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세부법당
우리에게 정토회는 삶의 기준을 바꿔준 변곡점입니다

필리핀 세부법당에는 수행•보시•봉사의 모범을 보이는 부부도반 전시춘•유정희 님이 있습니다. “김치 한 가지로 네 식구가 밥을 먹으며 이 가난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질거라 굳게 믿고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생긴 후에 오히려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이 부부가 마침내 찾은 행복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2020년 2월 화창한 어느 날, 세부 자택에서 전시춘•유정희 님을 만났습니다. (왼쪽부터 전시춘 님, 유정희 님, 변정선 희망리포터)
▲ 2020년 2월 화창한 어느 날, 세부 자택에서 전시춘•유정희 님을 만났습니다. (왼쪽부터 전시춘 님, 유정희 님, 변정선 희망리포터)

보란듯이 잘 살아야겠다

20여 년 전, 저와 남편은 직장 내 사내커플로 만났습니다. 양가 부모님은 연상 며느리와 연하 사위의 결혼을 반대하셨고, 첫아이를 낳고 나서야 겨우 승낙을 받고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보란 듯이 더 잘살아 보겠다는 마음에 운영하던 마트를 키우려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불씨가 되어 나중에는 사채까지 빌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은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대출 상환을 알리는 독촉 전화도 무서웠지만 이보다 더 큰 두려움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막막한 현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미래는 보이지 않았고, 당장 이 순간을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결국에는 남은 물품을 모두 정리하고 어린 두 아이와 친오빠가 있는 필리핀 마닐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마닐라를 떠나 세부에서 정착할 무렵 (왼쪽부터 유정희 님, 둘째 딸, 전시춘 님, 첫째 아들)
▲ 마닐라를 떠나 세부에서 정착할 무렵 (왼쪽부터 유정희 님, 둘째 딸, 전시춘 님, 첫째 아들)

울 여유조차 없었던 시간

한국에서 빚을 정리하고 남은 돈은 800만 원, 그 돈으로 우선 방을 구하고 살림살이를 몇 가지 사고나니 당장 끼니를 걱정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우선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은 관광가이드로, 저는 오빠가 운영하는 식당의 주방 일을 하며 낯선 마닐라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더운 날씨와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가족인 내 오빠에 대한 서운함과 내 자식들이 느끼는 눈치와 차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을 겪게 한 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눈물만 났습니다.

우리의 아침 식사는 김치와 밥이 전부였고, 둘째는 김치가 싫다고 매일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큰 아이는 달랐습니다. “엄마 난 김치가 맛있어, 진짜 맛있어 엄마 난 괜찮아!“하는데 그 말속에 숨겨진 엄마에 대한 배려를 알아차리니 더더욱 목이 메었습니다. 그저 하루빨리 돈을 모아 아이들 먹고 싶은 것 먹이고 우리도 이 현실을 벗어날 수 있기만을 바라며 살았습니다.

모든 살림살이 처분하고 남은 돈 150만원

남편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예의 바르고 의리 있는 사람입니다. 가이드라는 직업이 남편과 잘 어울린다 생각했지만, 여행객 한 명 한 명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힘든 내색 없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고마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소개로 일이 들어오기도 하고 조금씩 돈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희망도 잠시, 2년여 동안 힘들게 모은 돈을 지인에게 떼이고, 한동안 또다시 막막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저 역시 지칠 대로 지쳐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새로운 일을 찾던 중에, 당시 한참 휴양지로 개발 중인 필리핀 남부 ‘세부’라는 섬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가진 돈은 살림살이를 처분한 돈 15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필리핀 세부의 한 리조트
▲ 필리핀 세부의 한 리조트

절실한 생계에 민폐는 신경쓸 수 없던 때

그 돈으로 세부에 오니 당연히 집을 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지 가이드 세 명이 살고 있던 숙소에 우리 네 식구가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생계가 절실했던 우리는 민폐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직 돈을 벌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가이드 일을 배워 함께 일을 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닥을 겪었으니 이젠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믿으며 7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가이드 일을 하며…
▲ 함께 가이드 일을 하며…

누군가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면 좋겠다

세부 살이 7년 차, 우리는 몇 군데 식당과 매장, 현지여행사를 운영하는 오너가 되어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경제적인 사정이 나아졌지만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렵던 시절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위로와 격려를 해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힘들어도 함께 이겨내자고,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서로를 다독여 주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로의 탓을 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작은 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관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꿈꾸었던 삶이 분명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았지만 되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는 제 믿음은 완전히 어긋났습니다. 누군가가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앞만 보고 살았던 삶을 뒤돌아볼 수 있게 해준 정토회

