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뉴저지법당
10년 전 가볍게 나섰던 <깨달음의장>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죠!

미국 뉴저지법당에 오면 예쁜 눈웃음과 소녀 감성 가득한,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듬직한 무게감으로 법당을 지키는 이영숙 총무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간 뉴저지법당을 일구어 온 이야기를 들려달라 청했을 때도 특별한 사연이 없다며 한사코 손사래 치던 이영숙 총무님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고들 하지요, 이영숙 총무의 잔잔한 인생이야기 들려드립니다.

인도 성지순례 중에
▲ 인도 성지순례 중에

낯선 이국땅, 정토회와의 인연

1996년 남편을 따라 낯선 미국 땅에 처음 발을 들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니 미국에서의 처음 10년은 어떻게 지냈는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타향살이에서 오는 불안감에 늘 가슴이 답답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과의 갈등은 깊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한가지 다행스러웠던 것은 불자였던 남편이 제게 절에 다닐 것을 권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사찰 구경하러 다닌 것이 전부였던 제게 불교는 별다른 재미도 없었고, 법문 듣는 것에는 더더욱 흥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님이 오셔서 하는 강연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무조건 저를 데려가 함께 법문을 듣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법륜스님 강연도 뉴욕과 뉴저지에서 두 번이나 들었지만 자리만 지켰을 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에도 마음에도 담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다투고 혼자 차를 몰고 나왔는데 차 안에 꽂혀있던 테이프에서 법륜스님의 법문이 흘러나왔습니다. 마치 제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은 법문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그분이 법륜스님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그 후 지인이 구해다 준 카세트 테이프로 스님의 법문을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그 모든 법문이 제게 하시는 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즈음 남편이 신문에 난 ‘법륜스님의 명상수련’ 광고를 보고 제게 권했고, 그 명상수련에 참석한 것이 정토회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그 당시 뉴저지에는 아직 법당이 없었기 때문에 한 도반의 집에서 불교대학만 하고 있었습니다. 수행법회는 뉴욕법당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뉴욕법당 가는 일이 그 시절 제겐 유일한 낙으로 여겨질 만큼 행복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는지 딱 필요한 시기에 <깨달음의장>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MT 가듯 가볍게 떠난 <깨달음의장>에서 앞으로 어찌 살 것인가라는 큰 각오를 가득 채워 돌아왔습니다.
먼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기도할수록 스스로에게 향해 저 자신을 돌아보게 했고, 처음으로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매일 매일이 감사했습니다.

수계식에서 남편과 함께
▲ 수계식에서 남편과 함께

새로 얻은 귀중한 삶

그즈음 목이 심하게 아파 병원에 갔더니 종격동암으로 1년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온 집안이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리 덤덤히 얘기하고 있지만, 그 당시 수술을 위해 한국으로 가던 공항에서의 장면은 잊히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제가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그래도 그 시기에 부처님 만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고 의지할 곳은 부처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여러 병원을 거쳐 다행히 좋은 의사와 의료진 덕분에 수술이 잘 되어 1년 후 저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힘든 일을 함께 겪고 나자 가족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작은 일에도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2010년 뉴저지법당이 생기고 남편과 함께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아이들 키우며 집안일만 하던 제게 봉사활동은 활력소가 되었고 새로운 일을 배우는 재미도 생겼습니다. 제가 불자가 되기를 바랐던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나게 법당 일을 했습니다. 7차년 말에 인도성지순례를 가서 받은 감동을 거름 삼아 8차년에는 부총무 소임도 맡았습니다. 하지만 소임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법당 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남편은 저의 건강 걱정과 더불어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시 살아서 뜻 있는 일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오히려 남편에게 불평하였습니다.

2011년 불교대학 도반들과 (둘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이영숙 님)
▲ 2011년 불교대학 도반들과 (둘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이영숙 님)

2015년 해외명상수련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마음속에 쌓여온 도반과의 갈등이 불거졌고 점점 더 커지는 남편의 불만은 급기야 제게 "정토회를 그만두든가 계속하고 싶으면 집을 나가라"고까지 하였습니다.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8차 명심문을 수시로 되뇌었지만, 그럴 때마다 ‘과연 나는 지금 행복한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건 아닐까,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라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물밀 듯이 밀려 왔습니다.

