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언양법당
그날의 땀방울 도반들의 가슴에 꽃으로 피었습니다-두북 정토수련원 봉사 이야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중에서)

봉사, 남에게 잘 쓰이는 일, 매일 같이하는 일, 늘 해오던 일상의 일들이 특별한 의미가 되는 일. 문득 시인의 <꽃>이 떠오르며 봉사의 의미가 꽃처럼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무덥던 어느 여름날, ‘잊혀지지 않는 의미 있는 꽃’으로 피어난 언양법당 도반들의 두북봉사 이야기를 전합니다.

1년여 만의 두북정토수련원 나들이

지난 6월 18일 일요일 잇따른 폭염주의보 속에도 불구하고 언양법당 도반과 지인 등 여섯 명이 두북정토수련원을 찾았습니다.
자원활동가 2명과 경전반 및 불교대학생 3명, 불교대학생의 남자친구인 예비 불교대학생 1명이 차를 나눠 타고 도착한 두북수련원은 언양에서 20여 분이면 닿는 곳입니다. 화광법사님의 안내에 따라 해운대,반여,금정,옥교 법당 도반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습니다. 3명은 도라지와 약초밭, 호박밭 김매기를 하러 호미와 차양 모자, 장갑을 끼고 밭으로 향했고 3명은 물류창고에 배치되었습니다.
두북수련원은 크게 수련과 농사, 독거노인 봉사, JTS물류창고 역할로 나뉘는데요. JTS가 국제구호단체인 만큼 해외난민과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한 각종 구호 물품들을 보관하고 발송하는 물류창고의 비중이 큽니다. 그중에서도 북한에 보내는 물품들을 분류 포장하고 선반에 옮기는 일이 오늘 봉사자들이 할 일입니다.

잡초를 솎아내는 기쁨! 밭에서 김매기를 하는 언양법당 봉사자들
▲ 잡초를 솎아내는 기쁨! 밭에서 김매기를 하는 언양법당 봉사자들

북한주민에게 보낼 생활용품과 의료용품 등 분류 포장##

리포터는 창고에서 일하게 되었는데요. 1백50여 평의 창고 바닥에는 오래된 물품 상자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속옷이나 양말, 보온덮개, 담요, 목도리, 의류, 장갑, 장화, 신발, 장난감, 책, 학용품, 악기, 비옷, 의료용 장갑, 사혈침, 치약, 칫솔, 비누, 부채, 수건, 매트, 이불 등 각지에서 기증받은 온갖 생활용품들입니다.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하며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창고 안은 매캐한 곰팡냄새로 공기가 탁해 숨쉬기가 힘들었고 목에 먼지가 걸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작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물품들이 굶주리고 어려운 북한주민들에게 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니 불평하던 마음이 설레임으로 바뀌었습니다. 북한과의 교류와 지원이 중단되면서 길게는 10년씩 창고에서 쌓였던 먼지의 의미를 생각하니 도리어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 많은 물품들이 굶주리는 우리 북한 동포들에게 따뜻하게 전해지겠죠? 북한으로 보낼 물품을 새로 포장하는 서정희 님과 서분순 님(오른쪽)
▲ 이 많은 물품들이 굶주리는 우리 북한 동포들에게 따뜻하게 전해지겠죠? 북한으로 보낼 물품을 새로 포장하는 서정희 님과 서분순 님(오른쪽)

남북 민간교류 재개에 대한 설렘과 기대

오래 묵은 상자 속에서 새것을 골라 종류별로 새 상자에 나눠 담고 품목과 개수를 기록하여 테이프로 포장하는 일들은 집중을 필요로 해서 일과 수행으로 하나 되기 좋은 연습이었습니다. 각자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 공양을 한 뒤 시작한 오후 일은 오전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하다 보니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전혀 어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덥고 공기도 탁하니 어서 끝내자’ 하는 마음으로 모두 작업을 서둘렀고, 밭일하던 도반들이 일부 합류하면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일이 끝났습니다. 포장한 물품 상자는 지게차로 선반에 정리하고,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치우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걸레로 닦았습니다. 말끔히 정리된 창고를 둘러보니 흐뭇해집니다. 흐르는 땀을 훔치는 도반들의 모습이 참 맑고 밝아 보입니다. 먼지를 뒤집어쓴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합니다.

