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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법당의 소중한 인연 중 한 분, 김웅희 님의 수행담 들어보시겠습니다.
저의 가족은 2녀 1남을 둔 평범한 가정이며, 조용한 시골로 2년 전 이사를 해서 제조업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3년 전 애엄마의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을 받고부터 운명적으로 정토회와의 인연을 맺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1년 동안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하는 과정은 환자나 가족 모두에게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뼈에까지 확산된 환자의 몸은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상태, 항암제 치료를 받으면서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치료 결과가 좋아 수술을 할 수 있었고 방사선치료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상에서나 보았던 남의 일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아내의 얼굴에서 지워지고 손발톱이 검게 변해가는 모습에서 저의 현실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덩달아 같은 병상에서 함께 했던 아내의 동료들이 한 분 두 분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아내가 겪는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심약해진 환경이 가져다 준 우울증으로 방황의 시간만 하루를 채워갈 뿐, 제가 대신할 수 없기에 뭔가를 찾아나서야 했습니다. 그 방편으로 약초공부를 시작하여 저는 절박함을 배낭에 넣고 약초산행을 다니는 심마니가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네다섯 번 산행을 하다가 자그마한 암자라도 보이면 망설임 없이 다가가서 보시와 소망 기도를 올리곤 했습니다.
수십 가지의 약초를 채취하다 보면 운 좋은 날에는 산삼도 보았고 건강회복을 위한 약재들을 달여 마시게 하였습니다.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들이면 회복될 거라 믿었지만, 병고는 별 효과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모든 걸 접어버리고 놓아버린 극심한 우울증은 작은 희망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스트레스로 인해 체질이 산성화되어가고 어떠한 처방도 무색한 상황에 이르다 보니 병원이 아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교회, 성당, 그리고 나들이 겸 산속의 절을 찾아가는 시간이 늘어가던 중, 친구를 통해 법륜스님의 법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분이 아내의 고교동창이고 함안법당 총무님인 정필연 님입니다. 봄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매일 새벽기도를 올리고 법회에도 다니면서 불교대입학을 등록하는 날, 애 엄마와 손잡고 정토회와의 인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위한 일이면 무엇이든 한다.’ 라는 절박함으로…
아내와 함께 가기로 한 인도 성지 순례는 병원 주치의의 만류로 취소하고 지리산으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암 판정을 받기 전 20여 년의 결혼생활 동안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정신질환의 중독자로 살아왔었고,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긴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인연과보를 피할 수 없다는 스승님의 말씀대로 억겁의 시간에도 갚지 못할 죄업을 지금 조금씩 상쇄해가고 있는 과정임에 틀림없을 거라고 새기며 살아왔는데, 다시 떠올리고 보니 참을 수 없는 슬픔에 재래식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행복이 불행으로, 불행이 행복으로 모든 게 내 마음을 깨워가는 과정에 존재한다는 걸 새기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그 흔적은 일생을 같이 하리라는 다짐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서 가정에서는 조금 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 직장에서는 직원들을 대하는 마음은 따뜻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호랑이 아빠’, ‘호랑이 사장’이라는 별명은 애칭이 되어 더 이상 내 앞에 없었습니다.
밴드를 통한 나누기와 소통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모임보다도 잘 결속된 우리 도반들, 법우님들 ‘함께’라는 힘을 새기면서 수행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마음으로 엮어진 튼튼한 울타리에 둥지를 짓고 이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늘 소통하며, 격려하고 다독여가며 도반들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지금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랑하는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회하며, 까르마를 소멸해가는 즐거운 마음으로 지금 여기의 수행자로 깨어있는 연습,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새벽기도가 싫어지고 수행의 의미가 퇴색되어 갈 때면 간단한 봇짐 하나 챙겨 들고 지리산으로 떠나곤 합니다. 일과 수행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수행은 늘 일상 속에서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남에게 늘 가르치려는 업식을 내려놓고 팀장님의 요구에 맞춰가는 동안 가끔 분별심도 일어나기도 하면서 내가 그런 인간이었다는 것을 맘속으로 수차례 되뇌어봅니다. 바르게 산다고 하면서 갑질의 인생을 고집하며 살려고 하는 나를 돌이켜보며 많이도 부끄러웠습니다. 지독하고 맘에 거슬리는 일상들이 나를 바로 세워주는 대상이며 스승이라는 것을 알았고,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봉사와 감사의 마음을 갖고 바라지 않고 교만하지 말아야 함을 깨우치며 참회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있는 법당이 수행도랑처입니다. 제가 소속된 함안법당은 2013년 8월생으로 네 돌이 되어갑니다. 진주와 창원의 중간에 위치한 이곳은 도시와 시골이 섞여 있는 가야읍 내에 있습니다. 법당 모양을 갖추기까지는 조립식 단칸방에 촛불 하나 밝혀놓고 도반의 등에 업혀 온 아기의 울음소리와 목탁 소리가 어우러져 한적한 시골의 밤을 깨우곤 했답니다.
이만큼의 자리를 잡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짐작하고도 남겠지요. 길고 지루한 시간의 일선에는 지금 총무 소임을 맡으신 정필연 님이 계셨는데, 저에게는 엄마 품같은 따뜻함으로 수행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불교대학생 2명을 배출하였지만, 지금은 경전반 도반들을 포함한 30여 분의 대가족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총무님의 노력과 정성, 그 그늘에 소중한 인연으로 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 길을 돌아 정토회를 만나기까지 시행착오도 있었고 수행을 하면서도 흔들리며, 가다가 멈추기를 여러 번. 마음을 다스리기엔 살아오면서 쌓인 업식의 두께가 헤아릴 수 없음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마음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걸 배우고 담아가는 과정입니다. 행복을 찾는 것도 마음이며, 사랑을 다듬어가는 것도 마음이며, 아파하며 안타까워하는 것도, 인생을 집필하는 것도 마음이랍니다. 희망을 꿈꾸고 나의 무지를 깨달아가는 것도 마음이며 그것들을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도 마음이랍니다.
글_김웅희 희망리포터 (마산정토회 함안법당)
편집_ 목인숙 (경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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