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군산법당
병고로써 양약을 삼다.

환한 미소와 활기찬 모습으로 수행 법회 주간과 야간을 담당하고 계시는 이은정, 윤송이 님. 불교대학과 경전반 홍보는 물론, 거리모금, 연꽃 만들기까지 거의 모든 정토회 활동에 빠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두 도반은 군산법당의 보배입니다. 고통 속에서 정토회를 만나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수행 법회 담당 두 분의 수행담입니다.

먼저 이은정 님의 이야기입니다.

거리모금하고 있는 이은정 님
▲ 거리모금하고 있는 이은정 님

고통속에서 만난 정토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에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불교와 인연을 맺어오다가 30대 중반에 절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40대 중반쯤 한 도반의 소개로 정토회를 알게 되어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졸업할 즈음 수술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행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또다시 이유도 없이 몸이 아파 병명도 모른 채 병원에 1년 이상 다닌 결과 류머티즘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무너져갔고 모든 걸 남편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사 준비부터 청소, 화장실 가는 일, 심지어 물 한 잔 마시는 일도 남편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많은 집안일을 남편이 도맡아 해 주었지만 감사한 마음 한구석에 ‘남편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이 엄습해왔습니다.

남편을 수족처럼 부리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줄 때까지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보채듯, 울기도 하고 어리광도 피우면서 남편에게 집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 속에서 제 모습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언제까지 남편은 내 곁에 있어 줄까?’하고 자신에게 물으면서 정토회를 다시 찾았고, 봄 불교대학 청강생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맞이 연등만들기 (왼쪽부터 첫번째 이은정 님,  두번째 윤송이 님)
▲ 부처님 오신날 맞이 연등만들기 (왼쪽부터 첫번째 이은정 님, 두번째 윤송이 님)

수행을 통해 삶의 주인이 되다.

정토회에 들어와 수행자로 부처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원망하던 마음들이 감사함으로 바뀌자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었습니다. 수행이 저뿐만 아니라 온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알기에 때로는 108배로, 통증이 너무 심할 때는 서서 염불만 외면서라도 하루 한 시간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요즘은 사시예불을 드리고 난 후 수행법회를 진행합니다.

끈기가 부족해서 중도에 멈추는 업식이 있기에 무슨 소임이든지 주어질 때마다 “예,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저 자신에게 책임을 주어서 중도에 멈추는 업식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역량은 부족하지만 수행과 봉사를 통해서만 정토회나 법륜스님과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고, 항상 의지처를 찾으려는 제 업식에도 ‘안녕. 잘가’라고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을 알기에 가볍고 행복한 마음으로 봉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난 이후 삶의 가장 큰 변화는 '이제는 제가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아플 때는 진통제를 먹으면서 버티기는 하지만 ‘이만하기 다행입니다.’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류머티즘이라는 친구를 관리하고 치료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처님 감사합니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좋습니다.”라는 기도문을 가지고 수행하고 있습니다.

희망편지로 부터 시작된 윤송이 님의 이야기입니다.

법당에서 윤송이 님
▲ 법당에서 윤송이 님

힘든 시간을 지탱해준 희망편지

1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하면서 직원과의 스트레스, 남편과의 불화가 극에 달할 무렵 스님의 희망편지를 카톡으로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50살이 된 어느 날, 온몸이 붓고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몸이 아팠습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갔습니다. '고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협착증, 자궁근종 등 여러 가지 병이 발견되었습니다.

가게를 정리하고 수술과 동시에 2달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도 저를 지탱해준 것은 스님의 희망편지였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퇴원 후 곧바로 정토회 문을 두드렸고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에는 불교 의식이 약간 불편하기도 했지만, 스님의 말씀대로 문화행사로 받아들이면서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살고 싶어 찾아온 정토회

모든 부처님 가르침이 감동이지만, 특히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로 시작하는 수행문은 제게 정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덕분에 모든 것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이혼 후 자식을 데리고 총각이었던 남편과 재혼하여 두 아이를 더 낳았습니다. 저는 이 세 아이를 누구보다 잘 키워보고 싶었고,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잘 해내고 싶은 욕심과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에 제 몸을 돌볼 여유도 없이 혹독하게 일을 했었습니다. 그 결과 돈은 벌었으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며 남편과의 갈등은 커져만 갔습니다.

살고 싶어 찾아온 정토회에서 만난 부처님 가르침과 <깨달음의 장>에서의 시간 들을 통해 저의 업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성장배경이 만들어준 그의 업식도 알게 되었고,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순간순간 화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남편을 완전히 이해했다 할 수는 없지만, 저를 내려놓고 순간순간 알아차리며 ‘함께 살아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명심문을 가지고 수행하고 있습니다.

옥수수 1만톤 보내기 거리모금 (왼쪽부터 세번째 윤송이 님, 네번째 이은정 님)
▲ 옥수수 1만톤 보내기 거리모금 (왼쪽부터 세번째 윤송이 님, 네번째 이은정 님)

나를 넘어 세상으로

수행법회 야간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총무님과 도반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기쁜 마음으로 맡았습니다. 통일의병활동, 환경운동 그리고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얻은 점이 있습니다. 제 개인의 문제를 뛰어넘는 일들에 동참해서 활동하니 '큰 나무 사이를 걷다 보니 내 키가 커졌다'라는 시 구절처럼 제 문제가 아주 작게 느껴져서 괴로움이 훨씬 줄었습니다. 이것도 법의 가피인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혈관 동맥경화증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없습니다. 수술은 의사의 몫입니다. 즉문즉설을 통해 얻은 ‘지금 좋은 것이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지금 나쁜 것이 다 나쁜 것도 아니다.’라는 지혜의 말씀은 욕심으로 모든 것을 움켜쥐려던 저에게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할 뿐 나머지는 받아들이면서 산다'라는 긍정적 관점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금강경에서 '깡통을 벗은 사람은 얼마든지 깡통을 뒤집어쓴 사람을 피할 수 있다'고 배운 이치대로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도록 저를 돌아보고 관점을 바꾸기 위해 수행하고 있습니다.

통일의병대회에서 (왼쪽 세번째 이은정님, 오른쪽 두번째 윤송이 님)
▲ 통일의병대회에서 (왼쪽 세번째 이은정님, 오른쪽 두번째 윤송이 님)


인터뷰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내놓기가 쉽지 않은 개인사를 솔직하게 내어놓는 두 도반을 보면서 행복이란 움켜쥘 때가 아니라 내어놓고 비울 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고로써 양약을 삼는다는 말씀처럼 육체적인 고통속에서 만난 정토회 인연을 수행으로 이어오고 계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글_성금자 희망 리포터 ( 전주 정토회 군산법당 )
편집_임도영 ( 광주전라지부 )

전체댓글 17

0/200

전경병

감사합니다.

2019-09-25 14:33:02

무지랭이

응원합니다~^^

2019-07-08 21:57:47

무량덕

살려고 정토회에 왔다는 말씀에 울컥합니다. 큰나무 사이를 걷다 보니 저도 키가 커지는 느낌 공감합니다. 두분 감동적인 나누기 감사합니다.

2019-07-08 14:53:39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군산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