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성법당
하늘 향해 활짝 웃는 해바라기가 되어

대구 수성법당에는 조용하게 미소 지으며 봉사하는 김현숙 님이 있습니다. 수성법당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고요하게 법에 물들어가는 정토행자 김현숙 님을 만나봅니다.

행복학교 소임 중에 김현숙 님
▲ 행복학교 소임 중에 김현숙 님

땅만 보며 걷던 아이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과 어울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늘 땅만 보고 걸으며 주눅 들어 있는 아이였습니다. 동네사람과 마주치면 삐딱하니 시선을 외면하고 땅만 보고 걷느라 인사도 할 줄도 몰랐습니다. 자랄 때 부모님이 싸우는 것도 딱 한번 보고 자랐을 정도로 평탄하게 살았습니다. 그 시절 할머니가 엄마를 야단치면 외동인 아버지도 덩달아 야단치니 엄마가 힘들었을거란 짐작은 됩니다.

소심하고 잔소리가 많았던 엄마였지만 교육열이 높아서 시골에 살던 형제들은 중학교부터 도시에 나가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부모님은 시골에 계시니 언니가 우리들에게 밥해주고, 학교 보내주면서 그렇게 엄마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하루라도 언니를 안보면 섭섭할 정도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요즘도 매일 통화합니다. 저는 언니밖에 모르고 고등학교 친구도 1명뿐일 정도로 소심한, 사람 사귀는 게 힘든 아이였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은 초등학교 친구들과도 만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니 제가 봐도 놀라운 변화입니다.

남편과 함께
▲ 남편과 함께

새벽기도의 기쁨

결혼 후 집 가까이에 일반 사찰인 공덕원이 있어 한 달에 한 번씩 다녔습니다. 현재 수성법당 자리는 예전의 공덕원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공덕원에 초하루기도를 다니던 신도였었는데, 황금동에 있던 정토회 법당이 2006년 4월 같은 자리에 개원식을 했습니다. 이곳이 정토회로 바뀔 때 법륜스님께서 기존의 공덕원 신도들을 모아놓고 이런저런 얘길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첫 입재식이 있던 날, 뭔지도 모르고 공덕원에 함께 다니던 두 분과 셋이서 입재라는 걸 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정토회가 딱 마음에 드는 게 새벽에 집에서 혼자 기도한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중에 한분은 아직도 정토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입재식을 다녀오는 차안에서 나누기 할 때 그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입재하나봐라' 그러면서도 기도는 꾸준히 했습니다.

사람들과 못 어울리니까 법당에 가볼 엄두도 안 나고 다른 활동도 못했지요. 집에서 새벽기도를 이어가던 중 개원기념으로 스님이 '반야심경' 강의를 한다는 걸 알고는 매주 살짝 가서 강의만 듣고 왔습니다. 함께 입재했던 분이 하루는 ‘저녁법회에 한번 나와 봐라, 나는 경전반 다니고 있는데 와봐’ 그러시는데 그 당시엔 청강도 가능했던 거 같습니다. 호기심에 가서 육조단경 강의를 들었는데 4주 정도 듣고 나니 뜬금없이 정일사1를 한다고 해서 따라하고, 과제로 거리모금을 한다고 해서 또 따라나섰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힘들어 어려서부터 동네분들을 만나도 고개만 푹 숙이고 인사도 못하고 지나다닌 제가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웃으면서 얘길한 게 너무 감격스럽고 큰 감동으로 몰려왔습니다. 모금이 끝나고 나누기할 때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한 번씩 다니던 중에 어떤 분이 뭣모를 때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야 한다길래 12월에 또 다녀왔습니다. 제 속에 남들과 못 어울리는 거에 대한 힘듦이 상당히 컸었기 때문에 순순히 받아들였던 거 같아요.

2019년 대구걷기대회 불교대학 홍보 (첫째줄 왼쪽에서 첫 번째, 김현숙 님)
▲ 2019년 대구걷기대회 불교대학 홍보 (첫째줄 왼쪽에서 첫 번째, 김현숙 님)

다글다글 볶아대는 나를 보다

정토회 활동과 기도를 하면서 제가 은연중에 남편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면서 남편을 들볶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 한 번 안 해보고 결혼했던 터라 직장 다니면서 술 마실 일이 있다는 걸 이해 못하고 오로지 애들과 남편만 바라보면서 들볶고 살았습니다. 애들 학습도 직접 가르치면서 오로지 애들과 남편만 바라보면서, 저는 애들 볶는지는 모르고 남편 볶는 거는 알고 있었습니다.

