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분당법당
그냥 그대로 소중한 나

주변을 살펴보면 밝고, 기운 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시원하고, 환한 웃음으로 도반들을 맞아주는 분당정토회 분당법당 정애심 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해바라기를 닮은 정애심 님의 수행 이야기입니다.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던 나

3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나 충분히 어리광도 부리고, 사랑도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버지 등에 업혀 있던 기억, 마루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예쁘다' 칭찬받았던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현명한 어머니 덕분에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고, 청소년기도 공부와 친구 모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결혼도 가장 마음 편한 동네 친구와 했습니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둘째 아이를 낳고 철없이 살던 중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자고 했습니다.

2년 후 닥친 IMF는 남편의 번역프로그램 사업을 종잇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셋째 아이도 낳고, 헤헤거리며 살았습니다. 남편은 살려고 혼자 발버둥 쳤지만 저는 토요일이면 외식도 하고, 서울에서 안양으로 이사한 것 외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임용고시 공고를 보았고 남편은 제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주면 도움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10년을 키웠으니 '해볼게' 하며, 임용고시 시험 보는 날, 오랜만의 외출이라 이마저도 즐거웠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평화통일의 노래를 (오른쪽에서 네 번째, 정애심 님)
▲ 도반들과 함께 평화통일의 노래를 (오른쪽에서 네 번째, 정애심 님)

남과 비교하니 나는 모자란 사람

첫 출근 하던 날 쏟아지는 아침햇살도 감동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새롭게 배우는 다양한 컴퓨터 기능도, 가르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게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3년쯤 지나 옆을 돌아보니 저만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저만 힘들고 복잡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 편안한 곳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들 큰 집과 상가, 성공한 남편, 명품가방, 승진까지 모두 다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바라본 제 모습은 멍청하고, 돈도 없고, 승진도 못 하고, 남편마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없던 집도 더 크게 키우며 잘살고 있는데, 나는 있던 집도 없애고 이게 뭐지?’ 갑자기 찾아온 한없는 모자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잘 자라 준 아이 셋이 제 자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을 세울수록 비굴함도 커졌습니다. 점점 위축되는 마음을 포장하기 위해 무리해서 집도 사고 옷과 화장으로 나를 감쌌습니다. 그럴수록 자존감은 더 바닥을 쳤고, 화를 내고 원망하는 말을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당당한 수행자로 거듭나기

그무렵 불교와 인연이 닿아 기존 사찰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신도들이 소원을 빌고, 또 관세음보살 앞에서 자리 다툼하는 것을 보니 '이것이 과연 불교인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때 알게된 중앙승가대학원 스님이 법륜스님 강의를 소개해주어 정토회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조건으로 간〈깨달음의 장〉에서 남편과 부모님의 고마움이 그대로 와 닿았습니다. ‘나는 나 그대로 너무나 소중하고, 가볍게 사는 삶이 괜찮다’는 제 자신에 대한 긍정심이 회복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무거운 짐이 되었던 집도 팔고, 파마도, 화장도, 자식도, 나를 덧칠한 껍데기를 벗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귀하디 귀한 내가 보였고 부모님도, 남편도, 자식들도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그 자체로 고맙고 소중해졌습니다.

법당과 직장에서 하는 일도 바보라서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이 많아 저에게 온 것이었습니다. 정토회에 와서 JTS거리모금,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 등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만 바라보다가, 지금은 나와 너, 우리로 확장되어가는 하루하루가 보람됩니다. 저는 이제 당당한 수행자입니다

남편과 함께, JTS 거리모금 (왼쪽에서 세 번째가 정애심 님)
▲ 남편과 함께, JTS 거리모금 (왼쪽에서 세 번째가 정애심 님)

행복한 수행자로 한 걸음 더

남편에게 제가 정토회 다녀서 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건강해져서 좋다 합니다. 어려서부터 눈 수술, 목 수술, 두통, 복통까지 골골한 체질이었습니다. 40대 중반에는 디스크가 터져 하반신이 마비되어 3개월 입원 후 퇴원했지만 늘 통증과 함께했습니다.

