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양산법당
이 좋은 공부를 친구인 너와 함께 하면 좋겠다

힘내라 대한민국!
정토행자 여러분 힘내세요!
코로나19로 힘들지만, 우리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양산의 봄은 통도사 홍매화로 시작합니다. 양산시민의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되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경내가 조용합니다. 그래도 양산법당에는 홍매화같은 환한 이옥희 님이 있습니다. 진실로 본인은 꽃 같은 얼굴이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홍매화같이 환한 얼굴은 도반들의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옥희 님의 이야기입니다.

담양 죽녹원에서 친구와 함께, 왼쪽 이옥희 님
▲ 담양 죽녹원에서 친구와 함께, 왼쪽 이옥희 님

그럼 한번 해 보지뭐

저에게는 고교 동창인 짝꿍이 한 명 있습니다. 이름은 심연주입니다. 친구는 정토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만날 때마다 스님의 책을 한 권씩 건네주며 '마음공부 해보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서는 메일을 한 통 보내왔습니다. "이 좋은 공부를 친구인 너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3년의 설득 끝에 ‘그럼 한번 배워보지 뭐’ 하고 시작의 마음을 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기도 전에 친구가 입학원서를 쓰고 입학금까지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법당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대신 내준 입학금을 안 받아줘서 후에 저 역시 다른 도반의 입학금을 종종 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양산법당이 있지만, 예전 양산 사람들은 부산 동래법당을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2010년 봄부터 양산에서 부산으로 불교대학, 경전반, 봉사까지 3년을 혼자 운전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친구처럼 착실한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직장에 일이 많아 야근을 하면 수업을 빼먹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알면 알수록 제게 큰 힘이었습니다. 나를 알아 가는 것, 나를 돌아보는 게 좋았습니다.

조카와 함께한 JTS 거리모금, 오른쪽 세번째 이옥희 님
▲ 조카와 함께한 JTS 거리모금, 오른쪽 세번째 이옥희 님

그러다가 드디어 양산에도 법당이 생겼습니다. 저는 수행 법회나 참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불사하시는 도반이 불교대학 담당을 제안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시간 내기가 어려웠지만 양산법당에는 졸업생이 적어 망설임 끝에 하기로 했습니다. '친구 따라 거름 지고 장에도 간다는데 이미 나는 발을 담가 행복하니 이 느낌, 이 좋은 불법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지'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부를 소개해준 친구가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봉사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불교의 진리는 깊은 감동을 줍니다. 저 스스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생각을 늘 하는데 소임은 그런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혼자가 아닌 다 같이 가는 길은 내 고집만을 내세우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웁니다.

수행을 통해 버텨낸 시간들

2015년 7월 여름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제게는 더없이 자상한 아버지셨습니다. 오빠 둘, 언니 둘, 늦둥이 저 그리고 부모님, 이렇게 일곱 식구를 '오로지 나 혼자만 노력하고 고생하면 가족 모두 평안하다'는 굳은 신념으로 살아오신 참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를 받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저도 모르게 절을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부처님 우리 아버지 살려 주세요’ 인간의 나약함을 이때 알게 되었습니다. 내 욕심으로 회복되시기를, 일어나시기를 빌고 또 빌며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입원한지 한 달 반 만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가족 모두 오래도록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나마 수행자이기에 그동안 공부한 보람이 있었으나 가족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가신 후부터 엄마는 그 빈자리를 우리 자식들에게 채우려고 했습니다. 아버지 계시는 동안은 어느 가정보다 행복했지만 가신 뒷자리는 너무도 큰 시련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불교 공부를 하고 있기에 잘 극복하고 불법에 귀의해 이겨내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 혼기가 훨씬 지난 딸을 보는 엄마는 저게는 항상 부처님입니다. 엄마로서 자식을 보는 마음을 헤아려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잔소리는 잔소리일 뿐입니다. 이 역시 ‘네’하고 해 드립니다. 경전반 담당 소임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 후로 저는 줄곧 법당에서 거의 살았습니다. 수행을 안 하면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함께 해준 도반들 덕분에 수행으로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자고 애써 다짐을 하며 한발 한발 가고 있습니다. 저녁팀장 소임을 3년 했습니다. 시키면 ‘네’하고 했습니다. 하루 일과가 번개처럼 지나갔습니다. 주중엔 일하고 저녁에 법당 소임하고 주말엔 엄마한테 자식의 도리를 다하러 갔습니다. 법문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번쩍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늦게 안 사실이지만 몸 건강 상태는 나이와 무관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올해 83세인데 또래의 친구들보다 훨씬 늙으셨습니다.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분별심을 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바랍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이옥희 님
▲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이옥희 님

