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금정법당
밥 짓는 도반들, 복 짓는 도반들

2016년 8월에 개원한 이래 9차 천일결사를 회향하는 뜻깊은 시간에 이르기까지, 굳건히 밥심으로 공양간을 지켜온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봄 불교대학과 가을 불교대학이 함께 열리는 화요일! 공양간 담당 도반들은 아침 일찍 장을 보고 양손 가득 공양물을 들고 법당으로 출근합니다. 25여 명의 도반에게 따뜻한 점심 공양을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매주 화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장을 보고 밥을 짓는 도반들의 알콩달콩 수행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법당에는 장금이가 산다

공양간 봉사는 힘든 일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꺼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봉사이든 각자의 재주를 잘 살려 소임을 맡아야 법당이 원활히 돌아간다고 하며, 수시로 변하는 마음을 바라보는 수행 거리로는 공양간 봉사가 최고라고 웃으며 말하는 도반의 모습에서 엄마 같은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금정법당 공양간은 선입선출법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먼저 들어온 음식은 비록 냄새가 좀 나더라도 먼저 먹으면서 냉장고 파먹기를 철저히 지킵니다. 지렁이 관리도 잘해서 3년간 한 번도 죽인 일이 없이 잘 키워 타 법당으로 분양하고 있습니다. 옥상에 텃밭을 가꾸어 채소 등을 자급자족하고 매년 된장과 매실 엑기스는 직접 담가 먹고 있습니다.

옥상 텃밭에서 직접 키우는 채소들
▲ 옥상 텃밭에서 직접 키우는 채소들

텃밭을 함께 가꿉니다
▲ 텃밭을 함께 가꿉니다

신정화 님의 이야기 1 – 가랑비에 옷 젖듯 도반들에게 배워갑니다

오랫동안 하던 일을 접고 쉬던 중 친구를 따라 사찰로 공양간 봉사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평소 관심은 있었으나 여건상 자주 가보지는 못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부처님 법을 배워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해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부처님 전에 복을 빌며 복을 구하는 모습, 아집을 내세우고 서로 부딪치는 도반들의 모습들만 여기저기 눈에 보였고 조금씩 봉사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화명법당에 다니고 있던 동생이 정토회에 가서 불교 공부를 해볼 것을 권유해 그해 8월에 개원한 금정법당의 가을 불교대학생 1기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1년 동안은 계단 청소를 자진해서 맡아 했었고 그다음부터는 공양간 봉사를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평소에 음식을 해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기를 좋아했던 덕분에 공양간 봉사는 제게 잘 맞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봉사와 달리 정해진 방식이나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 자기 집 주방에서 해오던 방식대로 풀어내다 보니 채소를 다듬고 씻는 방식에서부터 간을 맞추고 조리하는 방법까지 각양각색이어서 처음에는 작은 부딪힘이 잦았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법문과 수행으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젖어 든 지금은 ‘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저런 방법도 편하고 좋구나’하고 관점을 달리하며 매 순간 내 마음보기에 집중하게 되어 이제는 되려 함께 하는 도반들에게 배워가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점심 공양 중인 도반들의 모습
▲ 점심 공양 중인 도반들의 모습

신정화 님의 이야기 2 – 매사에 감사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저는 평소 겉으로 남들 보기에는 부드럽고 순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속으로는 욕심이 많았습니다. 자식도 번듯해야 했고 남편도 내 맘에 들어야 하는 등의 집착으로 저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아들 둘은 각자 독립하여 타지방에서 수년을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화로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많은데, 의견대립으로 화가 나서 토라졌을 때 먼저 전화해서 엄마의 감정을 풀어주지 않는 아들들의 무심함에 속이 상했습니다.

또한, 술을 좋아해서 자주 늦게 귀가하는 남편도 미웠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내 방식대로 나를 고집하는 내 생각일 뿐, 옳고 그른 것은 없고 다만 입장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아들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들과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또한 술을 좋아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도 술을 그의 기호품으로 인정하고 나니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은 어렸을 때 과묵하고 느긋한 성향이어서 제 성에 차지 않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며 아이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불교대학 공부를 하고 나서부터 내 욕심 때문에 아들에게 상처 준 지난 일들이 가슴에 맺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결혼하여 예쁘게 잘살고 있는 아들에게 찾아가서 비록 아들은 까맣게 잊고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을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조금 더 젊었을 때 정토회를 만났으면 자식 마음을 잘 헤아리는 엄마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주위에 아이 키우며 옥신각신하는 젊은 엄마들에게 전법도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에 들어와서 법당 봉사로 만3년을 채우고 나니 삶에 매우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참 많이 편안해지고 매사에 감사해하는 저를 보게 되어 행복합니다.

