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거창법당
수녀님, 지금 출발합니다.

수녀님처럼 늘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김수녀 님. 거창법당 부총무 소임을 맡아 법당을 찾는 모두를 넉넉하게 품어주는 그 마음은 어떻게 키웠나 궁금합니다. 정토회를 만나 달라진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다 때가 있었네

정토회와의 인연은 좀 오래되었습니다. 결혼 2년 차부터 어머님과 함께 살며 아이 셋 키우고 직장일을 했습니다. 집안일과 육아를 도와주는 어머님에게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에 대한 고마움과 좋은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옷 입히는 것, 머리 묶는 것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좋아하는 남편은 시집에 들어오면서부터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바깥 활동에 신이 났습니다. 어머님과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워 작은 일에도 억울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마음은 직장에서까지 티가 났습니다. 직장동료 한 분이 권해서 2007년쯤〈 깨달음의 장1〉을 다녀왔습니다.

2009년에는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했고, 천일결사 입재식2에도 참여했습니다. 도반에 의지해서 인연이 이어진 정토회. 도반의 긴 휴직으로 나 스스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토회 소식지만 받아보았습니다. 가끔 그때부터 제대로 수행했더라면 아이들 사춘기 때 조금이나마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지만 다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심한 사춘기 덕분에 더 깊게 불법을 만나 수행자로 살고 있으니까요.

2019년 부처님 오신날(첫번째 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 2019년 부처님 오신날(첫번째 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내가 지어 내가 받는 이치

모범생이던 둘째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엄마를 거부하고 차갑게 대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자부하며 살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듯 막막했습니다. 그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모든 게 제 잘못인 것 같고 답답했습니다.

그때 스님의 즉문즉설이 생각났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직장에 연가를 내고 버스를 타고 대전법당에 찾아갔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얘기를 꺼내려니 떨리고 스님의 말이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남편에게 참회하라는 말은 또렷이 남았습니다. 그 길로 한 달여가량 집 근처 포교당에 가서 매일 300배를 하며 매달렸습니다.

9-8차 입재식에서 도반들과(첫 번째 줄 왼쪽에서 첫 번째)
▲ 9-8차 입재식에서 도반들과(첫 번째 줄 왼쪽에서 첫 번째)

홀로서기

남편에게 엎드렸습니다. 7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엄마에게 부려보지 못한 응석을 남편에게 부렸습니다. 제 마음을 몰라준다고 며칠이고 말을 안 해 남편의 속도 많이 태웠습니다. 1년간 주말 부부로 살때는 밤마다 남편에게 울먹이며 전화해 힘들게 했습니다. 그 시기 철없던 엄마 뱃속에서 둘째가 얼마나 불안했을지 미안해서 엎드리고 또 엎드렸습니다. 아이와 이곳저곳 상담을 다니며 아이보다 제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담은 잠시 잠깐 저에게 위로를 줄 뿐, 돌아오는 길은 늘 허전했습니다.

홀로 서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천일결사 8-2차부터의 정진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성격이 불같은 아버지 앞에서 쩔쩔매던 엄마. 딱 제 모습이었습니다. 남편과 어머니, 아이들 사이에서 큰 소리가 나면 아이들이 저처럼 상처 입을까 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제 나름대로 중재를 한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남편의 화를 돋웠습니다. 또 아이들에게는 아빠에 대한 저항감을 심어 줬습니다.

특히 아들을 타지역 고등학교로 보내기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한 느낌이었지만 그때마다 정진의 힘으로 버텼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오는 인연과보의 이치. '내가 지어 내가 받는구나! 내 불안으로 있는 그대로 지켜보지 못했구나'. 제가 중심을 잡고 문제 삼지 않으니 문제가 되지 않음을 체험하며 조금씩 편안해졌고, 덕분에 세 아이 모두 성인이 되어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9 인도성지순례 중 거창 도반들과(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
▲ 2019 인도성지순례 중 거창 도반들과(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

남편의 싫은 소리, 더 숙이는 마음으로

2014년 가을, 거창여성회 방을 빌려 가을불교대학 저녁반을 담당하며 다시 불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산법당에서 한 보살이 매주 지원왔습니다. 먼 길을 버스 타고 오면서도 밝게 웃는 모습과 어떤 무거운 마음도 가볍게 만들어주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2015년 5월 31일 거창법당 개원 후, 9차에는 부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소임은 버겁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가 힘차게 다니는 모습이 좋다고 해서 힘이 났습니다. 집에서 어머님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기에 늘 제 자리가 없어 불만이었는데 법당에서 잘 쓰이니 좋았습니다. 문경으로, 마산으로, 대전으로 회의와 교육, 입재식을 다니며 집을 비우는 제가 못마땅해 어머님과 남편은 싫은 소리를 했습니다. 그럴 땐 마음 졸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몸과 마음을 푹 숙이는 연습이 되었습니다.

만인의 바람 광화문 평화시민대회에서!
▲ 만인의 바람 광화문 평화시민대회에서!

지금 제 모습을 사랑합니다

법당에서는 남 앞에 나서면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행사 인사말과 나누기를 할 때 힘들었습니다. 지난 일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자책했습니다. 마지막 1년은 갱년기와 오래된 우울증까지 겹쳐 힘들었습니다. 일하면서 올라오는 제 꼬라지에 ‘3년을 헛보냈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 또한 때가 되어 나타나는 과정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정진 시간마다 저를 만납니다. 7년간의 청소년기를 고모 집에서 보내고, 그 후 어머니와 살았습니다. 그동안 속 시원히 표현 못 하고 긴장하고, 애쓰며 살아온 제 자신이 안쓰러웠습니다. 어린 저를 수없이 다독였습니다. 서툴고 부족한 제가 있는 그대로 온전한 존재임을 알게 되니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학교에서 힘든 아이들을 만나도 잘 지낼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해 나가고 제게도 이런 시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집이 법당처럼 고요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할 때 긴장되고 위축되는 마음을 알아차리니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소임 통일특별위원회로 나가며 당당하고 겸손하게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자 그럼~지금 출발합니다.


아직 풀 때가 아니라고 망설이던 수녀님의 이야기는 벌써 풀어놓았어도 좋을 보석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들은 치열했던 사춘기를 보내고 바르게 성장하여 새로운 세계로 떠났습니다. 고요해진 집을 법당 삼아 당당하고 멋진 당주로 살아갈 수녀님의 새로운 출발에 박수를 보냅니다.

글_이행숙 희망리포터(진주정토회 거창법당)
편집_장순복(남양주정토회 남양주법당)


  1. 깨달음의 장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4박 5일 

  2. 입재식 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입니다.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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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행광주이미자

인제 읽었습니다
반갑습니다
2016년 깨달음의장 돕는이로 만났습니다
차분하고 편안했던 보살님의 기억과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는것도 자주보고
행사때마다 유난히 잘 만나져서 익숙하고 편안한 기분좋은분입니다
저에게는요~~~
행복을 전하는 도반으로 끝까지 함께할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2020-07-05 10:45:49

김은경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오는 인연과보의 이치
아직은 어렵지만 부지런히 꾸준히수행 하렵니다
수행담 감사합니다

2020-06-29 13:54:51

무승화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오는 인연과보의 이치 를 깨달아 편안한 마음으로 사시는 거창의 김수녀님, 응원합니다.

2020-06-28 23: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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