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대문법당
까칠녀의 변신

겉으로 까칠했던 옛 모습을 뒤로 하고 지금은 솜사탕 같은 속살을 드러냅니다. 맡겨지는 모든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박인순 님을 소개합니다. 송파정토회 동대문법당에서 모둠장을 맡고 있습니다.

심리상담 공부의 한계

9년 전부터 심리상담 공부를 해왔습니다. 평소 상담에 관심이 많았고, 제 내면의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심리학 공부를 계속해도 문제 해결이 되지 않고, 제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힘들면 아이들에게 짜증 내고 상처를 주고 있었습니다. ‘내면의 공부인데 힘들어서 매일 투덜거리고, 부모님 욕하면서 공부해야 하나, 이걸로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이 관점을 바꿔보라고 정토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전부터 정토회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찾아갔습니다. 원래 호기심이 많고 성장 욕구가 강한 성격입니다. 그래서인지, 처음 정토회에 와서는 영상 수업에 실망해 다른 절을 가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결심한 것은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희망강연에서 책 판매 봉사(왼쪽이 박인순 님)
▲ 희망강연에서 책 판매 봉사(왼쪽이 박인순 님)

나는 집안의 일꾼인가

3남 1녀의 외동딸로 태어나 귀하게 자랐을 것 같다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남아선호가 강했던 엄마와 갈등이 많았습니다.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인 오빠 밥을, 고등학생 때는 남동생 밥을, 해주라고 전학을 보낼 정도였습니다. 엄마는 아들만을 생각했습니다.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는 제가 딸로서 엄마를 이해해주고, 이야기 들어주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빠에 대한 불평듣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엄마 역시도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엄마에게 학교 이야기를 하면 불평한다고 혼나고, 말대꾸한다고 혼나고, 끊임없는 꾸지람 속에서 엄마에게 말을 잘 못 했습니다. 늘 외롭다, 사랑을 못 받는다는 생각과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엄마는 성취욕이 강한 저를 칭찬으로 유도해서 일을 시키고, 인정받고 싶어 열심히 하면 칭찬은 없고, 잘못하면 혼만 냈습니다. 심지어 어른이 돼서도 제게 남동생 집에 가서 이불빨래를 해주라고 했습니다. 아이 출산일도 수술한다고 말했으나 서울에 있으면서 남동생 반찬 해주고 늦게 병원에 와서 실망했습니다. 어느 사이에 제가 집안의 일꾼으로 전락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니 마음속에서 '엄마가 또 나를 이용했다, 부당하다'는 피해의식만 커졌습니다.

경전반 졸업식(오른쪽 두번째)
▲ 경전반 졸업식(오른쪽 두번째)

마음이 날 때 베풀자

남편은 자상하고 가정적이라 다른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제게 많은 사랑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아빠입니다. 제게 언제나 사랑을 표현해주는 남편 덕분에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어서 남편은 저 몰래 주식에 투자해 실패했습니다. 집을 한번 날리고 다시 사업에 실패해 두 번째 집도 날렸습니다. 우리 부부는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큰아이가 9살 때 "엄마 제발 이혼하지 말아줘" 라는 말에 지금까지 이혼 생각없이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 가족, 제 집, 저밖에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사업실패로 돈이 있어도 제 돈이 아니란 생각을 하면서 돈에 대한 집착을 놓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 당시엔 많이 슬펐습니다. '아끼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해줄 수 있는데' 라는 생각에 아꼈던 돈이 남편의 사업실패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뭐든 하고 싶을 때 하는게 좋은 거구나, 지나고 나면 기회가 다시 안 오는구나.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도 억누르며 살았는데 나중에는 그 기회조차 사라지게 되는구나.' 그 깨달음이 있은 후부터 마음이 날때 베풀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내킬 때 하자는 말은 바로 정토회의 현재에 집중하자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잃은 만큼 배우게 되는 이치입니다.

