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울컥 화가 올라오더라도
지긋이 바라보며 알아차린다

장성아 님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아주 솔직한 분입니다. 선한 인간이고 싶었지만 악한 내 모습이 있었고, 두 아이 육아를 하면서 학업을 이어가다 지도교수에게 모멸감을 느낀 일, 전업주부가 되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돈에 대해 집착하고, 아이들에 대해 집착했던 모습을 담담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 아이에게 먹일 달걀 볶음밥을 만들면서 화가 울컥 올라오는 장면에서는 저러다 결국 도로 화를 벌컥 내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해 하며 글을 읽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과연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 안의 그림자 하나

나는 생각이 많고 내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과 느낌의 총합이 나라고 믿고 있어서 타인에 대한 시비심과 미움, 원망, 무시, 질책 등의 부정적 감정을 품고 있을 때는 그런 내 모습이 싫었습니다. 언제나 착한 아이, 선한 인간이 되기를 갈망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때 선한 가면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의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며 나보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동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한 인간’의 표상을 좇다 보니 내 안에서는 ‘선한 나’와 ‘악한 나’가 대립하기 일쑤였고, ‘악한 나’를 부정하고 질책하였습니다. 내가 만든 이 아상(我想)에 사로잡혀 나는 점점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어떤 일이 잘못되면 내 탓이라는 죄의식을 느꼈고, 누군가 내게 언짢은 표정과 말을 하면 수치심을 먼저 느꼈습니다.

장성아 님
▲ 장성아 님

양어깨에 짊어지게 된 그림자 둘

두 아이를 출산한 후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공들여 일구고 있던 ‘직장과 학업’을 육아와 병행할 수 없었던 까닭입니다. 친정과 시댁 모두 아이들을 돌봐줄 수 없는 형편이었고, 남편 역시 직장을 다니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육아를 분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출근할 때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 두 아이를 보면서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하루 서너 시간 자며 그 시간을 참고 버텼습니다. 서른여섯, 인생 전체로 본다면 비교적 젊은 나이이지만 학위논문을 쓰고 교수 임용을 준비하기에는 늦은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껏 공들여온 시간을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도교수를 찾아가 학위논문을 준비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나에게 돌아온 답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집에서 애나 키우지, 공부는 뭐하러 해? 학업 중에 애 핑계 대면 여기서 이해해줄 사람 아무도 없어!” 그 순간 저는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지식인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뿐, 그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두 아이를 돌본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내 안에서는 지도교수의 말을 이해해보려는 수많은 망상과 억측, 시비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다시 참고 버티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생각이 한번 어긋나자, 지도교수 앞에서 점점 위축되었습니다. 급기야 그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점차 미움과 증오, 원망과 분노로 바뀌었고,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는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학위논문을 완성하지 못했고, 10년의 세월을 보낸 대학에서 인사 한마디 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모든 것이 거품이요, 번개요, 이슬이니

전업주부가 된 후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미래는 항상 불안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미래는 돈,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충분한 돈만 있다면 미래의 어떤 위기라도 안전하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음으로 돈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아이들에게 좌절된 내 욕망을 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이든 배우고 익히길 바랐으며, 아이들의 작은 어려움도 허용하지 않고 내가 앞서서 그 모든 것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완벽한 부모가 되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 뜻과 어긋난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문득 완벽한 부모라는 상은 어리석은 나의 결핍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여겼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만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재산을 늘려나가는 일이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일이 물거품이요 번개이며 이슬과 같이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식을 돌보는 일도, 책을 읽으며 숨겨진 진리를 찾는 일도, 형편이 엇비슷한 사람을 만나 고충을 토로하는 일도, 재산을 증식하는 일도 영원히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경전대학 돕는이 소임 때 으뜸절 실천활동 모습(뒷줄 맨 오른쪽이 장성아 님)
▲ 경전대학 돕는이 소임 때 으뜸절 실천활동 모습(뒷줄 맨 오른쪽이 장성아 님)

가볍지만 미진한 마음

이전과는 다른 길이 필요했습니다. 머릿속에 괴로운 생각들로 가득한 내가 한심했습니다. 다시 직장을 다니더라도 ‘집에서 애나 키우지’라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때 친한 언니가 정토불교대학을 권유했고, 이전에도 마음이 괴로울 때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던 터라 바로 등록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다니며 부처님의 일생을 알고 금강경, 반야심경, 육조단경 등을 통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수행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특히 ‘일상에서 수행연습’과 ‘주제 질문’을 통해 여러 도반과 나누기하면서 나의 괴로움이 나만의 괴로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괴로움이 곧 너의 괴로움이었고, 너의 깨우침이 곧 나의 깨우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본래 내 것이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깨닫자, 그동안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직장이나 학업을 그만둔 일이 별일 아닌 일로 여겨져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무언가 미진했고, 마음속 깊이 그 무언가가 그대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여러 도반이 ‘깨달음의 장’을 권유했고, 출산 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과 떨어져 문경수련원에서 4박 5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참가(두번 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장성아 님)
▲ 깨달음의 장에 참가(두번 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장성아 님)