마음이 복잡할수록 "그저 붙어만 있어라." 하셨던 스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소홀히 하던 기도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나에게 맞춰 주기를 바라는 마음, 욕 듣기 싫은 마음, 잘 따라 주지 않는다는 분별심, 총무 대우 해주지 않는다는 섭섭함…. 이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나와 나에게 돌아온 것임을 깨닫고 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남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그 후 기도문을 ‘남편은 부처님입니다’로 정하고 무조건 수순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남편과의 관계는 점차 좋아졌으며 가끔 제게 불평을 할 때도 바로 "네. 알겠습니다."로 응대하니 금방 눈 녹듯 풀어졌습니다. 마음을 짓누르던 번뇌, 분별심이 한 겹 두 겹씩 벗겨지면서 마음이 점차 가벼워지니 도반들을 대하는 것도 편안해졌습니다.

2015년 해외정토 지도자 수련 중 (앞줄 맨 오른쪽에 이영숙 님)
▲ 2015년 해외정토 지도자 수련 중 (앞줄 맨 오른쪽에 이영숙 님)

도반들과 남산 순례 중에 (제일 왼쪽에 이영숙 님)
▲ 도반들과 남산 순례 중에 (제일 왼쪽에 이영숙 님)

본래 그 마음으로 제자리에 돌아와

2017년 9차년도를 시작하면서 총무 소임을 연임했습니다. 그리고 뉴저지법당의 숙원이던 불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계명 ‘대덕화’로 불사하면 되겠네!” 하셨던 스님 말씀 따라 공사 기간 내내 새 법당에 출퇴근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기간에 저의 명심문은 ‘오늘도 잘 쓰이는 하루 되겠습니다’ 였습니다. 뉴욕, 뉴저지 도반들을 비롯해 불사를 위해 애써주신 정토 회원들의 은혜와 공덕으로 2017년 9월, 제가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지 10년 만에 비로소 뉴저지법당 불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선주법사님을 모시고 법당 이전 개원법회를 하던 날, 가슴이 벅차고 뭉클해 눈물이 났습니다.

옛말에 ‘호사다마’라 했던가요. 9차년도에 들어와서 완전히 바뀐 조직 구조, 새로운 업무 적응, 법당 이전 이후 오히려 줄어든 회원, 거기다 소임을 내려놓겠다는 도반으로 인해 혼란스러웠습니다. 새 법당에서 회원 가득 폼나게 시작하리라는 저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특히 갑작스러운 도반의 사임은 제게는 충격이었고 총무 소임에 대한 자질 부족이라며 저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법사님과의 수련 이후 자책의 마음을 반성의 마음으로 돌리고, 소임 또한 인연 따라 그냥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원 법회 때 말씀해 주신 ‘청정과 화합의 수행도량’으로 거듭나고자 욕심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내어 봅니다. 여전히 업식에 끌려 넘어지기도 하고 때때로 뒤로 돌아가 후회하기도 하지만 진리의 길을 보여주신 부처님,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는 스승님이 계시니 더 헤매지 않습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지난 겨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백악관 10만 서명운동 홍보 중 (왼쪽이 이영숙 님)
▲ 지난 겨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백악관 10만 서명운동 홍보 중 (왼쪽이 이영숙 님)

글_이영숙 총무(뉴저지법당)
정리_박승희 희망리포터(뉴저지법당)
편집_이진선(해외지부)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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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안

새삼 찡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래오래 같은 길 위에서 함께!

2018-08-03 00:21:41

김지현

감동적인 수행담 감사해요. 영숙보살님 화이팅!????

2018-08-01 02:23:12

이두라

잔잔한 여운이 남습니다. 함께 가는 도반으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2018-07-30 20: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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