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은평법당
감나무의 보살행

화정역에서 첫 전단지 홍보가 있는 날, 은평법회의 노보살님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계셨다. 북한돕기 서명운동하면서 많이 보아온 터라 익숙했는데 횡단보도에서 혼자서 전단지를 주고 계시는 노보살님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아마도 80 생애 처음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일 텐데 움츠러들거나 머뭇거림 없이 밝은 표정으로 하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일저일 망설이는 나를 보며,...

‘그래, 이건 내 공부다,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공부다.’라고 여기는 순간, 이 일을 맡겨준 정토회가 고마웠다. 아무 경험도 없는 나에게 실컷, 마음대로 놀아보라는, 다시없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며 순회법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내 중심이 잡히는 것을 느꼈다.

전단지를 나눠주며 “예, 감사합니다” 안 받아도 “예 감사합니다”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무표정하거나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한 아이엄마를 볼 때는 무엇에 사로잡혀서 저럴까 하는 생각에 안타깝고 가슴이 아파서 하루빨리 부처님법을 만날 수 있도록 전단지를 권했다. 전단지 한 장이 금덩어리보다도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

단 두 사람이 토, 일요일에 2천여 장의 전단지를 돌렸고, 아이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보살들은 집에서 인터넷홍보를 열심히 해주었다.

불교대학생들은 시간 날 때마다 전철역에서 전단지를 돌렸다. 가을불대를 시작한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절반 이상이 길거리 홍보를 해주었다. 집을 나서면서 부터 전단지를 돌리고 심지어 약속장소에 미리 와서 혼자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 수행자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포스터를 붙이는 노보살님의 뒷모습을 보면서는 그 연세에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야밤에 도반을 만나 포스터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미리 인터넷으로 작업 동선을 만들어놓았지만 밤이라서 시민게시판을 찾기가 어려웠다.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던 일이 밤 11시가 훨씬 넘어서야 끝났지만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다. 홍보전단에 일일이 손작업하느라 밤을 샌 도반, 800여장의 감잎을 일일이 씻고 닦아서 곱게 담아온 도반, 혼자서는 다닐 수 없는 어머니를 모시고 멀리 일산까지 와서 빵집에 어머니를 모셔놓고 열심히 전단지 홍보를 해준 도반 ……, 감동적인 일들이 수 없이 많이 있었다. 모두가 모자이크 붓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행사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준비물 챙기느라 점점 바빠질 무렵,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날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아파트 입구의 감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연회 때 떡 담을 낙엽이 필요해서 고민 중이었는데 감나무가 제 잎을 모조리 보시한 것이었다. 감나무가 보살행을 하는구나!

처음에는 558석의 자리를 꽉 채워야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는데 일이 진행될수록 자릿수에 연연해하지 않게 되었다.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보다 진행과정에서 난 이미 열매를 다 거두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진심이 느껴졌고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집중했고 수행한다는 마음가짐으로 24시간 이 일에 깨어있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며 얻은 게 너무 많았다. 누가 힘들거나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신나고 재미있다고 했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구는 숲 해설하러 산에 많이 다니더니 산삼뿌리를 캐어 먹었냐고 농담 삼아 얘기한다. 나 자신도 이렇게 지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줄 몰랐다. 일과 수행의 통일이 이런 것이구나, 이런 깨침을 주시려고 정토회를 만드셨구나, 스님의 가르침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길에서 전단지를 나눠 줄 때면 지구 끝에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당당했고 어느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나를 보았다. 시장도 만나러 갔고, 큰 절의 주지스님들도 만나러 다녔지만 어떤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이 대책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온 걸까?

이 일을 하면서 비로소 나는 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남 앞에선 당당하게 보이면서 그렇지 못한 속마음이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고, 무기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미워했고, 나는 늘 불행하다고 여기며 부모님의 직업을 창피하게 생각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친구들을 한 번도 집에 데려오지 않았던 학창시절의 나, 내가 만든 거짓 상 속에서 항상 마음 졸이며 살았던 나를 보면서 비로소 나를 받아들이고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눈물겹도록 좋다, 건강한 몸을 주신 부모님이 무척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지금 이 길을 가도록 도와주시는 시어머니, 남편, 나의 거울이자 내가 불법을 만나도록 인연 지어준 아들 찬이,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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