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위기 속에서 피어난 알아차림

청년특별지부 이은해 님의 바라지장 소감문을 읽으면서 참 풋풋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가족 밥 한 번 챙긴 적 없던 젊은이가 공양간에서 느꼈을 막막함과 당혹스러움이 너무나 잘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은해 님은 대중공양을 잘 준비하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년을 바라지장으로 출발!

2023년 6월 말 덕생 법사님을 안내자로 2,189차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을 수료했습니다. 4박 5일 동안 저를 설레게 한 것 중 하나는 공양 시간이었습니다. 바라지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공양 속 쌀 한 톨에 담긴 농부의 피땀 어린 정성을 실감했으며, 기회가 되면 바라지로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깨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출가한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잠시, 어느새 몸과 마음은 편안함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침 일도 쉬게 되었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신년을 맞이하고 싶어서 1월 첫 번째 바라지장을 신청했습니다.

바라지 단체 사진(왼쪽에서 첫 번째가 이은해 님)
▲ 바라지 단체 사진(왼쪽에서 첫 번째가 이은해 님)

복작복작 위기의 공양간

이번 바라지장 참가자는 열아홉 명으로 생각보다 인원이 많아 놀랐습니다. 연말이고 신년이어서인지 평소보다 많은 분이 참가하셨고,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소임을 배정하겠다는 담당 법우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수련 정비, 대중공양, 수련 공양 세 파트로 나누어 돌아가며 일을 하도록 정해졌습니다. 대중공양과 수련 공양은 음식 준비와 설거지 및 뒷정리를 돕고, 수련 정비는 창고 정리하기, 낫 갈기, 장화 닦기, 예초하기, 수련실 청소 등 수련원에 필요한 일을 하였습니다.

낯섦과 긴장감으로 굳어 있던 첫째 날이 지나니 각양각색 법우님들과 일하면서 자연스레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몸을 쓰는 수련 정비의 경우 주어진 일을 마치면 뿌듯한 성취감이 올라왔습니다.

‘수련하러 온 것치고 꽤 즐겁네?’ 하는 데, 셋째 날 위기가 닥쳤습니다. 오전 공양을 준비하면서 마냥 썰고 설거지하고 뒷정리하는 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집에서 가족 밥 한 번 챙긴 적이 없었기에, 있는 반찬을 정리해서 내어놓는 것부터 어려움으로 다가오며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당장 음식을 내어놓아야 하니 일단 해본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일은 서툴고, 총알같이 빠른 지시를 받고 있자니 ‘내가 있는 여기는 어디?’ 우왕좌왕하며 머릿속은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보다 마음이 먼저 분주했나 봅니다. 그날따라 공양할 사람은 많았고, 반찬은 부실해 보여 ‘내가 빨리 움직였다면 반찬 하나라도 더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꽤 무거웠습니다. 급히 밥을 먹고 설거지하러 가서 마주친 대중공양 담당 법우님에게 화나신 거 아니냐고 투정 섞어 물었더니, 전혀 아니라고 허허 웃으셨습니다. 무거웠던 마음은 다 제가 지은 상이었습니다.

장화 닦기(가운데가 이은해 님)
▲ 장화 닦기(가운데가 이은해 님)

알아차림의 시간

다음 날 새벽 예불 시간에 108배 정진을 하며 불편했던 마음을 돌아봤습니다. 당시 다독여주던 법우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인정욕구가 있느냐는 말에 그때는 부정했지만, 있는 게 맞았습니다. 일을 못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게 너무 싫어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은 당연하게 서툴고, 배우면서 하면 그뿐인 것을 ‘잘해야 한다’는 상을 지으며 분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나를 위한 것임에도 남을 위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단체 모임에서 뒷정리를 하며 ‘해준다’라는 마음이었는데 사실은 내 마음 편하고자 한 일이었습니다. 정진을 마무리하며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라는 수행문이 비로소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온기 가득 감사한 마음

바라지장 하는 내내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처음 경험한 어설픈 발우공양, 걸레를 빨고 있을 때 장갑이라도 끼고 하라며 안타까운 마음 내어주신 법우님, 많은 인원이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수련 담당 법우님, 매번 참가자들이 바뀌기 때문에 더욱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던 공양간 팀장님, 집까지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 내어주신 도반님들, 하나하나 다 열거하기 어렵지만 매 순간 열린 마음 내어주신 덕분에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바라지 단체사진(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은해 님)
▲ 바라지 단체사진(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은해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3월호에 수록된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_이은해(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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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9

0/200

이혜숙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4-11-26 07:26:20

지혜안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24-10-28 08:09:47

대정진

짧은 성장드라마 보는듯 했습니다.
인정요쿠가 있냐는 질문에 나도 돌아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4-10-24 12: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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