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문경법당
내 인생을 다시 봄, 내 인생에 다시 봄(春)
  • 49일문경살이 11기 소감문

49일문경살이 11기 입재식 때(왼쪽이 필자)
▲ 49일문경살이 11기 입재식 때(왼쪽이 필자)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보왕삼매론 첫 구절에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라는 문구가 있다. 보왕삼매론을 처음 접한 건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왕삼매론을 코팅하여 냉장고에 붙여 놓으셨을 때부터였지만 그간의 세월 동안 뭘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보왕삼매론을 잊고 살았다. 문경살이 새벽 예불 때 다시 만난 이 문구가 내 인생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병에 대한 큰 고민 없이 건강하고 인생에서 크게 아쉬울 게 없었던 지난 시절 얼마나 오만하게 감사함을 못 느끼면서 살아왔는지 새삼스레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한다.'라는 말처럼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벼랑 끝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참담함

부푼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왔지만, 대학 생활 내내 느낀 것은 자본주의의 냉혹함이었다. 방학 때면 해외로 자유롭게 다니며 어학 실력과 스펙을 쌓는 동기들을 보며 이 세상은 돈이 없으면 이미 인생의 출발선부터 다름을 알았고 나 자신이 소위 말하는 ‘흙수저’임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강요가 없었음에도 취업이 잘 되는 전공으로 바꾸고 졸업 전에 오로지 좋은 근무조건만 보고 성급히 취직했다. 취직이 끝인 줄 알았으나 숨 가쁜 회사생활에서 시간과 사람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을 대로 받았고 결국 몸이 버텨내지 못하고 내 살을 내가 쥐어뜯는 아토피가 얼굴과 온몸에 도졌다. 남들과 비교하며 뒤처져있는 못난 나 자신이 미웠고 쉬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몸도 꼴 보기 싫었다. 게다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부모님 탓처럼 느껴져 원망스러웠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지 않고 영원히 잠들기를 바라기도 했다. 아토피는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어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마치 더 이상의 길이 없는 벼랑 끝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다시 살아보고자 하는 절실함을 가지고 오게 된 곳이 이곳 문경 정토수련원이었다.

길고 험한 인생 속에 또다시 만 배라니...

문경에 도착하여 바라지장을 끝내고 49일을 지내기 위해 만 배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108배도 안 하고 살았지만, 무식이 용감하다고 남들 다 한다기에 큰 걱정 없이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입춘이 도래한 2월임에도 한겨울과 같이 살을 에는 문경의 추위 속에서 뼈와 근육이 굳어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앉고 일어설 때마다 뼈마디가 끊어질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지난날 이미 나는 충분히 밤낮으로 살이 찢겨나갈 듯한 고통을 겪었는데 만 배를 하며 또다시 이렇게 아픔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평소에도 힘든 고비가 닥치면 포기를 하거나 적당히 타협을 해왔기에 결국 주저앉아 만 배를 못하겠다고 담당자님께 말하기에 이르렀다. 내 뜻이 전달되었고 순순히 집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담당자님은 호통을 치며 나를 다시 대웅전으로 돌려보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 아픈 사람도 했는데 왜 못하냐며 여기서 주저앉으면 앞으로 더 큰 일은 어떻게 하겠냐!’고 하시며 ‘숨 쉬고 있으면 엎어지고 다시 또 죽지 않고 숨 쉬고 있으면 일어나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자존심도 상하고 오기가 발동하여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절을 시작했다. 그동안 더 힘든 난관도 견디며 살아왔는데 여기서 주저앉아 안주하며 살아온 사람처럼 여겨지는 게 싫었다. 통증이 지속되자 관세음보살님께 살려달라고 울부짖기도 하고 나를 키워오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과 극도의 괴로움 속에 사는 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겪은 아픔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징징댔지만 사실 그보다 더한 처지에서 사는 이들의 아픔이 간접적으로 느껴지면서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여전히 절을 그만하자는 내면의 속삭임이 있었지만 절하다 다리가 부러져도 되고 죽어도 된다는 마음을 먹고 내려놓으니 만 배를 마칠 수 있었다. 만 배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피로가 몰려오고 다리는 절뚝거렸지만 해냈다는 벅찬 마음과 몇십 년 묵은 때를 대청소한 듯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만 배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로 얼굴에 올라왔던 아토피도 어느새 잠잠해지고 환하고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백 번 올라오는 하기 싫은 마음

