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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정토회 기장법당]
기장법당 꿈나무, 통일축전에서 희망을 캐다
지난 10월 4일, 울주군 화랑체육공원에서 통일축전이 열렸습니다. 남한 땅 여기저기에서 흩어져 살던 새터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향수를 달래고, 우의를 다지는 만남의 장입니다. 우리 기장법당에서는 봉사자 세 분과 두 명의 어린이가 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나섰습니다.
박혜경 님은 4살 난 딸 정음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울주군에 있는 화랑체육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날따라 작동이 시원찮은 내비게이션 때문에 초행길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 어린 정음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이긴 했지만 무리하게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은 아무래도 엄마의 지나친 욕심이 아니었나 싶어 가는 내내 속을 끓이기도 했습니다.
도착하니 최창훈 님의 아들, 초등학교 3학년인 정훈이도 와 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감기약에 취해 차 뒷좌석에서 잠만 자던 정음이 얼굴에서 생기가 돕니다. 언제 아팠냐는 듯 언제 잠에 취했냐는 듯 팔딱팔딱 귀여운 토끼처럼 운동장에서 폴짝거립니다. 그래도 오빠라고 정훈이는 아직은 점잖습니다.
▲ 경건하게 차례를 지내는 광경
▲ 개구쟁이 정훈이와 해맑은 정음이
두 어린이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모였는지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부산', '울산', '백두'와 '경남', '경북', '한라'라는 팻말을 든 사람들을 대장기처럼 앞세우고 두 팀으로 나뉘어 서 있습니다. 논에 막 심어 놓은 푸른 모처럼 많은 사람들은 반듯한 자세로 사회자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있고, 앞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병풍을 쳐놓은 제단에 절을 하고 있습니다. 제단에 층층이 보기 좋게 쌓아 놓은 과일들이 탑처럼 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참 신기합니다.
파아란 색 도화지 같은 하늘에서는 뜯어놓은 솜뭉치 같은 구름들이 구경꾼처럼 멈춰 서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미 철을 넘긴 백일홍이 안간힘을 쓰며 나무에 매달려서 마치 오늘을 손꼽아 기다려 온 것 같이 여겨져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먼발치에서 기차가 부웅 소리를 질러 아는 체를 하며 지나갑니다. 운동장 한쪽 편에 장식처럼 세워진 부스들이 유혹합니다. 신이 난 정훈이와 정음이는 아버지, 어머니 손을 이끌고 ‘어린이 사이숲마당’ 부스로 달음질치듯 향했습니다.
▲ 어린이 사이숲 마당에서 정음이와 정훈이
저와 최창훈 님은 ‘맛있는 먹거리 마당’ 부스에서 질서를 담당하는 봉사를 했습니다. ‘어린이 사이숲마당’에서 나온 정훈이가 아버지가 있는 이곳 부스로 왔습니다.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웬일인가 싶어 쳐다봤더니 정훈이가 개다리춤을 추면서, 두 손바닥으로 이마를 쓱쓱 밀며 옥동자 춤을 추고 있습니다. 호객행위를 그럴듯하게 제법 잘합니다. 손뼉을 사이사이에 추임새처럼 넣으며, 연체동물처럼 다리를 흐물거리며 옥동자 춤을 걸판지게 풀어놓습니다. 개그맨 정동철 님이 봤다면 밥줄 끊겼다고 호통을 칠 일입니다.
“자, 어서 옵쇼. 로또 당첨되셨습니다.”
“오늘, 이 속도전을 드시는 분은 로또 당첨입니다.”
‘속도전’은 북한의 별미식품이라고 합니다. 보통 부스에서는 우리 정토행자들이 봉사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이 ‘속도전’은 북한의 별미식품이라서 새터민들이 봉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옥수숫가루로 속도전을 빚어 시식코너를 책임지고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맛있는 먹거리 마당’ 부스에서는 우리 봉사자와 새터민이 함께 봉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 북한의 별미음식 ‘속도전’을 설명한 팻말과 속도전을 빚어 놓은 모습
정훈이의 호객행위는 한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웃음꽃이 떨기째 피어오릅니다. 한 여성 새터민이 정훈이를 꼬옥 껴안았습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 웃음도 가끔은 눈물을 동반할 때가 있나 봅니다. 소리 내지는 않았지만 가슴속에 맺힌 한들이 이때다 싶었는지 꼬리를 물고 분출했을지도 모릅니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냉정하기 짝이 없는 제 가슴도 뭉클해지면서 눈물을 쏟아냅니다.
언젠가 새터민 합창단들이 독도에서 촬영한 ‘통일의 노래’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인들에게 보내주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남과 북을 잇는 다리로 써달라고 했습니다. 밀치지 말고, 색안경으로 보지 말고, 함께 손잡고 통일로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어린 두 꿈나무를 보면서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두 어린이가 희망을 캐내는 것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통일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정훈이의 티끌 없는 천진난만한 웃음이 새터민들의 가슴에 꽃망울을 터뜨리듯 우리의 따뜻한 시선이, 우리가 내미는 따스한 손이 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내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하늘이 이날을 준비해 둔 것처럼 참으로 아름답고 눈부신 찬란한 날에, 두 꿈나무의 고사리손에 얹혀진 희망을 봅니다. 이 희망이 나비처럼 새처럼 날개를 활짝 펴고, 저 푸른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기를 염원해 봅니다.
글_조원희 희망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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