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운정법당
어머니를 보내고 보살을 만나다

목요일 저녁, 아무도 없는 법당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섭니다. 고개 숙여 공손히 부처님 전에 예를 올리고 컴퓨터를 켭니다.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 한 시간 뒤면 그 컴퓨터 속에 7명의 경전반 학생이 나타날 예정입니다. 학생들을 기다리며 쉼호흡 한 번 하고 꼼꼼히 오늘의 수업 및 전달 사항을 챙깁니다. 오늘의 주인공 박복두 님은 운정법당 저녁 경전반 담당자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편히 할 수 있는 온라인 수업을 번거로이 법당까지 나와서 진행하는 이유, 박복두 님의 수행담을 통해 그 답을 찾아봅니다.

원칙주의자였던 늦깍이 법대생

저는 6남매 중 셋째이며 외아들입니다. 어릴 적엔 ‘귀남이'로 집 안에서 대접받으며 컸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다치면서 집안 살림이 어려워졌고 잦은 전학으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대신 기술학교에 들어갔지만 1년 만에 그만둬야 했습니다. 이후 공사판 막일, 신문 배달, 독서실 총무를 전전하며 어렵게 돈을 모았습니다. 마침내 28살, 늦은 나이로 법대에 입학하였습니다. 강한 성격에 원리원칙을 중시했기에 검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군말없이 웃으며 '예' 하고 행동하는 지금의 제 모습만 보던 분들에게는 예전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겁니다. 정해진 원칙에 맞게 모순 많은 세상을 교정하고 싶었습니다. 검사가 되었다면 그 성격을 바꾸지 못해 지금 덜 행복했을 것이고, 정토회도 못 만났을 것 같습니다.

2018년 인도 성지 순례 중인 박복두 님. 늘 웃는 모습입니다.
▲ 2018년 인도 성지 순례 중인 박복두 님. 늘 웃는 모습입니다.

찬 돌덩이 같은 여인을 만나다

신림동 생활 5년 만에 고시계를 떠났습니다. 할 만큼 했고 미련 같은 건 없었습니다. 당시 국내 대기업이 파주에 공장을 지을 무렵이라 지역 부동산이 들썩들썩할 때였습니다. 부동산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파주에서 중개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아무 연고 없는 낯선 타지에서 억척같이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추운 겨울,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의 첫인상이 차갑고 냉정해 보여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처음 소개받은 날, 키도 조그마한 사람이 딱 서 있는 모양새가 차가운 돌덩이 하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대치는 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차가운 첫인상 덕분에 이후 계속 만나면서 좋은 점을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연애를 하다 2013년에 결혼했습니다. 첫인상은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처럼 차갑고 딴딴해 보였지만 아내는 생각이 깊고 마음도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결혼 직후 사업이 힘들어졌을 때도 그런 아내의 존재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2020년 어느 봄날, 부인 박상미 님(파주법당)과 함께
▲ 2020년 어느 봄날, 부인 박상미 님(파주법당)과 함께

기본적으로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본인도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건 응원해주고 그저 자기 일만 묵묵히 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순탄하고 좋은 결혼생활이었습니다. 남들은 결혼하면 원수가 된다는데 저희 부부는 오랫동안 만난 친구처럼 의좋게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부산에서 혼자 살던 어머니도 그런 며느리가 고맙다고 예쁘게 봐주었습니다. 아내도 시어머니를 친정엄마처럼 살갑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2016년에 외아들과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어머니가 저희 부부의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저희 부부는 어머니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와의 위험한 동거

