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영통법당
총 드는 건 도와줘도 '총대'는 못 멘다던 내가?

대단한 수행담도 없고, 내놓을 게 없다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사람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에 용기를 낸 사람. 영통법당에서 ‘도와주는’ 걸 제일 잘 한다는 이정희 님. 지금부터 이 정토행자의 ‘슬기로운 수행생활’을 만나러 갑니다.

‘독특한’ 남편과 살아가기

 
남편은 뭐라고 해야 할까? 좀 ‘독특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나쁘거나 저를 크게 힘들게 하는 일은 없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합니다. 예를 들어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저는 먼저 파란불이 오는 방향으로 건너는데, 남편은 더 오래 기다리더라도 반드시 본인이 정해놓은 방향과 순서대로 건너야 합니다. 사실 이런 점들이 생활에 크게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26년 동안 살면서 이런 사소한 일들이 쌓이다 보니 남편 때문에 마음이 힘든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답답함을 조금씩 해소했습니다. 그즈음 부산에 사는 친정 언니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했습니다. 언니의 영향인지 저도 2017년 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많이 싸웠습니다. 제가 결혼한 후에도 부모님은 여전히 티격태격했습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다 보니, ‘남편과 싸우게 되는 것이 부모님 탓이 아니라, 내가 그냥 멈추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강아지와 동반여행 이벤트에서, 견생처음 가족과 함께 1박 2일 여행
▲ 강아지와 동반여행 이벤트에서, 견생처음 가족과 함께 1박 2일 여행

짠돌이 남편, 쌓이는 감정

남편은 짠돌이입니다. 생활비를 아예 안 주는 건 아니지만 본인이 정한 기준만큼만 줍니다. 어떨 때는 말도 없이 금액을 깎기도 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다 커서 지금은 쓸데가 줄었지만 기분은 나쁩니다. 생활비를 받아서 쓰다 보니 사소하지만 기분 상하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돈 문제도 그렇지만 모든 일에 남편의 독단적인 결정이 늘어났습니다. 그만큼 저는 싸워서 설득해야 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할지 몰라도 이런 일들이 20년 넘게 차곡차곡 쌓이다보니 많이 힘들었습니다. 10여 년 전 집을 살 때도 친정부모님께 돈을 빌리는 대신 저와 공동명의로 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남편은 공동명의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집을 산 후 남편에게 “이 집 공동명의로 했지?”라고 물으니 “공동명의로 하고 싶으면 네가 변호사 한테 가서 직접 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남편은 결혼생활 26년 동안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약속도 지키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는 독불장군 스타일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상의’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전히 남편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지금은 이해를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제 시각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남편은 그냥 자기 생각대로 했을 뿐인데 제가 ‘저렇게 하면 안된다.’ 하며 남편을 시비 분별했습니다. 굳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그동안 남편을 미워했습니다.
 

 2018년 2월 서초법당 불교대학 졸업수련에서
▲ 2018년 2월 서초법당 불교대학 졸업수련에서

 

정토회 봉사, 돈 받고 하는 줄?

 
불교대학을 졸업할 즈음 ‘경전반’에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고 가벼워졌는데 굳이 경전반까지는 안다녀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단지 정든 도반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경전반에 입학했습니다. 〈깨달음의 장1〉도 제 꼬라지를 볼 자신이 없어 가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장>에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남편이었고, 남편에 대한 미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2년 동안 불교대학, 경전반을 마치고, 〈깨달음의 장〉까지 다녀오고 나니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습니다.

2018년 수원 SK아트리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안내 봉사, 가장 왼쪽이 이정희님
▲ 2018년 수원 SK아트리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안내 봉사, 가장 왼쪽이 이정희님

저의 가벼움을 알았던지, 타이밍도 절묘하게 영통법당 부총무님이 영상 봉사를 제안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자도 아니고, 영상만 맡아 달라니 고민도 안하고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2019년 봄불교대학 봉사를 도반들과 즐겁게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처음에는 ’봉사‘라고 해도 다들 돈을 조금이라도 받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학생들이 하는 건 진짜 봉사지만 총무나 담당자분들이 하는 건 대가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좋아서‘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상 담당을 해보니까 그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우리 담당분들이 저희에게 얼마나 고마운 일을 해주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봉사를 하게 된 것도 선배 도반들에게 고마운 마음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선배 도반들에게 보답을 해야겠구나. 내가 당연히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불교대학 학생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고, 도반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2020년 봄 불교대학, 4번째 온라인 수업중
▲ 2020년 봄 불교대학, 4번째 온라인 수업중

이게 뭐라고? 그냥 하자.

불교대학, 경전반 학생일 때, 조용히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제가 2020년도 봄불교대학 담당을 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대신 도와주는 건 잘했습니다. “총 드는 걸 도와줄 수는 있지만, 총대는 못맨다”고 했었으니까요. 그러다 올해 봄 불교대학 개강을 앞두고 제게 불교대학 담당 제안이 왔는데 당연히 안한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수행을 하다 문득 ‘이게 뭐라고? 그냥 하자’는 마음이 번쩍 들었습니다.
 
사실 코로나19로 불교대학을 꾸려나가기 최악의 조건이었습니다. 제가 50대인데 화상회의, 행아웃, 구글, 크롬이 뭔지도 모르겠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는데 하나하나 배워가다 보니 조금씩 재미있기도 합니다. 모른다고 그냥 안 했으면 여전히 저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을 겁니다. 

한번은 제가 나누기를 진행하는 중에 좀 서툴러서 잠시 주저했는데 그때 한 학생이 나서서 진행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화가 나는 저를 봤습니다. 담당이라는 제 권위에 도전하는 것 같아 싫어하는 제 모습. ‘아, 이게 수행이구나. 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해 내가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라는 이름으로 내 수행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2018년 가을 JTS 거리모금, 가장 오른쪽이 이정희님
▲ 2018년 가을 JTS 거리모금, 가장 오른쪽이 이정희님

법륜스님은 정답을, 나는 오답을

 
남편은 요즘 제가 인간이 되어간다고 정토회 활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아직도 화를 내긴 하지만, 대신 멈추기를 빨리 합니다. 올라오는 화를 알아차리게 되었으니까요. 도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법륜 스님이 정답을 다 알려 주는데 왜 자꾸 오답을 쓰는지 모르겠다”며 우스개 소리를 합니다. 이론은 빠삭한데 아직도 닥치면 업식부터 바로 튀어나와 버립니다.


2020년 봄불교대학 도반들과 1년 동안 재미나게 잘 지내며 한 명도 빠짐없이 함께 졸업하고 싶다는 이정희 님. 바위에 새기던 분별심을 허공에 새기는 그날까지 수행자로 살고 싶다는 이정희 님의 말이 멋지게 들렸습니다.
 
 
 

글_차미나 희망리포터(영통법당)
편집_권영숙 (홍보국 편집팀)


  1. 깨달음의 장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4박 5일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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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수행담 감사합니다. 보는 내내 제 이야기처럼 공감되었습니다.

2021-01-07 06:16:56

김윤정

또 배웁니다. 코로나로 유쾌한 보살님 못봐서 아쉬워요♡♡

2020-06-01 19:38:17

관음성

이렇게 한발한발 나아가는 도반님들의 이야기를 듣게되어 기쁩니다. 저도 깨어 있음과 알아차림을 통해 분별망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한발을 내딛어 나아가고 싶습니다.

2020-05-25 1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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