만 배를 하면 천 번의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법사님이 말씀하셨지만 만 배는 서막에 불과했다. 여전히 하기 싫은 마음으로 짜증과 화가 하루에도 수백 번 올라왔다. 매일 300배 정진을 하는 것도 다리가 아파 화가 났고 공양 시간 외에 간식을 못 먹는 것도 짜증이 났다. 새벽 4시가 되면 몇 분 더 자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고 찬물에 맨 손으로 걸레를 빨 때면 일에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궁지에 몰린 생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신경이 날카로워져 도반에게 톡 쏘는 말을 순간적으로 내뱉을 때도 많았다. 때로는 타인을 미워하기도 했고 때로는 이 생활에 적응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고 미웠다. 사회에서도 적응이 힘들었는데 여기 와서까지 잘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TV도 없고 핸드폰도 없는 이곳에서 내 업식을 오롯이 집중적으로 보는 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 깨어있는 연습

그런 와중에 내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덕생법사님께서 ‘49일 안에 자꾸 나를 바꾸려는 욕심 내지 말고 사회에 나가서도 왜 바뀌지 않는지 자책하지 말며 욕심내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고 보니 평생 켜켜이 쌓아온 업식을 단 몇십일 만에 바꾸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욕심임을 알았다. ‘그래, 내 꼬락서니가 보기 싫을 때도 많지만 이게 나임을 외면하지 말고 인정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화를 내어 상대방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과보를 받는 것은 줄이고 싶었다. 입이 방정이라 쓸데없는 말을 해서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할 때가 힘들었다. 이 문제의 해답을 저녁 학습시간에 ‘화’를 주제로 한 법륜스님 법문에서 구할 수 있었다. 스님이 ‘화가 나면 분출하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불씨일 때 즉시 알아차리면 알아차림과 동시에 불씨가 꺼져버린다’고 하셨다. 그동안 깨어있는 연습을 하려 고는 했으나 초가삼간 다 태워 먹은 후에야 알아챘던 것임을 알았다. ‘화가 날 때 내가 화를 내고 있음을 알고 짜증 날 때 내가 짜증 내는 줄 아는 것’이 바로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오르는 길이었다. 여전히 매순간 깨어있지 못 하고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지만,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점차 괴로움으로 바닥을 치는 날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감사, 감사, 또 감사...

평소에 내 성향은 냉소주의, 혹은 비관주의가 다분했다. 뉴스를 보고 회사를 갈 때면 혼란하고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낙관적인 생각을 한다는 게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세월호에서 수백 명의 아이가 죽고,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고, 청년들이 취직을 못 하고 결혼을 못 하는 이 현실에 태어난 것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문경에 처음 왔을 때도 불평불만이 가득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뻣뻣한 내가 감사함을 외치고 있었다. 두 팔과 다리 있는 것도 감사하고, 부모님 두 분 건강히 살아계신 것도 감사하고, 내 옆을 지켜주는 남편이 있음에 감사하고, 길을 잃어 방황할 때마다 등불이 되어준 문경 식구들에게 감사하고, 49일 도반들이 수련 기간 동안 함께 곁에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지옥 같았던 직장과 직장 동료들에게도 감사함을 떠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49일이 끝난 이 시점에 아토피는 상당히 호전되어 약을 끊고도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요인이 작용하여 병이 완화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세상 참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졌다. 서울로 가면 아토피는 분명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49일문경살이가 헛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아토피가 있는 나 자신을 미워하고 회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 타인에게 화가 날 때면 보수법사님 말씀대로 나를 탓하지 않고 ‘올라오는구나. 그렇구나.’하며 공감해 줄 것이다. 나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 결국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수련원의 매화밭에 매화가 영롱히 피고 새가 지저귀며 봄이 옴을 알린다. 내 인생에도 잠시 잊고 살았던 새봄이 온 기분이다.

글_지소영(공동체 문경수련원)
편집_박정미(대경지부 편집담당)
사진_경주희(공동체 문경수련원)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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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맘♥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세상 살만하다는 님의 말씀이 와닿습니다.
저도 늘 부족한 것은 돈..아파트평수.큰자동차..그런건줄 알았는데...기도하면서 생각해보니 정작 부족한 것은 주어진 것에 감사할줄 아는 마음이더라구요..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힘드셨지요~
그런데 할만하셨지요~~^^

2017-04-20 07:09:38

무량광

부러우면 진다는데 오늘만큼은 실컷 부러워 하렵니다 ^^

2017-04-20 06:06:42

법광 이창제 (서천법당)

같이 바라지 하고 밝게 대화에 응해주려 집중하는 모습 맘에 와닫았어요~~^~^
건강해져 밝게 만나지길 바래봅니다!^^

2017-04-19 17: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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