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실천

환경
모두가 안 해도 나는 할 수 있으면 한다!

반달로 접히는 눈과 시원한 입매의 미소 천사 권정화 님. 어린 세 아들의 엄마로, 주말에는 전문 마사지사로, 또 파리법회 경전반 담당과 사회활동 팀장으로 바쁜 나날이지만 머릿속에는 늘 ‘환경 보호를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프랑스의 환경 지킴이 권정화 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은혜 갚으러 들어온 정토회

처음에는 한국에 사는 큰언니 소개로 스님 유튜브 영상을 보았어요. 그때 첫애가 만 세 살이었는데 듣다 보니 삼 년 동안 애한테 못되게 굴었던 게 너무 후회됐어요. 그래서 ‘내가 삼 년 동안 애한테 그랬으니 삼 년 동안 참회하고 기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 했었는데, 계속 마음만 있었어요. 그때 제 동생이 <깨달음의장>에 먼저 다녀 와서 너무 좋다길래 저도 참여하게 됐고, 거기서 정말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권정화 님
▲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권정화 님

어릴 때 부모님은 항상 싸우셨어요. 엄마는 곱게 크다 시집와서 고생만 하셨어요. 아빠는 삼대독자인데, 한국전쟁 때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총살 당하는 위험 속에서 살아남아 자존심이 강한 분이시죠. 호랑이 아빠라 부를 정도로 아빠가 무서웠고, 폭력적이었어요. 자식들한테는 아니었는데 아내한테 그랬어요. 제가 중학생 때 아빠가 바람을 피웠어요. 그 일로 엄마는 화병이 나 간이 완전히 상해 삼 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나는 이제 죽을 몸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그래 엄마, 가서 엄마 살고 싶은 대로 살아.”했고 그 길로 집을 나가셨어요. 도시에 살고 싶어했던 엄마는 서울 근교 요양원에서 시집와서 못다니던 교회를 다니시며 삼 년 넘게 사셨어요.

당시 일기장에 아빠에 대해 ‘당신은 인간도 아니다, 짐승이다.’라고 적었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나요. 엄마를 고생시켰다는 이유로 아빠를 미워했는데 수행하며 돌이키고 보니 ‘아빠가 당시 삼사십대, 지금 내 나이니까 혈기 왕성했고, 좀 고분고분한 아내를 만났다면 그냥 넘어갈 일을 엄마도 한 고집해서 대드니까 싸우고 그랬구나. 아빠가 태어나 자란 환경을 생각하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으셨겠구나. 그래도 엄마가 집을 나간 처지에 우리를 대학까지 보내주셨으니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많이 났어요. 미워할 일이 없는 사람을 미워했다는 걸 알았죠.
늘 엄마는 천사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아기를 낳고 ‘난 왜 엄마처럼 못하지? 엄마는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했는데’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빠를 탁 내려놓으니까 그다음에 엄마가 탁 내려지더라고요. ‘엄마도 그 당시에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겠구나. 엄마는 천사가 아닌 한 여자였구나.’라 생각 하니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이 더 사라졌고, 내가 괜히 엄마를 너무 우상화한 바람에 자책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평화롭게 저세상으로 가셔야 하는 걸 내가 못 가게 잡고 있었던 것 같아 정말로 엄마한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했어요.

예전에는 물어보면 화부터 올라오는 이야기였는데 이제 이렇게 가볍게 얘기할 수 있네요. 아빠와도 전에는 통화하면 “건강하세요?” 하는 정도로만 얘기했는데 요즘은 수다도 떨고 농담도 해요. 아빠가 건강했으면 좋겠고 재밌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밖에 없어요.
정토회에 들어온 이유가 너무 받은 게 많기 때문에, 저도 뭔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깨달음의장> 이후 파리법회 총무님에게 연락해서 처음에는 스님 유튜브 동영상 불어 번역, 스님 강연 도우미를 했어요. 이후 천일결사 모둠장에 이어 사회활동 팀에 들어간 거예요.

