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일산법당
'행복한 회의', 도대체 뭐가 행복하다는 거야?

10차년도 행복한 회의 진행 교육을 맡은 일산법당의 유재근 님. 수줍은 미소로 본인은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행복한 회의를 진행하면서 함께 웃고, 즐기고, 편안하게 이끌어가는 그 능숙한 힘이 궁금합니다. 지금부터 유재근 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남들 한 번 할 때, 난 두 번 한다!

저는 충북 보은, 시골 마을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는 선천적으로 눈이 하나 없이 태어났습니다. 양반집에서 태어났으나, 장애가 있어 가난한 집으로 시집갔습니다. 교육도 많이 받고, 머리가 좋아 말씀도 잘했습니다. 그 당시 동네에서 한글을 아는 사람이 할머니밖에 없어서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한테 편지도 대신 써주고, 편지가 오면 대신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할머니한테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의 딸이든, 손녀든, 거의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큰 며느리인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 제 눈에 어머니는 늘 주눅 들고,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당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가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유재근 님
▲ 유재근 님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그 이후 공부를 위해 청주로 전학갔습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짓고, 저는 대학 졸업 후 취업할 때까지 할머니와 청주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어머니보다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손자여서 이쁨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크면서 할머니에게 늘 들었던 말은 “넌 왜 그렇게 머리가 나쁘니?”, “공부도 못하고, 너는 시골에서 농사나 지어라.”, “제 애미 닮아서 저렇게 머리가 나쁘지.”라는 부정적인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공부를 안 했습니다. 원래 머리가 나빠서 공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저 자신도 머리가 아주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뭔가를 할 때, ‘남들 한 번 할 때, 난 두 번은 해야 한다. 난 한 번에 못 알아들으니 여러 번 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템플스테이나 한 번 가볼까? 깨달음의 장1

대학교 졸업 후 취업하자마자 27살에 결혼했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아내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시험관으로 첫 아이를 가졌습니다. 어렵게 가진 첫 아이여서 그런지 아내는 절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거부감없이 아내를 절에 데려다줬습니다. 저희가 절에 다닌다는 말을 들은 숙모님이 정토회를 소개했습니다. 가끔 정토지도 보내주고, 〈깨달음의 장〉도 말하고, 명절 때 법륜스님의 기도 책도 주었습니다. 그래도 그땐 흘려듣고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상사와 의견이 맞지 않아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평상시에도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그날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잘못한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책임을 제게 전가하고 있는 상사를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맨 오른쪽 유재근 님
▲ 깨달음의 장에서 맨 오른쪽 유재근 님

예전에 가족들과 템플스테이를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편안했던 기억에 〈깨달음의 장〉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토회가 뭐 하는 곳인지, 〈깨달음의 장〉이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떠났습니다.〈깨달음의 장〉은 제가 알고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알려주었습니다. 2014년 9월,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뒤 법륜스님의 책을 모두 사서 보았습니다. 또 몇 개월 사이에 법륜스님 유튜브를 다 들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맞는 말만 하는 스님을 보며, 그다음 해 3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진심이 부족한 봉사활동, 찾아온 슬럼프

입학 후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의 생활은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개근은 못했지만, 수업이 재미있어 최대한 빠지지 않았습니다. 경전반에 들어와서 바로 봄불교대학 모둠장 봉사를 했습니다. 처음 받는 소임이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경전반을 졸업하고, 봄불교대학 담당을 맡았습니다. 그때 직장생활이 많이 바빠지면서, 회식 자리가 늘어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인맥 관리가 부족한 저로서는 승진을 위해 회식자리에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봄불교대학 졸업수련,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또 당시 술을 많이 먹어 안면마비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어쨌든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봉사를 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했습니다.

일일당직하는 유재근 님
▲ 일일당직하는 유재근 님

9차년도에 천일결사 담당, 저녁예불, 경전반 부담당, 당직자 담당 등의 소임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그런데 3년 차 정도 되니 슬럼프가 왔습니다. 다른 분들이 “참 잘하신다”, “좋아요”하는 말에 우쭐해 하며 봉사를 재미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 말들도 식상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봉사를 덜 할까? 어떻게 하면 봉사를 안 할까?' 의 생각들만 머릿속에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9차년도가 끝나고, 10차년도에는 행복한 회의 진행 교육 소임을 맡았습니다. 새로운 소임을 맡으면서 또 한 번 수행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니 찾아왔던 슬럼프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행복한 회의로 진짜 행복해지는구나!

10차년도 행복한 회의 진행 교육 담당을 받고 부담이 컸습니다. 처음 6개 정토회의 행복한 회의 진행 교육 담당들이 화상회의로 실습했습니다. 그때 저는 말을 못 했습니다. 못했다기보다는 어색해서 안 했는데 진행자가 말 좀 하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처음 행복한 회의 진행자로 교육할 때는, 엄청 땀이 났습니다. 제일 부담스러웠던 회의는 총무단 행복한 회의였습니다. 기획안은 다 나와 있어 진행만 하면 되는데, 도반 알아가기 주제 정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똑같습니다. 하지만 배운 걸 토대로 고민하고 나름대로 연습하면서 방법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습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혼자서 될 때까지 연습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행복한 회의
▲ 행복한 회의

'행복한 회의'를 통해서 최근에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이게 왜 행복하지?’ ‘이게 행복한 방식이야?’ ‘이거 하면 진짜 행복해질까?’였습니다. 제가 봉사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인데, 상대방도 힘들고 저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회의를 통해서 서로 나누고, 고민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일이 우선이 아니라는 스님 말씀을 마음으로 이해했습니다. 일은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신 상대방의 힘듦을 공감하고 이해해 그 괴로움을 덜어낼 수 있다면, 이 회의가 행복해지고 결국 저 또한 행복해졌습니다. 행복한 회의라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틀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행복한 회의'로 진짜 행복을 느낍니다.

넘어져야 나를 볼 수 있다!

도반들과 함께 맨 왼쪽 유재근 님
▲ 도반들과 함께 맨 왼쪽 유재근 님

정토회에서는 터지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시킬까? 못하겠다고 하면 왜 더 시킬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결국 터져야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고, 평탄하게 쭉 가면 저를 볼 수 없었습니다. 제 마음이 깨달을 때까지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했습니다. 소임을 통해서 개인의 감정을 한계점까지 끌어올려서 팽팽하게 만들어놓고 터지도록 하는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정토회 봉사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유재근 님. 인터뷰 내내 그동안 수행자로 걸어온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들려주기 위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유재근 님의 수행담을 들으며 상대방이 행복해져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법의 이치를 알아가는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 꾸준함으로 수행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글_김세영 희망리포터(일산정토회/일산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김해법당)


  1. 깨달음의 장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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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혼자서 될 때까지 연습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멋지십니다. 화이팅!!!

2020-12-23 07:56:13

윤난영

외유내강이신 거사님을 꼭 닮은, 치열함 속의 담담한 수행담 감동입니다. ~^^

2020-11-26 22:00:06

정주현

한편의 수필을 읽는 거 같았습니다. 서로 나누고 고민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행복이다. 맞는 말씀인 거 같습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지언정 슬픔힘듦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거같습니다.

2020-08-21 13: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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