매일 경전을 사경하시는 불교 신자인 어머니
▲ 매일 경전을 사경하시는 불교 신자인 어머니

가끔 보며 지냈을 땐 화목했던 고부지간, 하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한집에서 같이 사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요리에 서툰 며느리에게 먹을 것을 중요시하는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거침없이 확 지르는 시어머니의 화법은 아내에 상처가 됐습니다. 친정엄마처럼 살갑게 느껴졌던 시어머니는 역시 시어머니였고, 며느리는 딸이 아닌 역시 며느리일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남편인 제가 알아주지 않자 아내는 자기 살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정토회와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내가 정토회 활동한다고 밤 11시 넘어 들어오고 새벽 6시면 출근하니 제가 보기에는 시어머니가 보기 싫어 피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 대한 이미지가 처음에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와 아내는 점점 서먹해지고 멀어져갔습니다. 그만큼 저희 부부의 갈등도 커져갔습니다. 어머니와 살림을 함께한 지 5개월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저희 부부는 집을 나와 카페에서 크게 다퉜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내가 아픈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들과 관계에서 '자신이 하녀처럼 느껴지니 나의 편이 되어달라' 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날로 어머니에게 부산으로 내려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또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어머니와 헤어져 누나 집으로 고모 집으로 옮겨 다니며 살아서 어머니와 헤어지는 연습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속으론 섭섭했겠지만, 그저 알았다고만 하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한번 서먹해진 고부간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멀리하는 아내를 보면서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를 돌려보낸 것도 마음속에 계속 응어리져 남아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힘겨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내가 <깨달음의 장>을 추천해서 다녀왔습니다.

괴롭고 답답함에서 벗어날 길을 찾다

4박 5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막연하게만 느끼던 이 세상과 삶에 대한 이치가 쉽고 명쾌하게 다가왔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자마자 바로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어 경전반과 명상수련, 인도 성지 순례까지 2년여 동안 정토회의 모든 프로그램에 쉬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변화는 아주 느리게,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찾아왔습니다.

제 자신이 많이 바뀐 건 아닙니다. 그래도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 할까요? 세상하고 부딪히는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화도 덜 내고 아내를 이해하는 폭도 훨씬 넓어졌습니다. '내가 몰랐었구나, 그에게도 그럴 이유가 있었겠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시간도 짧아지고 그만큼 편안해졌습니다. 서로를 이해할수록 마음은 가볍고 행복해졌습니다. 부부가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그렇게 2년여가 지나자 어느새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주위 사람들을 다 챙기는 성격의 어머니가 저희 집에 와서도 저희 부부를 훅 끌어들였던 겁니다. 부산에서 지내며 가끔 볼 때는 좋았던 어머니도, 한집에 살며 저희 부부를 힘들게 했던 어머니도 똑같은 어머니인데 저희가 감정을 실었을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를 정토회로 이끄신 어머니가 보살입니다.

“전에는 착한 척하고 어머니를 미워했는데 지금은 착한 척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게 됐어.”

언젠가 나누기할 때 아내가 저에게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저희 부부 사이가 편해지니 아내와 어머니와의 관계도 편해졌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어머니를 다시 우리집으로 모셔 오라고 합니다. 때가 되면 다시 모시고 함께 살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은 둘이서 그런 얘기도 합니다.

2019년 경전반 졸업식장에서
▲ 2019년 경전반 졸업식장에서

도망치다 맡은 소임, 소임이 복이다

아내와 함께 마음공부를 하며 많이 배우고 가벼워졌지만, 소임을 맡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어떤 ‘상’(想) 때문이었습니다. 아내가 정토회 회의한다고 밤늦게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정토회가 사람을 귀찮게 한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소임을 맡기 싫어서 늘 도망 다녔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주위 도반들의 조언 덕에 마음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한번 소임을 맡고나자 또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JTS 거리모금, 임진각 통일기도, 천일 결사 모둠장에 더해 올해는 저녁 경전반 담당을 맡았습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책임감을 갖게 되니까 꼼꼼히 하나하나 체크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그만큼 이 모든 것이 제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소임이 복이다' 라는 말이 예전에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런 줄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 아내와 함께
▲ 어머니, 아내와 함께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처음엔 온라인 수업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법당에 직접 나와서 법당만의 분위기 속에서 공부할 수 없는 경전반 학생들의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고민 끝에 저만이라도 법당에 와서 법당의 분위기를, 그 마음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온라인 수업이지만 꼬박꼬박 법당에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 마음, 그 정성으로 코로나로 힘들어진 세상을 녹이는 따뜻한 행복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_전우성 희망리포터(일산정토회 운정법당)
편집_전기돈 (일산정토회 운정법당)

전체댓글 27

0/200

박신영

소임이 귀찮니즘이 아니고 복이라는 도반님의 말씀 저도 경험해보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2021-03-09 06:13:49

전미리

부부가 함께 정토회 활동을 하시는게 참 보기 좋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0-07-08 06:11:16

무량장

항상 행복한 모습 ~너무너무 보기 좋아요~^^💕

2020-07-03 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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