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작법당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도 물들다

절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만 배우자’는 마음으로 정토회에 왔는데, 자꾸 행복한 늪에 빠지고 있다는 동작법당의 손남희 님. ‘아, 그렇구나!’하는 알아차림의 감탄사가 깊어질수록 소임이 하나씩 늘어간다며 빙그레 웃습니다. 조근 조근한 말투로 풀어놓은 손남희 님의 보석 같은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절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만 배우자

저는 법륜스님을 《인생 수업》책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공감은 가는데 특별히 무언가를 더 알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2018년 봄, 직장 동료가 우연히 정토회가 저녁 반도 있으니 한번 알아보라고 제게 툭 던졌습니다.

그 때 저는 정토회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불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학교를 나왔고, 교회도 다녀봤는데 저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불교에 더 관심이 많아서 스님들 책을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정토회를 통해서 절에 대한 기본 상식을 배울 생각으로 집 근처 정토불교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접수가 늦어서 온라인으로 입학식 법문을 듣고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JTS봉사활동1(좌측, 첫번째)
▲ JTS봉사활동1(좌측, 첫번째)

처음엔 별다른 부담이 없었고 감흥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교 이론과 부처님의 일생을 배울수록 마음이 끌렸습니다. 또한, 수업은 잘 들었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마음 나누기를 할 때는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말재주까지 없어서 제 차례가 오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도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런 방식으로 생각하는구나. 똑같이 수업을 들어도 내가 받은 감동과 저 사람이 받은 감동이 다르구나.'를 알았습니다. 나누기를 통해 느끼는 것들이 많아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나누기를 전보다 좋아하게 되었지만, 부담스러운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속까지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고집이 보통이 아님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고집불통

정토불교대학에 다닐 때, 영상 보조와 JTS(한국JTS는 UN ECOSOC의 특별 협의지위를 획득한 국제구호단체-Join Together Society) 봉사를 즐겁게 하며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졸업 무렵에 선배 도반의 말이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경전반도 들어야 한다. 〈깨달음의 장1〉은 필수이니 꼭 다녀와야 한다.’라는 말에 “네”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거절만 하다가 〈깨달음의 장〉에 참석했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의 빗장이 풀렸습니다.

경전반 특강(첫째 줄, 좌측 첫번째)
▲ 경전반 특강(첫째 줄, 좌측 첫번째)

그렇게 멀리 돌아서 온 깨달음을 흔쾌히 받아들이자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될 바에는 처음부터 이런 마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또한 좀 더 적극적으로 임했으면 얻은 게 더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아쉬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경전반에 입학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수행의 기초를 배웠고, 천일결사2에 입재해서 108배하는 것도 배웠고, 프로그램이 있어서 혼자 수행할 수 있겠다고 예측했습니다. 수행을 하고 싶으면 그대로 따라서 하면 되지, 딱히 공부를 더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도반들의 말에 이끌렸습니다. 기왕에 시작했고 1년 과정이니 같이 하자는 말에, 깊게 발을 들이려고 온 게 아니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의 장〉에서 법사님이 건넨 ‘경전반 접수하고 왔어야지’라는 말을 떠올리고 경전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주위의 자그마한 자극에 제가 말려 들어가는 것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전반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가볍고 밝아졌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제 나름대로 수행할 것들을 알아차리거나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저것 소임이 생기니 다시 분별심이 생겼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닐 때 한 JTS 봉사활동은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힘없는 아이들이 자기 의지로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것에 마음이 아팠고, 당연하고 기쁜 마음으로 활동했습니다. 사실, 저 자신이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 타지에서 고등학교를 혼자 힘으로 다녔고 대학공부 또한 그렇게 마쳤기 때문에, JTS 봉사활동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JTS봉사활동2(우측 두번째)
▲ JTS봉사활동2(우측 두번째)

그러나 다른 소임을 받고 여러 교육을 받으면서는 ‘안할 거야.’란 마음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교육을 받다 보니 제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배운 것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봉사하자면 봉사하고, 자격조건이 되었으니 정토회 정회원 교육 받으라고 해서 교육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회원이 되었고, 지금은 발심행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이상한 나라에 갑자기 휩쓸려 들어간 엘리스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미리 정토회란 어떤 곳인지 알고 임했더라면 저의 알아차림이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의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듦

저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물들었습니다. 공부, 수행, 그리고 봉사를 하면서, 저의 까칠하고 심했던 낯가림은 먼저 말을 걸고 인사할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에 불안감과 불면증이 생겨 힘들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절대 바꾸지 않던 강한 주장을, 이제는 ‘아, 그래. 이럴 수도 있구나.’하면서 변경합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에너지가 충만해졌고, 주위에서도 많이 밝아졌다고 합니다.

제가 내성적 외골수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서 타인에 대한 생각과 배려가 부족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아닌 다른 사람을 돌아볼 필요가 없는 생활로 생각의 폭이 좁았는데, 어느새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단단한 저만의 성 안에 정토회라는 커다란 문을 만들었고, 그 문을 열어 새로운 세계로 저의 발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정토회를 만나 마음을 열게 되어 감사합니다.

편안한 얼굴로
▲ 편안한 얼굴로

영화처럼 시간을 돌이켜 돌아갈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어느 지점일까 하고 가끔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상태로 사는 걸 탈피하고 싶어서, 고3 때로 돌아가 이루지 못한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합니다. 서서히 저 자신을 알아차리게 된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시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큰 어려움 없고 식구들 옆에서 하루하루 건강하게 사는 것이 끝없는 행복입니다.

지금은 지원팀에서 경전반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다지 걸림이 없어서 좋습니다. 전 직장의 동료가 무심코 던진 정토회에 대해 알아보라던 말의 인연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만의 틀 안에서 살았는데 그 틀을 깨고 나오니 이렇게 가볍고 자유로운 줄 이제야 제대로 알겠습니다.


동작법당 경전반 담당을 맡고 있는 손남희 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에 등불이 켜진 듯 환했습니다. 밝은 얼굴에 웃음 가득한 눈이 초저녁에 반짝이는 샛별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손남희 님, 언제 어디서나 깜깜한 밤을 밝히는 샛별로 오랫동안 기억될 겁니다.

글_강경자 희망 리포터(양천정토회 동작법당)
편집_성지연 편집자(서초정토회 서초법당)


  1. 깨달음의 장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2. 천일결사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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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승화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간 느낌", 저도 그럴 때가 있었어요. 응원합니다.

2020-08-06 12:47:35

관음성

좋은 인연들을 잘 받아들이셔서 이렇게 아름답게 물들어 가시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이렇게 좋은 인연을 받아들일 준비가 다 되어 있었던거겠죠^^

2020-07-29 18:56:22

세명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020-07-29 00: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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