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인천지회
인생 뭐 있나요? 그냥 살지요

새벽 수행이 제일 쉽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이기는 게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저와 달리, 그는 “유일하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이라 합니다. 관점을 바로잡으니, 수행이 쉬워지고 수행을 계속하니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민홍금 님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10여 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행하고 있는 인천지회 미추홀 모둠의 모둠장 민홍금 님의 수행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숨 쉬듯 하는 수행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찾고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던 중, 동생과 지인이 소개한 〈깨달음의 장1〉을 2009년 9월에 다녀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발우공양과 3단계 설거지 등 그곳의 환경실천에 반한 저는, 이런 곳이라면 믿어도 되겠다는 마음과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낯설고 거리도 멀었지만 안내해 주는 대로 6-7차 천일결사에 입재하였습니다.

천일결사 입재 법문에서 아침 수행을 3년만 해보라는 말을 듣고 ‘그거 정해진 거 왜 못해? 3년만 하면 되겠지!’ 하며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밤늦게 자는 습관이 있어, 처음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운동 삼아 하기도 하고, 해야 한다고 하니 억지로 하기도 했습니다. ‘아침 수행은 밥 먹듯이 해야 해’ 하기에 밥 먹듯이 했습니다. 불사를 위해 3000배를 하기도 하고, 법당에 모여 300배 정진도 꾸준히 했습니다.

2020년 7월 인천법당, 통일의병 모둠활동(맨 오른쪽이 민홍금 님)
▲ 2020년 7월 인천법당, 통일의병 모둠활동(맨 오른쪽이 민홍금 님)

3년이 되면 어려운 삶이 정리되고 뭔가 해답을 찾을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도반에게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수행은 밥 먹듯이 하는 게 아니라 “숨 쉬듯이 해야 해” 하는 말에 ‘아! 숨은 안 쉬면 죽으니, 이것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할머니가 아침에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던 기억이 납니다. 물이 바로 빠져나가지만, 어느덧 콩나물이 되어있었습니다. 또 부처님의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말씀도 낙숫물에 움푹 팬 바위를 직접 보았기에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10년 넘게 계속 수행하고 있습니다.

따듯한 신발을 신은 행복한 어린 시절

시골에서 태어난 어린 시절의 저는 행복했습니다. 부모님은 성실했고, 자식들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특히 엄마의 저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을 다닐 때도 겨울에 찬 신발을 신은 적이 없습니다. 엄마가 항상 아궁이에서 데운 따뜻한 신발을 주었고, 돌이 많은 시골길에 구두 굽이 망가지면 제가 말하기도 전에 새 구두로 바꿔주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저를 맏딸로 잘 키웠고, 저 또한 맏딸 역할을 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폭넓게 다른 사람을 사귈 줄도 모르고 필요도 못 느꼈습니다. 맏이로서 가족과 동생들을 챙기면서 결혼 전까지 순탄하게 살았습니다. 성실하게 학교 다니고 졸업 후, 한 직장에 6년여를 근무하다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고집으로 시작한 전혀 다른 삶

남편은 일 년 365일 매일 제 직장 앞에 와 있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가족과 직장만 알던 저는 남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만난 남자와 1년간의 열렬한 연애 후 결혼했습니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결혼하려고 하니 집을 얻어야 하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집은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다고 알 정도로 어리숙했습니다. 부모님 그늘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이 자란 저는 울타리 밖 세상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남편 하나 내 사람 만들어 사는 게 뭐 어려워’ 하는 오만함도 있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고집, 내가 본 것만 믿는 고집이 있음을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습니다.

2023년 6월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환경 담마토크 중(맨 왼쪽이 민홍금 님)
▲ 2023년 6월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환경 담마토크 중(맨 왼쪽이 민홍금 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작은아버님 집에서 자란 남편은 세상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노조를 만든다고 하더니 한 달도 안 돼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사업을 했지만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학교급식 조리사로 시작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한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사촌이 하던 자전거 대리점도 하고,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공부도 했습니다. 정 급하면 트럭으로 채소 장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운전면허도 1종을 취득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습니다. 저와 전혀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결혼 전과 완전히 달라진 생활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또 다른 삶

정토회를 만나 공부하고 수행은 했지만, 삶에 급급한 저는 봉사할 생각은 못 했습니다. 불교대학 경전 대학을 졸업하면서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불교대학 담당을 시작으로 JTS 거리모금 담당, 저녁 팀장을 거쳐 2017년부터 행복학교에서 6년을 봉사했습니다.

그 당시 행복학교가 처음 시작될 때라서 모든 것이 어설프고 부족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 전화로 안내하고 참여를 권유하는 것이 많이 부담되고 힘들었지만, 보람과 설렘은 있었습니다.

2017년 4월 남동 희망공간에서 행복학교를 진행하는 모습
▲ 2017년 4월 남동 희망공간에서 행복학교를 진행하는 모습

희망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사무실을 빌려 진행하니 준비물도 많았습니다. 각종 진행 자료와 차, 찻잔, 테이블보 등 소소하게 챙겨야 할 것이 많았고,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바로 오니 간식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들고 먼 거리까지 이동하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부평과 작전역 부근 등 여러 곳을 오가며 진행할 때, 함께 하던 도반은 집이 강화도였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원래 있던 상태대로 사무실 뒷정리까지 하면, 자정이 넘어 다음날 집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정성을 다했습니다.

