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여수법당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반청 님 이야기

“후련하다.”
“해내고야 말았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소중하고 예쁘게 잘 키운 딸 시집보내는 기분이다.”

2014년부터 여수법당의 총책임자인 부총무 직을 맡아 3년간 봉사하고, 올해 소임을 내려놓은 이름도 예쁜 반청 님의 소감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반청 님
▲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반청 님

1. 부총무를 맡게 된 경위와 그때의 마음이나 각오는 어떠셨나요?

여수법당에 소임을 맡을 사람이 없어, 그나마 정토회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맡게 되었습니다.

3교대 근무하는 남편은 가정주부가 자주 외출한다며 싫어했어요. 앞으로의 어려움을 생각하니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처음 2주간은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 하는 처지가 걱정돼 눈물로 지냈습니다.

매일 아침 독송하는 「보왕삼매론」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어요. “역경을 통하여 부처를 이룰 지로다.” 이 구절이 한 줄기 위안이 됐습니다. ‘그래, 역경을 통하여… 역경을 통하여… 역경을 받아들여야지만 무엇이 되던, 무엇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을 받아들이자’라고 되뇌며 마음을 합리화하듯 적응시켜 나갔습니다.

거의 매일 법당에 출근해야 하는 업무인데, 남편은 퇴근한 후 제가 집에 없으면 거실에서 혼자 앉아 홧술을 마시며 올 때까지 저를 기다렸습니다. 부총무 소임 3년 기간 중 처음 2년 동안 그랬어요. 길고 긴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은 “당신이 좋아하기도 하고 좋은 일을 베푸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 하는 것은 좋은데 과하지 않게 좀 적당히 해라.”, “직장에서 밤샘하고 돌아온 남편을 내팽개치고, 가정주부가 어떻게 돈 벌어 오는 것도 아니고, 돈 쓰는 일을 직장인처럼 출근하듯 매일매일 할 수 있냐?”라고도 하며, 심지어 화가 난 남편에게 주먹으로 비록 한 대지만 맞은 적도 있었어요. 그땐 너무 겁나고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도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둘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작은 법당이라 대신 후임을 맡아 줄 사람도 없었고, 일을 맡았으니 죽으나 사나 무조건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남편은 3년째 들어서는 포기했거나 아니면 어는 정도 이해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2. 봉사 기간 중 가장 감명 깊거나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

언젠가 남편,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하던 중, 아이들이 엄마가 가정을 등한시하고 지나치게 정토회 일에 시간과 정신을 많이 쓴다고 하니, 듣고 있던 남편이 그 문제는 엄마와 아빠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너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을 때입니다.

또 하나는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 여건으로나 몸이 자주 아픈 약한 육체적 조건으로 도저히 할 수 없어 보이는 강수정 님이 후임으로 일을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내가 이 일을 잘해내었구나. 처음 오랫동안 그렇게 반대했던 남편에게, 주위 사람에게 내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좋은 영향을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참으로 감격스럽고 기뻤습니다.

(필자인 저는 단칸셋방 같은 작은 법당에서 지금은 나름 반듯한 여수법당 확장불사 당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노력하고 가장 고생했던 한 도반이 다시는 정토회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뛰쳐나갔다가 몇 달 후에 어찌어찌하여 다시 돌아온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반청님
▲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반청님

3. 소임을 하고 난 지금 무엇을 얻었나요?

이 전에는 내 개인과 내 가족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토회에서 하는 일에 더 많이, 더 깊숙이 관여하다 보니 마치 문맹에서 벗어난 느낌입니다.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관, 세계관이 생겼어요. 나와 내 가족밖에 모르던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전보다는 폭넓은 가치관의 상식인으로 변화했습니다.

법당에서 사무를 보는 가운데가 반청 님
▲ 법당에서 사무를 보는 가운데가 반청 님

4. 지금 심정은 어떤가요?

이대로 감사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천일결사에 가서, 왼쪽 아래 세 번째가 반청 님
▲ 천일결사에 가서, 왼쪽 아래 세 번째가 반청 님

아담한 체구, 오밀조밀한 눈·코·입, 작고 동그란 아기 같은 얼굴,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약간 거친 듯 보이는 피부, 반백의 머리카락. 그래서 보통 여인처럼 염색하고 화장하면 적어도 20년은 젊어 보일 것 같은 반청 님.

아무런 금전적 보상 없이 3년을 직장인처럼 거의 매일 출근하며, 토요일, 일요일에도 수련이다, 교육이다, 회의다 하면서, 남쪽 끝 바닷가 여수에서 광주로, 대전으로, 서울로, 문경으로 출장비 없이 내 돈 쓰고 다니며 (단, 회의 때는 교통비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지방 작은 법당의 부총무 소임을 끝낸 소회를 듣고 싶었습니다.

참고로, 반청 님은 1993년도에 경기도 성남시 법당에서 처음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고, 2006년에 전라남도 여수로 이사 온 후, 법당에 오락가락한 적도 있었지만, 2011년부터 여수 법당에 본격적으로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좋은 인연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글_신규호 희망리포터(순천정토회 여수법당)
편집_양지원(광주전라지부)

전체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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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감사!고맙습니다 .수고 존경 합니다

2017-03-12 09:28:13

문선우

글 읽다 가슴 뭉클~

가장 가까운 부부간에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공감을 얻는 모습, 늘 엇박자로 따로 노는 것만 같은 제가 보이는 것 같아 보기 참 좋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커 가는 것임을!

2017-02-12 10:03:06

김정림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2017-02-06 11: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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