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기광주법당
남편 바라기에서 주인된 삶으로

오늘의 주인공은 어린시절 엄마따라 놀러 다니던 절에 대한 친숙함과 향수로 정토불교대학과 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온 낯선 타지에서 세 아이 독박육아를 하던 남편바라기가 주인된 삶을 갖기까지. 한차례 장맛비가 다녀간 뒤 맑게 갠 하늘만큼이나 밝은 미소를 가진 김미숙 님의 수행과 봉사를 통해 행복으로 바뀌는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불교대학 특강에서(왼쪽 김미숙 님)
▲ 불교대학 특강에서(왼쪽 김미숙 님)

어린 시절 엄마 따라 놀러 다니던 절

열 살 즈음부터 불자인 어머니를 따라 매주 일요일 법당에서 놀았습니다. 그냥 좋았습니다. 넓은 법당도 좋고 스님들도 좋았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절에서 하는 각종 행사에서 도우미로 활동하며, 목탁도 배우고 여름 불교 학교 진행도 하고 겨울 성도 재일 기간에는 삼천 배도 했습니다. 뭐든 어려움 없이 그냥 가볍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춘기를 모르고 지나갔나 싶습니다. 다니던 절의 비구니 스님이 제자 삼겠다며 권유할 만큼 절은 저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장 때문에 서울에 올라오고 결혼해 세 아이 낳고 키우면서 절에 다니기 힘들어졌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이별

어린 시절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는 유독 남동생을 편애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부모님은 늘 저를 더 챙겨주었고 부모님과 저는 더욱 돈독하게 지냈습니다. 여느 가정처럼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정적이고 우리 남매와 잘 놀아주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일하는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전할 카네이션을 준비하던 마음이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 수업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저를 따로 부르더니 급하게 집으로 가봐야겠다고 말하며 비보를 전해주었습니다. 무슨 정신에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남동생을 챙겨 병원으로 갔습니다.

가는 동안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믿기지 않아서 울기만 했습니다. 처음 겪는 큰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조문을 온 아버지 회사 사람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 컸습니다. 삼촌이라 부르던 회사 사람들은 멀쩡한데 우리 아버지만 사고를 당하신 건가 싶은 생각이 들자 그 사람들이 우리를 위로하는 모습도 가증스러웠고 사진 속 아버지한테 인사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입관 전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울고 또 울었습니다. 우리 아빠 돌려달라며 계속 소리치며 울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회사 사람들을 원망했던 마음이 오랜 세월이 지나며 다 잊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토회에 와서 나를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는 공부를 하면서 그 원망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와의 인연이 거기까지였구나. 사춘기 때 아빠와의 갈등이 없어서 좋은 추억만 기억하는 것이 복이구나. 그분들의 잘못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그들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 내려놓기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장녀의 무게는 스스로 지은 것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남매와 시어머니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평생 해보지 않았던 일터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 모습에 저는 장녀로서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기도 하고 늦게 귀가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길에, 밖에서 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봤습니다. 늦은 시간 취해 들어오는 딸에게 아무 타박하지 않고 그저 안도하는 눈빛을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내가 어머니를 걱정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뒤로 술을 바로 끊었습니다. 친구들이 독하다고 말했지만, 그냥 끊게 되었습니다. 우리 남매를 위해서 고생하는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내가 이렇게 술에 취해있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어릴 때 불법에 인연을 맺어준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어머니의 힘든 삶을 지금은 늘 돌아보고 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이 마음 깊이 있지만 쑥스러워서 잘 표현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불법을 몰랐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직 어린 세 아이도 불법을 자연스럽고 편하게 접하고 물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 또한 말로 전하는 것보다 엄마인 내가 실천하며 보여주면 저절로 되리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있습니다. 새벽기도를 빼먹을 때도 있지만 놓지 않고 가려고 합니다. 내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전법이라 여기며 실천해 가고 있습니다.

법륜스님도 모르고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지역에서 세 아이의 독박육아는 마냥 즐겁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얻은 집 주변은 허허벌판으로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너무 싫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때부터 더욱 주말만 기다리는 남편 바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막연하게 절이라도 다시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에 우연히 “정토불교대학” 현수막을 보고 친숙함이 들어 고민 없이 신청했습니다.

정토회도 잘 몰랐고 법륜스님도 모르고 찾아간 법당은 스님도 없고 불상도 없고 영상으로 법문을 듣는 신세계였습니다. '뭐지? 잘못 왔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그냥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다녔는데 수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을 했습니다. 정토회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것이 봉사였습니다. 가을불교 대학 홍보, 행복학교 홍보, JTS거리모금 활동 들을 하면서 도반들과 참여가 즐겁기도 했지만 때때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고 봉사에 대한 관점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행 법회를 계속 들으면서 정토회에서 말하는 봉사는 수행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느낍니다. 봉사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그 안에서 생기는 분별을 알아차리면서 그때마다 돌이키는 힘을 키우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일과 수행의 통일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직접 여러 가지 봉사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선배 도반님들의 봉사와 노력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해 공부할 수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을불교 대학 홍보 모둠 활동(왼쪽 맨 앞 김미숙 님)
▲ 가을불교 대학 홍보 모둠 활동(왼쪽 맨 앞 김미숙 님)