2007년 3월에 불교대학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정말 인연이었는지 저와 안 맞는 활동들을 하면서도 꾸준히 다녔습니다. 소심한 성격에 결석은 안했지만 함께 다녔던 동기들 얼굴도 잘 몰랐습니다. 뭘 묻거나 시킬까봐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도망 다녔습니다. 그 정도로 힘들게 다니는데 하루는 법당에서 도반이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왕 정토회 다니는 거 졸업 기념으로 인도성지순례를 같이 가자는 겁니다. 저는 못 간다하고 남편도 가지마라하고 하던 중 어느날 하루는 남편이 '처남댁이 가면 보내줄게' 하는 겁니다. 그 당시엔 정토회를 안 다녀도 갈 수 있던 시기라 올케언니도 선뜻 가자고 해줘서 인도까지 함께 다녀왔습니다.

2008년 인도성지순례에서, 이자리에 이르게 한 도반들과 (왼쪽 두번째 김현숙 님)
▲ 2008년 인도성지순례에서, 이자리에 이르게 한 도반들과 (왼쪽 두번째 김현숙 님)

한마음 돌이켜 오는 대로 받은 소임

그러면서 경전반도 다니고 도반들 옆에서 활동하는 거 도와달라면 도와주고 도반들 따라다니면서 졸업까지 했습니다. 졸업으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 함께 다니던 도반이 새벽예불을 맡게 되면서 저보고 종성을 하라고 해서 3년간 새벽예불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어디 가시면 대신하기도 했는데 3년 지나니 이번엔 또 수행법회를 맡아 보라고 해서 1년간 수행법회를 진행했습니다. 다음엔 법회팀장 3년을 했는데 저는 그 4년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사람과 못 어울리고 사람 기억도 잘 못하는데 사람과 계속 만나야하는 법회팀을 맡으니 화요일만 되면 벌써 가슴이 조여오고 강박관념이 심해져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새로운 사람 얼굴이 안 익혀지니 옷차림과 머리모양으로 기억해 보려고도 애를 썼습니다. 한 주일까지는 기억해도 더 지나면 기억이 안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이 3년만 끝나면 다시는 정토회 활동을 안 하리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2014년 대의원 활동 중에서 (뒷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김현숙 님)
▲ 2014년 대의원 활동 중에서 (뒷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김현숙 님)

팀장 3년 후 회향 때 법륜스님과의 나들이가 있었는데 그조차도 안가고 싶었습니다. 거기서 또 사람들 만나고 나누기하는 게 힘들어서 안 가려다가 '이게 마지막이다' 싶어 가게 되었습니다. 선운사에 갔었는데 다녀오면서 특별한 것도 없이 그냥 어두운 차 안에서 무심히 창밖을 보다가 ‘이게 아니다. 오는 대로 한번 받아보자. 이때껏 힘들었는 데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이 한 생각 바꾸면 모든 게 달라진다더니 정말 한 생각 바꾸기가 그렇게나 오래 걸리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소임이 대의원이고 지원팀장인데 3년간 지원팀장하면서 정말 재밌었습니다. 일은 엄청나게 많아 월화수목금금금이었는데도 참 좋았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 부처님 오신날

한마음 돌이켜서 오는 대로 받아서 하니 '이렇게 사람이 달라지는구나!' 싶고 그때부턴 완전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원팀일은 공양간도 살피고 대의원문서도 만들고 법당관리까지 끝이 없이 밀려드는데 그 일이 참 좋았습니다. 낯선 사람 앞에만 서면 저는 왜 떨리는지 지금도 낯선 사람 앞에선 가끔 떨립니다. 그래서 은행도 못 다녔는데 요즘은 아주 가끔씩만 그런 증상이 나타납니다. 법문 중에 ‘타고난 업식은 바꾸기 매우 어렵다. 자신을 인정하고 살아라’는 그 이야기에 많이 내려놓았지만 아직도 자동반응으로 나타납니다.

자라면서 아빠를 들볶는 엄마를 보면서 '난 엄마처럼 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저도 엄마한테서 대물림 받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중3, 고1때까지 붙잡고 앉아서 공부시켰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하게 됩니다. 정토회를 다니면서 애들과 남편의 일상을 인정해 주고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애들 성적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지만 그래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들한테 '만약 계속 내가 붙잡고 공부 시켰으면 어땠을까?'하고 물으니 '그랬으면 내가 어디로 튀었을지 모르지... 그래도 붙잡고 공부시켜줘서 그 기본실력으로 대학까지 가고 먹고 살게 된 거 같아 고마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완전 편하고 자유롭고 좋습니다. 애들과 남편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하고 있으니 속 끓일 일도 없고, 이전과는 완전 달라진 자신을 봅니다.

