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권선법당
남 탓, 내 탓 오가던 지난날 안녕!

세 번의 도전 끝에 정토 불교대학을 드디어 졸업하고, 불교대학 담당을 하면서 삶이 가벼워진 권선법당 임종숙 님의 수행담입니다. 한때는 남 탓, 내 탓을 하면서 삶을 무겁게 살았지만, 학생들과 함께한 배움과 수행으로 이제는 한결 홀가분해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법당에서 도반들과(오른쪽 아래)
▲ 법당에서 도반들과(오른쪽 아래)

불평불만으로 힘들었던 지난날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자식을 끔찍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야단을 안 맞고 자란 건 아니지만, 힘든 일은 전혀 하지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집안일 한번 제대로 안 해보고 대학에 갔을 때, 엄청 힘들었습니다. 지방에서 혼자 자취를 했는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무력감을 느꼈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이 버거웠습니다. ‘친구들은 다 쉽게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나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제 스스로 부족하고 무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엄청 많은 연수를 찾아다니며 받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지만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 노력했고, 높은 목표에 맞추어 빡빡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목표가 높을 뿐 실천이 따라주지 못했습니다. 외부에 대한 불평불만과 자신에 대한 답답함, 이렇게 안팎으로 분별심을 냈습니다. 결국, 남 탓과 내 탓을 번갈아 하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인도성지순례에서 도반과 함께(왼쪽)
▲ 인도성지순례에서 도반과 함께(왼쪽)

스트레스와 우울증 속에서 선택한 휴직

30대 초반이었던 제게는 두 돌이 되기 전의 딸과 남편이 있었습니다. 직장만으로도 버거웠던 그때, 건강했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심약했던 저는 큰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힘들었습니다. 상상도 못 한 남편의 암 진단에 ‘이 사람이 만약에 죽으면 어린아이 데리고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직장 일하는 것도 너무 힘들기만 했습니다. 남편 챙기는 것도 잘하고 싶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교사로서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참 컸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뭐하나 내가 생각한 것만큼 잘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고 육아는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결국 너무 힘들어 직장생활은 휴직하였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치료가 잘돼서 현재 건강히 지내고 있습니다.

천일결사자 만남의 날 행사(오른쪽 두 번째)
▲ 천일결사자 만남의 날 행사(오른쪽 두 번째)

졸업을 향한 세 번의 도전

휴직을 선택한 그해 봄. 정토 불교대학을 졸업한 지인의 추천으로 서초법당의 즉문즉설 봄 강좌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와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에게 <깨달음의 장1>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무엇이기에 저렇게 강조를 하실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결국 먼저 다녀온 도반들의 권유로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다녀오고 나니 세상이 지금과 매우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생각, 관점, 삶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를 둘러싼 주변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부모님, 시어머니, 주위의 이웃들, 하나하나 다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너무 힘들어 휴직을 한 상황을 정토회를 통해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서초법당에 처음으로 생긴 가을불교대학에 주간반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다음해에 복직을 하게 되어 저녁반으로 옮겨 다시 입학을 했습니다. 퇴근 후 수원에서 불교대학 강의를 듣기 위해 서초법당까지 다니는 것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습니다. 결국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다시 입학할 엄두를 못내 던 중, 우리 동네에 법당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권선법당 불교대학에 다시 입학했습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권선법당에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 후에(오른쪽 두 번째)
▲ 부처님 오신 날 행사 후에(오른쪽 두 번째)

피하고 싶던 소임이 준 선물

경전반까지 졸업한 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수행법회에 거의 참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선뜻 소임도 맡지 않았습니다. 법당에 일손이 부족해 불교대학 부담당과 경전반 담당 소임을 맡았지만, 마음을 탁 내어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담당 소임은 책임과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경전반 담당도 불교대학을 이미 졸업한 학생들이 알아서 잘 하니 역시 큰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어쩌다 불교대학 담당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전과 달리 매우 부담스러웠습니다. 뭐든 다 잘 알고, 잘 안내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한 번 수업을 해나가면서 보니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불교대학 학생들에게는 나누기가 어려울 수 있을 텐데도 학생들은 솔직하게 마음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편하고 즐거운 수업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점점 수업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학생들은 거의 빠지지 않고 수업에 잘 나오고 특히 수행연습 과제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담당인 저보다 더 열심히 하는 모습. 그 모습은 저의 불교대학 학생 시절과 비교되었습니다. 저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실한 학생들을 보며 도리어 제가 배우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 전정각산 위에서(왼쪽 두 번째)
▲ 인도성지순례 중 전정각산 위에서(왼쪽 두 번째)

있는 그대로 나를 보다

제가 불교대학 학생 시절에는 없었던 수행연습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이 점점 가벼워졌습니다. 수행기도를 잘 하지 않았는데 수행맛보기를 계기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담당으로서 책임감이 있어서 그런지 꾸준히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기도를 꾸준히 하게 되었던 것이 무엇보다 큰 변화입니다. 담당을 하지 않았다면 중단했던 아침 기도를 다시 하기 힘들었을 텐데,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소임이 복이구나!’ 다시 느꼈습니다.

행복을 전하는 임종숙님
▲ 행복을 전하는 임종숙님

지난날 자신을 부족하고 못나게 봤고 그런 제가 싫었습니다. 다 잘하고 싶었고 인정도 받고 싶었지만, 현실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제 능력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수행을 통해 부족한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그냥 그대로 봐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탓하는 습관이 변화하니 타인을 탓하고 미워하는 마음마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도반들과 꾸준히 수행하고 싶습니다.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도반과 함께라면 해나갈 수 있습니다. 꾸준히 수행해서 남편과 아이에게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는 인연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함께하는 도반들, 함께 공부한 학생들에게 모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임종숙 님의 사연을 취재하면서 젊은 나이에 일과 육아 그리고 남편 건강 등으로 힘들었을 지난날이 공감돼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지금은 학생들과 수행을 통해 마음의 변화가 생겨 한결 가벼운 삶을 살고 있는 임종숙 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글_윤현석 희망리포터 (수원정토회 권선법당)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1. 깨달음의 장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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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희

같은 교사로서 육아와 가사 학교 일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압니다. 아이들 다 키우고 여유를 찾고보니 젊을 때 어떻게 다 헤치고 살아왔는지
젊은 시절의 내가 안쓰럽기도하고 기특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일이 참 소중한 것임을 늦게야 알게되었지요.
응원합니다.

2020-08-10 11:06:11

덕연화

포기하지 않았던 열정에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밝고 환한 모습에서 정토 수행자임이 드러나 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0-08-07 08:09:33

무승화

젊은 나이에 내 마음을 살피는 정토회와 연을 맺으셨군요. 응원합니다.

2020-08-06 12: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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