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춘천법당
춘천법당의 네 기둥을 소개합니다

40도가 육박하는 여름 무더위가 이어지던 어느 날 저녁 백중을 위해 네 명이 모였습니다. 모두 춘천에서 태어나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고 모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나 정토회와 인연으로 이렇게 4인방이 되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이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다르지만 완벽하게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며 춘천법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업식이야 업식! 우리가 떠나야 해!”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비슷한 삶을 살아왔지만 4인 4색의 정토행자님들. 춘천법당의 네 기둥을 소개합니다.

맨 왼쪽부터 박현숙 님, 이광희 님, 정은숙 님, 김송림 님
▲ 맨 왼쪽부터 박현숙 님, 이광희 님, 정은숙 님, 김송림 님

통일로 가자! 저녁책임팀장을 맡은 직진본능 박현숙 님
또르르 딱! 법회팀 담당인 조용한 카리스마 정은숙 님
수행은 웃음과 여유로부터~ 자활팀 담당의 자유영혼 이광희 님
완벽한 일처리 뒤에 “어머! 내 핸드폰 어디 갔지?” 허당끼 충만한 부총무 김송림 님
네 기둥이 거대한 건물을 받춰 든든한것 처럼 이렇게 네 분이 모이면 춘천법당의 어떤 일도 척척 진행이 됩니다.

Q 정토회는 어느 분이 먼저 오셨어요?

김송림 님: 제가 제일 먼저 왔죠. 서울 가는 길에 현숙이를 만나서 서로 뭐하냐고 물어보다가 제가 정토회를 소개해서 왔고, 그 다음에 현숙이가 광희를 꼬셨고 (모두 웃음), 은숙이는 전순필 님이 데리고 왔죠.
정은숙 님: 법륜스님을 안 건 내가 제일 먼저일걸. 나 법륜스님이랑 사진 찍은 것도 있어. 일반인으로 인도성지순례 참가했었거든. (모두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박현숙 님: 몇 년도?
정은숙 님: 2003년인가?
김송림 님: 니가 제일 빠르다 야.

정토회와 누가 제일 빨리 인연 맺었는지 이야기하시는 모습에서 풋풋한 여고생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모둠활동 시간에 평화강의를 하는 박현숙 님
▲ 모둠활동 시간에 평화강의를 하는 박현숙 님

우리 법당에서는 박현숙 님을 통일대장이라고 부릅니다. 박학한 역사지식, 통일에 대한 의지와 신념, 그리고 통일의병나들이 때 그 무거운 간식과 홍삼들을 온종일 매고 다니며 챙겨주는 따뜻함까지. 박현숙 님 옆에 있으면 통일의병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행복강연날 앞에서 맨 왼쪽 박현숙 님, 앞에서 맨 오른쪽 이광희 님
▲ 행복강연날 앞에서 맨 왼쪽 박현숙 님, 앞에서 맨 오른쪽 이광희 님

Q 수행하면서 어떤 변화가 왔는지 궁금해요.

박현숙 님: 삶 자체가 정돈된 듯해요. 시기 질투 하는 게 있었거든요. 내 시기 질투의 초점은 학벌, 명예 이런 건데, 누가 아파트를 샀다거나 하는 그런 거엔 별로 안 움직이는데, 누가 서울대 갔다 이러면 예전엔 막 부럽고 좋겠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마음이 안 움직이는 게 딱 보이더라고요.

2013년 8-1차부터 시작해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한 박현숙 님. 마침 수행을 시작한 시기가 아들이 군대 간 시기와 맞물려 수행을 놓치지 않은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박현숙 님:아들이 군대 갔는데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기를 쓰고 일어나서 했어요. 맨 마지막에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는데 그걸 우리 아들한테 매일 회향했어요. (웃음) 이제는 그때부터 습관이 돼서 계속하죠.

옆에서 조금은 수줍은 듯 소녀처럼 웃고 있는 정은숙 님을 보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 후 왼쪽 김송림 님, 오른쪽 정은숙 님
▲ 부처님 오신 날 행사 후 왼쪽 김송림 님, 오른쪽 정은숙 님

정은숙 님: 집전을 하고 있는데 목탁 치는 거 배우러 갔다가 얼떨결에 소임을 받았어요. 집전이라는 자체가 예식을 이끌어가는 건데 경건한 마음이 더 생겼다고나 할까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차분하고 맑은 목탁 소리. 정은숙 님의 목탁은 잔잔한 그 마음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화가 날 땐 낸다고 하시지만 아마 그 화를 아무도 느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Q 소임 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건 없는지요?

