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산법당
빈손으로 떠나 선물 한 보따리 들고 돌아온 여행

지난 5월 19일, 경산법당이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이전 개원 법회를 가졌습니다. 한층 청초해진(?) 외모로 그간의 ‘고행’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불사 담당 박연숙 님을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십시일반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준 경산법당 이전 불사, 그 치열했던 100일간의 여정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경산법당 이전 개원법회
▲ 경산법당 이전 개원법회

불사의 시작을 알리는 발대식

올해 초,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 매서운 날씨에 이전 불사 발대식을 했습니다. 궂은 날씨에 많이 와 주실까 하는 걱정과 달리 대구경북지부 고미숙 사무국장님을 비롯하여 30명이 넘는 분들이 고마운 걸음을 해주었습니다. 불사에 임하는 자세를 일러주신 스님 법문과 전반적인 불사 진행에 대한 사무국장님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법당 도반님들의 나누기가 이어졌습니다. 발대식을 계기로 경산법당 이전 불사가 드디어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모든 도반이 절박함을 공유하고 협업해야 하는 우리 일이 되었습니다.

사무국장님의 프레젠테이션, 잘 들어보아요
▲ 사무국장님의 프레젠테이션, 잘 들어보아요

거듭된 제안서 퇴짜로 암초를 만나다

리포터: 발대식 즈음에 여러모로 상황이 매우 힘들었던 것으로 아는데 어떠셨나요?

박연숙: 기존 법당 개원 후 건물주가 바뀌었는데 목사님이었어요. 아무래도 자기 건물에 법당이 있는 게 못마땅했나 봐요. 몇 번 계약 연장을 설득하려 했지만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떠밀리듯 결정하고 시작하게 된 불사였어요. 차분하게 시간을 두고 준비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작년 연말에는 평화대회까지 겹쳐 정신이 없었어요. 두렵고 조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법당 전체 회원들에게 불사가 법당 당면과제임을 알리고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일을 논의하기 위해 발대식을 했어요.

발대식 다음 날부터 매일 오후 1시에 불사 원만 성취를 기원하는 목탁 소리가 하루도 끊이지 않고 100일간 이어졌습니다. 불사는 돈과 시간과 노동의 협업이지만 기도는 세 요소가 서로 따로 놀지 않도록 잡아주는 접착제 역할을 했습니다. 법당에서 매일 300배 정진 기도가 이어지는 동안 불사 밴드는 도반들의 장소 제보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경산 시내에 붙은 임대 현수막은 모조리 찍힌 듯했습니다. 그중 적당한 몇 장소에 대해 머리털 뽑아가며 제안서를 작성해 올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러던 중 초기에 말이 오갔던 정토회 도반의 병원 건물로 낙점이 되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신발 밑창이 다 닳도록 경산 시내를 돌아다닌 고생이 무색하여 허탈했지만 그보다는 안도감이 더 컸습니다.

경산법당 새 보금자리
▲ 경산법당 새 보금자리

리포터: 부동산 중개업으로 이직을 하셔도 된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박연숙: 발대식은 했지만 정말 막막했어요. 어떻게든 다 된다는 선배 도반들 말만 믿고 그냥 하루하루 걸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불사 모연을 하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경산 시내를 구석구석 헤맸습니다. 정말 미지의 세계를 홀로 헤매는 기분이었어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아 불안하지만, 희망을 품고 떠난 여행 같았죠. 깨끗하고 넓은 신축건물을 볼 때는 모든 걸 잊고 ‘이게 우리 법당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불사 과정 어느 하나 수행이 아닌 순간이 없구나!' 깨달았죠.
제안서를 몇 번 퇴짜 맞았을 때는 정말 암담했어요.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러다 정말 길거리로 나 앉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감이 절정에 달했어요. 설날 아침에 법당을 찾아 법당 가운데 방석 하나 놓고 몇 시간을 하염없이 앉아 있기도 했어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폭풍 속에서 스승님과 정토회 그리고 도반님들만 믿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뿐이었습니다.

도반들의 ‘피, 땀, 눈물’로 얼룩진 청소와 이사

일사천리로 진행된 인테리어 공사
▲ 일사천리로 진행된 인테리어 공사

장소가 결정되고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자 그 후는 일사천리였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 마음고생 한 불사 담당자에게 이제 몸 고생까지 더해졌습니다. 정토회 불사담당 이복희 님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부총무님의 전광석화와 같은 실행능력 그리고 내집 마련하는 마냥 발벗고 나서주신 도반들 덕분에 공사는 순풍에 돛 단 듯 진행되었습니다. 이복희 님이 부총무님에 대해 여기저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다녔다는 건 다 아는 비밀이지요.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갈 무렵 현장에는 복면 한 정체 모를 개미 군단이 수시로 공사 현장에 출몰하기 시작했습니다. 낮에 나타났던 복면인들이 사라지는가 싶으면 저녁이 되면 새로운 개미 군단이 등장했고, 그 기묘한 현상은 주말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사 먼지가 사라지자 복면이 벗겨지며 개미 군단의 정체가 드러날 무렵 드디어 경산법당의 새 보금자리도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내어 개미 군단의 찬탄 어린 눈길을 받았습니다.