그럼에도 천일결사 8-1차부터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하기 싫어 새벽 3시까지 잠들지 않고 버틴 날도 있었고, 일요일은 쉬어야 한다며 건너띄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합니다. 꾸준히 정진한 덕으로 지금은 설악산 등반도 거뜬하고, 4박 5일 명상도 허리 통증 없이 가능합니다.

성적으로 우열을 가리며, 학생을 괴롭히고 화내는 선생님이었던 제가,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거치며 아이들의 마음도 보기 시작했습니다. 성적의 우열이 행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많이 가진 것, 높은 것이 행복의 조건이 아님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 화도 내지 않고 악을 쓰지 않으니 교실은 편안해졌고, 아이들도 더 많이 웃게 되었습니다.

퇴근하면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이 누웠다가 겨우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곤 했는데 지금은 퇴근 후 법당에 나와 활동하고 주말도 없이 뛰어다녀도 아프다는 소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나를 괴롭히지 않으니 피곤도 줄고 나도 주위 인연들도 괴롭지 않고 서로 편안해 지나 봅니다. 108배와 평등의 이치가 저를 살렸습니다. 저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행사를 마친 후 도반들과(앞줄 왼쪽 두 번째, 정애심 님)
▲ 행사를 마친 후 도반들과(앞줄 왼쪽 두 번째, 정애심 님)

평생 이 길을 걸으며,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로

호기심이 많아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고, 조금 알만하면 또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정토회도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는데, 어느새 7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평생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모두가 도반 덕분입니다.

정토회 와서 여러 소임도 맡았습니다. 불교대학생 때 영상과 천배정진을 담당했고, 경전반에서 영상과 저녁예불을, 졸업 후에는 불교대학 담당과 팀장, 저녁책임팀장 소임을 맡아 점점 물들며 수행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천일결사 10차에서는 대의원 사무담당을 맡아 또 다른 소임으로 도반을 만납니다.

이번 봄 불교대학에 입학한 남편과 새벽에 일어나 함께 정진도 하고, 나누기도 합니다. 남편 덕분에 함께 가는 도반이 소중함을 다시 깨우칩니다. 이제 충분합니다.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저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활동가 10주 정진(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정애심 님)
▲ 활동가 10주 정진(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정애심 님)

이번 기회로 그동안의 저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불교대학생 때 제가 가진 부정적인 업식을 적어 둔 메모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서른여덟 개 중 네 개 정도만 옅어지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 업식들로 괴롭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나입니다. 그대로라도 귀한 내가 나는 참 좋습니다. 앞으로도 정토회 도반들과 함께 전법의 길로 한 발짝 나아가려 합니다. 모자이크 붓다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니까요! “No problem!”


무슨 일이든 수순하는 것을 올해 수행 목표로 삼고 있어, 정토행자의 하루 수행담 요청도 방긋 웃으며 “네”하고 응하던, 밝은 기운이 지금도 느껴집니다. 시원스럽게 활짝 핀 웃음꽃 같은 수행담에서도 긍정 에너지가 넘쳐납니다. 맑고, 밝고, 가볍게 살아가는 수행자 정애심 님의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글_권용희 (분당정토회 분당법당 희망리포터)
편집_박성희 (홍보국 편집담당)

전체댓글 25

0/200

보산등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응원할게요~^^

2020-06-24 19:19:49

보디사트바

감동적입니다!

2020-06-18 15:28:21

청정화

그냥 그대로의 받아 들이고 그대로인 내가 귀하다.하시니 참 좋습니다.
그 마음으로 몸도 맘도 다 고치시고 항상 웃음 잊지
않으시니 이 글을 읽는 저도 덩달아 행복해 집니다.

2020-06-16 01:23:51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분당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