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송파정토회
모자이크 붓다를 실천하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 때문에 만남을 통한 인터뷰는 어렵다 판단되어 이번 인터뷰는 몇 가지의 질문을 작성하여 온라인을 통해 답변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답변을 받았을 때 정성스러운 긴 글에 감동하였고, 그 내용에 또 한 번 감동하였습니다. 각 질문을 엮다 보니 한 편의 삶이 촘촘하게 완성되었습니다. 독자분들도 이 글을 통하여 한 수행자의 삶에 온전히 들어가보는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경전반 입학식의 정경인님(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 경전반 입학식의 정경인님(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평탄했던 내 삶에 찾아온 첫 시련

저는 2년간의 불교대학 과정을 마치고 현재 경전반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정토회에서 수행자로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2년 정도 더 수행, 봉사한 뒤에 인터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게 주어진 소임을 해내며 배우는 자세가 바로 수행자의 모범이라는 부총무님의 이야기에 인터뷰를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저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재는 젊은 시절에 대해 ‘잘 살아왔어’라고 저 자신을 다독거리며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아무 어려움 없이 자랐습니다. 학창 시절 공직자인 아버님 덕에 전학을 자주 다녔으나 새로운 환경에서도 학교 임원도 맞아 즐겁게 하였습니다. 대학에서는 간호학을 전공했고, 남편과 결혼하면서는 영국으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바지런하고 긍정적인 성격이었던 저는 영국에서의 직장생활도 어려움 없이 하였습니다. 그때그때 어려움은 있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내 능력만큼 풀어가며 미래를 향한 행복감으로 살았기 때문에 큰 괴로움은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연등 만들기 중인 정경인님
▲ 부처님 오신날 연등 만들기 중인 정경인님

6년간의 영국 생활을 마무리하며 한국에 들어을때 남편은 광주에 있는 대학에 나가게 됐고, 저는 서울에 있는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첫번째 괴로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저에게 5형제 맏며느리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라셨고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큰 집에서 10명이 넘는 식구들을 챙기며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일하는 사람을 두고 살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어머님이 싫어하시니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괴로움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때 ‘그래. 미래는 보장되어 있으니 집안에서 직업을 가지고 일한다는 생각으로 임하자’ 하고 마음을 먹으니 괴로움이 사라져갔습니다. 지금만 같아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때는 남편은 내 편이 되어줘야 한다는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남편이 중간자 역할을 참 잘 해주어서, 그 덕분에 고부간이 아니라 모녀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냈습니다.

한 고비를 넘기고 다시 찾아온 시련

그러던 중 남편의 학교 일이 많아졌고 저도 서울 시댁에서 나와 광주에 내려가서 남편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광주에 살면서는 요가를 배워서 요가지도자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해서 저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요가원을 내어 활동을 하고, 주말에만 광주에 내려가 함께 지내는 주말부부를 했습니다. 40대에는 요가 덕분에 시부모님께도 인정을 받고, 다른 요가 선생님들과도 서로 도와가며 상생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남편과도 ‘항상 생활은 검소하게 하고 여행하며 살아가자’는 의견 일치를 보아 생활도 보람되고 알차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 영원한 행복은 없더군요. 50대 중반 즈음에는 남편과 함께 매주 산행도 다니고 여행도 다녔는데 남편에게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요추의 척수에 혈종이 생겨 왼쪽 다리에 통증이오면서 남편은 예민해졌고 저와 아이들에 대한 불평불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성향상 본인이 가지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면 틀렸다는 ‘상’ 때문에 지적하게 되고 화내게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생에 가장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시기 남편을 조금 더 이해해주고 다독거리며 남편이 원하는 것을 해줬어야 했는데 화내면 같이 화내고 짜증을 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 남편 마음을 이해하고, 더 잘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처음으로 9-8차 천일결사 입재식을 하는 날 향음법사님과 함께
▲ 처음으로 9-8차 천일결사 입재식을 하는 날 향음법사님과 함께

시련이 불법을 만나게 해줬어요

남편과의 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게 되면서 정토회를 알았습니다. 스님이 사회를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 제가 생각해오던 사회봉사와 누구나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지향했던 부분을 정토회에서 행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찾게 되었습니다. 광주에서 지낼 때 법당을 찾아 불교대학에 입학하였고 부처님 법을 배우며 불법에 조금씩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초반에는 부처님 일생이나 근본불교를 배우면서 불법을 계속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누기 시간에 마음을 모두 내어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도반들의 마음 나누기를 들으며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후 남산 순례를 다녀오고 JTS 거리모금도 나가보고 매번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의 마음을 다스려갔지만, 남편이 화내고 짜증을 내면 그 마음을 바라봐 줄 수준은 안되었습니다.