정토회에 물들다

처음 입학을 하고 수업을 할 때는 스님의 말씀이 너무 쉽고 재미있어서 참 잘 선택했다는 좋은 마음만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절에서 배웠던 불법 이야기들이 생각날 때면 '아, 그 말이었구나...' 라고 이해되면서 더욱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천일결사 입재 후 자꾸만 늘어나는 SNS 소통방과 밴드가 너무 싫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집에서 아이들과 있을 때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는데 정토회를 다니면서 제일 많이 바뀐 제 모습이 늘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활동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소통방에 엄청난 분별이 올라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자와 총무, 법당의 다른 도반들에게 매번 소통방 때문에 힘들다 하소연하며 소통방을 줄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지원팀장 소임을 해보니 그때 나의 분별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은 소통방이 10개가 넘고 밴드도 여러 개 있지만 아무런 마음이 없습니다. '업무의 효율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라고 관점을 바꾸고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니 힘들다할 것이 없어졌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핸드폰과 노트북을 늘 곁에 지니고 있지만 내 마음이 편하니 아이들에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진리를 몸소 체득하니 좋습니다.

마음 나누기의 힘

아이에게 화를 한 번씩 낼 때마다 천배씩 하라는 말씀에 어느 날 첫 아이에게 무턱대고 화를 낸 것이 너무 미안해서 법당에서 천배를 했습니다. 절하는 내내 참회의 눈물이 흘렀고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도 때때로 화를 내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해서 당연히 화가 나는 것이라고 저 자신을 정당화했었는데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서 보니 모든 것은 내 마음이 일으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금도 화가 나면 화가 나는구나 알아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화를 내고 후회할 때가 있지만 알아차림의 횟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깨달음의 장>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시부모님을 이해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아버님의 마음이 그랬구나, 어머님의 마음이 답답했겠구나! '라고 이해되면서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막연히 어려웠던 시아버님과의 전화 통화도 이제 가볍게 먼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누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저와 비슷한 상황이거나 같은 고민은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도반들과 마음나누기(왼쪽에서 세 번 째 김미숙 님)
▲ 불교대학 도반들과 마음나누기(왼쪽에서 세 번 째 김미숙 님)

모르면 묻고 맛보고

불교대학을 다니며 9월부터 수행 법회 집전을 맡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배웠던 목탁이 이렇게 잘 쓰일 줄 몰랐습니다. 불교대학 공부와 수행 법회에서 법문을 함께 듣다 보니 저를 돌아보고,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이 더 잘 되었습니다. '소임이 복이구나'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10차 만일결사는 수행자로서의 출발선이었으며, 법당의 여기저기를 살피는 지원팀장 소임을 아무것도 모른 채 가볍게 받았습니다. 무엇이든 배워가며 할 수 있다는 총무 도반의 말에 넘어 갔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지닌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여러 부서를 지원해주는 업무이니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정토회 2년 차인 저에게 10차 만일결사 이후의 변화는 새로운 것이 아닌 지금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입니다. 모르면 물을 수 있는 정토회 시스템에 푹 빠져 요즘 매일 묻고 맛보고 하고 있습니다. 지원팀장 소임을 하면서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니 한결 가볍고 편안합니다. 매일 매일 돌이키고 참회하고 반복하고 있지만, 소임을 맡고 도반들과 수행할 수 있는 것이 가피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꽃 핀 세 아이들과 남편
▲ 웃음 꽃 핀 세 아이들과 남편

삶의 주인이 되다

남편 바라기였던 저는 이제 주인 된 자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말은 온 가족이 모여 함께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상황에 맞게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늘 최선을 다해주는 남편은 요즘 저를 보고 그냥 웃어줍니다. 함께하기를 목말라하던 아내가 이제는 낯선 지역에서 잘 적응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며 활발히 지내는 것이 무척 대견한 모양입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지원팀장 소임을 맡고 더 바빠진 저를 대신해 가정의 많은 일을 도와주고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주말동안 법당에 일이 있으면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도 다녀옵니다. 며느리를 기다리며 백숙을 해놓은 시아버님과 전화 통화를 5분 넘게 하기도 합니다. '아버님 저는 일이 있어 못 가는데 아범하고 아이들만 가도 좋으시죠'라며 애교를 부리기도 합니다. 다음에 오면 다시 백숙을 해주겠다고 말해주는 아버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내가 바뀌니 내가 좋고, 아이들이 웃고, 남편이 행동하고, 부모님이 편안합니다.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수행·보시·봉사 실천하며 잘 쓰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춘기가 없었다는 김미숙님은 지금이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은 사춘기 소녀같지만 아이셋을 밝고 건강하게 키우는 집안의 안주인으로 법당의 여기저기를 살피는 지원팀장으로 활발히 활동합니다. 오늘도 방긋 웃으며 네~하고 합니다.

글_이수경(분당정토회 광주법당)
편집_전기돈(일산정토회 운정법당)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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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승화

화목한 가정을 이루시며 수행하시는 모습이 제게 미소를 안겨주시니 고맙습니다.

2020-08-06 12:59:38

관음성

어릴때부터 불법의 인연이 닿아 이렇게 좋은 법의 향기를 피우고 살아가시는거 같아 좋아보입니다.
불법의 인연이 와닿은것이 제게도 고압고 또 고마운 일입니다.

2020-07-30 12:17:22

세명화 고명주

아주 예쁘신 분이시네요.
예쁘고 기특해서 뭐라도 퍼주고 싶은 맘이 들게 하는 분이세요

2020-07-27 23: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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