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광명법당
내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부터!

광명법당에는 4년째 연천에서 광명까지 100km의 거리를 매주 오는 분이 있습니다. 법당의 시설 꼭지 소임을 맡고 있는 정재훈 님입니다. 모태 크리스천에서 수행자가 된 정재훈 님의 이야기를 함께 하겠습니다.

에코붓다 활동 중에 (왼쪽에서 두번째 정재훈 님)
▲ 에코붓다 활동 중에 (왼쪽에서 두번째 정재훈 님)

어두운 동굴에서 나와

저는 충주에서, 외지로만 다니고 가족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14살 중학생 때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를 돕는 일에 일찌감치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20대 초반의 나이에 결혼하여 네 딸을 두고 알콩달콩 25년을 살았습니다. 아내와는 서로 의지하고, 장난도 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이 다 변해도 안 변할 것 같던 아내가 식당을 하면서 다른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의 끝에 이혼했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괴로워하던 큰딸이 하늘나라로 떠나는 청천벽력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큰아이의 죽음이 제 탓이라는 생각에 괴로움 속에서 용서를 빌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큰아이가 죽고 남은 세 딸을 생각해서 조건 없이 아내와 다시 합쳤습니다. 그러나 몇 달 못 가서 한 여자와 두 번째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 후 좁은 연천 시내에서 한 번 간 식당은 두 번 가기 싫어 밥을 사 먹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굶기도 많이 굶었습니다.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저를 배신한 아내 같았고, 남자들은 저를 알거나 손가락질할 것만 같았습니다. 민물고기 유통업을 했었는데 해양수산부의 정책 변화로 허가가 취소되어 전국적으로 깔린 수금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돈을 받으려고 일주일 매복도 하여 보았으나, 돈은 받을 수 없었고 억울함만 깊어 갔습니다. ‘이러다가는 죽겠구나’ 싶던 마음에 ‘그래 내가 포기하자’라며 사업을 접었습니다.

새로운 만남

이런 상황에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으며 5~6년을 지냈습니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의 끝에 ‘내가 사람에 대해 이런 마음을 갖고 살 수는 없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가게 된 산악회에서 인간에 대한 불신을 한순간에 녹여버린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부총무님과 경전반 졸업식
▲ 부총무님과 경전반 졸업식

여자 친구를 너무나 좋아했기에 저는 매주 2회 아이스박스에 도시락을 넣고 광명으로 왔습니다. 주변 이곳저곳을 2년 넘게 데이트하며 다녔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은 생각이 다른 여자 친구로 인해 괴로웠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위태위태한 살얼음판 같았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만큼 자립심 강한 여자 친구는 제가 원하는 것처럼 한 집에 살고 서류상으로도 결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떳떳하게 살고 싶었던 저는 또 그것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여자 친구 변화가 불러온 인연

그런 여자 친구가 정토회 불교대학에 다니고 경전반에 다니더니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골뜨기라고 남자친구로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여자친구가 저를 남자친구로 확실하게 인정하였습니다. 그런 태도 변화에 저는 좋으면서도 '정토회가 사람의 머리를 이상하게 만드는 곳이 아닌가' 의심했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고집 센 여자 친구의 변화에 저는 근본적인 질문을 품었습니다.

‘불교가 과연 무엇이기에 사람이 저렇게 변할까?’

저는 ‘우상을 믿지 말라’는 말을 믿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교를 모르면서 타 종교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내가 가서 알아보고 공부해본 뒤에 어떤 곳인지 판단하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여자 친구의 권유도 있어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연천에서 광명까지

불교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도 2015년, 8-7차 천일결사 때부터 정토회에 일반 참가자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반 참가자로 참가하며 2년 여를 옆에서 지켜보던 불교대학이었지만 입학할 때는 살짝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도반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어떡하나', '이해 부족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업 내내 동기들과 너무나 즐거웠고 그들과의 대화는 너무도 유익했습니다.