▲ "자, 한번에 쭉 밀고 갑시데이!" 창고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있는 해운대법당과 언양법당 봉사자들

비우러 와서 얻고 채우고 가는 기쁨에 감사

수련원의 명물 아름드리나무 아래 봉사자들 스물 댓 명이 모여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뙤약볕과 찜통더위에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며 흘린 땀이 시원하고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평화통일을 향한 걸음에 일조할 수 있어 보람 있었다.” “비우러 와서 얻고 채우고 간다.”라는 말씀들이 가슴에 남습니다. 법사님도 “물품창고가 싹 정리되어 후련하고 수확한 통일감자가 가뭄으로 알이 작았는데도 봉사자들이 구입해줬다.”라며 고마워하였습니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하루 동안 잘 쓰인 언양 도반들의 나누기를 옮겨봅니다.

이현숙 님 (가을불교대학 및 봄불교대학 저녁반 담당자) : 밭매기는 쉽지 않았지만’ 농부들과 텃밭농사 짓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참 편하게 얻고 쉽게 살았음을 뉘우치게 되어 감사합니다. 점심 후, 창고 일에 손이 모자란다 하여 합류했는데 탁한 공기를 느끼는 순간 물러나는 마음이 났습니다. 밭맬 때의 상쾌한 바람이 얼마나 그립던지요. 오전에 밭일하면서는 창고작업은 그늘이라 시원하겠거니 부러워했거든요. 늘 비교하고 계산하는 중생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더 많은 학생이 봉사의 기쁨과 보람을 느껴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서분순 님 (봄불교대학 주간반 학생) : 오늘 일은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평소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일만 해오다가 오롯이 남을 위해 일하는 봉사의 맛이 이런 건지 처음 알았습니다. 값지고 보람 있는 하루였습니다. 봉사하러 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내 손으로 포장한 물건을 받고 기뻐할 북한사람들을 생각하니 힘든 줄 몰랐고 신바람이 났어요. 미군 구호물자로 배고픔과 추위를 면한 어린 제 시절이 기억나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물품들이 잘 도달하여 필요하게 잘 쓰이기를 기도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꼭 함께하겠습니다. 저도 농사를 짓고 있는데 수련원을 지키는 법사님처럼 마음밭 닦으며 노후에 잘 쓰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정소라 (가을불교대학 저녁반 학생) : 처음 하는 봉사라 긴장되었지만, 북한으로 보내는 물건들이 운송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어 설레었습니다. 새삼 통일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오늘 다른 법당 도반들이 캔 감자가 북한으로 보내지 못한 통일 씨감자를 심어 수확한 것이라니 감자가 다르게 보이던데요.
가뭄에 타들어 가는 작물들이 참 안타까웠지만, 휴일이라 놀러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남자친구와 같이 오길 잘한 것 같아요. 농사를 통해 나를 보고 상대의 업식도 보며 깨어있는 연습을 했습니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좀 더 넓고 넉넉한 정토행자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봉사를 마치고 나누기 하는 언양법당 도반들
▲ 봉사를 마치고 나누기 하는 언양법당 도반들

두북수련원은 어릴 적 법륜스님이 다니던 초등학교입니다. 스님은 은퇴 후 이곳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수행 정진하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일을 일로 삼지 말고 놀이 삼아 과정을 즐기면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결과물은 찌꺼기일 뿐 목표가 아니다.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까닭이다.” 봉사도 그러하겠지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로 마음 내면 오히려 자신에게 좋고 기쁜 일이 되는 보살행의 이치가 농사와 다르지 않으니까요. 봉사로 수행 삼고 수행으로 더욱 행복해진 도반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두북에서 또 만날까요?

글_문영진 희망리포터(울산정토회 언양법당)
편집_유은희(울산정토회 화봉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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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접수마감 : 2017. 8. 27. (일)

▶정토불교대학 홈페이지

전체댓글 5

0/200

김정화

고맙습니다.덕분입니다 ~(♡)

2020-06-16 07:33:08

유은희

봉사도 즐겁게 하면 행복해 집니다.
통일은 이루어집니다. 화이팅 잘 읽었습니다.

2017-07-30 00:32:19

등불촌

모든일은 가정에서 부터...
가정에 충실하세요
그것도 수행의 기본입니다.

2017-07-27 15: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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