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파주법당
수상한 그녀들의 새벽 이야기

한여름인데도 새벽 4시 30분은 아직 어둠이 짙습니다.
월요일 새벽, 주말의 피로를 다 풀지 못한 직장인들이 잠결에 ‘3분만 더, 5분만 더.’라며 아우성칠 것 같은 아파트 단지를 뒤로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엿가락처럼 몸이 늘어지는 삼복 더위! 10분만 더 자도 소원이 없을 것 같이 피곤한 이즈음 벌써 몇 달째 세 도반님이 법당에서 새벽 수행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원을 세웠기에 이렇게 더운 날에 꿀맛 같은 단잠을 포기하고 그들은 거기에 모였을까요?

부랴부랴 서둘렀건만 살그머니 법당문을 여니 벌써 세 도반님의 새벽 예불 소리가 낭랑합니다. 창문을 활짝 열었어도 밤새 닫아두었던 법당 안은 미처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후덥지근했습니다. 예불 후에 108배를 마치고 10분 명상을 하는 세 분 도반님의 얼굴에는 비 오듯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예불 중
▲ 지금은 예불 중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니 6시, 어느새 어둑했던 창밖에는 말간 햇살에 세수하고 나온 아침이 찾아와 있었습니다. 바쁜 아침, 세 분 도반님과 짧지만 강렬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우선 새벽 수행을 하는 세 분 도반님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도반은 수행의 반이 아니라 전부!

새벽마다 낡은 차로 다른 두 분을 픽업해 온다는 임현주 님은 2006년에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뒤 2013년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와 불교대학에 입학, 천일결사에 입재했습니다. 집에서는 108배를 꾸준히 못 하고 점점 게을러질 즈음 2014년에 파주법당이 생겨 김미숙 이영실 님과 새벽 수행을 했습니다. 그러다 세월호 이후 수행을 안 하게 됐는데, 올해 정일사 300배 정진을 하면서 정신 차리고 8-9차 천일결사 입재식에 다녀온 후 쭉 수행하고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자신 안의 평화와 깨달음을 얻고 싶다고 합니다.

김미숙 님은 결혼 전 지인의 추천으로 98년도에 깨달음의장을 다녀왔습니다. 정토회를 직접 찾아 나오게 된 건 2009년 파주로 이사 와서 근처에 파주법당이 생겨 그동안 발만 담그고 지내다 조금씩 조금씩 활동이 늘어나 지금 새벽 정진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불교와 인연만 오래되었지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없어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조금 늦게 동참하신 윤숙 님은 정토회 오기 전 다른 절을 다니는 불자였습니다. 그러나 절을 다니면서도 불교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마음에 괴로움이 늘 일어나던 차, 지인의 소개로 2013년 파주정토법당 가을불대에 입학하고 그해 12월에 깨달음의장을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을 배워도 자기 자신과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새벽 수행 정진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함께 하는 도반들이 있어 지속할 수 있다며 도반들께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전 포즈 취해 준 세 분. 왼쪽부터 윤숙, 김미숙, 임현주 님
▲ 인터뷰 전 포즈 취해 준 세 분. 왼쪽부터 윤숙, 김미숙, 임현주 님

“세 분이 함께 새벽 수행을 함께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김미숙: 정일사 입재 때 300배 정진을 했는데 매일 집에서 300배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더라구요. 마침 현주 보살님이 법당에 모여서 하자고 해서 잘됐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윤숙: 저는 서초법당에서 회향한 후에 현주 도반님 제안으로 6월부터 동참했어요.

“함께 모여서 수행하니 뭐가 제일 좋은가요?”

윤숙: 정해진 시간을 지킬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떼 힘으로...
김미숙: 저도 집에서 했으면 그냥 잤을 텐데, 오늘도 알람에 눈 떴다 다시 잠들었는데, 4시 50분쯤 전화가 왔더라구요, 오늘은 힘들어서 제치고 싶다고 했는데 현주 도반님이 안된다고 해서, 도반 덕분에 나오게 됐어요.

“언제까지 할 건가요?”

임현주: 제 차가 멈출 때까지? 제 차가 워낙 고물이라 차가 멈추기 전까지는 하려구요, 하하.
김미숙: 어, 원래 동북아 기행 가기 전까지 아니었나요?
임현주: 그랬나? 갔다 와서도 계속해야 하는데...

“모여서 기도하니 무엇이 제일 좋아요?”

