때렸습니다. 그런데 하루일과가 끝나고 모두 잠든 뒤 홀로 하는 천배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살림과 육아에 지쳐 피곤하고 하기 싫었지만, 아이에게 절대 물려줘서는 안 될 업식이기에 이를 악물고 했습니다. 3일 동안 매일 한 대를 때리고 ‘아차!’ 알아차리니, 연이어 삼천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4일째가 되니 아이 등에 손이 가지만 힘이 빠지고, 5일째는 살짝 터치만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거리모금
▲ 아이들과 함께 한 거리모금

7일째 7천배를 한 후에 눈에 다크써클이 생긴 채 힘겹게 집안 살림하는 저를 보며 남편이 마음 아파서 못 보겠다고 그냥 짧고 굵게 가자며 “퇴근할 때 전기충격기를 사올까?”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물었습니다. 말은 안했지만 남편도 제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이 싫었던거지요. 덕분에 2주쯤 되니 드디어 업식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절을 만배 가까이 하고나니, 아이에게 손이 나가려고 하면 온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이렇게 업식은 끊었으나, 또 하나 남겨진 질긴 업식이 있었습니다.

100일간 300배를 하다보니, 3만배로 술에서도 해방

그건 바로 술이었습니다. 리더십 있고 당찼던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으로 무너지고 간경화로 돌아가시는 걸 봤지만, 술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한번 마셨다하면 폭탄주 10잔은 기본이고 소주 2~3병은 거뜬했습니다. 그러나 마흔이 넘으니 몸이 견디지 못하고, 숙취로 고통스러워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급기야 큰애가 술에 취해 토하는 저를 보고 놀라서 울기도 했지만 술을 끊지는 못했습니다. 머리로는 '끊어야지' 다짐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 여름, 법당 총무님이 활동가 새물정진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안하였고, 〈깨달음의 장〉처럼 평생 한번이라는 말씀에 귀가 번쩍 뜨여 바로 수락했습니다. 40도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10주간 300배를 해야했습니다. 금주를 목표로 정하고 여기서 끊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절을 했습니다.

3주 정도 지난 뒤, 편두통, 편도선염, 인후농염 등 온갖 통증들로 온몸 구석구석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을 다니며 주사 맞고 약 먹으면서, 어떤 날은 몸이 너무 아파 울면서도 300배를 계속했습니다.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100일간 매일 300배를 했고, 드디어 술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만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수행을 통해 내가 변화하는 맛을 보고 나니, 정토회 활동도 수행도 재미있고 행복했습니다.

성남시 가족봉사단 활동
▲ 성남시 가족봉사단 활동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게 하는 수행의 힘

그런데 수행이 잘되어 가볍고 행복해질수록 남편 사업은 자꾸 기울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2019년 시작과 함께 남편 사업은 최악의 상황이 되었고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던 남편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직원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남편이 극단적인 행동을 할까 두려워 무조건 남편 사무실로 출근했습니다.

처음엔 남편을 무조건 이해하고 그의 의지처가 되어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함께 지내다보니 그의 말과 행동을 비판하고 분석하며 지적하고 싶어하는 저를 봤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수행의 끈을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의 양해를 구하고 월요일은 법당으로 출근하여 불교대학 담당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관점을 바꾸는 수행연습을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앞으로 저녁반으로 옮기고 정토회 활동도 줄여야하나'하는 두려운 마음도 올라왔지만,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야한다는 걸 수행으로 체득했기에 후회 없이 남편에게 잘 쓰이고자 했습니다.

2019년 가을경전반 문경수련원 특강에서 학생들과 (왼쪽에서 네번째)
▲ 2019년 가을경전반 문경수련원 특강에서 학생들과 (왼쪽에서 네번째)

아무리 바빠도 새벽 정진은 빠짐없이 했습니다. 남편과의 오붓한 식사를 위해 매일 도시락을 준비했고, 아이들은 11살, 10살이었지만 스스로 식사를 챙기고 웬만한 집안일은 할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서로에게 불만이 있거나 힘든 점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마음나누기 형식의 가족회의를 통해 해결해나갔습니다. 그때 남편과 제가 참으로 공감했던 말씀이 “재앙이 복이다” 였습니다. 억울하다고 괴로움을 호소하던 남편은 본인이 지은 과보를 기꺼이 받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관점을 바꾸었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그 시간도 지나고 지금은 남편은 사무실로, 저는 다시 정토회 모둠장과 경전반 진행자로 돌아와 유쾌한 저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말씀을 깊이 새기며,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한번 돌아와보니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알겠습니다.

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합니다. 이제는 이 행복을 타인과도 나누며 더불어 행복하고자 합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자리이타의 삶! 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모둠원과 행복학교 홍보 (오른쪽 맨 끝)
▲ 모둠원과 행복학교 홍보 (오른쪽 맨 끝)

전지영 님의 수행담을 들으며 자신의 업식을 끊기 위해 천배씩 만배를 하고, 아픈 몸으로 100일간 300배를 했던 그 간절함이 느껴져 몇 번을 울컥했습니다. 외면의 유쾌함뿐만 아니라 내면의 단단한 정진의 힘이 끌림의 원천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진정한 수행자 전지영 님을 마음 가득 응원합니다.

글_전지영(분당정토회 분당법당)
정리_권용희 희망리포터(분당정토회 분당법당)
편집_한숙(서초정토회)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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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효빈

가슴이 따듯하고 뭉클해 집니다. 간절함이 행복한 나, 행복한 아내, 행복한 엄마를 만드셨네요 ^^ 지혜로운 경험담 잘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3-02-14 12:05:10

유경희

2022 9월 정토불교대학 청년 2반 담당자 전지영님! 이번 청년 2반 졸업생입니다.^^ 가을학기 동안 청년 2반을 재밌고 유쾌하게, 무엇보다 유익하게 이끌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터뷰 글을 통해 전지영님의 지난 날들의 세월을 엿보니, 제가 더욱 단단해지는 기분입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자리이타의 삶, 저도 실천해보아야겠습니다!!

2023-02-11 23:48:07

지우

대단하십니다.전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021-01-15 15: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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