파리정토법회2018년 가을학기 경전반 입학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맨 오른쪽에 권정화 님)
▲ 파리정토법회2018년 가을학기 경전반 입학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맨 오른쪽에 권정화 님)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긍정적인 삶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자책이 심했는데, 정토회에 다니면서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이전 같으면 애들한테 화내고 나서 ‘자책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책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게 많이 없어졌어요. 애들한테 소리 지르는 것도 많이 줄었지만, 소리 지르고 나서도 바로 미안하다고 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한 저를 칭찬해주고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도 줄었어요. 제가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라서 그런지 돈 많은 사람을 보면 ‘넌 좋은 집에서 태어나서 편안하게 살았잖아.’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좋다고 생각해요.

세 아이와의 달라진 관계

아이들이 만 네 살, 여섯 살, 여덟 살인데 제가 많이 혼내고, 짜증 내니까 저를 너무 무서워해서 감정표현도 잘 못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소리 지르면 아이들이 “엄마 또 소리 질렀어.”라고 말을 해요. 얼마 전에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노력하겠지만 아직 예전 습관이 있기 때문에 또 소리를 지를 수도 있어. 내가 화가 나면 내 뒤에 와서 꽉 안아줬으면 좋겠어. 나도 너희가 그럴 때 똑같이 해줄게.”라고 약속을 했어요. 그 후 어느 날 애가 짜증을 내서 제가 “너 왜 짜증이야!”라니까 “엄마 또 잊어버렸지? 안아주기로 했잖아.”라고 말하는 거예요. 애들이 그래도 이제 저를 덜 무서워한다는 걸 알았어요.

일, 가정, 정토회 사이의 균형

저는 한국에서 불문과를 졸업하고 1999년에 프랑스에 와서 공부하다 일을 시작했어요. 직장 생활 중에 현재 남편 여동생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어요. 가정과 윤리를 중요시하는 남편과 2년 연애 끝에 결혼하고 아이 셋을 거의 줄줄이 낳았어요. 하지만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아이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애들 맡기는 데 제 월급 절반 이상을 지출하니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건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문 마사지사 교육을 받아 주말에만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더 가질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정토회 소임을 맡으면서 주말에 마사지 일과 정토회 업무를 보고, 또 일요일에는 불교대학과 법회에 나가게 되니 신랑이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주말에 혼자 애들을 보는 것이 늘 미안한 거예요. 그렇게 몇 개월 동안 주말마다 거의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 했어요. 결국 남편과 상의해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주말을 온전히 가족끼리 보내기로 했어요. 이렇게 우리는 대화로 해결점을 찾으면서 극복해나가는 중인 것 같아요. 가정과 직장, 정토회 일의 조화를 찾고 균형을 잡는 것, 그게 제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예요.

2018 유럽지구 해외정토행자대회에서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에 권정화 님)
▲ 2018 유럽지구 해외정토행자대회에서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에 권정화 님)

환경에 관심을 두고 사회활동 팀장이 되기까지

환경에 대한 관심은 정토회 활동을 통해 ‘내가 자연의 연결고리의 하나일 뿐이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생겼어요. 활동중 관련 영상을 보며 환경을 파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관심이 커졌어요.
처음에는 집에서 혼자 이것저것 시도해봤어요. 그런데 정토회에 사회활동 팀이 따로 있다는 걸 작년에 평화대회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거예요. 사실 혼자 해보면서 힘들었거든요. 물 안 내리고 쓰는 재래식 화장실을 혼자 이리저리 생각해서 설치해 보려는데 잘 안돼서 포기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정토회에서 배우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보자는 생각에 사회활동 팀에 자원했어요.

환경 실천도 걸음마부터, 온 가족이 함께하는 즐거움

일단은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고 있어요. 장 볼 때 장바구니도 들고, 최근에는 플라스틱 제로, 쓰레기 제로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남편과 아이들 전부 같이하는데, 저 혼자 하려면 힘들었을 일을 동참해주니까 참 좋아요. 얼마 전엔 가족이 다 같이 나가 동네 쓰레기를 주웠어요.
아이들에게 제가 플라스틱이 얼마나 안 좋은 것인지 설명을 했는데 둘째 아이가 “엄마, 자연이 죽으면 우리도 죽는 거야?”라고 하길래 “우리가 자연의 일부니까 자연이 죽으면 우리도 죽는 거야.”라고 했더니 “그럼 자연을 살리려면 플라스틱 쓰면 안 되겠구나!”라고 하더라구요. 정말 아이들은 깨달음이 빠르더라고요.

