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김천법당
정진은 나의 힘

하기로 한 것은 기필코 해내는 뚝심으로 선두에서 김천법당 불사를 우직하게 해낸 이명숙 님. 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300배 정진을 함으로써 자신도 변하고, 가정도 행복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아이들 어릴 때 가족사진(제일 오른쪽이 이명숙 님)
▲ 아이들 어릴 때 가족사진(제일 오른쪽이 이명숙 님)

착한 여자라는 착각 속에 살다

2009년 오랫동안 절에 같이 다니던 친구가 불교대학 입학금을 대신 내주면서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법당은 조그마한 사무실에 화장실도 재래식인 허름한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입학하고 보니 학생은 저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교실을 개설하지 말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나, 기왕에 인연된 사람을 놓치기보다는 하나라도 소중하다며 경전반 선배 둘이 번갈아 가며 수업을 열었습니다.

중반쯤 되었을 무렵, 혼자 다니려니 심심하기도 하고 슬슬 다니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나만 아니면 선배들도 집에서 편히 쉴 거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한 선배의 인연 있을 때 다니라는 말이 채찍이 되어 겨우 졸업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여러 가지 핑계로 법당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원래 다니던 절에 나가거나, 친구들과 이절 저절 유명한 절에 기도하러 다녀도 마음은 늘 허전했습니다. 평생 가족밖에 몰랐던 터라, 자식 셋이 장성하여 독립하니 집이 빈 둥지 같았습니다.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로, 무조건 남편과 시어머니 뜻에 따라 살았던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남편은 매일 출퇴근 길에 어머님 집에 가서 연탄불을 갈아줄 정도로 효자입니다. 어머님이 두달 여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병원에 살다시피 하면서 제게 자기만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님은 절에 다니면 돈 많이 쓴다고 법당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불안장애에 우울증도 있어, 저를 집에도 못 오게 하여 서운했으나 반찬 만들어가서 함께 있다가 왔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 주변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는 생각으로 두통과 무기력증이 생겼고 온몸이 늘 아팠습니다. 이 모든 괴로움이 내가 만드는 것을 모르고 주변 탓만 하며 살면서도 전 정말 착한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었습니다.

개원법회 사진(유수스님 오른쪽 이명숙 님)
▲ 개원법회 사진(유수스님 오른쪽 이명숙 님)

불사 한가운데서 업식을 보다

2013년 4월. 김천에서 법륜스님 즉문즉설 강연이 있는데, 포스터도 붙이고 강연 당일 봉사도 해달라는 당시 법당 총무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강연 봉사를 계기로 매주 열린 법회를 나가면서 법당에 복귀했습니다. 당시 김천법당은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 있었습니다. 제가 졸업 한 후 불교대학도 개설되지 않았고, 법회도 한두 명 참석하는 정도여서 시내로 이전 불사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외부에서 오는 전화만 받아달라기에 '그러마'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불사금 조달이며, 법당에 필요한 물품 구매 등 집 한 채 짓는 일 한가운데 제가 있었습니다.

불사 때 법당 선풍기를 다는 남편
▲ 불사 때 법당 선풍기를 다는 남편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살았는데, 불사하는 동안 보는 사람마다 보시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돈 아끼려고 도배, 장판 등을 제외하고 웬만한 건 남편이 다 했습니다. 선풍기 달기, 앵글 짜기, 전선 정리, 법당 청소와 정리 등. 남편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처음 하는 불사에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도와주지는 않으면서 일마다 딴지를 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어 자꾸 물러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너무 힘들 때는 전화만 받아달라던 그 도반이 원망스러워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러고 있나? 내일 날 밝으면 당장 그만둔다고 해야지’ 다짐하면서 잠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그동안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남편과 아이들을 핑계로 요리조리 피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에 이 업식을 한번 넘어보자'고 결심하니 일의 무게가 훨씬 가벼웠습니다. 그만두겠다는 다짐과 뛰어넘어보겠다는 결심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일어나면서 불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여러 도반의 도움으로 2013년 10월, 김천 시내에 원룸 크기의 법당이 마련되었고 부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법당 활동가들과 함께(뒷줄 이명숙 님. 제일 앞 전순연 님)
▲ 법당 활동가들과 함께(뒷줄 이명숙 님. 제일 앞 전순연 님)

정진의 공덕으로 귀인을 만나다

법당은 번듯하게 갖춰졌지만 오는 사람이 없어 수행법회 때 법당문을 열어놓은 채 하루 종일 혼자 있곤 했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간담회때 법사님께 이런 처지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혼자서 사회도 하고 영상도 틀어보고 인사말도 하고, 다양한 역할을 해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법회 영상을 틀면 스님도 나오고 스크린에 수백 명의 청중도 있으니 혼자라 생각하여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하라.”며 열심히 정진하길 당부했습니다.