윤숙: 저는 올해 초부터 나오고 싶긴 했어요, 제 안에 내려놓아 지지 않는 게 있어서... 그런데 혼자 실천이 안 되다가 현주 도반님 제안으로 나와서 절을 하니까, 새벽 다섯 시에 나오는 게 사실 힘들어서 저 자신과 싸우다 보니, 내려놓아 지지 않던 그 부분이 좀 많이 내려놓아 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임현주: 저는 일단 집에서 못해요, 집중하기도 힘들고요. 집에서는 시간도 못 지키고 잠을 더 좋아합니다. 스님께서 '수행을 기초로 삼아라, 복을 구하려면 다른 절로 가라, 우린 줄 복이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수행은 하고 싶은데 혼자서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법당의 힘을 믿고 도반들과 같이하니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두 달 정도 새벽 수행을 했는데 하기 전과 지금 달라진 게 있나요?”

임현주: 달라진 건 ‘그냥 간다!’, 여기 나오기 전까지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어제 너무 힘들었어, 오늘만...’ 뭐 이런 식으로 계속 타협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올라와도 정해진 시간이 있으니까...그게 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김미숙: 저도 마찬가지예요, 꾸준함이라는 게 집에서 혼자 하면 하기 싫은 마음에 많이 좌우되는데 법당에 나오면 습관이 되니까, 시간도 맞춰지는 것 같아요. 일요일엔 300배 정진을 마치고 법회에서 법문까지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왠지 108배 가지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일요일에 한 번씩 300배를 함으로써 좀 더 여과되고 진전이 되는 느낌도 있구요.

“오다 보니 캄캄할 때 와서 훤해진 뒤에 끝났는데, 법당을 나설 때의 기분은 어떠세요?”

임현주: 완전 좋죠! 법당문을 딱 열고 나설 때의 그 공기, 상쾌함, 그리고 또 오늘도 해냈다는 뿌듯함!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집에서 수행하시는 분들의 내공이 센 건 알지만 우리처럼 법당에 와서 같이 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니까 함께 하시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함께 해요!

 세 분의 외침을 듣고 일주일 새 두 배로 늘어난 새벽 수행자들
▲ 세 분의 외침을 듣고 일주일 새 두 배로 늘어난 새벽 수행자들

특별한 소원이 없어서 더 아름다운 그녀들의 새벽 !

각기 모습도 다르고 마음 자세도 다르고, 심지어는 언제까지 수행할지 생각마저 다른 세 명의 중고(?) 보살님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새벽의 기운은 아름다웠습니다. 초발심의 새로움으로, 혹은 뛰어난 수행자의 단단함이 아닌, 그저 오늘 하루도 해냈다는 하루하루의 평범한 발걸음이라 더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각자 직장 생활도 있고 가족도 있는데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법당에 모여서 세 분 도반님이 몇 달째 새벽 수행을 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는 뭔가 엄청난 원을 세웠나 보다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만나보니 특별한 소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망했느냐고요?

아뇨, 오히려 그래서 더 큰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뭔가 지대한 원들이 있었다면 ‘그러니까 그렇게 정성을 쏟지! 내가 수행에 게으른 것은 특별한 욕심이 없어서야’라고 자칫 스스로 게으름을 합리화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특별한 원 없이 오직 ‘시간 지켜 수행하고 싶어서 새벽에 법당에 모여 수행한다’는 세 분을 보니 저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자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 괴로울 때나 힘들 때는 수행을 찾습니다. 그러나 정작 큰 걸림이 없을 때, 평범한 일상이 반복될 때는 곧바로 수행에 게을러집니다. 살 만한 게지요. 하지만 진정한 수행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꾸준히 자신을 닦아가는 성실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사람들은 벚꽃이 지면 벚나무를 잊지만 벚나무는 그곳에서 여전히 잎을 피우고 지며 1년을 기다리는 것처럼 특별한 목적이 없는 일상의 항상심, 그것이 기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특별히 와 닿는 아침이었습니다. 파주법당 도반님들, 세 분을 마중물 삼아 우리 새벽 수행 기운을 함께 맛볼까요?

글_김명호 희망리포터 (일산정토회 파주법당)
편집_유재숙 (인천경기서부지부)

전체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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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사

대단하십니다_()_

2016-07-19 16:22:05

이은미

파주의 멋진 세 보살님~
법당에서 도반과 함께 하루를 기도로 열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줄 실감합니다
법당에 기도가 끊이질 않기를 응원합니다~^^

2016-07-19 09:39:12

공덕화

생동감이 넘실대는 이야기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주의 새벽을 응원합니다^^

2016-07-19 08: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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