이즈음 세부에 법륜스님께서 강연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세부법회 담당부총무님과 인연이 닿아 강연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수행을 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일까? 행복의 의미가 뭘까? 행복과 수행이 서로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저도 행복이라는 걸 찾아보고 싶어서 법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법문을 듣고, 도반들과 음식을 나누고 서로 마음나누기를 하면서 내 마음과 같은 도반의 이야기에 울기도 하고 공감도 하며 나의 욕심과 집착을 천천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대한 감사함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은 없는지 살피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지금껏 알지 못했던 내면의 움직임을 나 스스로 알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2019년 세부정토회 불교대학 입학식 (앞줄 왼쪽 두 번째 전시춘 님, 뒷줄 왼쪽 두 번째 유정희 님)
▲ 2019년 세부정토회 불교대학 입학식 (앞줄 왼쪽 두 번째 전시춘 님, 뒷줄 왼쪽 두 번째 유정희 님)

이듬해에는 우리 부부가 함께 불교대학에 입학했는데, 당시 세부에는 법당이 없던 때라 수업할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없이 부총무님께 우리집에서 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입학 첫날 방석 위에 놓인 기도포에 ‘참회’라는 글귀를 읽는 순간 저와 남편은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지난 마닐라의 생활을 떠올리면 화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그 마음이 안으로 살피면 내 생각에 사로잡혀 일어난 것이고 옳고 그름이 없음을 깨달아 한 생각을 내려놓을 때 모든 괴로움과 업장은 사라진다는 글귀가 마치 우리 부부에게 수행과제를 내려준 것 같았습니다.

마닐라에서 살던 시절, 오빠에게 느꼈던 화나고 서운했던 마음에서 벗어나 오빠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이해해 보았습니다. “정 힘들면 나한테 와라”라고는 했지만 정말 눈앞에 와 있는 우리 가족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다시금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으로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있지나 않을까? 그 마음을 알지 못한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참회의 글을 읽으면 제일 먼저 오빠가 떠오릅니다. 어쩌면 마닐라의 생활이 힘들었던 만큼 ‘참회’라는 이름의 수행이 더욱더 값지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연등 만들기 삼매경인 부부 (오른쪽부터 전시춘 님, 유정희 님)
▲ 연등 만들기 삼매경인 부부 (오른쪽부터 전시춘 님, 유정희 님)

우리에게 정토회는 삶의 기준을 바꿔준 변곡점입니다

지난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세부에 법당이 생겼고, 개원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즈음 마닐라에도 개원식이 있어서 함께 참석했습니다. 세부법당 5기 불교대학을 수료했고 지금은 기쁜 마음으로 수계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부터 목소리가 멋지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남편은 더 멋진 목소리로 올해 6기 불교대학 수업 진행을 맡았습니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지요. 나는 매주 법회 진행을 맡아 서툴지만,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봉사로나마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을 채우고 있습니다.

필리핀이 여유로운 나라는 아닙니다. 빈부격차가 우리나라보다 심하고 잘 사는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키울 여유가 안 되어 보육원에 맡겨지는 아이도 많습니다. '배고픈 아이는 먹어야 하고, 아픈 아이는 치료받아야 하고,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한다.'라는 말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는 나라가 필리핀입니다.

지난해부터 다른 부부도반과 함께 고아원 자원봉사를 나가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버려지거나 맡겨진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옷가지와 이불 빨래를 하고 나면 몸은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남편과 하루의 마음나누기를 하면 어느새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고 그 속에 다시 봉사의 에너지가 재충전됨을 느낍니다.

가족 모두 설악산에서
▲ 가족 모두 설악산에서


행복한 수행자의 모습이 알고 싶다면, 행복한 수행자가 되고 싶다면, 마음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내 곁의 남편과 내 곁의 아내와 머리가 아닌 마음이 가는 대로 나누어 보십시오. 한 생각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나누면 세상에 힘들 것도 없고 뛰어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인터뷰/정리_변정선 희망리포터(세부법당)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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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두분 참 고맙습니다. 제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필리핀이 그리워 집니다.

2020-03-15 14:05:40

보통사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누기 글에 감동받고 갑니다.

2020-03-12 18:01:35

오미현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읽고 수행자의 자세를 배우고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보냅니다.

2020-03-10 08: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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