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주법당
경주법당과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늦은 오후, 직장 생활로 지친 몸을 이끌고 법당에 들어서면 복사꽃처럼 환하게 반겨주는 보살이 있습니다. 바로 피로를 날려주는 미소를 가진 이명순 님.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삶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정토회 인연과 경주법당의 시작

2006년 여름, 저는 친정 오빠가 운영하는 마트에서 경리로 근무했습니다. 올케는 경주 성동시장에서 장사하던 사람들과 여러 절을 돌아다니며 기도하다가, 몇 해 전에 없어진 정토법당을 다시 열게 해달라고 문경수련원에 찾아가서 요청했습니다. 그 시장사람들의 끈질긴 요청에, 성동시장 뒤편 상가의 “불국다보회” 사무실을 빌려 가정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이면 비디오테이프로 법문을 들었고, 법회가 없는 날은 도반들끼리 카세트테이프를 돌려가며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경주에서 정토회 법회가 시작되었고, 시장 안에 법당이 생긴 것이 좋았던 저는 정토회와 인연을 시작했습니다.

1년 넘게 불국다보회 사무실에서 법당개원 원만성취 발원기도를 하면서, 드디어 2007년 7월 17일 경주정토회 경주법당을 개원했습니다. 7개월 동안은 수요법회만 진행하다가, 이듬해 2008년부터는 경주법당에서 봄 정토불교대학을 열었습니다. 경주법당을 개원했던 도반들 28여명이 함께 봄 정토불교대학을 준비하고 입학했습니다. 저는 오전에는 주간 법회를 담당하고, 오후 12시에는 직장에 출근했습니다. 저녁 7시에 퇴근하면 곧바로 법당으로 가서, 저녁에 진행되는 수행법회, 불교대학, 경전반을 담당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둘째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 도반들과 함께 (둘째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장애 속에서 얻은 성숙

학생으로서 담당 소임까지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인 작은 아이는 밤에 혼자 있기 무서워해서 아이를 데리고 법당에 가곤 했습니다. 작은 아이는 제가 소임을 하는 동안 숙제하다가 잠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수행법회, 불교대학, 경전반 담당을 하며 좋았던 점은 수행법회 법문을 빠지지 않고 듣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레 개근하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평소 저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들었던 불교대학 경전반 법문은 요즘처럼 컴퓨터로 시청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비디오테이프 속의 법문을 반복해서 시청하다 보니 테이프가 늘어지거나 찢어지기도 해서, 수업 전에 비디오테이프를 반드시 점검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것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 당시 총무를 맡았던 도반의 따뜻한 챙김에 어려움들이 스르르 녹아 없어졌습니다. 또한, 영남사무국과 중앙사무국 담당자들의 다정하고 친절한 안내는 정토회 실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던 저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토회 보살이 되면 다 저렇게 되는구나.’라고 감동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경주법당 개원 후 첫 부처님 오신 날
▲ 경주법당 개원 후 첫 부처님 오신 날

경주법당이 개원한 지 3년이 지나고 경전반 졸업하는 보살들이 담당소임을 맡으면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초발심자였던 저는 의욕이 넘쳐서 밤낮으로 법당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법당, 직장, 집안에서 맡은 여러 일들로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주례회의를 담당했을 때, 직업 특성상 도반들은 장사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저는 일이 잘 돌아가지 않자 투정부리며 울었습니다. 도반들은 저에게 미안해했고, 저는 그런 도반들에게 더 미안해졌습니다.

또한, 법사님과의 상담에서 수행점검을 받으며, 제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고 너무 잘하려 애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습니다. 때로는 잘 되지 않는 저를 자책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습니다.