플라스틱 제로, 쓰레기 제로를 실천하려고 그동안 냉장고에 쌓아놓은 것부터 다 먹는데 장을 3주 동안 안 봐도 될 정도로 많더라고요. 그만큼 제가 쌓아놓고 살았던 거죠. 정말 반성 많이 했어요. 식구가 다섯이니 늘 냉장고를 꽉꽉 채웠는데 유통기한 지나서 버리는 것도 많았거든요. 또 애들 간식으로 비스킷 같은 걸 항상 사두는데 어느 날 찬장을 열어서 그걸 보니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간식도 집에서 만들어요. 애들도 좋아하고 냉장고도 텅텅 비어요.
물론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어요. 한국 슈퍼에 가면 다 플라스틱 포장이 되어있으니 그것도 안 먹으면 되는데 가끔은 먹고 싶잖아요. 그래서 쓰레기 제로 운동을 하려면 요리를 엄청 많이 해야 해요. 신랑도 “쓰레기 제로 운동하다가 죽을 거 같아. 부엌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야 해.” 하고 처음에는 힘들어했는데 다 같이 하니까 괜찮아요. 장을 보면서도 이걸 꼭 먹어야 하는지 가족들과 상의도 하고, 재밌어요. 이제는 애들이 먼저 “엄마, 이거 플라스틱! 안 돼!”라고 해요.
음식쓰레기도 안 버리고, 풀 벤 것도 모아서 거름을 만들고 있어요. 한 4년쯤 되면 텃밭에 퇴비로 쓸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제가 체계적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아직은 좀 무작정 하는 식인데 앞으로 계획이 더 많아요. 정토회 차원에서 나비장터랑 쓰레기 줍기를 다 같이 한번 하고 싶고요. 개인적으로는 재래식 화장실을 다시 한번 시도해보고 싶고, 화장지 대신 뒷물 수건 사용하기, 장 보러 갈 때 치즈 같은 걸 사더라도 코팅된 종이 대신 반찬통을 갖고 다니면서 거기에 넣어달라고 하려고요.

막내아들과 함께 마을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권정화 님
▲ 막내아들과 함께 마을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권정화 님

모두가 안 해도 나는 할 수 있으면 한다

사회활동을 하니까 이런저런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처음에는 절망도 했어요. ‘이미 늦었어. 이제 할 필요도 없을 거 같아. 지구 멸망할 거 같아.’하고. 그러다 아들의 하나 있는 프랑스 친구가 “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믿어야 해.”라고 말하는 걸 듣고 내 아이들도 그렇지만 지구상에 있는 아이들, 계속 태어나고 있고 또 다음에 태어날 아이들을 생각하니 나부터라도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불교대학에서 배운 게 생각났어요. ‘나 하나 한다고 해서 될까?’ 하고 안 하는 사람하고 ‘모두가 안 하더라도 나는 할 수 있으면 한다.’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요. 그래서 ‘나부터 한번 해보고 사람들하고 나누면 그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었어요. 사실 기업들이 안 하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안 하니까 진짜 화가 많이 나는데 누구한테 뭔가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우리가 촛불혁명을 해낸 것처럼 환경운동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간절함으로 세운 원

파리 정토법당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원이 있는데, 그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될 거 같으니 지금부터 천천히 하고 있어요. 가장 큰 원은 이 부처님 법을 우리 아이들과 프랑스인 남편, 또 프랑스 친구들한테 전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외국인을 위한 불교대학 강의가 생기면 실력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제가 먼저 번역팀에 들겠다고 할 거 같아요. 그게 정말 제가 간절히 원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저는 정말 이제 시작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은 지금부터 시작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환경 파괴에 대해 절망하던 순간에도 미래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부터 해보겠다는 권정화 님 덕분에 용기와 희망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하는 권정화 님의 활약을 기대하며 그녀의 간절한 원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응원합니다.

글_최연희 희망리포터 (파리법회)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

전체댓글 1

0/200

김은경

정화법우님 너무 감동이에요 이런분이 이렇게 제 가까이 있다는것을 몰랐다니. 하지만 생각해보면 3월15일 첫 마남은 운명이었나봐요. 친근한 마음 편안마음 행복한 마음을 들게하는 정화 법우님과 같이 수행정진할수 있어서 든든하고 힘이나고 행복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2020-04-24 23:43:00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실천 ‘환경’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