첫 꿈을 깨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저녁이었습니다. 아들이 저녁 8시 30분에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책을 읽다가 그만 제때 저녁밥을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급하게 달걀 볶음밥을 만들면서도 아들은 밥을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이미 뿔이 나서 쿵 하고 발을 굴렀습니다. 요리에 집중하고 있던 그 순간 심장이 뛰더니 뇌에서 무언가 발산되면서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화가 목에 턱 걸렸습니다. 불과 1~2초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기 이전이었다면 버럭 화를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내 목에 가랑가랑 붙은, ‘화’라고 불리는 그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빠르게 뜀박질하고 있던 심장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고, 지끈거리던 머리의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코끝을 드나드는 숨이 거칠었기에 나는 아들에게 조용히 방으로 가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달걀 볶음밥을 마저 만들기 시작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몇 가지 이미지들이 차례로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간 내가 짜증 내고 화내고 원망하고 미워했던 대상들이 순서 없이 머릿속을 휘저었습니다. 그러다가 특정 이미지에 호흡이 멈추었고, 그 이미지가 비디오처럼 재생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동안 나는 이렇게 화가 올라왔었구나!’ 내가 화를 일으키는 순간을 알아차리자, 목구멍에 가랑가랑 붙어있던 화가 일순간 사라졌습니다. 거칠었던 호흡도 다시 잠잠해졌습니다.

이전에는 나를 힘들고 괴롭게 했던 사람들이 화의 근원이라고 여겼으나, 깨달음의 장에서 보낸 4박 5일간 화의 본질은 내게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제야 이제껏 보지 못했던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도교수에게 모멸감을 느낀 이후 그가 화를 낼 때마다, 비아냥거릴 때마다, 자신이 모르는 내용을 어물쩍 넘길 때마다, 나는 비웃음을 담은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나 혼자 힘으로도 공부할 수 있다는 오만함과 불안해하는 소심함이 있었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특정 인연이 끝났다고 경험한 감정마저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그때 경험했던 감정은 내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오면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스스로 화의 인연을 만들고 합리화로 괴로움을 윤회하고 있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참가한 도반들과 함께(뒷줄 한가운데 나무 앞에 선 이가 장성아 님)
▲ 깨달음의 장에 참가한 도반들과 함께(뒷줄 한가운데 나무 앞에 선 이가 장성아 님)

괴로움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수행

정토회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후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회사에서 있었던 골칫거리를 얘기할 때 가만히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보라는 내 권유에 묵묵부답이었던 남편도 나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더니 올해 입학 신청을 했습니다.

또 아이들에게는 화와 짜증을 거의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잔소리하고 짜증을 내다가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화와 짜증이 쌓여 서로 다투기가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향한 화와 짜증이 내 안에 켜켜이 쌓인 감정 쓰레기라는 점을 알았기에 울컥 화가 올라오더라도 그것을 지긋이 바라보며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불법을 알기 전 내가 경험한 시간에는 권태와 쾌락, 고통과 성취, 번뇌와 망상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 모든 감정이 곧 나라고 여겼기에 때로는 나와 내 가족들을 할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알게 된 후 이 감정들이 허상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허상에 불과한 이 감정이 나의 내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는 점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은 부끄럽고 아프게 하는 무거운 짐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진정한 나이며 그것이 곧 부처임을 믿습니다. 나와 내 삶을 변화시켜 자유롭고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해준 이 좋은 법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계속 수행·보시·봉사하는 삶을 실천하려 합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4월호 정토행자의 삶에 수록되었습니다.

글_장성아(서울제주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전체댓글 21

0/200

안인숙

글을 읽고 감동이 밀려오네요. 제가 경험한 것과 비슷한 내용이라 더욱 공감이 됩니다.
이렇게 와닿게 글을 잘 적어주셔서 제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제 마음이 대변되는 기분이 듭니다. 감사드립니다~

2024-12-06 12:43:29

문선

귀한 경험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2024-11-06 06:11:26

견오행

장성아님 너무 감사합니다. 번뇌에서 깨달음 그리고 발심까지 수행자의 삶을 너무 생생하고 멋지게 보여주셔서 불법의 위력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늘함께합니다.고맙습니다.()()()

2024-11-05 14:20:59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