8차 천일결사1 저녁 책임자 소임을 맡은 지 1년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목과 허리에 급성디스크가 생겼습니다. 저는 100일 병가를 내었고, 소임을 내려놓았습니다. 또한, 아픔에 겨워 한동안 수행하지 않다가, 어떤 날은 절이 잘될 것 같아 욕심을 내어 300배를 하다가 무리해서 몸이 더 나빠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로 물러서는 마음이 조금씩 생겼지만, 그럴 때마다 보왕삼매론을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첫 번째부터 열 번째 말씀까지 모두 저의 상황에 꼭 들어맞아서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수행과 봉사도 할 수 있겠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 참석(첫째 줄 왼쪽에서 두번째)
▲ 천일결사 입재식 참석(첫째 줄 왼쪽에서 두번째)

남편은 숨은 도반

저의 남편은 돌, 철, 스텐으로 환경 조각 작품을 만드는 전업 조각가입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예술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굶어 죽는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결혼 전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은 신혼 때부터 공모전 또는 기획전을 위해 조각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신혼생활을 부산에서 시작했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분유 값을 걱정할 정도로 경제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경주로 이사 가서 친정오빠가 하는 마트에서 경리로 일했습니다.

남편은 시간강사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품의뢰에 수입이 생기기도 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부부 사이에 갈등도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조각활동을 놓지 못하는 남편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당신은 좋겠다. 평생 당신이 좋아하는 일,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그렇지만 나는 너무 힘들어.”라고 상처 주는 말을 남편에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남편은 3년 정도 트럭 장사와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그마저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그만두고, 지금까지 조각 작품 활동만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강하게 추천해서 남편은 <깨달음의 장2>에 다녀왔고, 수행법회와 JTS 거리모금에도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불교대학입학 권유에는 “한 집에 한 명만 수행해도 된다.”라고 말하면서 거절합니다. 남편이 정토회 활동을 반대해서 힘들다는 도반이 있지만, 저의 남편은 <깨달음의 장>에 다녀와서인지 저의 정토회 활동을 지지해줘서 참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또한, 남편 덕분에 검소한 생활이 몸에 익숙해서 자연스럽게 정토회 가르침대로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잘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020 통일의병 교육(둘째 줄 오른쪽)
▲ 2020 통일의병 교육(둘째 줄 오른쪽)

정토회를 만나기 전, 저는 돈 안 벌어 준다고 남편을 탓했고, 부러운 마음에 잘 사는 사람을 탓하며 살았습니다. 또한, 마음이 무지하고 어리석음으로 똘똘 뭉쳐있어서, 제 뜻대로 안 된다고 문제 삼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남편과 토닥거리고, 제가 옳다고 고집하고 제 뜻대로 해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알아차리고 제 어리석음을 뉘우칩니다. 수행덕분에 바로 돌이킬 수 있는 힘이 커져서 참 다행입니다. 제가 수행을 잘하고 있는지 점검해주는 남편이 있어 감사합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던 제가 이제는 한 우물만 파는 남편을 여여하게 바라보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가 행복인 줄 압니다.

도반은 나의 힘

10차 천일결사에서 정토회 사회활동담당, 통일의병3학교 진행 꼭지, 일반 천일결사 모둠장 소임을 맡게 되어 큰 복입니다. 맡은 소임을 다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정진해서 좋습니다. 소임을 하면서 제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 또한 좋습니다.

지금의 경주법당이 있기까지는 여러 숨은 이들의 공덕으로 가능했습니다. 법당이 생기기를 소원했던 개원 회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평소 시장에서 생업에 전념하다가도 법당 행사만 있으면 발 벗고 봉사한 도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주법당뿐만 아니라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경주법당을 개원할 때 외친 발원문이 생각납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진실한 불자가 되겠습니다. 이 기도 인연 공덕으로 많은 대중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인연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제 인생에 함께하는 도반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경주법당 대표님과 함께(우측)
▲ 경주법당 대표님과 함께(우측)


경주법당의 역사와 함께 한 이명순님의 삶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이명순님과 함께 한 모든 도반들에게도 큰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스며들 듯이 도움을 주는 도반이 되고 싶다는 원도 세워봅니다.

글_송민정_희망리포터(경주정토회_경주법당)
편집_성지연_편집자(서초정토회_서초법당)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3.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은 화해·상생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비영리민간단체.
    통일의병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강령과 정관에 동의하면 가입 가능하며, 정기회비를 내고 각종 통일의병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음.
    홈페이지: http://www.tongilkorea.kr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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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화

경주 법당의 역사가 느껴지네요.
수고해주신 많은 분들의 노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2020-09-14 07:05:25

보승화

감동적인 수행담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9-13 21:47:15

견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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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9 1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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