불사를 진행하는 동안 300배 정진을 계속해서 정진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300배 정진을 할 땐 하기 싫은 마음이 크니 아프길 바라며 잠들었고 새벽에 눈을 뜨니 정말로 머리가 아팠습니다. 하지만 정진을 하지 않으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일을 헤쳐나갈 힘이 없으니 머리가 아파도 절을 하게 되고,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5시만 되면 몸이 먼저 알고 일어나졌습니다. 간담회 후 다시 300배 정진을 하니 법당에 혼자 있어도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백일이 지나니 띄엄띄엄 오던 도반 두 명이 도와주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순연 님이 김천으로 발령받아 법당에 귀인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법당 임대료도 겨우 내고 있던 처지라 보자마자 삼보수호비 얘기를 꺼냈더니 선뜻 거금을 냈고, 쉬는 날도 없이 봉사하면서 저녁팀장까지 맡아주었습니다.

집에서 밥만 하던 저는 컴퓨터로 문서 작성하는 일이 서툴고 버거웠습니다. 그런데 전순연 님은 문서며 기획이며 못하는 게 없으니 상대적으로 제가 너무 작게 느껴지며 부럽기도 했습니다. 너무 많이 부탁하면 못하겠다 할까 봐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밥으로 전순연 님 마음을 잡으려 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전순연 님은 제가 힘들어 나가자빠질까 봐 말만 하면 뭐든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서로가 이런 마음이었음을 알고 나니 웃음이 났습니다. 2014년 불교대학에는 주간에 일곱, 저녁에 열여덟 명이나 입학했습니다. 주간에 학생이 없어 개설 못 할까 봐 남편까지 입학시켰는데 책상도 펼 수 없어 방석만 깔고 수업할 정도로 18평 법당이 꽉 찼습니다.

남편과 함께 새벽 정진을 마치고
▲ 남편과 함께 새벽 정진을 마치고

반발하던 가족이 수행점검의 도반이 되다

불교대학이 개설되어 불교대학 담당, 수행법회 담당, 경전반 담당까지 하느라 정신없이 다니는 바람에 가족들 반발이 컸습니다. 평일에도 매일 법당에 가고 주말이면 수련원에 가니 남편이 화가 많이 '나서 나가 살든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정말 나가지 않고 숙여야 겠다는 것이 떠올라 방에 들어가 남편 팔을 슬쩍 잡아당겨 베고 누우니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또 하루는 300배 절을 하는데 남편이 걷어차서 바닥에 고꾸라졌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108배 하고 남편이 집을 나가면 몰래 300배를 채웠습니다. '법당을 그만두든지 이혼을 하든지 선택하라'는 남편 말에, 아이들까지 남편 편이 되어 외톨이가 된 듯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착한 여자병’이 도져 욕먹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기로 한 것은 3년은 해야지 업식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말씀이 생각나 가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이제는 제가 집에 없으면 엄마는 당연히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제 몫까지 아버지를 챙깁니다. 남편도 불교대학 졸업 후 옆에서 법당 일을 살뜰히 챙겨주며 수행이 잘 되고 있는지 서로 점검 해주는 소중한 도반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큰딸이 취직하면서 손자 돌보는 일로 약간의 의견 대립이 있었는데, 그때 남편은 '자기 아이는 본인이 봐야지' 하면서 제 편을 들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깨달음의 장>과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온 아들은 저희 부부의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입니다. 올해 여든인 친정어머니도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해서, 남편과 어머니와 셋이 법당에서 나란히 수행법회를 하면 뿌듯합니다.

더 없이 소중한 도반인 남편과
▲ 더 없이 소중한 도반인 남편과

정진은 나의 힘, 꾸준히 죽을 때까지 한다

예전에는 괴로움이 괴로움인 줄도 모르고 자식을 위해, 남편을 위해 빌기만 하면 행복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처님 법을 배워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 참으로 고맙고 기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진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발목을 삐어 깁스를 해서 300배 정진을 어쩔 수 없이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은 늘 저를 괴롭힌 두통과 무기력증에서 해방시켜주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변하게 했습니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도록 해준 정진이기에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꾸준히 죽을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법의 길에 이렇게 섰으니 많은 분들이 부처님 법 만나 행복할 수 있도록 잘 쓰이고 싶습니다.

친정어머니 팔순 잔치 때 독수리오형제의 재롱잔치(뒷줄 이명숙 님)
▲ 친정어머니 팔순 잔치 때 독수리오형제의 재롱잔치(뒷줄 이명숙 님)

글_윤정인(달서정토회 송현법당 희망리포터)
사진_이명숙 제공
편집_도경화(달서정토회 편집담당)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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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란

훌륭하고 아름답습니다.
김천법당 도반님들의 온화한 모습은
다 보살님의 공덕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많이 배우고 닮아가겠습니다♡

2020-04-04 09:26:19

구미도반

감동의 물결입니다. 보살님이 계셔셔 너무 감사합니다

2020-04-04 08:16:10

이현숙

꾸준한 정진의 힘을 새삼 느끼네요. 수행담 니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4-04 06: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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