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순천법당
같은 곳을 바라보며

순천법당에 오시면 은은한 연꽃 향내처럼 맑고 잔잔하게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하는 최서연 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외유내강의 모습으로 꾸준히 수행정진하는 최서연 님의 감동적인 경전반 졸업식 소감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봉축법요식 도반들과 함께 (가운데 최서연 님)
▲ 봉축법요식 도반들과 함께 (가운데 최서연 님)

굴곡진 삶

제 고향은 강원도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저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남으로 교사 발령이 났습니다. 발령을 받은 첫 날 숙소에서 자다 연탄가스로 3일 만에 깨어났습니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생리적인 현상은 물론 숟가락질도 힘들었습니다. '이 조건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살시도를 했으나 다시 깨어났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이제 부모가 준 생명은 이미 끝났으니 앞으로는 세상의 덤이 되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 말에 용기를 내다보니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후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차 밑에서 기어 나오면서 '이토록 생명을 질기게 살려주는 이유가 무었일까?' 생각했습니다. '비구니가 될까' 하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 이도저도 아닌 네 명의 딸이 있는 열네 살 차이나는 이혼한 남자하고 결혼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대접받고 살리라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댁 어른은 결혼할 때 예물이 없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직장생활을 놀러 다닌다고 불평불만을 하셨습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도시락 네 개를 싸면서 바라지 하는 딸들은 제가 다가가면 갈수록 빗장은 더 견고해 졌습니다. 그중 세 명이 예능이라 돈은 물론 마음마저 바짝 마른 낙엽이 되었습니다.

우연히 찾아온 정토회와의 인연

남편은 제가 입는 옷, 립스틱 색깔, 대인관계, 심지어 담임까지 하지 말라며 토끼 같은 제 심장을 쥐락펴락했습니다. 그림자처럼 우울증이 따라붙었고 이혼을 생각했고 또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친정 부모에게 대못을 박아놓고 죽음으로 다시 대못을 박는다 하니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저를 믿고 재혼했을 남편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한편으론 애잔하고 짠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림길에서 청력이 떨어지는 귓병이 왔습니다. 소통이 잘 안 되니 자신감이 위축되고 자존감도 낮아져 더는 직장생활을 할 수 없어 명퇴했습니다. 그때가 오십 대 초반이었습니다. 퇴직하고 하루 세끼를 차려 남편에게 받치려 하니 '내가 밥만 하다 죽겠구나?' 하며 한숨을 내쉬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에게 정토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재작년 2월이었습니다.

서로 다르게 부처님에게 다가가기

남편에게도 '이런 강의가 있다는데 당신도 한번 들어 볼라요?' 했더니 '해볼까?'하며 미지근하게 대답합니다. 저는 법문이나 선배 도반님들의 봉사에 마음이 열리는데, 남편은 스님의 법문을 CD로 산다며 인터넷을 검색하였습니다.

"도대체 그 나누기는 왜 하는 거야?" 라고 볼멘소리하면서도 남편은 화요일이면 법당을 나갑니다. 법문은 열심히 예습하고 복습을 하면서 환경, 봉사 통일 교육은 물론 남산 순례, 문경수련 같은 것은 '개뿔'이라며 참여하고픈 저도 못 하게 합니다. 심지어 수행맛보기에서 처음 아침기도를 하며, '내가 언제 무릎을 구부리고 머리를 땅에 대고 나 자신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남편은 '쓸데없는 짓이고 나중에 무릎 아프다 하면 병원도 안 데리고 갈 거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너무도 다르게 부처님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들은 귀는 있어 무유 정법을 내세우며 〈깨달음의 장〉 가는 것도 못 가게 합니다. 간다고 하면 '너는 법당에 다니면서 더 못쓰게 되었다. 집안을 파탄시키면서 〈깨달음이 장〉을 가야 하느냐? 거기를 가야만 깨닫는 거냐? 나 같이 안 가는 사람은 평생 깨달을 수 없겠네? 네 맘대로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냐'며 어떻게든 보내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가져다 붙입니다. 그러나 제가 꼭 가야겠다는 일념이 닿았는지 드디어 다녀오라는 말을 합니다.

JTS 거리모금 중 (왼쪽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최서연 님)
▲ JTS 거리모금 중 (왼쪽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최서연 님)

서서히 같은 곳을 바라보다

1년 반 만에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는데 나를 고집하고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없는데 내 것이라고 집착하면서 괴로워했던 모습이 저편에서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연에 빚을 지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모습이 다가왔습니다.

그 후 총무님이 불교대학 모둠장을 맡아보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모둠장 이야기를 꺼냈더니 '귀가 안 좋은데 네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반은 걱정 반은 응원해줍니다. 며칠 전에는 '2년여 동안 정토회 다니면서 무엇이 가장 좋아졌느냐'며 물었습니다. 저는 알아차림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남편이 '나도 알아차림이다'라고 합니다. 말끝에 '자기도 많이 변한 것 같지 않냐'고 묻습니다.

70대 중반인 남편이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직은 남편이 수행이나 봉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 때 일어나는 제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합니다. 요즘은 스님의 하루와 즉문즉설을 남편에게 보내주니 수행법회도 가끔 나가겠다고 합니다.

인연에 따라 쓰고 쓰이는 것이 삶이며 또 핑계나 변명의 업식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로움이라 말이 좋습니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묻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서연 님은 현재 경전반 주간 꼭지장 소임을 받아 활동 중입니다. 처음 소임이 주어졌을 때는 보청기를 해도 소통이 어려운 상황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정받으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가벼운 마음 내니 귀한 법문을 다시 듣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소임이 복이란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것이겠지요? 이제 정회원이 되었으니 수행 보시 봉사가 법비임을, 또 마땅히 응당 하는 일임을 깊이 새겨 괴로워 할 일 없는 수행자로 살아가겠다고 말씀하시는 보살님 모습이 더없이 편안하고 밝아보였습니다.

글_남진숙 (순천법당 희망리포터)
편집_박성희 (홍보국 편집담당)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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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화 고명주

아름다운 향나무 한그루를 보는 느낌입니다. 글곡진 삶의 이야기들이 구불구불하지만 합쳐지면 멋스런 향나무의 가지 처럼 느껴집니다.

2020-06-11 13:06:53

이지영

아침부터 감동의 눈물로 최서연님의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참으로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저도 향나무처럼 향기나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6-10 15:43:07

자재왕

가슴이 마음이 짠하네요. 인생의 황혼에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과보 바라지 않고 네 딸 길러낸 공덕이지 싶네요. 스승님께서는 지난 것은 좋았던 나빴던 다 꿈이라고 하셨으니 , 지금 여기 행복하면 매일이 행복하겠지요.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하옵니다.

2020-06-09 1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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