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화명법당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가요

지난 날의 상처는 그저 하나의 그런 인생이었을 뿐이라 여기고, 여기 다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가는 도반이 있습니다. 바로 화명법당 양경순 님의 이야기입니다.

경전반 특강수련 중 양경순 님(가운데)
▲ 경전반 특강수련 중 양경순 님(가운데)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

저는 어릴 때부터 살림 밑천 같은 맏딸이었습니다. 어른들이 밭일을 나가면 제가 집을 지키며 기다리다 부뚜막에 올라가 큰 가마솥에 밥을 했습니다. 우물에서 물도 길어 나르고, 방도 치우고 빨래도 하고, 살림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른들도 제게 칭찬을 많이 하셨고, 저는 집안일을 돕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저는 5남매 중 막내인 남편을 중매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넉넉지 않게 자랐지만, 시댁은 형편이 더 어려웠습니다. 부산에서 살던 저는 결혼을 하고 남편 직장을 따라 충북 제천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셋이 누우면 좁을 정도로 작은 방 한 칸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지내서 그런지 저는 어른을 좋아했고 시어머니도 그런 마음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경전반 특강수련 중 도반들과 함께 양경순 님(맨 왼쪽)
▲ 경전반 특강수련 중 도반들과 함께 양경순 님(맨 왼쪽)

늘어가는 한숨과 기댈 데 없는 마음

그런데 신혼여행 다녀온 첫날 시어머니가 남편과 저 가운데 누워서 주무셨습니다. 아들 부부와 계속 같은 방을 쓰니 이웃에서 시어머니께 "그래도 신혼인데 어떻게 같은 방을 사용하느냐"라고 얘기를 한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내가 왜 아들과 같이 못 자냐"라며 펑펑 우셨다고 합니다. 결혼할 땐 큰아들과 산다고 하시던 시어머니는 큰 며느리와 그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 큰댁에 가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런 시어머니의 모습이 한편으로 안 되어 보여 제가 남편에게 우리가 모시자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같이 있다 보니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살피고 대문 밖을 못 나가게 하셨습니다. 제가 가슴이 답답해져서 한숨을 쉬면 병 있는 며느리를 본 건 아닌가 하셨고, 어른으로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많으셨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나는 하늘 끝에 닿는 며느리를 보려고 했다. 결혼할 때 혼수도 많이 해오고, 어른도 잘 모시고, 남편 잘 받들고 시댁 식구에게도 잘하고, 아들 둘 낳아야 하고, 살림도 잘 사는 그런 며느리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큰 시누이가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간섭도 많이 했고 시어머니도 거기에 한 편이 돼서 저에게 요구가 많으셨습니다. 남편도 어머니와 누나 세 분에게 꼼짝 못 하고 살다 보니 제가 어디 기댈 데가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JTS 거리모금 활동 중인 양경순 님(왼쪽 첫 번째)
▲ JTS 거리모금 활동 중인 양경순 님(왼쪽 첫 번째)

시어머니, 남편, 시누이와 엉켜버린 인연

남편은 책임감도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엄마뻘인 누나와 어머니 사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시누이들에게 없던 일도 지어 얘기하고 남편도 "그게 아니다"라고 하지 않으니 제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분란이 커져 삼자대면을 하면 시어머니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기억도 없다"라고 하셔서 그렇게 서로 조금씩 갈등이 쌓여갔습니다.

그러다 친정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몸이 너무 야위고 약해져서 누군가 수발을 해줘야 하는데, 시어머니는 제가 친정어머니 간호한다고 병원에 가는 걸 싫어하셨습니다. 친정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기 전 얼마만이라도 집에 모셔와 보살펴 드리고 싶다고 남편에게 여러 번 부탁을 했는데 남편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시어머니를 나름대로 성심껏 모셔왔는데, 정작 내가 필요할 땐 도움을 주지 않는 남편이 너무 미워졌습니다. 그 무렵 시어머니 생신이라 시댁 가족이 저희 집에 모였는데, 친정어머니를 잠시 모시고 싶다는 얘기를 했더니 큰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며느리는 출가외인이라 친정엄마를 데리고 오면 안 되고 무조건 시어머니만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댁 식구들의 말에 그동안 쌓였던 섭섭함이 올라와 다툼이 일어났고, 그때 집에 있던 중학생 큰아들이 어른들의 이런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경전반 특강수련 중 도반들과 함께 양경순 님(앞줄 맨 왼쪽)
▲ 경전반 특강수련 중 도반들과 함께 양경순 님(앞줄 맨 왼쪽)

다급함과 간절함으로 기댄 불법

그 일이 있은 후에 큰 아이는 마음에 상처가 생겨 방황을 하더니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사고가 났습니다. 의식이 없는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저는 마음이 다급해 부처님을 생각하며 반야심경을 읽었습니다. 저는 본래 종교가 없었고 정토회 불교대학에 다닌 지 얼마 안 돼서 불교는 아무것도 모를 때였는데, 간절하니까 반야심경도 금방 외워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시어머니와 있을 때 우울증과 화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친정어머니도 다리를 잃고 아프시니 돌봐야 된다는 책임감도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늘 힘들었고 그게 아이한테 영향을 주었는지, 큰아이도 상처가 있고 작은 아이도 불안증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제가 뿌려놓은 과보를 받는다 싶습니다. 가끔 아이들 말과 행동에서 은연 중에 묻혀 있던 마음이 나올 때가 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직장도 다니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저는 부처님 법을 만나 지난 일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시어머니도 없는 살림에 자식들 키우려고 애쓰셨겠다’ 하며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불법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니 형님에게도 ‘아주버님도 병으로 돌아가시고 형님도 아이들과 열심히 사셨겠구나’ 하며 이해하는 마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저희 아들이 "우리 집은 참 행복한 집인 것 같다"라고 곧잘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부부가 화합하는 일이야말로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이고 아이들이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비 입재자 환영의 날에 양경순 님(앞줄 가운데)
▲ 예비 입재자 환영의 날에 양경순 님(앞줄 가운데)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느끼는 봉사활동