신정화 님(왼쪽)과 강정숙 님(오른쪽)
▲ 신정화 님(왼쪽)과 강정숙 님(오른쪽)

강정숙 님의 이야기 1 – 공양간 봉사를 통해 내 마음을 봅니다

20여 년 전 동래법당에서 법륜스님이 직접 강의하는 금강경 강의를 들었습니다. 평소 금강경 공부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터라 재미나게 수업을 듣고 나서 바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당시는 보수법사님이 매주 내려와서 강의 해주어서 큰 행운이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무던하여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정토회에 오기 전에는 마음에 늘 화가 차 있었다는 것을 저 자신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술을 좋아해서 자주 늦게 귀가하는 것이 일상인 남편, 성장이 조금은 더딘 둘째 아들까지 제가 챙기고 거둬야 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대학을 다니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시동생까지 함께 살고 있는 형편이라 드러내놓고 제 목소리를 한 번 크게 내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불교대학 공부가 끝날 때 즈음 가슴 깊이 화가 차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업식은 한꺼번에 녹아내리지 않는다는 보수법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때부터 공양간 봉사를 해나가며 매 순간순간 내 마음읽기와 마음보기에 집중해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가득 차 있던 화도 없어졌으며 매사 뜻대로 잘 안되어 짜증을 내던 둘째 아들 역시 편안해진 듯합니다.

나비장터를 연 도반들
▲ 나비장터를 연 도반들

나비장터에서 도반들의 모습
▲ 나비장터에서 도반들의 모습

강정숙 님의 이야기 2 – 다만 할 뿐입니다

동래법당에서부터 공양간 봉사를 맡아 3년 전 개원한 금정법당으로 옮겨온 후로 지금까지 20여 년을 봉사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인데, 아침에 시장을 본 공양물을 무겁게 들고 법당에 들어섰을 때 전날 저녁부에서 싱크대 뒷정리를 제대로 안 해놓고 간 것을 본다든지 하면 분별심이 일어납니다. 큰 행사를 치르고 난 뒤 가득한 설거짓거리 등 갖가지 널린 일거리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도반들이 어느새 보면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올라오는 제 마음을 수행 거리로 삼아 지내다 보니 공양간 봉사가 되려 저를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법당에 요일 봉사 체제가 자리잡혀가고 있어 공양간 봉사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잘 극복하고 잘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저 제게 주어진 소임을 ‘다만 할 뿐입니다’하며 수행하고 있습니다.

도반과 함께 이주경 님(오른쪽)
▲ 도반과 함께 이주경 님(오른쪽)

이주경 님의 이야기 1 – 이제는 넘어져도 빨리 일어납니다

2013년 동래법당에서 봄 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던 시기에는 친정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채 거리를 돌아다니시는 바람에 연일 찾으러 다닌다고 법당 봉사를 할 여유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JTS 돼지저금통을 맡는 등 작은 소임만 맡았었습니다. 이후 부모님 문제가 해결되었을 즈음 집 근처에 금정법당이 생기면서 ‘영수증만 잘 챙겨 보라’는 책임팀장님의 말씀에 회계라는 업무를 겁도 없이 덥석 맡게 되었고 공양간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개원하는 법당은 전 품목을 전부 새로 장만해야 해서 영수증을 꼼꼼히 챙겨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사를 혼자 알아서 결정하고 일을 헤쳐나가는 성향이라 누군가의 간섭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저는 처음에는 내 방식이 옳다고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원칙에 따라 모든 일을 도반들과 함께 의논하여 결정하고 때로는 지시를 받아 보고해가며 일하는 방식이 제 성격과는 맞지 않아 힘들었고, 조율하는 과정에 도반들과 부딪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법문을 다시 들으며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화단을 만드는 방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이제는 법당이 완성되어 감에 따라 성취감도 느끼며 다 같이 어울려 일해나가는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그 부분에서 넘어지고는 있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빨리 일어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공양간 패션, 예쁘죠?
▲ 공양간 패션, 예쁘죠?

이주경 님의 이야기 2 – 지나고 나니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8남매의 막내며느리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남편과 시댁에 배려하는 마음으로 집안 대소사를 혼자서 다 챙겼는데 도리어 남편은 그런 저에게 눈치 없이 많은 일을 다 한다며 답답하게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소변을 받아내며 집에서 병간호하기도 했고, 남편이 회사를 관두는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힘들어 법당에서 울면서 그저 이 모든 환경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부턴가 시어머니의 욕설도 애정표현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관점을 바꾸어 바라볼 줄 알게 되니 조금씩 삶이 가볍게 와닿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지나놓고 보니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고3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할머니로 인해 정신없는 제게 밥만 해주면 자기 일은 다 알아서 하겠노라며 할머니만 잘 챙기라고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며 자기 앞가림을 알아서 해나갔습니다. 또한 신혼 초부터 평행선처럼 영원히 맞지 않을 것 같았던 남편도 어느 날 보니 함께 한 점에서 만나 같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인연 공덕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도반들과 함께 김치를 담그는 모습
▲ 도반들과 함께 김치를 담그는 모습


우리말에는 주로 의식주 활동에 ‘만들다’라는 말 대신 ‘짓는다’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집을 짓고 옷을 짓고 밥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중요하고 소중한 일에 ‘짓는다’라는 말을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중한 도반들을 위해 공양간으로 모인 봉사자들, 밥도 짓고 복도 함께 지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공양간 봉사를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수행을 이어나가는 도반들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글_목승혜 희망리포터(동래정토회 금정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

전체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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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은주

행자의 하루 ~~~감사드립니다

2019-12-15 12:21:57

금강왕

바쁜일과를 보내고 허기진배를 움켜쥐고 법댱에 오면
늘 정성가득한 반찬과 사랑담긴 밥으로 공양을 합니다
변함없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보살님들 덕분입니다
고맙고 감사할따름입니다 ~♡

2019-12-14 11:42:23

장은주

금정법당에는 진짜 보살님들이 계시네요^^

2019-12-14 11: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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