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수행자로서 나를 가다듬는 시간

오늘의 주인공 정희도 님은 정토행자라면 백일출가를 꼭 경험해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작 빵을 많이 먹는다고 도반을 분별하고, 나보다 나은 도반을 시기 질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이지 내가 미쳤구나' 싶을 때도 있지만, 백일출가를 하면 그 정도로 아주 깊고 솔직하게 내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백일출가를 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저는 벌써부터 얼마나 적나라하게 제 마음이 드러날지 두려워지기까지 하네요.

마음속에 심어진 ‘백일출가’ 씨앗

2018년 불교대학을 통해 불법을 만나고 꾸준히 활동하며 삶이 많이 가벼워졌다. 만 40세를 맞아 앞으로 인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과거에 좋지 않은 모습은 버리고 장부로서 당당하게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백일출가를 결심한 후, 어머니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마음이 참 힘들었다. 매일 300배를 시작했다.

법사님과 면담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과 슬픈 마음은 어머니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식이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당연한 마음을 살피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내 모습을 돌이키면서 참회했다.

모두의 도움으로 해낸 만 배

만 배는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입방 전 왼쪽 새끼발가락 인대가 손상되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병원 진료를 꾸준히 받으며 회복을 서두르는 것뿐이었다.

만 배를 시작하면서 관세음보살 관음정근을 하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새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절 자세에 신경 쓰면서 한 배 한 배 절을 했다. 다행히 발가락이 큰 장애가 되지 않아서 안도하는 마음으로 만 배 첫날을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첫날 3,000배 이상 절을 하게 되자 다시 자만심이 올라왔다. 하지만 둘째 날, 셋째 날로 넘어가면서 절 횟수는 점점 줄었다. 하기 싫은 마음과 몸 여기저기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컸다. 힘든 것은 절 뿐만이 아니었다. 무더운 날씨 탓에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한 법복, 밥이 코로 들어가는 것 같은 발우공양, 해우소 사용까지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만 배 바라지분들과 공동체 대중들의 응원에 힘입어 만 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새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후련하고 담담한 마음이 들었다.

공양간에서(정희도 님)
▲ 공양간에서(정희도 님)

수행의 매운맛, ‘공양간’

행자 생활 중 공양간 소임을 하게 되었다. 내 소임은 시간에 맞게 요리하여 나갈 수 있도록 살피고, 공양간 이모저모를 챙기는 것이었다. 늦어지는 부분이 있으면 지원하고, 조리하는 도반이 살피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챙겨야 했다. 각각의 요리보다는 공양간 전체 상황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소임인지라 뭐가 뭔지 모르니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를 더 답답하게 생각하신 건 공양주님이었다. 공양주님도 경상도 분이었는데, 표현 방식이 나와는 사뭇 달랐다. 경상도 남자지만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나와 달리 공양주님은 솔직하고 투박한 표현을 과감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런 부분들이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바깥이라면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선 그럴 수 없었다. 소임을 하면서 일어나는 내 마음을 보았고, 내가 놓지 못하고 고집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살펴보았다. 그런 내 마음을 살피며 정진하는 어느 순간 가벼워짐을 느꼈고, 공양간은 나에게 수행도량이 되었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연습

“정희도 행자님, 전체를 봐야 합니다. 하나를 먼저 끝내놓고 하세요. 다른 곳에 관심 두지 말고, 여기를 보세요.” 갈팡질팡하는 내게 공양주님이 해주시는 말씀들이 처음에는 고압적으로만 느껴져 마음이 불편했다. 받아들이기 싫은 마음과 분별이 많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돌이켜보니 틀린 말씀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산만한 업식도 그대로 드러났다. 하나를 제대로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지금 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다른 곳을 살폈다. 예를 들어, 칼질했으면 도마와 칼을 먼저 정리해야 하는데, 내버려두고 숭늉을 체크하거나 또 다른 일을 하러 가는 나의 업식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하나에 집중하면서 전체를 보는 것, 즉 나무를 보면서 숲을 관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경주역사기행 중(앞줄 맨 왼쪽이 정희도 님)
▲ 경주역사기행 중(앞줄 맨 왼쪽이 정희도 님)

음식에도 깨어있기

아침 발우공양으로 청국장을 만들어야 했을 때였다. 재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게 있던 내게 공양주님은 청국장 안 먹어봤냐고 물으셨다. 속으로 ‘당연히 먹어봤어도 안 만들어봤을 수도 있지 않나?’라는 반발심이 올라왔으나 공양주님의 도움으로 청국장을 완성했다. 훗날 나눔의 장에서 공양하며 맛을 표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이 일화가 떠오르며 돌이켜졌다. ‘아! 내가 먹는 것에 깨어있지 못했구나. 살핌이 부족했구나!’ 만든 사람의 정성을 모르고 음식을 먹던 내가 보였다. 수행자라면 말과 행동에 깨어있어야 하고, 먹는 과정에 깨어있다면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지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을 텐데 참 무심하고 둔했던 것이다. 음식을 하는 것은 물론, 맛을 볼 때도 깨어있어야 하며 만든 이의 정성도 느껴야 했던 것이다.