꿈에 그리던 인도 성지순례길

오래도록 바라던 인도 성지순례를 작년 1월에 다녀왔습니다. 15년에 등록했다가 갑자기 회사가 바빠서 못 갔던 성지순례는 제겐 큰 행운이었습니다. 가기 전부터 몸이 좀 안 좋아서 걱정 했지만, 다행히도 탈 없이 잘 다녀왔습니다. 저를 위한 긴 여행이었습니다. 소임으로 차장을 맡았지만, 같이 가는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라줘서 잘 마치고 왔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저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부처님이 고행하신 길을 걸으며 그 옛날에도 이렇게 힘들게 수행하셨는데, 너무도 편하게 부족함이 없이 사는 우리가 불평불만만 가득해 하는 현실에 부끄러웠습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가지려고 하는 것에 씁쓸했습니다. 경전을 읽으면서 순례를 하며 다녔던 그 길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수행이 더 잘 됩니다. 인도 불가촉천민의 삶과 지금의 저의 생활을 돌아보며 많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시신을 화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지는 그 상황이 마음 아팠고, 앞으로의 제 삶은 욕심내지 않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먹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풍족한 현실에 감사하며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기로 맹세했습니다. 내가 행복해야 하고 내가 나를 책임지는 힘이 생기니까 상대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나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밖으로 눈이 돌려지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나만 챙기던 제가 이제 타인을 배려하고 그 상대가 보이는 것. '아! 이런 거구나.' 하고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스스로 제가 자랑스러워졌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에서, 왼쪽 두 번째 이옥희 님
▲ 인도성지순례 중에서, 왼쪽 두 번째 이옥희 님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그동안 몸이 좀 아팠습니다. '내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병원 치료를 병행해 왔습니다. 19년 7월 여름에 건강이 나빠져서 수술을 했습니다. 간단할 거로 생각했는데 첫 번째 수술 후 장기 하나가 몸속에서 터지는 바람에 응급 대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7시간의 기나긴 대수술을 견디며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세상에 못 참을 만큼의 고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입원 중에 여러 날 밤잠을 설치며 간호해 준 올케언니, 십전대보탕에다 갖가지 밑반찬 등 물심양면으로 챙겨주신 법당 도반들, 모두 이 자리를 빌려 고맙고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덕분에 치료 잘 받았고 수술한 부분은 다 나았습니다. 지금은 허리 디스크와 목 관절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오랜 직장 생활 중에 생긴 고질병이 도래된 것입니다. 미리 알고 치료했어야 했는데 빡빡한 일정에 스스로 만든 병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치료 잘 받으면 나을 거니까요. 몸이 아파 여러 날을 맡은 소임을 충실히 못 했음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사실 도반들은 제가 있을 때보다 더 잘 실천하고 있어서 아무런 걱정거리가 안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불교대학 홍보, 오른쪽 두 번째 이옥희 님
▲ 불교대학 홍보, 오른쪽 두 번째 이옥희 님

네!하고 해 봅니다.

‘네’하고 시작한 3년의 소임으로 인해 제 스스로는 너무 바빴습니다. 주 중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소임을 다하고 나면 11시가 돼야 집에 들어갔습니다. 또 주말에는 엄마가 사시는 상북 소호마을로 1박 2일로 갑니다. 엄마는 아버지 안 계시는 5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식들에게만 의지합니다. 하루 한 번 문안 인사드리고, 주말이면 목욕탕 같이 가 드리기. 집안일 챙기기 등을 합니다. 그래도 친구의 3년 질긴 구애 끝에 얻어진 귀한 불교대학의 인연으로 저는 행복합니다. 불법을 자신한테 적용하면 득이 되고 남에게 적용하면 독이 된다는 말을 잘 기억합니다. 엄마의 친구도 되어주고 많은 얘기 들어주고 엄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을 통해 '소수의 삶이라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워갑니다.

힘든 만큼 보람도 있습니다. 법당 불사 후 300배 100일 정진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정진을 하고 나니 세상이 바로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는 힘이 생겼습니다. '맞고 틀림이 따로 없다'는 것. '내 입장에서는 안 맞지만, 그 사람은 그게 최선인 거다.' 바라보는 시선이 나와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 그래서 제게 강력한 힘이 생겼음을 느낍니다. 저는 '내 관점'만 바로잡으면 되고 상대는 상대대로 관점을 잡을 것임을 이제는 압니다.

'소임이 없으면 넘어진다, 예전으로 돌아간다' 라고 생각하기에 혹여 불법을 만나기 전 저로 돌아갈까봐 다시 마음을 다져봅니다. 아직 몸은 회복 중이라 물리치료와 병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마음은 편안합니다. 몸이 아프다고 핑계 삼아 어쩌다 수행 법회 한번 어쩌다 봉사 한번 하고 있어 저를 ‘퐁당퐁당’ 수행자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수행 정진하면서 불교의 참된 진리를 향한 공부는 계속하겠습니다.


이옥희 님은 2010년부터 친구를 통해서 정토회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수행 정진을 놓지 않고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신 이야기가 와 닿았습니다. 희망리포터인 저는 2014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로 인해 인연 맺어져 오늘까지 잘 살아온 ‘나' 입니다. 2015년 불교대학을 시작으로 어언 6년을 지내오면서 늘 생각하는 건 ‘오기를 참 잘했다’입니다. 힘들었던 지난날 들은 다 지난 일들이고 새로 오는 새날을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됩니다. 괴로움이 없는 삶, 행복한 삶을 살겠습니다.

글_이순남 희망리포터(김해정토회 양산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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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홍매화 같은 보살님! 참 고맙습니다. 덕분에 오랫만에 심연주보살님 뵙게 되네요. 보살님이 계셔서 참 든든합니다.

2020-03-24 09:06:34

한순화

힘든시기를 불법 만나 지혜롭게
잘 지나온 시간들이 대단합니다.
옥희보살님
예쁘게 웃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2020-03-23 12:36:59

이봉례

옥희님 잘버터냈군요
용기 잃지말고 우리 다같이 수행의 끈을 놓지 맙시다

2020-03-23 12: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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