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거창법당
아니, 엄마가 나의 스승님!?

함양에서 거창까지 바쁜 와중에도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한 거창법당의 에너자이저 김화진 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번에 정회원이 되었고 경전반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엄마와 딸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불교대학 홍보를 하면서 어깨동무를 하고(어머니와 김화진 님)
▲ 불교대학 홍보를 하면서 어깨동무를 하고(어머니와 김화진 님)

엄마가 나의 스승님, 도반님이라고 말하는 김화진 님의 목소리를 통해 모녀의 가슴찡한 이야기를 함께하고자 합니다.

엄마와 나의 지난 이야기

초등학교 시절 포교당을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 시절은 불교 동아리 활동을 하며 불교와의 끈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절에 가면 부처님 불상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았고, 은은하게 퍼지는 향냄새가 좋았습니다. 저희 엄마의 소원은 ‘자식이 스님 되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법륜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들이 단명한다고 하니 절에 놔두고 올 수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보통의 부모님께서는 자식의 출가를 받아들이는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그런데 저희 엄마는 자식이 스님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하시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저 역시 한때 잠깐 ‘스님이 되는 길은 어떨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되고 싶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016년쯤 엄마는 아주 힘들어하셨습니다. 사실은 2016년도뿐만 아니라 살면서 늘 그랬습니다. 엄마께선 절에 다니신 지가 꽤 오래되셨고, 지금은 비록 절에는 나가시진 않지만 집에서 꾸준히 정진하시고 계십니다. 매일매일 불교 텔레비전으로 법문을 시청하시며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엄마는 우연히 간화선이란 걸 접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궁금증도 커져만 갔습니다. 하루에 수십 개의 법문을 들으시고 그 중에서 좋았던 법문은 저에게 쪽지로 적어서 퇴근길에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전 그때마다 엄마께서 적어주신 법문을 다 시청해야 했고 엄마와 함께 공유하고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궁금증과 괴로움은 점점 커졌습니다. 저는 엄마를 모시고 주말이면 기분 전환 겸 여러 곳의 절을 찾아다녔습니다. 잠깐의 기분 전환은 되셨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답답함과 괴로움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만나다

2017년 이른 봄, 거창에서 벽에 붙은 포스터를 우연히 보고 평소 엄마께서 좋아하시던 법륜스님께서 불교대학 강의를 한다고 하니 엄마와 함께 다니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엄청 행복해하셨습니다. 그렇게 입학신청을 망설임 없이 한 후 열심히 다녔습니다. 엄마는 일주일 하루 수업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셨지만, 저는 일주일이 얼마나 빨리 다가오는지 매주 가야 하는 부담감이 컸으며 나의 생활은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로지 화요일 하루 저녁 시간만은 엄마를 위해서 무조건 봉사하자 하는 마음이었고, 그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녀 개근상도 엄마 덕에 받게 되었습니다.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9-1차 천일결사에 엄마와 함께 입재하게 되었고, 그 후 <깨달음의장>을 다녀왔습니다. 엄마께서도 <깨달음의장>을 다녀오시고 한결 가벼워진 모습이셨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은 기대 이상이었고, 법륜스님의 강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나 스스로 일으키고 있었구나!

불교를 안다고 믿고 절에 다녔던 저는 사실은 복을 빌러 구걸하러 다녔던 거였습니다. 다른 도반님들처럼 큰 괴로움이나 아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쁘게 하루하루 사느라 힘들다 괴롭다 생각할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엄마를 위해 불교대학을 다니다가 내 문제에 직면하고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나의 모습이 어떠한지 돌아봐지니 끔찍했습니다. 저의 무지로 고통받았을 아이들과 신랑의 지난 시간들, 나의 결벽증과 완벽주의는 주위 사람들을 괴롭혔고, 나만의 틀 안에 내 가족들을 그것이 사랑인 양 가둬놓고 살았습니다. 내 옳다는 생각에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에 짜증이 올라왔고, 평소 술을 엄청 좋아하고 모든 일을 대충 하는 신랑에게 불만과 불신이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단절되었고, 내가 스스로 대화를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대화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답을 듣지 않으려고 아예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았고, 그렇게 이해하는 척 마음속에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에겐 너무 과분한 신랑과 아이들입니다. 아이들과 신랑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그때그때 내 기분에 따라 미워하고 짜증을 내고 소리 지르며 괴롭혔습니다. 이젠 조금이나마 알겠습니다. 내 불편함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나 스스로 일으킨다는 것을…

