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남양주정토회
정토회 가면 '돈 나와?'
'아니, 행복이 나와!'

남편이 "정토회 나가면 돈이 나와 뭐가 나와? 그 열정으로 나를 도와 돈을 벌자." 그러면 웃으면서 "정토회 가면 행복이 나와." 대답하는 안정희 님. 오늘 그 분의 행복한 수행이야기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쥐약을 먹다

남편은 저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이후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하며 정신적, 경제적으로 일찍 독립을 했습니다. 자존감이 높고 주관도 뚜렷합니다. 남편은 외모에서도 카리스마가 넘칩니다. 대리지만 지점장 같은 풍모를 지녔습니다. 여섯 살인 막내딸의 친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놀라 울음을 터트렸던 적도 있습니다. 유모차를 끌며 수다를 떨던 엄마들도 주차장에 남편의 차가 들어서면 순식간에 흩어졌습니다. 더 놀겠다고 떼쓰던 아이들은 남편을 보면 자동으로 신발장으로 향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9남매의 장남으로 모든 집안 일을 돌보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집안엔 우환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늘 집안 일의 뒤처리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저의 요구와 의견은 마음속에 담아두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남편 앞에서 저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 용기 내어 말을 꺼내도 남편이 한마디 하면 천둥소리같이 크게 들리고 말은 목구멍 밖으로 나오질 못했습니다. 대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분명히 제가 맞고 옳은 것 같은데 당당히 얘기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답답했습니다. 저보다 잘난 남자 만나 덕보려고 결혼했는데, 결혼해서도 여전히 제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 했습니다.

불교대학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 안정희 님
▲ 불교대학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 안정희 님

나는 노비였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면 그가 불편하지 않도록 수발을 들어 주었습니다. 남편을 좋아하고 우러러보았기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면 함께 사는 저는 당연히 왕비가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셋째 아이 출산 후 유명한 다단계회사에서 교육을 받은 뒤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은 거기 가면 인간관계는 끊어지고, 가정은 파탄 나고, 재정적으로도 엄청난 손해를 본다며 단칼에 제 생각을 무시했습니다. 저도 지지 않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저희 부부의 치열한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참 많이 싸웠고, 많이 울었습니다.

싸움의 원인은 다단계가 아니라 저희 부부의 근본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남편은 점점 왕이 되어갔고 저는 왕을 모시는 무수리로 전락했습니다. 남편을 이렇게 만든 것은 결국 저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송년 거리모금을 하고 있는 안정희 님(왼쪽에서 첫 번째)
▲ 송년 거리모금을 하고 있는 안정희 님(왼쪽에서 첫 번째)

마음의 장벽을 뛰어넘다

친정에 갈 때마다 올케는 법륜스님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스님을 아주 좋아할 거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종교를 바꾸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가는 아침에도 남편과 다투고, 아이들에게도 짜증을 내는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신앙이 있는데 왜 이렇게 괴롭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스님의 즉문즉설 테이프를 가족들이 없는 시간에 몰래 듣기 시작했습니다. 테이프를 들으면 들을수록 남편이 살아온 환경에 대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와 살아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안쓰러웠습니다. 가장으로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남편의 고단함이 느껴졌습니다. 남편의 말은 공격적인 것도 독선적인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저만 희생하며 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부부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담당자 직무교육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번째)
▲ 담당자 직무교육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번째)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다

양평으로 이사하는 것을 계기로 정토회를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보, 정토회에 한 번 가볼게. 불교대학에서 일주일에 한 번 불교 공부 하는 게 있는데, 그거 한번 해 보고 싶어.” 그러자 남편은 "성당에 안 나갈 거냐"고 물었습니다. "정토회 가는 게 오히려 예수님 말씀대로 사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알면 난리 난다면서, 어머니께 말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습니다. “여보, 어머님께 말씀드리면 나는 더 좋아. 그럼 더 당당하게 다닐 수 있어. 그런데 말해서 좋을 게 뭐 있어. 아시면 불편만 하실 텐데.”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2014년 3월에 가정수행법회를 시작으로, 같은해 가을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쓰레기 버려달라던 말에 남편이 싫다고만 해도 냉정하다며, 날 사랑하지 않는다며 눈물 흘렸던 저였고, 밥상머리에서 남편의 말 한마디에 목이 메어 방에 들어가 울고 나왔던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던 저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어느날 극심한 요통으로 남편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치료가 끝난 후 산에 잠깐 간 남편에게 전화했습니다. 남편은 “당신 허리 아프니까 점심은 먹고 들어갈게.”라고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아프니까 당신이 내 점심을 차려줘야지.”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남편도 저도 더이상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정토회 나가면 돈이 나와 뭐가 나와? 그 열정으로 나를 도와 돈을 벌자.” 그러면 저는 웃으며 “정토회 가면 행복이 나와.” 합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오랜 시간 남편과 살아온 습이 있어 남편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양파껍질처럼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있습니다.

1인 평화시위를 하고 있는 안정희 님
▲ 1인 평화시위를 하고 있는 안정희 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소극적인 삶보단 적극적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정토회 활동은 마중물과 같았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조사를 위한 서명은 저의 첫 번째 거리 활동이었습니다. 울보 엄마가 서명을 받으러 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아이들은 서명 장소에 저를 따라나섰습니다. 순수하게 엄마를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기한 눈으로 저를 지켜보았던 아이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이후 저는 JTS거리모금, 불교대학홍보 활동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거리로 나갔습니다.

제 마음의 장벽이 아이들에게 대물림될까 걱정했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고, 하고 싶은 일들도 거리낌 없이 합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그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업식의 대를 저는 이렇게 끊은 것 같습니다.

물도 펑펑 쓰고 배달음식을 즐겨 먹는 큰아들에게 주의를 주었더니 아들이 말대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네가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엄마의 95%는 통일과 환경이야. 지금 네가 실수한 거야.” 그럽니다. 남편의 눈에 제가 그렇게 보이는가 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가볍게살기 모둠원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 가볍게살기 모둠원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유로운 비행을 위해 도약하다

불교대학팀장 소임은 저에게 안 해본 일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부담스러운 일도 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소임의 크기가 커질수록 남편의 반응이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굳이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스승님의 눈으로 저를 봅니다. 새장에서 날게 되었다고 만족하면, 드넓은 하늘에서 비행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는 게 아닌가. 미리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오늘의 인연에 따라 살자고 다짐합니다.

저를 속박하는 남편도 스스로 속박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 인생의 참 주인으로 사는 것이 그와 저 모두를 더 자유롭게 할 것임을 믿습니다. 기적보다 더 기적 같은 불법을 만나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통일의병학교에서 도반들과 (왼쪽에서 첫 번째)
▲ 통일의병학교에서 도반들과 (왼쪽에서 첫 번째)


안정희님은 올해 양평법당 부총무소임을 맡으셨습니다. 전보다 더 많이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워지셨다고 합니다. 남편이 있어도 영상법회도 듣고, 나누기도 하고 더 당당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글_이현주 희망리포터(남양주정토회 양평법당)
현재 편집_권영숙(홍보국 홈페이지 운영팀)
지난 편집_한영옥(강원경기동부)

전체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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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

감사합니다~

2020-04-29 14:32:33

초심자

미리 걱정하지 말고 오늘에 인연따라 살자
이 가르침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2020-04-25 08:03:40

자재왕

법륜 스님,
살아 계신 부처님!
정말 많은 중생 구제 하십니다.
존경하옵고 감사드립니다.

2020-04-24 07: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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