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전주법당
시련과 희망은 결국 한 몸이었네

법당의 굵직한 소임은 한 번씩 다 해본 듬직한 도반님, 오늘도 경전반 학생들과 눈을 깜박이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특전사 출신답게 건장한 체구지만 목소리는 부드러워 반전의 재미가 있습니다. 불교대학, 불사, 경전반 담당까지 한번 맡으면 야무지게 소화하는 하덕진님입니다. 주인공을 대하면 날카로운 논리보다 보시 봉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참수행자의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봉사가 몸에 배인 그에게도 수행자로서 위기가 있었다는데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백일기도 입재식 사회를 보는 하덕진님
▲ 백일기도 입재식 사회를 보는 하덕진님

이름 덕에 불사 담당을 맡다?

천일결사1 9-1차 때부터(2017년) 시작한 전주 덕진법당 불사담당 소임을 4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도반들은 제 이름(덕진) 때문에 불사담당은 운명이라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2013년에 문을 연 전주법당은 작은 법당 공간 하나밖에 없어서 큰 행사 때는 늘 비좁았습니다. 주중 오전과 저녁시간에 수업과 법회로 법당을 사용하면 회의나 공양, 탈의할 곳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초파일 행사 때는 법당 출입문을 뜯어내고 작은 사무실 공간까지 활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소·대법당, 회의실, 공양간2, 탈의실 정도는 담아내는 법당이 필요했습니다. 모연을 하여 필요한 자금을 준비하고, 장소를 물색하여 행정처에 기획안 올리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매번 불합격, 실망과 황당함만 쌓여갔습니다. 공간이 너무 크다, 보증금과 월세가 비싸다, 부채설정이 많다, 외벽에 타일이 붙어있다, 지하에 유흥주점이 있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엘리베이터가 없다, 화장실이 남녀 구분이 없다, 종교가 다른 세입자에게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까지... 불합격 이유는 너무도 다양했습니다.

전주법당 불사정진 기도중인 하덕진님(앞줄 맨 왼쪽)
▲ 전주법당 불사정진 기도중인 하덕진님(앞줄 맨 왼쪽)

돌아오는 건 불합격 성적표

불합격 조건 하나를 해결하고 올리면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반대할 때는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법사단까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지부나 행정처 불사담당 선에서 퇴짜를 맞으니 더욱 의욕이 상실되었습니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훈련시키나 싶어 화가 났고, 그런 나를 자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지역의 부동산 임대가격과 동떨어진 불사기준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불사담당을 하면서 오는 실망감과 스트레스로 소임도 놓고, 정토회 활동까지도 그만둘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정토회를 놓지 못한 것은 마음공부를 포기할 수 없고, 모연에 참여한 수많은 도반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불합격 통지를 받고 마음속 불만과 분별이 쌓여가면서 한편으로는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불사기준을 인정하고 그런 기준을 설정한 이유와 배경도 이해해보았습니다. 일단 불사기준을 인정하고 제 생각을 고집하지 않으니 불합격을 받아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아직도 불사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 다고 생각하고, 문제의식은 있으나 더 이상 화가 나지는 않습니다.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회향정진 중 하덕진님(앞줄 맨 왼쪽)
▲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회향정진 중 하덕진님(앞줄 맨 왼쪽)

넘어진 만큼 성장하다

불사 소임은 정토회 활동에서 저에게 가장 큰 마음의 시련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걸리고 넘어진 만큼 살아있는 마음공부가 되었습니다. 소임이 수행이고 공부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단체 안에서 의견이 충돌할 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의 소중함도 배웠습니다. 불사기준은 수행단체로서 성격과 상황에 맞게 회원 간에 정한 약속입니다. 행정처 불사담당자 역시 그 기준과 원칙에 따라 기획안을 검토하는 봉사자입니다. 물론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문제나 갈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불만과 의견은 제시하되 그것으로 인해 제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다면, 그때는 기준이나 담당자의 문제가 아닌 제 문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준과 담당자는 저의 기대나 바람대로 늘 맞는 것이 아니고 제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으니까요. 결국 제 기획안이 좋은데 왜 합격을 안 시켜주는가 하는 결과에 대한 실망, 즉 기대와 고집이 근본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시련을 준 것이 아니라 제가 옳다고 제 마음에서 온갖 분별을 일으킨 것입니다.

용성조사 열반일 기념법회 봉사중 하덕진님(앞줄 맨 왼쪽)
▲ 용성조사 열반일 기념법회 봉사중 하덕진님(앞줄 맨 왼쪽)

기계쟁이가 사료를 만들다

불사 소임 덕에 수행자로서 공부와 체험을 하였지만 사실은 정토회와 인연은 저의 직업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몰락한 부잣집 5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덕분에 부모님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심이 강하게 성장했습니다. 술을 좋아하여 가장의 역할을 못하는 아버지가 미웠지만, 미워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요. 우리 5형제는 지금도 명절 때면 빠짐없이 술잔을 부딪치며 형제간의 우애를 다집니다. 그런 아버지가 28년 전에 폐암으로 일찍 가시니 미움도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가슴으로 느낍니다.