야외 나누기(오른쪽 두번째)
▲ 야외 나누기(오른쪽 두번째)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됨

인생의 전환점은 정토회입니다. 사고 방식, 관점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집단상담, 내면 아이 공부에서도 제 사고방식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니 제가 피해의식이 큰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최근에 명상하다 엄마가 어린 저를 어루만지며 "엄마를 잘못 만나서 네가 고생이 많다" 고 했던 게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그때 안쓰러워하신 건 진짜였을 텐데, 다음날 화를 내는 건 아빠 때문에 화를 내신거고, 그 당시 저를 안쓰러워한 마음은 진짜였겠구나' 하고 이해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오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려고 한 게 아니라 애정으로 해주는 말이었습니다. 사회 생활하며 자주 듣는 말이 “왜 그렇게 삐딱해요?”, “왜 그렇게 저항적이에요?” 라는 말이었습니다. 상대방이 얘기하면 저는 그것에 대해 ‘왜 시비야' 라고 반응했는데 모두 제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불교대 남산순례(뒷줄 오른쪽 두번째)
▲ 불교대 남산순례(뒷줄 오른쪽 두번째)

깨달음의 장1이 아닌 '깨지는 장'

이런 변화는〈 깨달음의 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저에겐 깨달음의 장이 아닌 깨지는 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저의 많은 부분이 깨진 곳입니다. 예전엔 저와 반대되는 의견이 있으면 저를 공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연 행사 때 한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져 그 사람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싫었습니다. 도반에게 "나 저 사람 너무 싫어. 보기만 해도 재수 없어" 라고 말하니 “그 사람이 너야. 네 모습이야’“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덜 까칠한 사람을 가리키며 "아니, 나는 아니야. 난 저 사람 정도밖에 안 돼" 라고 했더니, "너도 똑같아. 네가 여자라서 부드러워 보일 뿐이지 바로 네 모습이야" 하는데 또 한 번 머리를 맞은 거 같았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깨지고, 또 한 번 깨졌습니다. 모임에서 제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그 사람과 제 모습이 같다는 것을 깨달은 후 까칠함이 정말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신 “깨달으면 삶이 가벼워진다”는 것을 요즘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경전반 졸업수련회(오른쪽)
▲ 경전반 졸업수련회(오른쪽)

까칠녀의 변신

주변 사람들은 제가 정토회에 와서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까칠했고 항상 불평불만이 많았던 사람인데 지금은 까칠함도 많이 줄고, 시댁에 대한 원망도 없고, 남편에 대한 원망도 없습니다. 최근 저의 모습을 보고 어느날은 엄마가 '내 딸이지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바뀐 제 모습에 놀라워 했습니다. 원래 사이가 좋았던 아이들과의 관계는 더 좋아졌고, 사춘기임에도 더 엄마를 찾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정토회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이 박인순 님을 정토회 봉사자로 남게 한 것 같습니다. 피해 보는 걸 싫어하고, 손해될 일은 절대 안한다는 박인순 님은 지금 자신의 시간을 내서 모둠장 봉사를 합니다. 요즘은 분별심도 많이 줄어들어 행복한 날들을 살고 있다는 박인순 님을 응원합니다.

글_오미영 희망리포터(송파정토회/동대문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김해법당)


  1. 깨달음의 장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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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현재에 집중하신다는 말씀에 같은 마음입니다. 좋은 얘기 감사합니다.

2020-07-25 16:40:13

윤현석

심리상담 공부의 한계에 저도 같이 느꼈습니다. 심리상담학문에 대한 공부와 심리상담 등을 통해 자신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는 됐으나, 이해를 통한 변화까지는 어렵더라구요...정토회 덕분에 변화가 느껴집니다~

2020-07-20 18:59:33

무지랭이

깨달음의 장이 아니라 깨지는 장~
재미있고 창의적인 발상이예요^^

2020-07-12 18: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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