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화명법당
기도는 나의 힘

2015년 가을, 화명법당에서 집전을 배우면서 시작하게 된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최윤숙 님이 있습니다. 나를 보면 볼수록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최윤숙 님의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꽃보다 최윤숙 님
▲ 꽃보다 최윤숙 님

우연한 계기로 정토회와의 인연이 시작되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 육아 우울증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이 있어서 큰아이의 경우는 사교육을 아주 많이 시켰습니다. 책도 무조건 하루에 50권씩 읽어줘야 한다며 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살았지, 정작 아이가 힘들다는 생각은 못 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바깥으로 다니면서 분주했지만 뭔가 허전함이 있었고 ‘내가 왜 이러지’하고 생각해도 그때는 제 마음속에 불안감이 많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당시에 저는 남편이 늦으면 ‘차 사고가 났나? 왜 안 오지?’ 하며 불안해서 여러 번 전화하고 밤에 잠도 못 잤습니다. 아이도 제시간에 안 오면 사고 난 게 아닌가 불안해했고 그 생각이 부풀려지면서 제 마음을 졸였습니다. 나를 괴롭힌 것입니다. 그러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 젖먹이일 때 한 시민단체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이었는데 그 단체에 정토회 회원분들이 와서 환경 관련 물품과 스님의 법문을 소개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고 계속 들어보고 싶어서 수행법회를 조금씩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에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절이라면 산에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제가 다닌 정토회는 노래방이 있는 건물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이비 종교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번만 가고 안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반들이 저를 데리러 계속 왔습니다. 당시에 둘째 아이가 젖먹이라 늘 데리고 다녔는데 어느 땐 젖먹이면서 법문을 듣기도 했습니다. 법문을 들으면서 뭔가 끌리는 게 있었고 법문을 들을수록 딱 제 얘기였습니다. 그전에도 마음공부를 한 적은 있었지만, 마음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불교대학 신입생 모집 홍보 중인 최윤숙 님(가운데)
▲ 불교대학 신입생 모집 홍보 중인 최윤숙 님(가운데)

기도와 봉사로 마주하게 되는 나의 참모습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JTS 모금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모금 때문에 불교대학에 가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 왠지 내가 당당하지 못한 것 같고 ‘내가 아는 사람과 부딪히면 어떡하지’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북한홍수로 정토회에서 릴레이 모금을 했는데 그때부터 빠지지 않고 계속 모금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법륜스님이 세계 100강 하실 때 희망지기도 하고 화명법당에서 사회활동 팀장을 맡으면서 JTS 모금, 사천왕사지기도, 통일기도, 시민대회 등 거의 모든 봉사를 다 해본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남들 앞에 나서지 않아서 몰랐는데 불교대학 팀장을 맡으면서 울렁증이 심하게 올라왔습니다. 그런 상태를 보면서 ‘불안감이 나한테 있구나’하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아이들한테도 예민하고 집착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300배 절을 했고 절을 하는 동안 시댁에 대한 불만, 부모에 대한 원망 등의 반항심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뭘 잘못했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에게 더 불만을 쏟아놓고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놓치지 않고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하고 또다시 하면서 계속 절을 했습니다.

JTS 거리모금 중인 최윤숙 님(앞줄 왼쪽)
▲ JTS 거리모금 중인 최윤숙 님(앞줄 왼쪽)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봉사와 기도를 하면서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은 나의 포장된 모습을 보고 괜찮은 사람인 줄 알고 살았는데 절을 하다 보니 내 꼬라지가 드러나고 ‘이것밖에 안 되나’하는 생각이 드니까 또 예민해져서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절을 하면 할수록 또 봉사를 할수록 내 안에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심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험 때문에 더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깨달음의 장〉과 수련회 등에 가면서 제 안에 있는 것들을 많이 끄집어냈습니다.

그동안 포장되어 있던 내 모습이 나인 줄 알고 살았는데 ‘내가 이 정도인가...’할 정도로 제 업식을 보고 넘어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면서도 새벽기도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부딪힐 때마다 내 모습을 다시 보게 되고 그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내 속에 불안은 있지만, 봉사는 그냥 한다’라고 마음먹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당시에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합니다’가 명심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대로 그냥 해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도반들에게 시기 질투를 받은 적도 있고 때론 울기도 했지만, 기도와 봉사는 빠지지 않고 꾸준히 했습니다.

사천왕사지 통일기도에서 유수스님, 도반들과 함께
▲ 사천왕사지 통일기도에서 유수스님, 도반들과 함께

오직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어느 날 법문을 들으면서 문득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 말과 행동에서 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엄하고 독재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원하는 게 안되면 자식에게 더 기대하고 집착하였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제 성적을 보고 어느 수준이 안되면 종아리를 때리신 적도 있었고 공부를 잘하면 옷도 사주고 잘 해주셨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저는 아이 둘 낳고 육아를 하면서 다른 엄마들 얘기 듣고 어느 센터 따라가고, 또 다른 강의 따라다니는 식으로 매일 밖으로 사교육을 받으러 다니면서 생각 없이 아이들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201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제가 병간호를 했습니다. 제 부모도 그 위에 부모에게 상처가 있었고 아버지도 받은 상처가 있어서 그 불안감이 저에게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버지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힘들어서 자식은 번듯하게 키우고 싶은 기대가 있지 않았을까’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몇 년 전부터는 감사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스님 법문처럼 ‘감사하다’ 마음먹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살아있는 자체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욕불의식
▲ 부처님 오신 날 욕불의식

부처님 오신 날 집전을 맡은 최윤숙 님
▲ 부처님 오신 날 집전을 맡은 최윤숙 님

나를 믿고 항상 도와주는 남편

돌이켜보면 저는 항상 남편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제가 세운 기대치에 맞추도록 집착하다 보니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저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놓고 못 따라가면 호수 위에 백조처럼 겉은 우아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허둥지둥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불안감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집착하며 지내왔습니다.