옥수수 보내기 캠페인 - 오른쪽 정경인님
▲ 옥수수 보내기 캠페인 - 오른쪽 정경인님

삶에서 실천해가며

2016년 광주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할 무렵, 시아버님이 쓰러지면서 병간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부모님을 광주로 모셔서 마지막 자식 보살피는 마음으로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듬뿍 시부모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법당도 못 나갈 때 였지만, 불교대학에서 배웠던 것들이 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부모님 병간호를 할때 그 마음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행복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강동법당에서 경전반을 듣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퇴임하고 다시 서울에 올라오면서 경전반에 들어오면서 공부도 하고 활동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깨달음의 장>도 다녀오고 금강경, 반야심경을 자주 듣고 공부하면서 남편과 소통이 되어갔습니다. 광주에 있을 때 교수 불자 모임에서 매달 한 번씩 절에 나가 예불도 드리고 차담도 했지만, 그때는 마음까지 와 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와서는 깨달아가는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도 깨우침의 진리를 알게 되었고 금강경, 반야심경, 법화경을 공부하면서 첫째로 본인의 마음이 편안해짐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함께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행복한 마음으로 이웃에 잘 쓰이도록 나아가야 함을 알아갑니다. 요즘은 함께 아침 산책을 하면서 의사소통이 잘되고 있어 마음이 편안하고 또, 소중한 도반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매일 예불을 하며 부처님, 스승님, 도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9차 백일기도 입재식 - 맨 뒷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정경인님>
▲ <9차 백일기도 입재식 - 맨 뒷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정경인님>

모자이크 붓다로 나아갑니다

정토회를 다니며 크게 어려운 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경전반에서 행복하게 공부하였고, 천일결사에 들어가며 했던 108배와 예불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올해 2020 봄경전반 소임을 맡아 첫 수업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테크닉들을 익히는 과정이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도반들과 소통하며 무사히 수업을 마쳤습니다.

함께 힘을 모으면 우리가 하는 일이 부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말씀과 함께 ‘모자이크 붓다’를 만들어 간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겠다는 생각으로 배워가며 즐겁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 정토회 왔을 때보다 마음도 편안해지고 보시, 봉사, 수행을 실천하며 한 걸음씩 부처님의 진리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함을 느낍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면 아쉬움은 없습니다. 제가 세운 목표들을 어느 정도 만족하며 지냈고, 하고자 하는 일들도 두루두루 해오며 살아왔습니다. 시부모님도 좋은 인연으로 만나 마지막 맏며느리의 소임을 해드렸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성장해서 자신의 길을 잘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엄마, 아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건강하게 살아가시라’고 합니다. 이제는 남편은 남편이 해오던 사회활동을, 저는 정토회에서 저의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까지 잘 쓰이며 살아가려 합니다.

자귀의, 법귀의, 자등명, 법등명을 마음에 새기며, 항상 공부하고 배워 가며, 모자이크 붓다를 실천하면서 행복을 전하는 정토행자가 되어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글_문우선(송파정토회 강동법당)
편집_서지영(홍보국 홈페이지운영팀)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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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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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1 13:35:44

황소연

포근하고 잔잔한 마음 나누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0-04-22 15:22:27

김세호

법당에서 잠깐 한 번 뵌 것 말고 말씀을 나눠볼 기회가 없었는데, 글을 통해서 정경인 보살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지난 한 때를 잠깐 떠올리게 하면서 부끄러움, 후회하는 감정, 앞으로는 더 잘해야지 하는 분발하는 감정이 생깁니다.
강동법당에서 더 많이 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문우선 법우님께서도 글을 참 잘 쓰시네요.

2020-04-22 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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