정토회 수행법회에 처음 나오니 공양간을 담당하던 도반이 저에게 공양간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남이 부탁하면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라 고민했지만, 그때 당시 저는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 예정이라 수업 시간에는 공양간을 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법당에 행사가 있을 때는 공양간 일이든 집전, 사회, 영상이든 주어진 일을 모두 했고, 경전반에 다닐 때는 학생담당을 했던 경험으로 17, 18년 가을 불교대학 담당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불교대학 팀장대행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부총무 부재로 법당에 일거리가 많아지고 있지만, 도반들과 서로 도우며 즐겁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남편과는 여유시간에 농사일을 같이하고 있는데, 제가 정토회 일로 농사일을 같이 못 하는 경우 간혹 마찰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일과 정토회 둘 다 중요하니 평상시에 남편에게 저금을 해놓습니다. 평소에 기분을 잘 맞춰주고 내일 할 일은 오늘 해놓고, 정토회 일로 꼭 가야 하는 일정은 미리 얘기해놓는 등 융통성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융통성이 없는 편인데 불법을 만나 그런지 지혜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하다 보면 집안일과 겹쳐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시어머니 모시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소극적이고 부끄럼이 많았는데 요즘은 도반들과 나누기할 때도 차례가 돌아오면 가볍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제 내가 서서히 사람이 돼가는구나’라고 느껴집니다. 예전에 《명심보감》에서 ‘남의 집 깊은 우물의 물을 긷지 못하는 것은, 내 두레박의 끈이 짧아서이다’라는 문구를 보게 됐는데, 그 말을 보는 순간 ‘아! 그렇구나. 다 내 탓인데, 내가 남 탓을 많이 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통해 남을 보면서 내 스스로 상을 많이 짓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 생각과 맞으면 상대가 좋아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분별심이 나고. 그리고 저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은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 자신이 그런 면이 있는지를 전혀 몰랐었는데 불법으로 하나씩 저를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불교대학 학생들과 홍보 활동 중인 양경순 님(왼쪽에서 세 번째)
▲ 불교대학 학생들과 홍보 활동 중인 양경순 님(왼쪽에서 세 번째)

불법을 통해 깊어진 삶에 대한 이해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며칠 뒤 노래방에 가자던 남편을 보며, 남편도 이제 마음이 가벼워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함께하는 일로 소통이 되니 이제는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정토회에 다니며 이해하는 마음의 폭이 넓어져 가고 있는 효과인 것 같습니다. 매일 수행하면서 ‘상을 짓지 마라’, ‘자신을 봐라’, 《보왕삼매론》의 ‘억울함을 밝히지 마라’ 이런 경전 구절들이 너무 마음에 와닿습니다. 처음에 불교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그래도 억울했던 것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불법을 알면서 그 마음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과 달리 저에게 있던 본래 제 성격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 웃고 농담도 곧잘 하는 저의 밝은 모습에서 ‘아, 내 성격이 본래 소심하고 우울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존감이 서서히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느 명언처럼 ‘상처는 치유하는 것이 아니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누구나 드라마 같은 인생이 있듯이 ‘지난 날은 그냥 그런 인생이었지, 다만 한 인생이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간 살아왔던 건 어두웠지만 지금은 밝은 쪽으로 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갖지 못한 것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지난 것을 생각하며 그때는 좋았지 하지 말고, 지금이 좋은 것을 아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씀을 새깁니다. 오십 대의 마지막 한 해인 지금이 좋고, 간혹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 예순이든 일흔이든 그때도 불법으로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씀처럼 불법으로 모든 분들이 노년에도 행복해지길 소망해봅니다.

경전반 입학하는 도반들과 함께 양경순 님(앞줄 맨 오른쪽)
▲ 경전반 입학하는 도반들과 함께 양경순 님(앞줄 맨 오른쪽)


불법을 통해 스스로 지난 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보듬어 가고 있는 양경순 님의 수행담을 들으며 지난 상처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부처님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귀한 수행담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한 수행의 다짐을 오늘도 이어나가 봅니다.

글_박선희 희망리포터 (동래 정토회 화명법당)
편집_방현주 (부산울산지부)

전체댓글 9

0/200

정명 데오

\"요즘에는 저희 아들이 \"우리 집은 참 행복한 집인 것 같다\"라고 곧잘 말합니다. \" 감사합니다.~~^^

2019-03-04 20:08:41

정혜진

소임이 힘들때면 시어머니 모시는 것 보다 쉽다는 말에서 빵 터졌습니다. ㅎㅎ

2019-03-01 08:43:38

선화행

감사합니다 긍정적인마음 내시는 모습
지금가진것에 행복하라는 말씀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보살님

2019-03-01 0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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