밝아진 엄마와 알아차리는 나

엄마께서도 점점 얼굴이 많이 밝아지셨고, 동생과의 관계, 오빠와의 문제에서도 예전 같았으면 혼자 상처받아서 힘들어하셨을 텐데 이젠 피하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하시는 모습들이 저를 깜짝깜짝 놀라게 합니다. '지혜롭다는 게 뭔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할 정도로 엄마는 지혜로워지셨습니다. 엄마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기 시작했는데, 전 오히려 평소에 문제시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문제가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없었던 것이 생긴 것이 아니라 여태 모른 척 덮어 두었던 것들이 터져 나와 버린 느낌입니다. 하지만 예전 같았으면 힘들어서 또 외면해 버리고 또 다른 탈출구를 찾아서 다녔을 텐데, 지금은 도망치고 외면하지 않습니다. 때론 옛날처럼 그 느낌과 감정이 다시 올라오는 것이 싫어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외면하지 않고 바라봐주는 힘이 생겼습니다. 내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힘 말입니다.

엄마가 있어 참 좋습니다. 한 번도 감사 표현이나 사랑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선머슴 같단 소리를 듣고 크면서 딸로서 한 번도 엄마에게 애교부리고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한 점이 너무나 죄송스럽습니다.
엄마의 젊은 시절의 괴로움이나 고통을 충분히 딸로서 공감하고 위로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난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금 저도 중 2학년 딸을 키우다 보니 딸에게 위로도 받고 어떨 땐 친구처럼 대화상대가 되기도 하고 많은 위안을 받습니다. '엄마는 왜 그때 말하지 않으셨을까? 난 왜 몰랐을까?'

그때의 그런 부담감이 있었을까요? 저는 크면서 엄마를 감싸고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곁에 있을 때면 내 자식인 것처럼 엄마가 할 수 있는 일도 제가 다 해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나의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가장 큰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엄마의 손발을 다 묶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엄만 잘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대로 완벽한 분이셨습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엄마를 믿지 못해서 내 성에 차지 않아 내가 다 해드렸었나 봅니다. 단지 내 마음 편해지고자 내 마음대로 해버린 것입니다. 엄만 이제 나의 도움뿐만 아니라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불법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아시고 남편으로부터 자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셨습니다. 이젠 딸의 괴로움이 안타까워 옆에서 지켜보시며 지혜롭게 코치를 해 주시는 스승님이십니다. 제가 엄마를 위한다고 한 일들이 감히 자식이 부모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나 참회하는 마음입니다.

한반도 평화대회에서(왼쪽 김화진 님, 화진 님의 어머님과 아버님)
▲ 한반도 평화대회에서(왼쪽 김화진 님, 화진 님의 어머님과 아버님)

엄마의 소원, 나는 수행자입니다.

불교대학이나 정토회에서의 시간은 엄마와 함께한 너무도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저의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신 엄마께서 경전반 진학을 포기하셨습니다. 딸의 공부를 위해서 뒷바라지를 해주신다고. 솔직히 정토회를 다니다 보니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가족의 식사를 챙기지 못하고 다닌 적이 많습니다. 가족의 눈치가 여간 보이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엄마께서 가까이 계시면서 아이들 돌보고 가족들 식사를 대신 챙겨주시며, 딸의 정토회 활동을 철저하게 뒷받침해주고 계십니다.

저는 얼마 전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좋아해야 할 일인데 선뜻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니 까마득했습니다. 과연 내가 이 길을 잘 갈 수 있을까? 덜컥 겁도 나고 부담스러웠지만, 저의 든든한 지원자가 있으니 한결 맘이 편안합니다. 지금은 경전반 담당 소임도 맡게 되면서 정회원이 되니 여러 마음가짐이나 생각들이 남달라졌습니다. 조금 더 주인 된 삶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겼습니다. 정회원의 자격조건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지금에서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조급하게 앞만 보고 내달렸던 나에게 내 삶의 주인으로서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참! 앞에서 말한 엄마의 소원? 저는 이미 결혼은 했지만, 수행자로서 출가자의 마음으로 부처님법에 귀의하며 평생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럼, 엄마의 소원도 이뤄진 거겠죠?

글_김화진 (진주정토회 거창법당)
정리_김대중 희망리포터 (진주정토회 거창법당)
편집_목인숙 (경남지부)

전체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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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일

모녀간의 수행
아름다운 모습이 상상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8-04-13 06:40:42

정홍자

두분 불교대 입학하실때 뵈었는데 벌써 정회원까지 되셨군요!!
응원합니다!!

2018-04-09 21:29:54

황소연

와우~~~
정말 멋진 모녀 수행자이십니다^^

2018-04-06 2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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