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의정부법당
통일의 철마는 오늘도 달린다

강원경기동부지부 철원통일기도가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년간 이끌어 온 정경숙 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철원 지역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철원 지역 노을과 국경을 마음껏 넘나드는 철새들.
▲ 철원 지역 노을과 국경을 마음껏 넘나드는 철새들.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어린 시절의 기억

아버지가 군인이셨어요. 6사단 주임상사로 복역하시다가 퇴임하셨어요. 저는 6사단 관할 용화사에서 통일 정진을 해오고 있고요. 비무장지대를 순찰하셨던 아버지와 평화통일기도를 하고 있는 딸, 가끔 묘한 느낌이 들곤 해요.
태어나기는 경상도에서 태어났어요. 6사단이 철원으로 이동하면서 아버지 따라 온 가족이 이사했죠. 1살이던 저는 엄마 등에 업혀서 왔구요.

철원엔 원주민보다 외지에서 들어와 자리잡은 사람들이 많아요. 분단과 전쟁 시기를 겪으면서 월북하거나 납북당했고, 많이 죽었죠. 휴전 이후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동네를 이루어서인지, 어렸을 적 기억의 철원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어요. 늘 군인이 보이고. 군인을 잔뜩 태운 트럭이 달려가는 모습, 전차와 탱크가 우레같은 진동을 울리며 가는 모습, 위압당하는 느낌이 들곤 했죠. 비상이 걸리면, 새벽이든 밤이든 아버지는 황급히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차고 나가셨어요. 우리는 모포를 창문을 막아 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했구요. 적이 빛을 보고 공격한다고, 늘 주의를 받았어요. 그렇게 일상적인 공포와 불안에 노출되면서 성장했던 것 같아요. 제 깊은 불안이 그런 상황에서 연유된 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요.

초등학교 땐 모의간첩을 찾아서 신고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어요.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면 지체없이 신고하라는 거였어요. 6월 25일이 되면 ‘때려잡자 공산당’을 외치면서 행진을 하구요. 북에 사는 사람들을 적으로 새김질하는 훈련을 일상에서 받은 거지요.

중학교 3학년 때는 아주 충격적인 경험을 했어요. 비가 부슬부슬내리던 날이었는데, 선생님이 학교임원들더러 모이래요. 이미 준비된 꽃다발을 하나씩 들리더니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군용 지프를 타래요. 영문도 모르고 갔어요. 으슥한 숲 한 공터에 군인들이 모여 있는데, 들어보지도 못한 간첩 잡은 병사들을 축하하는 자리였어요. 우리는 꽃다발을 전달하며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역할을 해야 했구요. 그런데 행사장 바로 옆에 거적떼기로 덮여 있는 게 있는데, 손이 삐죽 나와 있는 거여요. 들어보니 바로 간첩이었어요. 한 사람은 죽어 누워 있고, 바로 그 옆에서 죽인 사람은 훈장과 꽃다발을 받는..... 당시엔 어려서 뭔가 정리는 되지 않지만 미묘한 슬픔을 느꼈어요.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풍경이죠.

접경지역이라서 그런가, 긴급조치라도 떨어지면 학교 선생님들은 친한 친구하고도 붙어다니지 말아라, 1미터 떨어져 다녀라고 했어요. 선배들이 가끔 시위를 했는데, 우리도 그럴까 염려해서인 것 같았어요.
이해되지 않았던 그 모든 현상들이 어렴풋이라도 정리된 게 대학가서였어요. 한 나라의 역사와 일정 시점의 사회 현상, 개인의 삶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흘러간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통일기도를 하기까지

결혼 후 남편과 두루미보호를 위한 일을 했어요. 두루미가 월동하는 지역이 민간인 통제구역이 대부분인데 전쟁과 분단으로 생긴 땅이잖아요. 교육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말했죠.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고, 아직도 지뢰가 곳곳에 깔려 있고, 해마다 지뢰사고가 터져 다치거나 죽는다. 병사들은 북한을 주적으로 보는 교육과 훈련을 받고 보초를 선다. 우린 아직 전쟁 중이다.’라고요. 그리고 철원이 평화로운 마을이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2007년도에 실상사 도법스님이 철원으로 순례를 오셨어요. 남편과 함께 길안내를 해드렸어요. 가실 때 ‘생명평화등불’이라고 천으로 만든 등을 주고 가셧어요.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사는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긴 등불이었어요. 범상치 않게 다가왔어요.

그러다가 2015년에 정토회를 오게 되었어요. 법륜스님께서 통일일 하시는 것도 있고, 제 개인적으로 힘든 것도 있고. 마침 인연이 그래서 그런지 그즈음 통일의병 교육을 굉장히 활발하게 했잖아요? 의병교육을 받으면서 제 통일에 대한 관념이 제대로 서게 되었어요.
2016년 초에 무변심 법사님이 정초순회법회에 오셨을 때 제 마음속의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철원지역에서 통일정진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해봐라, 여기서 스스로.”라고 말씀해주시더군요. 그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머리 깎으신 스님이 하셔야 하는 걸로만 알고 있었는데 거기서 상을 깬 거죠. 아, 우리가 할 수 있구나! 그래서 목탁집전 교육을 신청했어요. 마침 의정부법당의 많은 도반들이 도와주셔서 수월하게 배웠어요. 그 때 같이 배웠던 도반들도 철원에서 통일기도를 하게 되면 “천도재를 우리가 하자”,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철원역에서 도반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정경숙 님.
▲ 철원역에서 도반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정경숙 님.