2017년 수행맛보기 (첫째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김현숙 님)
▲ 2017년 수행맛보기 (첫째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김현숙 님)

기도의 힘

왜 그렇게 혼자 속 끓이며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붙잡고 나와 주변을 힘들게 했을까? 이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데! 이 것은 기도의 힘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절대로 안 놓 치고 합니다. 맨 처음 백일기도할 때 80일쯤 지날 무렵 남편과 싸우고 ‘내 이거하면 뭐하노? 다시는 기도 하나봐라’ 하면서 한 열흘 쉬었는데 '이건 아니다'싶어 다시 기도하기 시작한 후 기도를 놓치거나 게을리 한 적은 없습니다. 변덕이 심해서 뭘 배워도 꾸준히 잘 못하는데 기도를 꾸준히 하니 일관성 있고 자신을 변함없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기도시간도 꼭 지키는 편인데 어느 날 보수법사님께 기도시간 꼭 지키는 이것도 집착이 아닌가하고 물으니 “잘 갖다붙인다. 그런 거는 집착이라하고” 하셔서 많이 웃었습니다. 꾸준히 제시간에 하는 기도가 제 삶을 굴곡 없이 평평하게 지나가게 해주는 거 같아서 ‘천일을 하루같이’라는 말을 가슴에 안고 삽니다. 저는 특별히 마장도 없었고 총무 3년도 잘 지나가고 그런 소임들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도 많이 당당 해졌습니다.

공지사항 전달할 때면 가슴은 쿵쾅거리고 제정신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고 합니다. 어느 날 다른 분이 공지사항을 전달하는데 종이가 떨리는걸 보면서 다 그런건가 위안 삼으며 극복했습니다. 법회팀장 맡은 3년 내내 하루 같이 끝나면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매일매일 한 그 3년의 간절한 기도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나 좋다는 수행문과 참회문이 기도하면서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니 어느 날인가 확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2016년 남편과 딸이 함께 졸업한 불교대학
▲ 2016년 남편과 딸이 함께 졸업한 불교대학

한번 접수해 봐

어린 시절 엄마가 절에 가면 따라다녔는데 오빠가 항상 하는 말이 '불교는 비는 게 아니다' 라고 말해 줘서 저도 소원을 비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정토회랑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저를 이렇게 바꿔놓은 정토회가 너무 좋으니 남편도 다녔으면 하는 바람에 불교대학 한번 다녀보라고 하거나 〈깨달음의 장〉에 한번 가보면 좋겠다고 툭 던지면 남편은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어떤 일로 너무 힘들어하길래
"불교대학 한번 다녀봐, 다니다 힘들면 관두면 되요."
"한번 접수해봐라"
해서 남편도 불교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졸업할지 기대도 안했는데 남편이 속한 모둠의 모둠장이 적극적인 분이라 〈깨달음의 장〉도 다녀오고 경전반까지 졸업했습니다. 4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남편은 하루도 안 빠지고 기도를 해서 저를 놀래킵니다. 본인 말로는 운동하는 거라고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자고 올 일이 있어도 개의치않고 기도하는 남편이 참 대단해보입니다. 평소에도 남편은 제가 활동하는 걸 지지해줘서 참 고맙습니다. 정토회 다니던 초창기엔 제가 나가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제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갈까봐 걱정되는지 1년에 한 두 번은 싫은 내색도 했지요.

2019년 남산순례봉사 (오른쪽 첫 번째 김현숙 님)
▲ 2019년 남산순례봉사 (오른쪽 첫 번째 김현숙 님)

그럼에도 저의 활동을 지지해줘서 참 고맙습니다. 지원팀장 3년 할 때도 끝나면 안한다고 했다가 총무 3년 맡아서 더 바빠지니 남편이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집안일을 참 많이 도와줬습니다. 처음엔 내 공덕으로 산다싶었는데 남편의 공덕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 남편이 참으로 대단하고 고맙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하는 활동이 뭔지도 자세히 모르지만 집안 행사보다도 정토회 행사를 우선으로 배려해주는시댁 식구들이 고맙습니다. 앞으로 맡은 소임 즐겁게 하고 새로운 소임이 오면 배워가면서 꾸준히 가볍게 해나갈 생각입니다. 정토회를 참 잘 만났습니다. 활동을 할수록 삶이 가벼워지고 변화하는 내가 보이고 소임의 크기만큼 커지는 자신을 봅니다.


정토회 일은 무엇이든 나한테 덕이 됨을 압니다. 함께하는 도반의 소중함도 알아가고,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알게 되고 참 복이 많구나 싶어서 행복합니다. 인터뷰 내내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늘 고개 숙이고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소심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햇살 좋은 5월의 오후 환한 웃음을 주고받은 유쾌한날이었습니다.

글_김화숙 (수성법당 희망리포터)
편집_박성희 (홍보국 편집자)


  1. 정일사 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입니다. 

전체댓글 24

0/200

이은여

보살님 감동입니다
정토회와함께 한 그시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2020-06-05 18:53:33

견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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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1 13:29:04

덕승

따뜻한 글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감사합니다

2020-05-30 23: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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