소임이 복이다

그렇게 70여 일간 공양간 소임을 하면서 넘어지고 또 넘어졌는데, 그 순간들이 배움의 과정이었고 나를 볼 수 있는 과정이었다. 하기 싫은 것은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하려는 모습, 도반들에게 무임승차 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요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도반들이 하는 것이었기에 뻣뻣해질 틈도 없이 숙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 때 걱정부터 하는 업식이 있었는데, 일단 시작해 보니 어떻게든 결과가 나오긴 했다. 또 시작할 때 행동보다 말을 먼저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소임을 통해 말보다는 행동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소임이 복임을 느끼게 되었다.

문경수련원에서(왼쪽에서 두 번째가 정희도 님)
▲ 문경수련원에서(왼쪽에서 두 번째가 정희도 님)

정토행자라면 꼭 백일출가를!

도반들과 24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몰랐던 나를 볼 수 있었다.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주인공 병에 걸린 것 같은 모습, 도반이 간식으로 나온 빵을 많이 먹으면 분별하는 모습, 내게 없는 능력을 가진 도반을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꼬라지를 보면서 정말이지 내가 미쳤구나 싶을 정도로 놀랐다. 이런 내 모습이 보기 싫었는데 “일어난 마음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문제가 없다”는 묘수 법사님 말씀에 위로받았고, 왜 이런 마음이 올라오는지 나에 관해 탐구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아! 이런 마음이 올라오는구나!’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계속하게 되었다.

밖에선 이런 내 마음을 몰랐고, 설사 안다고 해도 수많은 정보와 산만한 환경들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기에선 지금 여기 내 마음이 어떤지 끊임없이 살필 수 있게 법사님과 도반들을 통해 점검할 수 있어 참 좋았다. 그동안 살면서 몰랐던 내 꼬라지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고, 비로소 이 방향에서 다시 출발하면 되겠다고 느꼈다.

정토행자라면 ‘깨달음의 장’이 필수라고 하는데, 지금 내 마음은 정토행자라면 백일출가는 꼭 경험해봐야 한다는 마음이다. 세상을 편협하게 보던 시야를 넓게 확장해 주었고, 여기에서 배운 것을 일상생활에서 제대로 적용한다면 앞으로 내 인생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또 이곳에서만 가능한 수련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두터운 내 업식을 깨부수는 울림 있는 교훈을 얻었고,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도 알게 되었다.

나도 그랬지만 학교, 사회 등 일상생활을 하면서 100일이라는 시간을 내기란 참 어렵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120세 시대와 비교해 본다면 100일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찾는 2030 청년들이라면,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고 전환점을 갖고 싶은 40~50대라면 100일이란 시간을 내어 나를 알아가는 시간, 진정한 주인이 되는 시간으로 꼭 한번 써보면 좋을 것 같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앞으로 나의 수행 과제는 잘 쓰고 잘 쓰이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동안은 나만 생각했고, 내 편한 대로 쓰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상대에게 나를 쓸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내 옳다는 생각만 고집했다. 그렇게 아집을 내려놓지 못하고 꽉 움켜쥐면서 뉘우치는 일들을 반복했는데, 이제는 진정 방긋 웃으며 “예!” 하고 잘 쓰이는 삶을 실천하고 싶다.

또 하나의 과제는 습관의 노예를 벗어나 진정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회향 후에도 재입재의 마음으로 살자고 발심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예전의 좋지 않은 습관들이 올라오는 나를 본다. 그런 내 모습을 알아차리고 좋은 것은 이어가며 나쁜 것은 멈출 줄 아는, 습관에 끌려가는 종이 아닌 내 인생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 좀 더 큰 포부를 갖고 공부를 이어가 보려 한다. 백일출가 전에는 전법활동가로만 봉사하면서 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다 큰 포부를 세워 서원행자, 결사행자까지 마음공부를 이어가 보자는 원을 세워본다. 24시간 깨어있는 수행자로 수행·보시·봉사하며 2차 만일을 잘 이어가고 3차 만일까지 도반들과 함께 열어가고 싶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5월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수행담입니다.

글_정희도(백일출가 46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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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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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나그네

우리 백일출가 46기 자랑스러운 정토행자 멋쟁이 정희도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밝은 모습 너무 좋습니다.
함께 해서 행복합니다.
당신은 최고입니다.

2024-12-19 19:28:47

이하림

희도님~ 잘계시죠?^^
갈치찌개 구이 한번씩 생각나서 먹으러가고 싶어요ㅎㅎ
서원행자 결사행자까지 응원합니다~~^__^

2024-12-08 11:30:09

이정화

여기서 정희도님을 뵙네요!!
저의 불교대 진행자님이셨습니다. 제가 입만 열면 남을 지적하기 바쁘고 그때 정신도 아팠는데 다 따뜻하게 받아주셨죠.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2024-12-07 06: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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