연천에서 6시에 일을 마무리하고 속도위반 카메라를 피해 달려와도 7시 30분 불교대학 수업에 맞추기가 어려웠습니다. 10분, 15분 법문을 놓치는 것이 늘 안타까웠고, 심지어는 법문 중에 도착하여 출석부에 이름 쓰는 시간조차 아까웠습니다. 정신력으로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면 안 조는데 잠깐 집중력이 흩어지면 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귀한 법문 시간이라 존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전반 졸업식
▲ 경전반 졸업식

사랑의 학교

불교대학과 경전반 2년은 제게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집중해 들으며 당연한 줄 알던 것들이 잘못되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만의 생각을 틀어쥐고 있으면 있을수록 힘들다는 것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형식을 뛰어넘으면 불교든 기독교든 큰 테두리에서는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은 눈이 번쩍 떠지는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크리스천이었던 사람으로서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고지식했던 저도 정토회에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서히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들은 제게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삶의 기초적인 방법, 사람을 대하는 법,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사랑의 학교’였습니다. 여자 친구를 만나 좋으면서도 항상 번뇌에 사로잡히던 처음과 지금이 외부 조건에서는 전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저의 욕심과 제 주장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닫게 된 지금은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전혀 괴롭지 않습니다.

이렇게 수행하다 보니 일 년 반 전에는 여자 친구가 제가 사는 연천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어떤 일도 이보다 더 괴롭지 않을 것 같았던 일들, 죽을 것만 같던 고민이 집착을 내려놓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습니다.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해서 지금 우리는 더 귀한 사랑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시설 꼭지로 연등을 달며
▲ 시설 꼭지로 연등을 달며

여자 친구가 당시 광명법당에 다녀 저도 광명법당에 왔습니다. 현재 여자 친구는 이사한 연천 근처에서 법당을 다니지만 저는 1년 넘게 혼자 광명으로 오고 있습니다. 광명법당은 제게 처음 정토회를 알게 했고, 제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준 다정한 동기 도반들이 있습니다. 맡은 소임의 3년 기한을 끝까지 채우고 싶은 곳이라 아직도 오고 있습니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

헤어나기 힘든 깊은 절망과 우울 속에 있던 저는 한 생각 바꾸지 못해 괴로움 속에서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로 받아들입니다. 제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것들이 모두 나로부터 나온 문제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제 자신의 목을 제가 조르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자책하지 않고 나를 귀하고 당당하게 여기며,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행자의 하루 인터뷰 요청을 여러번 거절했으나 더는 거절할 수 없어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중장비 일의 특성상 고정적인 시간에 법당 봉사는 어렵지만 시설 꼭지 등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늙으면 늙어지는 대로 내려놓는 연습을 하려 합니다. 세상에 쫓기는 삶이 아닌 즐길 줄 아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제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서울 평화대회에서 (오른쪽 정재훈 님)
▲ 서울 평화대회에서 (오른쪽 정재훈 님)


인터뷰하며 정재훈 님의 지난 시절 이야기에 저도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처럼 많은 삶의 굴곡 속을 지나 온 사람이 ‘자기 목을 조르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고 하신 말이 제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되었습니다. 거친 생의 풍랑에 가랑잎처럼 쓸려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정재훈 님도 그랬듯이 누구도 불행한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인생을 알 수는 없더라'는 정재훈 님의 말을 들으며, 더욱 수행하고 비워야 함을 배웠습니다. 가벼워짐의 법, 불법의 인연에 새로운 삶을 사는 정재훈 님의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글_정진아 희망리포터(부천정토회 광명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 김해법당)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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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분

고맙습니다()
여여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게 되셨군요.
감사합니다^^
지금처럼 쭉욱 조희영보살님 고마워요^^

2021-12-05 14:48:21

유미자(명륜행)

재훈님, 오랫만입니다.
속 까지는 몰랐던 사연,
뭉클하게 잘 들었습니다.
2017 년 1월, 인도성지순례가 떠오르네요~
건강 잘 챙기시기 바라며
언제 한번 뵈어요~^^

2020-09-14 11:27:13

김은경

행복한 수행담 감사합니다

2020-06-19 00: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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