밥 한 그릇에도 모든 건 연결되어 있다는 프로그램을 할 때는 직접 밥솥을 가져다 쌀을 씻고 밥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현장감을 높이려 세심하게 챙기면서 진행했습니다. 한번은 행복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즉문즉설 강연인 행복캠프가 경주시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있었습니다. 거리가 멀어 아무도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저희는 학생들에게 행복캠프의 특별함을 안내하고 참여를 권유했습니다. 새벽 5시에 인천에서 서초동으로, 서초동에서 다시 경주로 이동하고, 다시 인천에는 밤 11시 넘어 도착하는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녀온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그렇게 행복학교에서 인연이 된 분들을 정토회에서 도반으로 보게 되면 반가움이 배가 됩니다.

저는 때론 융통성 없이 일하곤 합니다.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고 했는데, 저는 겨우 5리를 가는 수준이라서 주위에서는 답답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아, 이거구나'하고 또 한고비 넘어갑니다. 그런 제 성향은 2023년 모둠장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낯가림도 있고 내성적인 저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행복학교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모둠원들과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모임으로 첫 만남을 하면 좋겠다는 안내에, 30여 명이 넘는 모둠원 한분 한분과 소통하며 직접 만났습니다. 그러고 나니 소통이 더 쉬워지고 '내 전화를 어떻게 받을까?' 하는 걱정과, 목소리와 말에 대한 열등감에서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통하고 함께 활동해서 그런지 모든 도반이 소중하고 고맙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여러 일을 했지만, 든든하고 힘이 되는 것은 정토회 봉사였습니다. 봉사하면서 저 나름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2024년 9월 정토사회문화회관 즉문즉설 외부 안내(오른쪽이 민홍금 님)
▲ 2024년 9월 정토사회문화회관 즉문즉설 외부 안내(오른쪽이 민홍금 님)

인생 뭐 있나요. 그냥 살지요

인생 대부분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서인지, 요즘은 제가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전 유머라고 했는데 상대방은 너무 진지하게 듣습니다. 그런 유머를 남편에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남편이 웃습니다. 어느 날 도반이 ‘그 집 서방님은 사각사각한 배 같아’하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제 남편을 약속 안 지키는 사람,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늘 부정적으로만 봤습니다. 하지만 도반의 그 말에 저는 제 남편을 찬찬히 다시 보았습니다. 전에는 남편에게 ‘전생에 나라를 몇 번 구해서 나란 사람을 만났지’ 했는데 지금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해 당신 같은 남편을 만났지’ 합니다. 그저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고맙습니다. 남편 덕분에 그 어렵다는 바른 부처님 법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기에,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나를 인정하며 하루를 감사함으로 시작합니다

주말에 가끔 모둠장 회의가 아침 일찍 시작해 8시가 넘어 끝날 때가 있습니다. 주말이면 일찍 밥을 먹고 나가야 할 때도 있는 남편이 목소리 높이는 대신 “아침에 잘 놀았어? 아침부터 고생했네” 그럽니다. 인생 뭐 있나요? 그냥 그렇게 살지요.

또 다른 행복

요즘 저는 행복합니다. 어린 시절의 행복과는 다른 편안한 행복입니다. 어린 시절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저만의 행복이었다면 지금의 행복은 ‘모두의 행복’입니다. 시야도 넓어지고 마음도 깊어졌습니다. 나와 정반대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섭고 큰 오만이었는지도 알았습니다. 모둠장을 하면서 낯설고 걱정되는 마음에 일반회원으로 남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하루를 읽고 하루를 시작하며 그 또한 제 오만임을 알기에 바로 접습니다.

지금은 모든 일에 정토회 봉사를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들도 결혼했으니, 집착을 내려놓고 손님처럼 대하고, 남편도 다시 보게 되고, 지극한 사랑을 준 어머니도 남편의 배려 속에 매일 저녁을 챙겨드립니다. 수행하고, 일하고, 봉사하는, 편안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천일결사 처음 입재 했을 때 했던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진 듯합니다.

2019년 10월 인천 동구 행복주민센터, 법륜스님 즉문즉설 봉사
▲ 2019년 10월 인천 동구 행복주민센터, 법륜스님 즉문즉설 봉사


민홍금 님과의 인터뷰 내내 받은 느낌은 따뜻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내주셨다는 따뜻한 신발 때문에 그랬을까요? 안 좋다던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했습니다. 동시에 고집도 있었습니다. 그 고집이 발목을 잡고 힘들게도 했지만, 고집스러운 수행 덕분에 행복한 오늘이 있는 건 아닐까요? 춥다고 느껴지는 요즘 따뜻함을 전해준 민홍금 님에게 감사합니다.

글_이삼월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남양주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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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ntha G

민홍금도반님 너무 행복해보이십니다. 정토회에서 봉사를 하면 할수록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수행의 한 과정이구나 함을 깨닫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11-01 20:28:57

강종윤

민홍금 보살님 환하게 웃는 모습이 천사가 확실하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2024-10-27 22:41:20

무구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10-27 10: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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