정은숙 님: 걸릴 게 뭐가 있을까. 아! 그런 건 있다. 행사가 올 때마다 ‘아, 또 돌아오네.’ (웃음) 내 할 일인데 해야지 뭐. 그러고 그냥 해요. 내 일이니까 그냥 하는 거죠 뭐.

Q 어떻게 정토회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광희 님: 처음엔 지적인 호기심 이런 거로 시작했지요.
근데 여기가 공부만 하게 내버려 두지 않잖아요. (웃음) 정토회가 하는 봉사의 내용이 교사의 연장선 같기도 하고…. 일에 연장이라고 생각하니까 봉사활동이 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몇십 년 동안 하던 일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그런 게 좀 힘들더라고요.

공양간에서 가운데 이광희 님
▲ 공양간에서 가운데 이광희 님

늘 유머러스한 말로 주변을 한 번씩 웃음 짓게 만드는 이광희 님. 행사 때마다 공양간에 가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분입니다.

Q 그래도 극복하셨으니까 안 그만두고 다니시는 거 아닐까요?

이광희 님: 극복했다고 해야 하나?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총무소임의 최대 임기는 6년. 김송림 님의 부총무소임도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법당이 꾸려지기 전 센터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의 춘천법당까지 쭉 함께 해 온 김송림 님. 우리 법당의 큰 기둥입니다. 새벽마다 치열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나누기는 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Q 소임하면서 놓치고 있었던 거나 앞으로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김송림 님: 일과 수행을 통일되게 하고 싶은데 일 따로 수행 따로. (웃음) 사람과의 관계나 그 모든 게 일인데 문서작성하고 취합하고 이런 것만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다려 주고 옆에서 지원해주고 해야 하는데 종횡무진 휙휙 젓고 다녔던 듯해요. 그런 게 좀 부족함이죠. 나는 내가 아는 것은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았던 거 같아요. 친절하게 안내를 못 했어요.
상대의 마음을 읽기보다는 앞서서 나가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회원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았을까. 그게 제일 두려워요. 교사 업식을 없애려고 3년간 내 기도문이 ‘가르치지 않겠습니다.’ 였어요.

이광희 님: 우리가 30년 이상 그 일을 해왔잖아요. 눈빛이라던가, 언어라던가. 그런 게 배어있는 거예요. 우리는 몰라요. 그런데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해요. 아줌마들이랑 이야기해 보면 “혹시 교사 아니에요?” 이래요. 말투가 명령조 이런 게 있대요. 남편한테도 명령조로 이야기하잖아. (모두 웃음) 우리 애들이 잘못했을 때도 선생으로 돌변하는 거예요. 그래서 애들이 어릴 때 엄마가 선생인 게 싫다고 했었죠. 이미 우리는 그게 몸에 배어있어요. 내 생각엔 춘천법당이 총무보살이라던가 자활팀장이라던가 저녁팀장 이런 주요 소임은 탈교사해야 해요! (모두 웃음)

박현숙 님: 그래서 우리가 사라져야 해.

Q 예? 사라지면 안 되죠!

이광희 님: 우리가 뒷자리로 가야 하지 않을까?
김송림 님: 9년 차 안에는 물갈이를 한번 해야겠지.
박현숙 님: 정토회를 떠난다는 게 아니라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건 확실해요. 우리는 그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 숙제죠.

떠들썩하게 웃음으로 이야기하였지만 선생님으로 살아온 인생의 고충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업식이 있지요. 어쩔 수 없는 것들, 이미 고치기 힘든 것들이 있습니다. 교사이건 직장인이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수행자입니다. 잘 안되지만, 꾸준히 연습하는 수행자입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내일 아침에 또 만나 불대홍보를 한다고 합니다. 나란히 포스터와 현수막을 들고 나가는 뒷모습을 봅니다. 소임과 수행은 모두 다른 방식이었지만 그 4가지의 방법 모두 한곳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글_최솔미 희망리포터(원주정토회 춘천법당)
편집_양지원(광주전라지부)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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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광

네분의 보살님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지네요.
감사합니다.

2018-08-27 00:51:33

견불심

보살님들과 함께한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환한 웃음 기억하며 늘 부처님 법비속에 수행자로 행복하시길~^^

2018-08-26 23:15:52

이카루스

춘천법당 화이팅~!^^ 네 기둥이 참으로 보배입니다. 감사합니다 !^^

2018-08-17 19: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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