청소 봉사하는 도반들
▲ 청소 봉사하는 도반들

드디어 법당이 이사하던 날, 개미 군단이 다시 모였습니다. 가구와 창문은 물론 장판과 블라인드까지 뭐 하나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야 하는 정토회에서 포장 이사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필요한 것과 필요한 재주를 가진 도반이 거짓말처럼 나타나 해결사가 되었습니다. 극심한 근육통과 충혈된 눈, 여기저기 영광의 상처들을 남겼지만 일이 놀이인 듯 놀이가 일인 듯 그렇게 이사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큰일을 치루면서 도반들 사이의 결속력은 한층 더 끈끈해졌습니다.

이사도 우리의 힘으로!
▲ 이사도 우리의 힘으로!

리포터: 인테리어 공사와 이사를 하는 동안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를 하신 것 같은데요?

박연숙: 뭐 하나 쉬운 게 없었어요. 매일 매일 순간순간 결정해야 할 일이 끝도 없이 나타났어요. 시스템 에어컨과 프로젝터 추가 설치처럼 큰돈 들어가는 결정부터 화장실에 쓸 욕실화 색상과 같은 사소한 것까지 끊임없이 결정할 게 생겼어요. 내 집 공사와 이사였다면 전화 몇 통과 돈으로 해결했을 거예요. 만일 그랬다면 법당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수고와 땀이 필요했는지 알지 못했겠죠. 제가 만나는 사람은 물론 물건도 지금 모습에 이르기까지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니 더 감사하고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불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집중이 되고 큰 분별없이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경험을 최대한 즐기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몸은 법당에 있는데 집에 있는 사람이 자꾸 이해가 되었어요. 결혼 후 20년 가까이 함께하는 동안 원수 같은 사이가 되었어요. 나는 최선을 다해 그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 도왔는데 그걸 몰라주는 상대가 너무 배은망덕 했어요. 그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살았을 뿐인데 내가 괜히 옆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훼방을 놓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나도 모르게 적을 만들고 놓고 혼자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승님 가르침 따라 매일 돌아보고 살피며 살려고 노력합니다.

개원법회에서 화합을 강조하신 묘당법사님
▲ 개원법회에서 화합을 강조하신 묘당법사님

아! 기다리고 기다린 개원 법회

무사히 이사를 마친 후 개원 법회가 열리는 날! 경산법당 도반뿐 만 아니라 다른 법당에서도 많은 도반이 오셔서 새 법당 입주를 축하하며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대구경북지부 상임 법사이신 묘당법사님을 모신 가운데 여법하게 개원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묘당법사님: 불사하느라 다들 수고 많았어요. 불사하면서 힘든 건 없었어요? 불사는 그 과정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아요. 사실 정토법당에서 불사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도 없어요. 불사하다가 법당을 뛰쳐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많은 돈과 인력이 동원되다 보니 그사이에 잡음이 많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할 때는 특히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해요. 내가 아무리 옳아도 그게 화합에 도움이 안 되면 버려야 해요. 그리고 왜 우리가 이렇게 돈 들여 예쁘게 법당을 지어요? 번듯한 법당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에요. 불사는 끝났을지 몰라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전 후 처음 맞는 부처님 오신 날
▲ 이전 후 처음 맞는 부처님 오신 날

리포터: 이전 후 연이어 큰 행사를 치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불사가 일단락되어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박연숙: 불사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빈손으로 시작하여 모호함과 불안함을 견디며 한발 한발 내디뎌 결국 엄청난 기적을 일구어내는 놀라운 여정입니다. 함께하니 가능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돈이든, 손이든, 시간이든 조금씩 보태다 보면 못 할 일도 안 될 일도 없었습니다. 법당 선배 도반님들이 오랜 연륜으로 해주신 말씀을 이제야 조금 깨닫습니다.
‘법당 일은 다 되게 되어 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법당 이전을 가능하게 한 그래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법당 이전에 응원으로 힘을 보태 준 고마운 마음에 감사합니다. 십시일반으로 모연에 참여한 경산법당 도반들, 얼굴도 모르는 다른 법당의 도반님들에게 감사의 말 밖에 드릴 게 없어 아쉽습니다. 그들의 무주상보시에 무주상보시로 갚을 따름입니다. 이렇게 경산법당 불사는 번듯한 수양 도량의 마련으로 막을 내리지만, 불사의 목적이 ‘예쁜 법당을 얻는 데 있지 않고 전법에 있다’는 묘당법사님 당부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경산법당 개원은 불사 여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생각됩니다.

글_추성미 희망리포터(대구정토회 경산법당)
편집_박정미(대구경북지부)

전체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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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명

정말 수고많으섰습니다
좋은일 많이 생기기를 기도합니다

2018-05-31 08:51:48

무구의

경산법당 도반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2018-05-30 22: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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