작년 여름, 철원지역을 둘러보며.
▲ 작년 여름, 철원지역을 둘러보며.

통일의 철마는 달린다

2017년 4월에 집전교육 같이했던 도반들이 처음으로 가서 천도재를 같이 했어요. 인연이란 게 모든 시절 인연이 맞아야 한다고, 때가 있더라구요. 나도 준비가 되어야 하고, 주변 인연들도 맞아서 무르익어야 일이 되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철원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쟁했던 곳이고, 접경 지역이고요.
지난 1년간 도반들이 마음을 내주셔서 지금까지 왔어요. 와서 기도하셨던 도반 중에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나누기하셨던 분들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천도재 후 철마는 달린다 코스로 한 바퀴 돌고 역사에 대해 발표도 했어요. 처음에는 시작할 때랑, 한 명이라도 새로 오신 분이 계실 때는 왜 평화여야 되고 통일이어야 되고 이런 걸 철원의 땅을 보고 아셔야 하니까요. 철원이 또 분단과 전쟁에 관련된 사적지가 널려있어요. 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무너진 것들이 아직도 있거든요. 새로 온 분이 있으면 그렇게 코스를 잡아드리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니까 오시는 분만 오더군요. 그분들 같은 경우는 또 둘러볼 이유가 없어서 요즘은 기도만 해요.

초창기에는 철마를 달린다 둘러보고 설명해드리고 그랬죠. 그냥 통일기도 하고 절하는 건 의미가 없게 다가왔어요. 왜냐면 법당에서도 통일기도를 계속하지만, 왜 통일을 해야 하고, 뭐가 문제가 있고 이게 정확하게 잡혀있지 않으면 북한은 여전히 나쁜 사람이고, 지금 벌어지는 사건들도 북한이 다 나빠서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래서 중간에 순례가 어느 정도 됐다 싶었을 때, 3월에 분단과 전쟁, 남북관계에 관련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굵직굵직한 것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까 노무현 정권 때 했던 남북공동선언문에 대해 이야기도 하게 되고, 박정희 때 7.4 공동성명도 이야기하게 되고, 노태우 정권 때도 있었고, 하여튼 정권 때마다 남북관계에 대한 뭔가가 있었어요. 최소한 성명서라도. 그래서 그걸 다 찾아서 돌아가면서 읽고 느낌들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관계가 안 좋았을 때는 엄청 헷갈리시는 거예요. 정말 전쟁이 나는 거야? 정말 우리는 통일이 안 되는 거야? 그럴 때는 민간교육 차원에서 암암리에 계속 그 끈을 놓지 않았던 단체들이 있잖아요? 그 단체들에서 만든 영상이나 강연을 뽑아서 한두 번 보기도 했어요.

철마는 달리고 싶다!
▲ 철마는 달리고 싶다!

세월이 지나 녹슨 기차.
▲ 세월이 지나 녹슨 기차.

철원통일기도 1년간의 소회

2018년 4월 1년째 되는 날, 기도 시작할 때 파랗게 맑았던 하늘이 무겁게 어두워지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어요. 함박눈이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한 땅까지 새하얗게 덮는 걸 보았어요. 축복처럼 느껴지는 하얀 풍경이었어요. 마치 지난 1년간의 국내·외 정세처럼 변화무쌍한 날씨였습니다. 설렘 컸던 마음이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차분해졌고, 일이란 숨 쉬듯 편하게 하는 듯 안 하는 듯 담담하게 하는 거라는 걸 깨달아요. 도반들과 함께 와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같이 숨 쉬니 내 일 네 일이 아닌 우리 일이 되었네요. 모든 도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철원의 축복같은 하얀 풍경에서. 맨 왼쪽이 정경숙 님.
▲ 철원의 축복같은 하얀 풍경에서. 맨 왼쪽이 정경숙 님.

정경숙 님의 열정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철원지역의 평화를 위해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글_정경숙(남양주정토회 의정부법당)
정리_차주엽 희망리포터(남양주정토회 의정부법당)

전체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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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보살님~수고많으셨습니다 글이 눈에 쏘옥쏙 들어옵니다 우리아이들이 이런 체험을 많이 해야하는데 제가 챙기지를 못했네요
통일이 되어야할 이유! 정말 모르시는분 많아요
통일의병 교육이 전국민의 참교육이 되길 바래요

2018-04-12 08:43:57

세명

고맙습니다.막연한 통일의 꿈이 실현되어 한반도가 평화와 도약의 땅이되기를 함께 바랍니다

2018-04-12 03:18:16

혜진

이렇게 염원을 담아서 하시는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얼음속에서 꽃이 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치있는 삶이란 생각이 듭니다

2018-04-11 10: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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