어릴 적 꿈은 훌륭한 기술자가 되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해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어느 정도 꿈을 이루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27년간 기계쟁이로 살다가 사료를 만들어 파는 사업에 뛰어 들면서 악몽은 시작되었습니다. 사업상 축산 농가를 주로 상대해야 했습니다.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만나는 농가의 요구나 문화가 생소하고 적응이 잘 안됐습니다. 가장 큰 괴로움은 제품을 팔아도 제때에 돈이 회전이 안 되고 미수금이 쌓여가는 것이었습니다. 미수금이 쌓이는 만큼 은행부채가 늘어가고 자금회전이 막혔습니다. 불과 5~6년 사이 빚이 십억 대까지 치솟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술이 유일한 친구

품질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농가와의 갈등도 힘들었습니다. 한 농가는 품질 문제를 걸고넘어지며 공짜로 사료를 달라며 밀린 사료대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고 배신감에 화가 났습니다. 사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는 술이었습니다. 아마 그 몇 년간 마신 술이 제가 평생 마실 술을 다 먹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저를 달래줄 유일한 친구가 술이라고 생각하니 인생이 좀 허무했습니다. 그런 심적 갈등이 최고조일 때 인터넷에서 우연히 정토불교대학 모집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초기에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지 방황도 했습니다. 법문도 지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가 특강수련에서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도 안정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게 별게 아니구나, 욕심을 놓고 가볍게 한번 살아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수업과 저의 삶이나 사업에 임하는 생각과 태도도 바뀌었습니다. 성장과 규모만 키워 가려던 사업방식도 내려놓았습니다. 공장을 팔고 농가 컨설팅을 통하여 주문 생산하는 방식으로 사업에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도반들과 행복강연 홍보활동중인 하덕진님(뒷 줄 맨 오른쪽)
▲ 도반들과 행복강연 홍보활동중인 하덕진님(뒷 줄 맨 오른쪽)

생각이 바뀌니 변화가 오다

불교대학을 졸업하며 나타난 가장 큰 생활의 변화는 역시 술이었습니다. 술 마시는 횟수가 확 줄었습니다. 또 갑자기 아침기도를 시작하고 술을 줄이니 그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였던 아내도 정토회 활동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행사 때 도시락도 챙겨주고 아침에 108배는 했는지 확인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기본교리를 공부하고 수행정진을 하며 과거의 사업 속에서 농가와 갈등하며 입었던 마음의 상처와 아픔도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앞의 그 농가에게도 “사장님, 그동안 어려운 사료 먹이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고 가볍게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제가 전문가이니까 농가를 가르치고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이 바뀌니 먼저 농가의 애로점과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저의 의견을 제시하고 해결점을 찾아가니 싸울 일이 없어졌습니다. 받아야 할 돈은 저의 권리이니 요구하고, 그래도 못 받은 돈은 법적으로 제기해서 해결해 갔습니다. 이렇듯 불법을 공부하며 생각을 바꾸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관찰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삶에서 기적은 큰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던 것을 한 번 뒤집어 생각해보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삼일절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중인 하덕진님(뒷줄 맨 왼쪽)
▲ 삼일절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중인 하덕진님(뒷줄 맨 왼쪽)

그래도 작은 바람 하나

불교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015년 가을불교대학담당 소임을 맡았습니다. 2년의 불교대학 소임활동은 저에게 수행자로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확연한 인식의 변화와 다짐을 하는 계기였습니다. 2020년부터는 봄경전반 담당 소임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소임활동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지만 결국 저를 위한 것임을 압니다. 가정에서도 법당에서도 제가 쓰일 곳이 있으면 ‘예’하는 예스맨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직도 일터에서도, 정토회 활동에서도 분별심이 자주 일어나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매일 수행정진하며 점검하고, 일상에서 저를 지켜보고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살다보면 매순간 다양한 감정의 파도들이 밀려오고 사라지지만, 놓치면 돌아오고, 넘어지면 일어나기를 하다보면 자유와 행복의 길로 갈 것을 믿습니다.

그래도 작은 바램이 하나 있습니다. 코로나19 환경으로 인해 모든 활동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분위기입니다. 진행하던 불사도 모두 중단됐습니다. 법당을 추가로 내는 것은 변화한 환경에 맞지 않는다면 대신 지역정토회 중심 법당으로서 공간을 확장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법당에서 활동이 다시 재개될 것입니다. 큰 행사 때마다 문짝을 뜯어내고 방석 놓을 공간도 없이 부딪히며 활동하는 것은 피했으면 합니다. 모든 회원들이 법당에 모여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법회와 행사를 할 수 있는 도량 터를 올해 안에 성취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도 그 길에 잘 쓰이겠습니다.

경전반 수업 봉사중인 하덕진님
▲ 경전반 수업 봉사중인 하덕진님


주인공은 5형제의 장남이듯 법당에서도 항상 듬직한 맏형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토회를 통해 불법을 만나 삶과 사업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 하덕진님의 이야기에 저도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이 앞으로도 행복한 수행자로 인생후반부를 아름답게 색칠해가는 모습을 저도 곁에서 보며 닮아가고 싶습니다.

글_이종명(전주정토회 전주법당)
편집_이정선(진주정토회 진주법당)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공양간수행과 생명공경 정신이 깃든 공간으로 정토법당 대중들의 안정적인 식생활을 보장하는 곳. 공양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수행으로, 정토회 공양간은 생태적이고 소박한 밥상을 지향함. 공양간 봉사자들은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라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과 환경을 살릴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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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아부지 화이팅!!

2023-11-10 17:56:43

김수정

법당을 추가로 내는 것은 변화한 환경에 맞지 않는다면 대신 지역정토회 중심 법당으로서 공간을 확장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의견을 내놓으시는 진솔하신분이 정토회에 있다는데 감명받았읍니다. 시원 하덕진거사님의 작은 바램이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2021-01-31 16:17:40

금강화

불사에 대한 기준과 원칙이 있고 그것을 검토하는 행정처 봉사 소임을 맡은 분이 있음을 글을 통해 알았습니다. '마음 공부를 하면서 소임 활동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지만 결국 저를 위한 것임을 압니다' 라는 말씀이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2020-10-03 07: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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