남편은 제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바깥에 나가서 세상을 알고 부딪혀보면 좋겠다며 제가 바깥 활동을 하도록 많이 도와줬습니다. 정토회 봉사활동을 하거나 도반들과의 일이 늦게 마쳐 새벽에 들어가도 일찍 다니라는 말도 하지 않고 저를 믿어주고 지지해줬습니다. 문경에 갈 때도 아이들을 맡기고 가면 남편이 아이들과 캠핑을 가거나 자전거를 타러 다니면서 잘 지내줘서 제가 지금까지 정토회에서 봉사하고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반도 평화 시민대회에서 최윤숙 님(오른쪽)
▲ 한반도 평화 시민대회에서 최윤숙 님(오른쪽)

새로운 수행거리 속에서 나에 대한 이해도 커져가다

살아오면서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 자신을 보지 못하고 밖을 보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수행을 꾸준히 하면서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고 넘어지면 바로 일어나게 되는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새벽기도를 꾸준히 하면서 많이 울었고 울면서 또 기도했습니다. 제가 지금처럼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게 아마 기도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이생에서 풀어야 할 보따리(수행거리)가 내 안에 계속 있구나’ 생각하면서 그 보따리를 풀어야겠다 마음먹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보따리가 나올 때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웠는데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되니까 화도 적고 원망도 적어졌습니다. 예전의 업식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옅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전처럼 불안해지면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내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을 짓고 있구나’하는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당당함이 생긴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단지 한 장도 못 나눠주던 제가 도반들과 소매가 닳을 정도로 홍보지를 붙이러 다니는 등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내가 이렇게 하면 밖에서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마음에 당당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배고픈 아이 하나를 더 돕고 새터민을 돕고 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봉사에 대해 좋고 싫고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다 했기 때문에 오히려 당당함이 생긴 것 같습니다. 혼자라면 못했을 일들을 함께한 도반이 있어 지금까지 재미있게 봉사하고 함께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해 보는 관점도 좀 달라졌습니다. 때로는 저 자신의 안 좋은 점도 보이지만 이제는 조금 더 큰 눈으로 저를 이해하고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편도 제가 불안감이 적어지고 저에게서 전보다 많이 품어주는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들도 “전에는 엄마가 성질냈을 텐데…”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두북 어르신 잔치에서 도반들과 함께 최윤숙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 두북 어르신 잔치에서 도반들과 함께 최윤숙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감사한 마음으로 더 잘 쓰이겠습니다

얼마 전 9차 천일결사 회향수련에 참가했습니다. 문경에서 3,000배를 하면서 나를 좀 더 또렷이 봤고 내가 가야 할 길도 더 분명히 보여서 좋았습니다. 마음을 닦고 어디에 쓰여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화명법당에서 쓰일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나의 미래와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더 잘 쓰여야겠다는 마음도 가졌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환경실천도 하고 있지만, 직장에서도 환경실천을 더 잘해야겠다는 방향이 잡히고 할 수 있겠다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나눔의 장〉도 가고 여건이 된다면 동북아역사기행도 가고 싶습니다.

제 인생에서 불법을 만난 게 감사하고 저를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섰다고 느낄 때는 뿌듯하기도 합니다. 올해는 저에게 좀 더 집중하며 수행의 깊이를 깊게 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잘해야겠다 생각해 봅니다.

두북 어르신 잔치에서 봉사 중인 최윤숙 님
▲ 두북 어르신 잔치에서 봉사 중인 최윤숙 님


화명법당을 들어설 때면 항상 밝은 얼굴로 반갑게 도반을 맞이해주는 최윤숙 님. 꾸준한 기도와 봉사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 오래 우려낸 차와 같이 깊고 그윽합니다. 양파 껍질처럼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또 한 걸음 깊어져 갈 수행의 그 길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글_박선희 희망리포터(동래정토회 화명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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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덕

미소가 참 아름답습니다. 잘 쓰이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가족들에게도 좋고 내게도 좋고 사회에도 좋은 일과 수행의 통일 ~ 감사합니다.

2020-02-05 17:00:33

신성철

최윤숙보살님, 항상 웃으시며 봉사활동도 열심히~ 새벽기도도 열심히 하시는데 글을 보니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으셨다는 데 더 감동입니다.
법문을 제대로 듣고 직접 실천하는 모습이 모범이 됩니다.

2020-02-03 13:09:20

최상륜

웃는 모습이 활짝핀 연꽃 같으십니다 ?^^
본받고 따라가고 싶네요~~^♡^

2020-01-31 08: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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